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아파서 살았다』- 연민의 종류들

『아파서 살았다』- 연민의 종류들


나를 ‘불쌍히’ 보는 그 눈길이 생명 에너지를 잃게 만드는 강력한 힘을 갖고 있었나 보다. 이미 통증과 여러 가지 행동 장애로 힘이 빠진 상태에 ‘불쌍하다’는 그 한방이 날아온 것이다. 물론 청정한 연민은 자비의 모습을 띠게 되고 그것은 사람이 가져야 할 덕목이기도 하다. 그러나 연민에는 탁한 마음이 끼어들기 쉽다. 상대적 우월감이나 남을 업신여기는 마음 같은 것. 자기 연민이건 상대에게 연민을 느끼건 이런 삿된 기운이 끼어들면 그것은 부정적인 힘으로 작동한다. 그날의 한 판 싸움은 어쩌면 위기에서 나를 지키고자 한 생명 차원에서의 반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오창희, 『아파서 살았다』, 52~53쪽


탁한 마음이 끼어들지 않은 ‘연민’을 갖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이것은 20대 이후로 늘 내 마음속에서 떠나지 않는 주제 중 하나다. 나는 쉽게, 너무도 쉽게 자기연민에 빠지곤 한다. 그것은 아마도 불쑥 커다란 ‘자기애’의 효과가 아닐까 싶다. 그렇다. 그러니까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그런 유형의 인간이다.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면서 줄어가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여전히 보통보다는 크다. 




사실 이게 ‘문제’라고 느끼지 못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주로 낮은 자존감을 고민하는 시대이기도 하고 그만큼 자기애를 강조하는 그런 분위기 속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분위기에 비춰보자면 자기애가 강한 건, 어쩌면 장점일지도 모를 덕목(?)이었다. 그런데, 자기애가 강하다고 해서 꼭 자존감이 높은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나는 자존감이 딱히 낮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자존감이 자기애만큼 대단하지는 않다. 그리고 살면서 보아온 바들에 따르면 자존감이 낮은 인물 유형들 중에 자기애가 강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았다. 


나는 내 몸에 대해 이런저런 불만들을 가지고 있었다. 키도 조금 더 크면 어떨까 싶었고, 몸매도 좀 더 멋지면 좋겠다 싶었다. 여기서부터 시작해서 마음의 문제로까지 간다. 더 착한 사람이었으면 좋겠고, 더 여유가 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또 한 발 더 가서 집이 부자에 교양있는 집안이었으면 어떨까 싶고, 부모님이 더 훌륭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싶다. 이 모든 원하는 바들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자기애가 강한 것이 아닐까 싶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만큼 더 많은 것을 갖고 싶고, 더 훌륭한 것을 지니고 있길 원하는 셈이다. 그런데 동시에 그 모든 바라는 것들 중에 내가 가진 것은 하나도 없다. 역설적으로 자존감이 바닥을 친다. 그러다가 그런 것들을 아무 것도 갖지 못한 내가 불쌍해지고 마는 것이다. 


20대 중후반 무렵에 그런 생각들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때는 그냥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우울해지곤 했었다.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화려한 그 거리에서 남루한 인간은 나 밖에 없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스스로가 하찮게 느껴졌던 그 와중에도 나는 그 거리의 사람들을 속으로 얼마나 비웃었던가. 그 중에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은 나밖에 없다는 식이었다. 말하자면, 탁하고 삿된 마음이었던 셈이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어느 날 갑자기 ‘자기연민’을 하고 앉아 있는 게 너무 피로했다. 그런다고 해서 기분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내가 나아지는 것도 아니니까. 나는 그저 자기연민의 쾌락에 중독되어 있었던 것 같다. 자존심이 꺾이고, 그걸 다시 세우고, 나를 어루만지며 허우적거린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의 그런 기분은 뭐랄까, ‘젊음’의 부작용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다. ‘젊음’은 그야말로 달콤한 것인데, 그 달콤한 것이 마냥 좋기만 할 리가 없다. 분명 무슨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일 테고, 인생에 지불해야 하는 여러 가지 것들 중에 하나가 아니었나 생각한다. 




여하튼 그래서, 그 이후로 쉽게 나를 불쌍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래도 조금은 진전이 있었는지 이제는 남도 쉽게 불쌍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마음을 다잡기 전에 불쑥 나오는 불쌍한 마음이야 어떻게 할 수는 없지만, 장애가 있다고 해서, 가난하다고 해서, 어떻다고 해서 일단 덮어놓고 불쌍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렇게 딱 정해진 패턴에 따라 불쌍하게 여기는 태도가 얼마나 교만한 것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불쌍한 마음이 튀어나가려는 순간에 그걸 고마움으로 바꿔치기 하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나는 내 인생과 운명이 고맙다. 사랑하려면 나 말고, 내게 닥쳐오는 운명을 사랑하는 편이 훨씬 나은 것 같다. 지금 내가 어떻든 말이다.


아파서 살았다 - 10점
오창희 지음/북드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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