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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하고 인사하실래요 ▽/씨앗문장

돌봄노동과 새로운 관계 구축

by 북드라망 2018. 2. 26.

돌봄노동과 새로운 관계 구축 



그때 간병인이 어머니를 대하는 태도도 그랬다. 여든여덟이 된, 기운이라고는 하나 없는 어머니는 돌아가실 때가 된 노인의 모습이었고, 간병인은 그런 어머니를 죽음을 앞둔 노인 취급을 했다. 학교에 오가는 길에 들렀지만 어머니는 말씀이 없으셨다. 옆 환자의 보호자들이 간병인이 어머니를 방치한다고 귀띔을 해 주었다. 간병인에게 화가 나기보다는 그런 상황에서도 아무 말씀을 하지 않는 어머니의 의욕없음이 더 걱정스러웠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니, 나라도 어머니 같은 분을 이런 상황에서 처음 보면 그렇게 생각할 것 같았다. 간병인에게 편지를 썼다. 병원에 오기 전까지 어머니가 어떻게 생활했는지, 식성은 어떠한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 이렇게 입원을 하고 있는지 등등을 간략하게 적었다. 그 편지를 받고 간병인의 태도는 많이 달라졌다. 

_ 오창희, 『아파서 살았다』, 북드라망, 2018, 195쪽


고암 선생(고암 이응노 화백)과 한 방에 있었던 젊은 친구를 만났습니다. 이런 저런 궁금한 일들을 물어보기도 했습니다. 그 젊은이는 이응노가 누군지 전혀 모릅니다. 이야기 중에 “아 그 괴짜 노인 말인가요?”라고 했습니다. 어째서 ‘괴짜’냐고 물었더니, 수번(囚番)으로 사람을 안 부른다고 했습니다. 감옥에서는 수번으로 호명하는 것이 규칙입니다. 그런데 고암 선생은 한 방에 있는 사람을 수번으로 부르는 법이 없고, 부르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자네 이름이 뭐야?” “이름은 왜요? 그냥 번호 부르세요. 쪽 팔리게.” 어쩔 수 없어 자기 이름이 ‘응일’(應一)이라고 했더니, 한 일 자 쓰느냐고 또 묻더랍니다. 그렇다고 했더니 “뉘 집 큰아들이 징역 와 있구먼.” 혼자 말씀처럼 그러더래요. 이름자에 한 일 자 쓰는 사람이 대개 맏아들입니다. 뉘 집 큰아들이 징역 와 있구먼! 하는 말을 듣고 나서 그날 밤 한잠도 못 잤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자기가 큰아들이라는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지요. (……) 우리는 사람을 개인으로, 심지어 하나의 숫자로 상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노인들은 고암 선생의 경우처럼 ‘뉘 집 큰아들’로 생각합니다. 사람을 관계 속에 놓습니다. 이러한 노인들의 정서가 『주역』의 관계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_ 신영복, 『담론』, 돌베개, 2015, 73~74쪽




현대문명에서 돈을 매개로 한 일(활동)을 통해 사람과 만나게 될 때 우리는 그를 일의 ‘대상’으로 대하게 되기 쉽다. 불행하게도 현대의 생활양식에서는 이렇게 ‘돈’을 주고받으며 사람과 만나는 일이 점점 더 많아지고, 특히 그 영역에는 전통적 의미에서 가족(친족)의 돌봄 테두리에 있는 것들도 빠르게 포함되고 있다. 그리고 이제 ‘대상’이 되어 버린 돌봄의 영역에서는 분명 돌봄을 받고 있는데도 ‘소외’되는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다. 아마도 이 소외는 ‘관계’와 ‘(개인)서사’의 단절에서 오는 것 같다. 이 단절은 우리가 너무나 편리하게 누리고 있는 현대(도시)문명이 제공한 익명성과 세트로 묶여 있다.


아이도 그렇고, 병이 든 가족도 그렇고, 나이든 부모님도 그렇다. 돌봄서비스의 대상이 되어 버리면 한 사람의 고유한 특이성은 모두 사라지고, 3세의 어린아이, 무슨무슨 병에 걸린 환자, 구순을 바라보는 할머니로 뭉뚱그려진다. 그렇게 대상은 일반화되고,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은 좀더 편리하게 서비스를 ‘일반화’하여 제공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이제 3세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아이, 환자 같지 않게 구는 환자, 죽음을 앞두고도 욕심을 내는 할머니 등 ‘일반화’에 조금이라도 어긋난 행동들은 ‘문제행동’이 되고, 그런 행동을 하는 사람은 ‘문제가 있는 사람’이 되고 만다.


이건 그 일을 하는 사람의 숙련도(이른바 ‘프로다움’)나 인성과 아예 상관이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것이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다. 그 관계 안에 들어가면 그가 누구든 그렇게 되기가 쉬운 것이다. 흔히 병원에 가면 (아픈 데가 없는데도) 환자가 된 것 같다는 말을 하듯이. 그렇다고 오늘날 이런 관계를 떠나기가 쉬운 것도 아니다. 생활양식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에 이를테면 아미시(Amish)공동체처럼 큰 규모로 아예 다른 삶을 꾸리는 집단에 속해 있지 않는 한 그 관계를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면 지금 같은 상황에서 우리가 제공자로서든 제공을 받는 사람으로서든 서로가 서로에게 ‘사물’ 같은 대상이 아니라 개인의 역사와 서사를 가진 고유한 한 사람으로 만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일까. 



나도 언젠가는 딸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길 수밖에 없을 것이고, 가족 중 누군가가 병이 들면 간병인 분을 부를 수밖에 없을 것이며, 또 부모님께서 연세가 많아지셔서 거동도 불편해지시면 역시 요양보호시설을 찾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때, 내 아이를 부모님을 ‘한 사람’으로 그분들이 받아들일 수 있으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비단 나 개인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이제 그곳의 그분들의 활동 없이 지탱할 수 없다면,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어떻게 서로에게 ‘한 사람’으로 다가갈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가 세워가야 할 새로운 ‘관계’의 그림을 지금부터라도 조금씩 그려봐야 할 때다.  


아파서 살았다 - 10점
오창희 지음/북드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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