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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별자리서당

누가 하늘을 올려다보았는가!

by 북드라망 2012. 5. 10.
동양 천문(天文)이 국가학이 된 사연

손영달(남산강학원 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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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의 아득한 역사

나카자와 신이치의 책 『신의 발명』에는 한 인류학자가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의례에 참가하는 장면이 나온다. 돌마토프라는 이름의 이 학자는 원주민들과 함께 의례에 사용하는 환각제를 마시고 무아경에 빠진다. 그가 본 것은 강렬한 빛의 율동. 깨어나고 나서 그가 환각상태에서 마주한 기묘한 형상들을 그려내자,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놀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은 은하를 본 겁니다. 우리와 함께 은하까지 날아갔던 거죠.”(나카자와 신이치, 『신의 발명』, 동아시아, 43쪽) 은하를 여행하고 돌아왔다니, 이게 가당키나 한 일인가? 그렇다면 그가 본 빛의 정체는 무엇일까?

생각해 보니 이건 나 어릴 적에 동네에서 본드 불던 아이들이 늘어놓던 체험담과 닮아있다. 사람이 황홀경에 빠지면 빛이 보인다. 우리 동네 엉아들은 눈에서 레이저가 나온다며 단체로 기차를 공격하러 다녔었다.^^ 연구실의 멘토이신 정화 스님도 말씀하시길 명상에 잠긴 승려들도 자주 이런 빛의 군무를 마주한다고 한다. 삼매(三昧)에 든다고 하는 말이 곧 이와 같은 상태를 두고 하는 말인데,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도달하기 어려운 고매한 상태가 아니란다. 수행의 초보자들일수록 자기가 맞닥뜨린 환상적인 체험에 너무 큰 의미부여를 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단다. 여기서 중요한 건, 해와 달과 별에서 나오는 빛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 빛은 인간의 내면에도 있다.

이런 빛을 “내부섬광(phosphene)"이라고 한다. 18세기의 생리학자 푸르킨예(Purkinje)가 하시시 복용으로 인해 나타나는 체험을 연구하다 만들어 낸 개념이다. 어떤 외부 대상의 지각없이 자체적으로 나타나는 내부의 빛이 있다는 것이다. 그의 생각을 이어받은 후대의 생리학자들은 내부섬광은 시신경의 통로에서 일어나는 뉴런의 발화 현상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설명을 내 놓는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내면’이라는 당최 뭐라 설명하기 애매한 곳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그럴듯하게 기술한 데 그칠 뿐, 내부섬광이 왜 발생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는 아무런 답을 제시해주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언뜻 보기엔 허무맹랑한 듯 들리는 아메리카 인디언식의 설명이 때로는 우리 귀를 솔깃하게 만든다. 아마 이 자리에 그들이 있다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해줄 것이다.

‘당신이 지금 본 것은 잔상이나 환영이 아니라 은하 그 자체입니다. 우리의 몸은 소우주로서 전체 우주와 감응하지요. 따라서 우주의 신비는 몸의 신비와 다르지 않습니다. 굳이 우주선을 타고 몇 억 광년을 걸리는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내면의 체험으로 곧장 우주를 경험할 수 있답니다.’

아주 먼 시간을 거슬러 올라 문명이 막 태동할 시절, 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생각도 이와 같았다. 현대인들처럼 의식이 분화되지 않았던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분별없는 의식세계를 가지고 있었다. 나와 세계가 혼재된 세상을 살던 그들, 그렇기에 나를 잃어버린다는 위험에 대해 우리보다 훨씬 민감했다. 의식 자체가 이제 막 걸음마 수준이던 그들에겐 도처에 자아를 집어삼킬 듯한 위험이 산개해 있던 것이다. 그들은 빛을 찾아 여행을 떠났다. 내가 누구인지를 밝혀줄 앎의 빛 말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신의 내면에서 밝게 빛나는 천체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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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가 둥글어 하늘을 본받고, 발은 모가 나 땅을 본받았으며, 하늘에 사시(四時)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사지(四肢)가 있고, 하늘에 오행(五行)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오장(五臟)이 있으며, 하늘에 육극(六極)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육부(六腑)가 있고, 하늘에 팔풍(八風)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팔절(八節)이 있으며, 하늘에 구성(九星)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구규(九竅)가 있고……" - 허준, 『동의보감』, 「신형장부도」: 곧 니 몸이 별이고 우주다. 어디서 무엇을 찾는가!

