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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글쎄 굶기는 게 아니라 규칙적으로 먹이는 거라니까요―먹이기 이야기

by 북드라망 2018. 5. 25.

아, 글쎄 굶기는 게 아니라 규칙적으로 먹이는 거라니까요

―먹이기 이야기



일전에 젖병 끊는 이야기를 하면서 잠깐 언급했지만, 나는 딸에게 뭔가 줄 수 있는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좋은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제 돌 무렵의 아기에게 중요한 습관이라면 ‘먹기’와 ‘자기’에 관련된 게 전부다. 



자는 건 신생아 시기부터 꾸준히 노력하기도 했고, 딸도 비교적 잘 따라와서 지금까지 딸은 저녁 8시에서 9시 사이면 잠이 들어왔고, 밤중수유도 빨리 끊은 편이고, 지금은 저녁 7시 30분이면 잠잘 모드로 자연스럽게 전환이 된다.


먹기에 관련된 습관은 딸의 경우 분유수유아였기 때문에, 초기에는 한번에 먹는 양을 잘 늘려가는 것과 밤중수유를 적절한 시기에 끊는 것이 중요했고, 그 다음에는 이유식을 시작하면서 적절한 굳기와 종류의 이유식을 진행해 가면서 분유의 양도 그 시기에 맞게 조절하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이유식을 시작하면서 또 하나 중요하게 생각하고 지킨 것은 따라다니면서 먹이지 않기 위해 언제나 정해진 자리(아기 의자)에 앉아서 먹이는 것이었다.  


보통 이렇게 기본원칙을 배우고 그렇게 해야지 해도 엄마나 아빠의 환경과 타고난 성격 등과 아기의 기질 등이 서로 잘 맞지 않으면―이를테면 아기가 제때 잘 먹지를 않거나 한번에 먹는 양을 늘려가지 못하거나 입이 너무 짧거나, 혹은 양육자가 규칙적인 생활과 거리가 먼 생활을 할 수밖에 없거나 시간을 잘 챙기지 못하거나 하는 성격이라면― 해나가기 어려웠을 텐데, 우리는 성격도 환경도 아기 기질도 모두 원칙적인 부분을 크게 벗어나지 않을 만큼은 잘 맞는 편이었다.


그러다 보니… 연세 드신 부모님들께는 우리가 먹이는 방식이 성에 안 차시는 모양이다. 물론 그렇다 해도 양가의 어머님들 모두 대놓고 뭐라고 하시는 성격들도 아니신 데다가 당신의 딸과 아들이 한마디도 지지 않고 뭐라 하는 성격이니… 직접적으로 마음에 안 든다, 그런 방식으로 먹이는 게 안 좋다, 식으로 강하게는 말씀하지 못하시고, 당신들 입장에서는 꽤 참으시다가 간혹 “너무 규칙적으로 먹인다” “너무 정해 놓은 것만 준다” “애가 배고파 보인다”(딸이 실컷 먹은 직후임에도) “애 배가 홀쭉하다”(아기들은 먹으면 금방 빵빵해지고 먹을 때가 다가오면 좀 꺼져 있는 것임에도) 등의 말씀을 하신다.


어머님들께는 규칙적으로 정해 놓은 걸 먹이는 것이(돌 전에는 알레르기 때문에 그때 그때 먹일 수 있는 것들에 제한이 많았다) 마치 아기를 굶기는 것처럼 느껴지시나 보다. 나는 특히 먹는 것에 굉장히 까다로운 친정어머니께서도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걸 듣고 처음엔 좀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워낙 막내동생이 알레르기가 심한 체질이라 한평생 식재료를 까다롭게 고르고, 남들이 먹으면 거의 맛을 못 느낄 정도의 싱거운 음식에 튀기고 굽는 조리는 되도록 피하며 특히 고기를 구워 먹는 일은 친정에서 퇴출(?)된 지 너무 오래여서 언제부턴지 기억도 안 날 정도다. 먹거리와 건강이 직결되어 있다고 지나칠 정도로 생각하고 강조해온 친정어머니는 아기에게 내가 먹이는 방식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당연히 잘 받아들이실 줄 알았던 것이다. 그런데 친정어머니도 역시 할머니였다. 아기에게는 무조건 아기가 원하는 만큼 배불리, 배가 빵빵하도록 이거저거(물론 인스턴트나 단음식 같은 건 제외하고) 먹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계신 것이다. 더 이상 얘기를 나누어 봐야 서로 마음만 상할 뿐이라는 걸 수십 년간의 다툼으로 아는 친정어머니와 나는 그쯤에서 그냥 말을 아낀다(친정어머니는 딸아이 음식을 만들어 주실 때 이젠 어떤 재료를 넣어도 되는지 물어보신다)




아니, 근데 어느 엄마 아빠가 어린 아기가 더 먹고 싶어하는데도 매몰차게 먹을 것을 거두겠는가. 아, 정말 어어어어어쩌다 그런 부모가 있다 하더라도 당신의 딸과 아들이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시지 않을 텐데(여느 어머니들처럼 당신의 딸과 아들이 제일 잘난 줄 아시는 분들이다;;), 아기의 먹는 문제만 나오면 할머니들은 이렇게 “더, 더, 더” 먹여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먹고 싶어도 먹을 게 없었던 시대를 지나오셔서 그런가 싶다가도 막상 내가 어렸을 때를 생각해 보면, 우리 집은 끼니를 걱정할 형편은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그리고 내가 알기로는 우리 외가도 굶기를 밥 먹듯 하고 이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딸은 먹성이 좋은 편이라 끼니 때마다 성인 여성만큼 밥을 먹고(‘작은 공기 햇반’이 130g인데 거의 근접한 양을 먹는다), 거기다가 밥을 먹고 2시간 정도가 지나면 분유(우유) 200ml와 각종 과일 등의 간식을 또 푸짐히 먹는다. 세 끼 사이에 간식 두 번까지 야무지게 잘 챙겨 먹는데, 이런 아기가 너무 못 먹고 있는 것 같다고 걱정을 하시다니…. 처음에는 이렇게 잘 먹는지 몰라서 저렇게 걱정하시나 싶어 상세히 딸이 먹는 양을 말씀을 드렸지만, 돌아오는 답은 늘 매한가지다. “그렇게 잘 먹으니 얼마나 더 먹고 싶겠냐.” “그러니까 더 줘야지.”


아, 딸아이가 먹어도 먹어도 할머니 눈에는 부족해 보이는 거구나. 이젠 내가 마음을 내려놓자, 그러니까 친정어머니가 또 아기가 배고파 보이네, 못 먹은 것 같네 하는 말씀을 하셔도 버럭하지 말고 참자. 하지만… 아직도 솔직히 그런 말씀을 들으면 “아, 내가 얘 엄만데 그럼 굶기겠냐고요!”라고 버럭하는 말이 목까지 나오려는 걸 겨우 틀어막는다. ㅠㅠ (그래서 말인데 왜 이렇게 같은 말도 엄마가 하면 더 화가 나는 건가.... 우리 딸도 크면 그럴 테지...;;)

 

이렇게 다르지만, 딸이 작은 입을 오물거리며 음식을 열심히 먹는 순간만은 내 표정과 친정어머니의 표정이 같아진다. 우리가 잠시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순간이다.      

  

_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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