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부모가 아기의 위험을 모조리 없앨 수는 없다_아빠

부모아기위험을 모조리 없앨 수는 없다



아아아...요즘 우리 딸은 부쩍 책 먹기를 즐긴다. 다시 말하지만, ‘읽기’가 아니라 ‘먹기’다. 특히 즐겨 먹는 건 『괜찮아』(최숙희, 웅진주니어)다. 특히 마지막 장의 활짝 웃는 장면은 별미인지, 그냥 두면 앉은 자리에서 다 뜯어먹을 기세다. 가장 좋아하는 책 중에 하나인데 이 시절엔 좋아하면 먹고 싶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난 주 무슨 요일이었더라... 여하간 지난주 어느 날 오전엔가 도저히 쏟아지는 졸음을 참지 못한 아빠가 아기 매트에 누워서 최대한 아기를 가까이 두고 누웠더랬다. 살짝 잠이 드는 건 예정된 수순. 그렇게 잠이 들고 말았는데, 꿈결 어디선가 ‘촵, 촵, 촵’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게 아닌가. 아빠는 ‘아기가 무언가 먹나보다’하고 있는데, 당연히 아빠와 아기만 있는 집에서 아빠가 뭘 주지 않았는데 아기가 뭘 먹고 있으면 안 된다. 이런 경우 아기는 거의 100% 먹어선 안 되는 걸 먹고 있다. 그렇다. 그녀는 『괜찮아』의 마지막 페이지를 부욱 찢어서 끄트머리부터 촵촵거리고 있었던 게다. 황급히 손가락을 넣어서 입 속에 남은 종이들을 빼주었다. 원래 매뉴얼대로 하자면,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 빼주려고 손가락을 넣었다가 목에 상처가 날 수도 있고, 입 안에 있던 게 넘어가다가 걸릴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게 입 속의 종이들을 빼주고, 아빠는 찢어진 페이지를 투명 테이프로 붙여 두었다. 오래도록 보관하여 네 악행의 증거로 삼으리라. 


이 일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요즘은 딸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물론, 이건 당위이고, 눈을 떼는 상황이 아예 없을 수는 없다. 한순간의 공백도 없이 눈을 붙이고 있다면, 딸이 책을 먹는 일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가령 우리집 부엌 싱크대와 거실 소파는 수평으로 이어져 있다. 그러니까 싱크대와 소파가 같은 벽에 붙어 있는 구조다. 따라서 싱크대에서 무언가 작업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고개만 살짝 돌리면 소파 쪽을 제외하면 거실 전체를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역시 ‘제외’된 부분에서 나온다. 가끔 거실 유아매트에서 한참 놀고 있던 딸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가 있다. 그 순간 아빠는 바짝 긴장하게 되는데, 딸이 시야 밖으로 사라졌다는 것은 그녀가 소파 위에 올라가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면 작업을 멈추고, 후다닥 거실로 가본다. 아니나 다를까, 소파 위에 올라가 있다. 아빠가 이렇게 긴장하는 이유가 있다. 바로 얼마 전에 딸이 소파에서 굴러 떨어져 목이 오른쪽으로 확 꺾이는 순간을 보았기 때문이다. 마치 사진으로 찍은 듯, 목이 돌아간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를 정도다. 물론, 그렇게 떨어졌음에도 딸은 울지도 않았다. 그저 잠깐 ‘앵~’했을 뿐. 그 장면의 임팩트가 워낙 커서 그런지 아빠만 계속 마음을 졸인다. 위험이 점점 많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아빠는 요즘 자주 초조해진다.


간식 꺼내는 중



딸에게 위험한 일이 많아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물론, 부모 입장에서야 최대한 위험을 줄이고, 할 수만 있다면 없애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일 텐데, 그건 모두가 알다시피 불가능하다. 그것들은 어쩌면 ‘겪을 수밖에 없는’ 위험들이다. 말인즉, ‘인생’이 기본적으로 그렇게 생겼다는 의미다. 우리 딸은 고작 1년 가까이 살았을 뿐이지만 그런저런 위험들을 겪고, 넘어가며 능력들을 키워 왔다. 아닌 게 아니라 불과 두 달 전까지만 해도 아빠는 딸이 무언가를 집고 서다가 엎어지거나 발랑 넘어가거나 할까봐 마음을 졸였었다. 그러니까 그때는 싱크대에서 일을 하고 있다가 딸이 서는 모습만 보아도 일을 멈추고 그 근처에서 경계 태세에 돌입했던 것이다. 요즘은 그런 걸로 마음을 졸이지는 않는다. 능숙하게 서기 때문이다. 물론 능숙하게 서는 것과 동시에 어딘가(대부분 소파)에 오르거나,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기 때문에 ‘마음 졸임’의 절대값은 크게 바뀌지 않았지만 말이다. 책을 먹는 것도 그렇다. 예전엔 책을 펼치는 것도 못하고, 심지어 읽어줘도 아무 관심도 없었지만, 이젠 ‘『달님 안녕』 어디있어?’하면 그걸 잡아서 주기까지 한다. 펼쳐서 마치 자랑하듯 마구 넘기기까지 한다. 그러곤 입에 넣는다. 


딸이 위험할 듯하면, 아빠는 여전히 여느 때처럼 초조해진다. 그건 정말 변함이 없다. 그리고 그 위험한 것에서 떼어놓고 싶어진다. 그때 한번 참기로 한다. 어딘가에 쿵쿵 부딪히고, 집이 떠나가라 울지라도 어차피 겪어야 하는 일들이니까. 그리고, 그런 위험들 속에서 딸이 가진 능력들이 점점 커 갈 테니 말이다. 부모가 자식을 ‘지켜봐 주어야 한다’는 말은 아마 그런 의미가 아닐까 싶다. 위험한 것들을 모조리 없애 주거나, 위험한 상황에 빠지지 않도록 내내 붙어 있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넘어져 다쳤을 때 돌봐주고, 엎어져 울 때 달래주면 된다는 의미인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하니 초조감이 한결 가신다. 여전히 피곤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

_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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