고대 사회의 천문은 이렇듯 제의의 도구로 등장했다. 명상을 통해 은하수로 여행을 떠나던 샤먼의 주술 행위가 천문의 시초라는 얘기다. 밤하늘의 별과 내면의 별들의 이름을 되뇌며, 별자리의 모양을 본뜬 스텝을 밟으며 그들은 엑스터시에 이르렀다. 이 경험을 통해 그들은 내 안의 우주와 합일하는 신비를 체험했다. 그 한줄기 빛을 부여잡고 인간은 까마득한 내면의 혼돈 속에 하나씩 스스로의 질서를 조직해가기 시작했다.

이런 설명은 천문의 태동기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제공해준다. 통상의 설명은 천문의 시작은 농경의 시작과 함께 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이성이 눈뜨고 농경이 일어납니다. 농경은 정착을 가능하게 하고 정착은 다시 한번 급속한 이성의 발달을 가져옵니다. (…) 하늘의 운행을 관찰하여 그 자료를 토대로 곡물을 풍부하게 기르고 입맛에 맞는 가축을 기르는 데 힘썼습니다.

─전창선·어윤형 지음, 『음양오행으로 가는 길』, 와이겔리, 30쪽

유목민에게도, 수렵과 채취에 의존하는 아마존 정글의 원주민들에게도, 천문은 있었다. 정착과 농경을 통해 문명이 들어서기 이전부터 인간은 천문과 함께한 것이다. 여기서 천문이 비단 실용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진 도구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천문을 통해 역법(曆法)을 고안하고 농업 기술을 발전시킨 건 비교적 후대의 일이다. 고대의 추장은 곧 샤먼이었다. 그들은 별을 보고 지금-여기라는 시공간의 좌표를 삼았고, 명상을 통해 나라는 존재의 좌표를 읽어냈다. 별을 관찰하여 볍씨 뿌리는 시기를 알려주고 전쟁의 때와 성패를 정하는 건 추장이 아니라 후대 문명국가의 왕들이 한 일이었다. 그 이전에 천문은 보다 제의적이고 명상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동양 천문을 이야기하는 자리이니 고대 중국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역사 이전의 시대로 여겨지는 은(殷)나라. 아마도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국가의 모습보다는 부족 연맹체 정도에 가까운 형태일 것이다. 그 사회상을 이해하기 위해선 잠시 고대의 신화를 경유해야 한다.

제(帝)는 어떻게 천(天)이 되었는가

원시적인 고대의 공동체는 모계사회였다. 그들의 세계관에 따르면 우주는 곧 생명을 잉태하는 능력이 있는 여성의 모습이었다. 고대 이집트의 신화를 보자. 아치형의 자세로 하늘을 만들고 있는 것이 하늘의 여신 누트(Nut)이다. 그 아래 대지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남신 게브(Geb)이다. 여신 누트는 태양을 낳았고, 세계를 그 뱃속에 품고 있다. 그들에게 우주란 이처럼 여성적 이미지로 인식되었다. 고대인들이 생각했던 하늘은 여성의 배와 같았다. 샤먼이 명상을 통해 도달하려 한 대상도 만물을 잉태하는 세계의 어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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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엔 10개의 태양이 있다.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 매일 매일 다른 태양이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고대 신화에도 이와 비슷한 모신(母神)의 창세 신화가 전한다. 그의 이름은 희화, 태양의 어머니이다. 그는 열 개의 태양을 낳았다. 그는 자신의 아들을 한 명씩 깨끗이 씻겨서 교대로 하늘로 올려 보내는 역할을 한다. 바로 기원전 14세기 경 은나라에 전하던 신화다. 여신 희화가 낳은 열 개의 태양은 곧 주기적으로 교대되는 하늘의 태양을 뜻하는 것이자, 은나라를 차지했던 열 개의 부족을 일컫는 것이었다. 열 명의 부족장들은 자기 부족의 시조로 알려진 태양을 숭배했다. 이들에게는 태양 숭배 신앙과 결합한 조상숭배 전통이 있었다. 이 전통은 후일 유교에 흡수되어 현재까지 전하며, 유교문화권인 우리나라도 이 전통을 공유한다. 일 년에 일고여덟 번의 제사는 기본으로 알고 지낸 우리네 며느리들의 애환, 그 애달픈 역사는 멀고 먼 고대 은나라 적부터 계속된 것이다.^^; 은나라에서 숭배했던 신은 '제'(帝)로 각자의 부족을 관장하는 시조신이다. 이들의 신앙은 원시적인 자연신앙이었다. 이 지형도를 뒤바꾼 것은 주나라이다.

