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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아기가왔다 1

돌잔치를 준비하는 아빠의 마음

by 북드라망 2018. 4. 20.

돌잔치를 준비하는 아빠의 마음



돌이다. 돌(石)말고, 돌(돐) 말이다. 맞다. 그렇고 보니 예전엔 뷔페 창문에 ‘돐잔치 전문’이라고 써있고 그랬다. 나는 지금의 ‘돌’보다는 예전의 그 표기법이 더 마음에 든다. 돌멩이랑 헷갈리지도 않고, 받침에 들어간 ‘ㅅ’도 어쩐지 멋스럽다. 아마도 헷갈리는 사람이 많아져서 ‘돌’이 되어 버린 것 아닌가 싶지만 너무 편의주의적인 것 같다는 의문을 지울 수가 없다. 아마 예전의 표기가 다시 표준이 되기는 불가능한 일이겠지.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이 사회에 대한 깊은 분노가.......가 아니다. 아빠는 딸의 돌잔치가 코앞에 있다는 이 현실을 회피하고 싶다. 사실은 그게 진실이다. 흑.


의상 리허설 중



사실 아빠도 그렇고 엄마도 그렇고 각종 경조사를 피할 수 있다면 피하고 싶은 성품의 사람들이다. 엄마는 그래도 둥글게 타협하기도 하지만, 아빠는 아... 정말 싫다. 참석하지 않으면 문제가 되는 경조사를 제외하면 언제나 불참을 원칙으로 살아왔을 정도다. 어째서 그렇게 경조사를 싫어하는가. 나는 어쩐지 작위적이고 도무지 의미를 알 수 없게 되어버린 그 잔치들의  모습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특히 결혼식). 그래서 엄마와 아빠는 과감하게 결혼‘식’을 생략해 버렸다. 웨...웨딩드레스와 터...턱시도를 입은 서로의 모습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사실 이번 돌잔치는 그 원죄를 갚는 의식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가족 친지 모두 우리가 결혼했다는 사실, 아이를 기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의식’(Ceremony)이 없다 보니 마치 마침표가 찍히지 않은 문장 같은 느낌이 되었다.(아, 물론 엄마는 다르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아기가 태어날 무렵부터 ‘돌잔치’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 되고 말았다(고 아빠는 생각한다).


이제야 아빠는 조금 알게 되었다. ‘경조사’란... 참석자보다는 주최자가 더 힘든 법이라는 것을. 물론, 전에도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알고는 있다’와 ‘알았다’의 어감 차이만큼 생생하게 깨닫게 되었달까 그렇다. 이 차이는 정말이지 대단하다. 돌잔치를 준비하는 일이란 그야말로 한국 육아시장의 시장법칙과 아기에 대한 세인적(世人的) 관념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돌잔치 장소의 선정부터 그날 아기와 엄마, 아빠의 세세한 동선, 취해야 할 제스처, 입을 옷까지 어느 것 하나 준비되어 있지 않은 게 없으며, 그 모든 준비가 화폐와 교환된다. 


돌잔치 장소는 D-day로부터 6개월 전에 구해야 한다. 사실 육아 카페 같은 곳에서 올라온 그런 이야기들을 보면서 아빠는 ‘뭐 그렇게 유난스럽게!’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웬걸, 그렇게 생각하고 대충 넉달 전에 장소를 예약하려고 보니 우리가 생각한 날짜는 이미 예약이 되어 있고, 그 다음 주만 비어 있는 게 아닌가. 딱 그 자리만 비어 있고, 그 앞으로는 물론이요, 그 뒤로도 예약이 이미 끝난 상태였다. 돌잔치 예약이 그렇게 치열한 각축의 장이라는 걸 예약에 나서기 전에는 전혀 몰랐었다. 그리고 장소 예약이 가장 중요한 일인데, 왜냐하면 ‘장소’에 다른 상품들이 패키지로 묶여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 하면 장소를 예약하면 그 곳과 연결된 사진 스튜디오를 소개해 준다. 각종 돌 사진들을 찍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사회자’인데 아무래도 주인공이 ‘아기’이다 뿐이지 행사의 속성이 ‘회갑연’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보니 ‘사회자’도 사실상 필수요소 중 하나다. 물론 우리는 프로 사회자만은 섭외하지 않았다. 여하간, 요약하자면, 이 바닥에선 ‘유난스럽다’ 싶은 게 가장 상식적인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유난스럽게’ 이 돌잔치에 친구들을 초대하지 않았다. 오로지 가족만 모여서 하는, 엄마와 아빠의 부모님 등 기타 이번 돌잔치의 이해당사자들이 용납 가능한 최소선에서 돌잔치를 진행하려고 한다. 이렇게만 이야기하고 말면 딸의 ‘돌’이 큰 의미가 없는 것처럼, 후딱 해치우고 말 무언가인 것 같지만 그렇지는 않다. 우리는 이미 우리에게 더 큰 ‘의미’가 있는 돌잔치를 지난 주에 남산강학원에서 여러 친구의 우정어린 도움에 힘입어 근사하게 치렀다. 돌을 눈앞에 둔 요즘은 그야말로 폭발적으로 발달-성장 중인 딸을 보면 ‘돌’이 정말 한 마디를 이루고 있구나 하는 점을 절실하게 느낀다. 말하자면 ‘돌’의 의미는 이미 매일 과분할 정도로 느끼고 있다. 




지난 주 엄마편에도 나오지만 우리 딸은 요즘 급성장 중이다. 마치 신생아 때 같다. 다른 점은 신생아 때는 몸이 급‘성장’ 한데 비해 요즘은 급‘발달’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루가 다르게 무언가를 쥐고, 잡아 뜯고, 뽑는 기술의 완성도가 높아져간다. 얼마 전까지는 일어설 때 꼭 기대거나 잡고서야 서 있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선 채로 박수까지 친다. 그리고 ‘말’ 비슷한 걸 하루 종일 어물거린다. 이른바 ‘예쁜짓’은 또 얼마나 늘었는지. 그게 너무 신기하고 뿌듯해서 아빠는 자꾸 시키고, 껴안고, 박수치고, 감격하고 있다. 신생아 시절에도 자라는 게 그렇게 신기하고 용했는데, 딱 1년이 돌아오니 또 그렇다. 이렇게 감격적인데 그런 사...상업적인 돌잔치가 무에 대수랴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역시 이 기특한 광경을 우리 딸을 사랑하는 여러 사람들에게도 한 번씩 보여주라고 ‘돌잔치’라는 게 있는 것이라 여기며 아빠는 ‘이 사회에 대한 깊은 분...노’를 다독인다.


_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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