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아픈 하루하루를 끌어안고,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법

『아파서 살았다』

- 아픈 하루하루를 끌어안고,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법


단기간에 낫는다는 확신을 할 수 있는 병을 앓고 있다면, 병을 앓는 그 시간은, 빨리 지나갈수록 좋은 불필요한 과정으로 여기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한다 해도 딱히 문제가 없다. 그러나 언제 나을지, 나을 수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병을 앓고 있다면, 병이 다 나은 뒤 살아갈 다른 삶을 상정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아픈 채로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그대로 자신의 삶으로 끌어안을 수밖에, 그 길 외에 다른 길이 없다.


- 오창희, 『아파서 살았다』, 98쪽


나는 조금 허약한 것 빼고는 누군가 보기에 앓고 있다고 여길 만한 병이 있지는 않다. 그러나 내가 스스로 나를 생각해 보면 ‘나에겐 병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썩 떳떳하지는 않다. 그저 질병목록에 등록된 병이 없을 뿐이다. 




나의 병들을 떠올려 본다. 한두 가지도 아니다. 의지가 박약하기 이를 데 없어서 조금만 힘들면 ‘그만둬버릴까’ 생각한다. 정말, 정말 힘든 일을 마주하고서라면 얼마든지 그럴 수 있지만, 나는 거의 매번 그런 편이다. 재미가 있거나, 안 하면 큰 문제가 생기는 일이 아니라면 대개 그만둬버리고 만다. 그런 행태에 부끄러움도 없다. 거기에 ‘싫은 것’은 꽤나 분명한 편이어서, 조금이라도 싫으면 온힘을 다해 싫어한다. 온몸에 힘이 다 빠져버릴 정도다. 물론, 그걸 매번 밖으로 드러내는 것은 아닌데, 밖으로 확연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속으로는 여전히 화를 내고 있다. 그러다가 결국 몸도 마음도 엉망진창이 되고 만다. 싫은 것이 그렇게 뚜렷한 만큼 좋아하는 것도 그러해서 어딘가 하나에 쏠리면 거기서 지칠 때까지 첨벙거린다. 진창에서 벗어날 때쯤이면 빈 것은 통장잔고요, 찬 것은 카드명세서다. 아 물론 혐오와 중독 양쪽 모두가 공통적으로 남기는 것은 허무다. 요약하자면 내 병은 의지박약몰염치허무증이다.


얼핏 이 병은 그저 마음의 병인 듯 보인다. 그러나 사정은 그러하지 않다. 이 병은 신체에 명확한 흔적을 남겨놓는데, 그것은 바로 분해된 근육, 핏발선 눈, 다크서클, 튀어나온 복부다. 전형적인 중독자의 몸이다. 아픈 줄도 모르고 20여년간 꾸준히 병을 앓아온 결과 이제는 신체 전반이 그렇게 굳어져버렸다. 이 병은 워낙 흔해서 아무도 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병자 자신조차도.


내가 스스로 이것이 병이구나, 내가 병을 앓고 있구나 자각한 것도 얼마 되지 않았다. 길게 잡아봐야 2, 3년쯤 되었다. 여하간, 그 전에는 이게 병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누구라도 그러지 않았을까. 그런데 살아보면 살아볼수록, 의지박약몰염치허무증의 사이클을 돌아보면 돌아볼수록 알겠다. 다 놔버린 다음에, 실컷 낼만큼 화를 다 낸 후에, 좋아하는 것들을 정신없이 사 모으는 동안 아프고, 그러고 난 후에 또 아프다. 병을 자각한 후에 얼마간은 이걸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의지박약치고는 꽤 열심히, 이를 악물기도 하였지만, 어느 순간 ‘나는 안 될 것 같아’ 싶은 생각이 들고 말았다. 그런 생각이 들자, 더욱 쉽게 포기하고, 더욱 뻔뻔하게 굴었다. 더 많은 돈을 팡팡 쓰기도 했다. 말하자면 병증이 더욱 커졌다고 해야겠다. 이건 마치 고무공 같아서 세게 누르면 더 많이 튀어 오르는 것과 같았다. 커진 쾌락과 더 커진 허무가 교차되는 형국이다. 자괴감은 덤이다.


그래서 이 병의 결말은 어떻게 되었나. 아무래도 이 병은 완치가 불가능한 게 아닐까 생각한다. 다행인 것은 (역시 자각하지는 못했지만) 오래 앓다 보니 나름대로 다스리는 법이 조금 생겼다. 의지박약의 경우엔 도저히 놔버릴 수 없는 일을 만든다거나(예를 들면 육아...), 주기적으로 취미용품을 질러대는 증상에 대해서는 큰 것 말고 소소한 것 한두 개로 갈음한다거나 하는 식이다. 그러고 나면 조금 시간이 지난 후에 생각하게 된다. ‘안 사길 잘했다!’라고. 말하자면 ‘이걸 왜 샀지’를 ‘안 사길 잘했어’로 바꾸는 과정이랄까. 나름대로 나의 병과 함께 살아가는 노하우를 익히고 있는 셈이다.




오창희 선생님의 병과 나의 병을 비교할 수는 없다. 다만, 정도의 차이들이 있을 뿐 살아간다는 말 속에는 이미 ‘병과 함께’라는 말이 포함되어 있다고 느낀다. 그러니까 누구나 자기 삶의 질병이 있게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픈 채로 살아가는 하루하루를 그대로 자신의 삶으로 끌어안을 수밖에’ 없다. 병이 다 나을 수도 있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대개 병들은 자리를 바꿀 뿐 완전히 삶에서 떠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아픈 채로 아픈 하루하루를 끌어안고,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익히는 수밖에 없다. ‘그 길 외에 다른 길이 없다.’



아파서 살았다 - 10점
오창희 지음/북드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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