기원전 11세기, 중국의 서쪽 지역에 거주하던 주 부족이 동쪽의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주나라를 세웠다.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결과 변방의 이민족이 대륙의 패권을 거머쥐게 된 것이다. 이들은 자기 왕족의 정당성을 찾기 위해 은나라의 신 '제'(帝)를 물리치고 새로운 신을 만들어 냈다. 그것이 '천'(天)이다. 천(天)이란 글자는 주나라의 역사와 함께 새로 태어났다. 은나라의 갑골문에 나타난 천(天)자는 그저 ‘크다’는 뜻을 가질 뿐이었으나, 주나라에 와서는 여기에 절대와 초월이라는 의미가 덧붙는다. 즉, 천은 지상의 모든 것을 지배하는 초월적인 인격신으로 거듭난 것이다. 이로써 세상을 품고 기르는 모계신의 계보는 막을 내리고, 다스리고 군림하는 부성적 종교가 시작된다. 오랜 세월 이어져 오던 기존의 전통을 부정하고 새로운 질서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초월신의 존재가 필수적이었다. 주나라에서는 자신들의 어깨 위에 절대의 존재인 천이라는 신을 세웠다. 이때부터 천명(天命)이라는 관념이 등장했다. 주나라 이래로 왕은 스스로를 하늘(天)의 명을 받은 천자로 인식했고, 그 후로 천명 관념은 왕의 권력을 상징하는 개념이 되었다.

이와 함께 천문의 성격도 변했다. 애초의 천문이 원시 자연 신앙의 성격을 띤 것이었다면, 이제는 국가의 정당성을 보증하는 일종의 일신교로 변화한 것이다. 자신들의 국가가 안정적으로 이어지기를, 또한 왕의 권력이 언제까지고 영원하기를 바랐던 왕과 관료들은 자신들의 바람을 우주에 투영했다. 뭇별들이 북극성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북극성 중심의 천문체계가 이때부터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봉선(封禪)’이라는 이름의 제천의식이 시작됐다. 봉(封)은 천신에 제사를 지내는 것이고 선(禪)은 대지의 신에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이 제사를 주관하는 것은 천자였다. 그는 새로이 정립된 부성적인 천신을 기림과 동시에 민중들의 신앙 속에 남아있는 자연신앙을 포섭하기 위해 대지의 신을 기렸다. 이로써 종교적 권위와 전제적 권력을 아우르는 강력한 중앙집권적 왕권이 등장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었다.

주나라에서 춘추전국시대에 이르는 시기는 이렇듯 정치적인 그리고 종교적인 격변의 시기였다. 이 격동의 시기의 변화상을 잘 보여주는 계층이 유가이다. 『몸과 우주』의 저자 유아사 야스오는 유가가 원래는 은나라에서 조상숭배의 종교적 행위를 담당하던 샤먼들이었다는 쇼킹한 의견을 제시한다. 그런 그들이 주나라에 와서는 막강해진 천자의 권위 아래 종속된 관료계급이 된 것이다. 한때 '영빨'깨나 날리던 사제 계급에서 일개 관료로의 참담한 전락. 주나라가 멸망하고 나서 그들은 한층 지리멸렬한 전락을 경험해야 했다. 이때 영적 권위를 박탈당한 유민의 역사를 다시 세우려 한 인물이 그 유명한 공자(孔子)이다. 그는 은의 전통이던 조상숭배를 당대의 살아있는 정치원리로 재정립하려 했다.

공자가 이루었던 업적의 의미는 신화시대가 멀어짐에 따라 그 지위가 떨어져 온 조상숭배에 대한 새로운 사상적 의미를 부여함과 동시에 그것을 공공적 사회적 현장에서 통용되는 정치원리로까지 다시금 높여 놓았다는 점에 있다.

─유아사 야스오 지음, 『몸과 우주』, 지식산업사, 47쪽

이렇듯 이들은 전통의 보존자이자 문명의 수호자라는 위치에서 그 명맥을 이어간 것이다. 아니, 천문 이야기 하다 왜 이야기가 갑자기 유가로 빠지냐고 의아해 하는 당신! 동양의 천문역사를 논함에 있어 유가를 빼놓고 할 수 있는 이야기는 거의 없다. 왜냐하면 동양의 천문을 최초로 정립한 이가 바로 유가들이며, 그들이 이룩한 체계는 수천 년의 역사를 변하지 않고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유가들은 어떻게 천문을 이론화 했으며, 또 어떤 도전에 직면했는가? 이에 대해서는 다음 주에 살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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子曰 爲政以德 譬如北辰 居其所而衆星共之.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덕으로써 정치를 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북극성이 그 자리에 있고 모든 별들이 북극성을 향하는 것과 같다." 『논어』, 「위정」: 우주정치, 왜 우리는 눈앞의 정치에만 골몰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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