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아기의 생존전략, 피로를 드리지만, 귀여움도 함께 드려요_아빠

아기의 , 피로를 드리지만, 귀여움도 함께 드려요



이번 주 들어서 내내 몸이 무겁고, 피로하기에 명절 증후군이려니 했다. 그런데 아니다. 고단한 명절을 돌파했기 때문에 피곤한 것이 아니고, 명절을 기점으로 우리 딸이 급성장, 급변화를 겪었기 때문에 피곤한 것이다. 아기가 기어 다니는 상태에서 맞는 첫명절(추석 땐 거의 누워만 있었다)이다. 피곤하지 않을 리가... 요즘 아빠의 일상을 요약하자면, 이유식 먹이고, (딸을) 잡으러 다니고, 기저귀 갈고(또는 갈면서) (딸을) 잡으러 다니며, 이유식을 만들면서 (딸을) 멀리 옮겨놓고, 냄비를 휘적휘적 한 후 또 (딸을) 잡으러 간다. 그런 후에 분유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잡으러 가고, 잡아오고, 잡혀오다 울고, 달래고, 이유식은 냄비에 눌러 붙고, 딸은 울고, 아아... 그렇다. 


딸이 누워만 있던 시절에 각종 육아커뮤니티에서 보기도 하고, 주변의 몇 안 되는 육아 경험자들이 건네던 말, "그래도 지금이 훨씬 편한 거예요"가 뻥까지는 아니어도, 꽤 과장이라고 생각했었다. 왜냐하면 그때도 충분히 힘들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어떻게 이보다 더 힘들 수가 있어?’ 했다. 밥 시간을 조금만 넘겨도, 조금만 졸려도 울음보를 꺼내 드리블을 하던 그 선수, 우리 딸, 만두원숭이를 보며 아빠는 ‘에이 이것보다 더 힘들라고, 강도는 비슷하고 장르가 좀 바뀌는 거겠지’ 했다. 아직 누워만 있는 아기가 있는 댁이 있다면, 미리 알아두세요. 장르도 바뀌고 강도도 올라가며, 지금 쌓아가고 계시는 그 피로들이 둑터진 것처럼 넘실거릴 겝니다. 피로는 아마 풀 수 없으실 테고요, 즐길 수도 없으실 터이니, 그저 노하우나 열심히 쌓으시길. ㅠㅠ


딸이 이렇게 자라면서 우리집의 풍경도 조금씩 조금씩 바뀌었다. 출산이 임박했을 땐 거실에서 TV가 사라졌다. 신생아 시절엔 기저귀 상자, 요람, 모빌, 바운서가 거실을 차지했다. 내내 그런 풍경일 줄 알았는데, 저 중에 아직까지 남아 있는 건 기저귀 상자밖에 없다. 모빌도, 요람도, 바운서도 사라졌다. 대신에 유아매트, 이유식 식탁, 안전가드, 장난감 상자 같은 것들이 자리를 채웠다. 변하는 곳은 아기의 영역(이라고 지정해둔, 의미는 없지만 지정은 해둔)뿐이 아니다. 요즘엔 하도 쓰레기통을 쓰다듬고, 발수건을 빨아대서 쓰레기통은 현관 안전문 너머로, 발수건은 책장 위에 올라가 있다. 


오늘 낮엔 이런 일도 있었다. 아빠가 한참 이유식 밥을 만드는 중이었는데, 정말 이상할 정도로 아기가 조용한 것이 아닌가? 슬쩍 돌아보니 책장 앞에 앉아서 책 한권을 뽑아 놀고 있었다. 딱히 나쁜 짓처럼 보이진 않았기 때문에 그냥 뒀다. 이유식을 다 만들고 아기 쪽으로 가보니, 헉. 그 책은 그야말로 포스트잇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몹시 위험한 책이었다. 아기들은 알록달록한 색색의 종이들을 보면 와락 달려든다. 그러고는 떼서 먹는다. 우리 딸은 이미 노란 종이를 질겅거리고 있었다. 손가락을 집어넣어서 대부분 빼내기는 했지만 분명 몇조각 삼켰으리라. 결국 그 책은 제 동료들 곁을 떠나 책장 최상층으로 보내졌다. 아기가 조용할 때는 분명히 무슨 일이든, 부모가 좋아하지 않을 일이 벌어진다. 명심하자.




여하간 우리 딸은 요즘 폭풍성장 중이다. 책장이나 의자나 뭐든 잡을 것만 있으면 그걸 짚고 일어선다. 다만, 일어선 상태에서 앉는 기술은 익히지 못했다. 한번은 버얼떡 일어서기에 어떻게 하나 보고 있었는데 내내 일어서서 두리번거리다가 결국엔 울었다. 어디 일어서기뿐인가. 지난주부터는 무려 박수도 친다. 아빠나 엄마가 ‘박수’ 하면 그걸 알아 듣는 것인지 양손바닥을 짝짝 부딪히는데 정말 봐도 봐도 질리질 않는다. 그래서 아빠는 하루 종일 ‘박수’, ‘박수’, ‘박수’ 하고 있다. 딸도 안 질리는 모양이다. 박수를 칠 때마다 꽤나 즐거워 보인다. 그런데 서는 것이나 박수를 치는 것이나 아빠 입장에서는 어느 것 하나 대단하지 않은 것이 없기는 하지만, ‘아빠’라고 말하는 것에 비할 수는 없다. 그렇다. 무려 말을 한다. 아직은 여전히 괴성에 가깝기는 하지만, 그래도, 누가 들어도 ‘아빱빠빠’하는 소리를 분명하게 낸다. 그렇다. 이게 바로 아기의 생존전략이다. 부모의 정기를 쪽쪽 뽑아먹기는 하지만 공짜로 먹는 건 아니다. 그에 상응하는 값을 아주 귀엽게, 치른다. 


처음 ‘아빠빠’를 하던 날, 사실 아빠는 코끝이 조금 시큰했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이 예고도 없이 훅 들어온 것이다. 물론 누가 봐도 ‘쟤, 그날 울었어’라고 말할 정도로 막 그런 것은 아니다. 그 놀라운 기쁨은 그것대로 즐겼으나, 앞으로 이 놈이 자라면서 내게 줄 무수한 걱정과 낙담 따위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음, 그러니까 이것은 아빠가 딸의 페이스에 완전히 휘말리지 않기 위해 기울이는 노력 같은 것이다.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서 영혼에 골수까지 ‘홀랑’ 내줘 버릴까봐서 그런다. 내주긴 내주지만, ‘홀랑’ 내주지는 않으려고 한다. 그래야 우리 딸도, 엄마도, 아빠도 행복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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