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아기의 영역, 조금씩 조금씩 넓어져 간다_아빠

조금씩 조금씩 넓어져 간다



사람이 처음 태어나면 누워있는 자리, 딱 그만큼밖에 없다. 거기서 보이는 것들, 냄새, 2-3시간에 한 번씩 입으로 들어오는 것들 등 그 정도가 세계의 전부다. 그러다가 보이는 게 조금씩 많아지고, 손으로 무언가를 쥘 수 있게 된다. 저 멀리 무언가 보이는 데 무엇이 보이는 것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가서 보고, 만지고, 입에 넣어봐야 하는데 아직은 몸을 뒤집을 수조차 없다. 그래서 온 힘을 쥐어짜 뒤집는다. 뒤집고, 뒤집다가 겨우 몸을 이동시키는 요령을 터득하는데 그조차도 쉽게 되질 않는다. 처음엔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돌기만 한다. 어찌나 답답한지 짜증도 나고, 눈물도 난다. 그러면서 배를 밀어 앞으로 가는 요령을 터득한다. 일단 한번 앞으로 가기 시작하면, 거침없다. 엄마나 아빠를 가운데 두고 마치 동심원을 그리듯이 점점 멀리 간다. 물론 한번 가면 잡아오기 전까지 돌아오지 않는다. 아직은(이라고 믿고 싶지만) 가는 것만 할 줄 안다.




우리 딸은 요즘 거실에서 방까지 영역을 넓혔다. 처음 배밀이를 시작할 때만 해도 거실에 깔아 놓은 유아용 매트 밖으로 나가지도 못했고, 나갈 의사도 없는 듯 보였다. 능력이 커지자, 부엌까지 영역을 확장하고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아니 아빠가 그냥 두면 어느 때고 부엌 원정을 떠났다. 그러나 부엌은 모두가 다 아는 위험지역이다. 손 닿는 곳에 쓰레기통이 있고, 우리 딸은 손에 들어온 것은 무엇이든지 일단 맛을 본다. 또, 무언가 아래로 떨어질 물건들이 가장 많고, 한번 떨어지면 몹시 위험한 물건들이 많은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빠는 딸이 신나는 얼굴로 부엌엘 오면 긴장하곤 한다. 


이유식을 만들거나, 아빠가 먹을 음식을 만들 때면 더욱 그렇다. 그래서 어쩔 때는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다가오는 딸을 발로 막기도 한다. 또는 이런저런 이상한 소리를 내서 주의를 끌기도 한다. ‘우워어!’, ‘워이!’. ‘움파파파파’ 뭐 이런 식인데 아빠가 저런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흔들어 대면 딸은 전진을 멈추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아빠를 바라본다. 문제는 같은 소리를 자주 내면 효과가 떨어지다 못해 거의 없어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저런 이상한 소리도 자주 바꿔줘야 한다. 요즘은 주로 ‘뿌우!’, ‘뽀오뽀오!’ 같은 소리로 주의를 끈다. 문득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다. 여하튼, 그리하여 우리 집에선 다급할 때 이렇게 외친다. ‘우뿌뿌 우뿌뿌’.


부엌 탐험이 끝나면 딸은 안방 침실로 향한다. 어째서인가? 거기에 빨래 건조대가 있기 때문이다. 빨래 건조대를 잡고 흔드는 것을 정말 즐거워하는 듯 보인다. 그게 뭐라고 그렇게 즐겁나 싶지만, 아기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충분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그 정도 덩치를 가진 물건들 중 아기의 힘으로도 흔들 수 있는 물건이 거의 없다. 브레이크가 채워지지 않은 유모차, 뽀로로 블록 박스, 빨래 건조대 정도 뿐이다. 그 중에서도 빨래 건조대는 덩치도 가장 크고, 흔들면 매달려 있던 빨래들도 펄럭거려서 시각적인 효과 역시 대단하다. 우리 딸의 눈에는 거의 블록버스터 영화 같은 것이다. 게다가 그걸 움직이게 만드는 게 자신이라니, 생각할수록 짜릿하지 않겠는가. 얌전히 있다가도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 황급하게 안방으로 향하는 이유가 아마도 거기에 있지 싶다. 


누워만 있던 아기가 거실 전역을 자신의 활동공간으로 만들더니, 금세 부엌으로, 안방으로, 이제는 화장실과 현관까지 넘보고 있다. 그야말로 온 집안을 만두원숭이 제국(‘만두원숭이’는 우리 딸의 별명이다)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아빠는 그런 딸을 바라보...아니, 잡으러 가면서 아빠의 아빠, 그러니까 우리 딸의 할아버지를 문득 떠올렸다. 내가 버스로 등하교를 해야 하는 중학교를 입학했을 때다. 멀긴 좀 멀었다. 버스로 대략 30~40분은 걸렸으니까. 어머니는 당연히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동네에는 온갖 고등학교들이 다 몰려 있어서, 아침 등교 시간 버스는 그야말로 대만원이었는데, 중학교 1학년이래 봐야 조금 큰 초등학생 아닌가. 말 그대로 ‘밥’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그런데 아버지는 걱정은 하셨겠지만, 그래도 태연하게 말씀하셨다. ‘원래 애들이 크면 활동반경이 넓어지는 거야. 중학생이나 됐으면 시내도 나가보고 그래야지.’ 대충 이런 말씀이셨던 것 같다. 워낙 동네가 험해서 나 역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아버지의 저 말씀을 듣고는 아주 조금 힘이 나기도 하였다. 


아버지의 그런 말씀을 이후로도 두 번이나 더 들었다. 한번은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을 때였고, 그 다음은 강남에 있는 직장에 출퇴근하게 되었을 때다. 그러니까 14살 이래로 나의 활동 반경은 점점 넓어져서 종국에는 무려 편도 35km를 커버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렇게 집에서 멀어질 때마다 아버지는 어쩐지, 양육의 한 시절이 지났구나 하며 안도하는 듯한 인상을 내게 주었는데, 나 역시 그때마다 어쩐지 조금 뿌듯하기도 했었다. 


지금은 우리 딸이 거실, 거실에서 부엌, 부엌에서 안방 정도의 ‘활동 반경’을 가지고 있지만, 금방 금방 커서 현관을 열고 나간다, 그리고 놀이터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친구네 집으로 거침없이 영역을 넓혀 나간다. 그런 모습들이 실감나게 그려진다. 이쯤에서 아빠는 새어나오는 웃음을 감출수가 없다. 그날이 오면, 딸과 엄마가 함께 여행을 떠나고, 집에 홀로 남은 아빠는 혼자서 마음껏.., 음화화화. 농담이다. 그러나 진실을 드러내는 농담이라고 해두자. 여하튼, 우리 딸도 그렇게 점점 더 멀리, 멀리 제 발자국을 찍고 다니는 날이 오겠지. 뭉클하다. 인터넷에 보면 자녀의 아기 시절이 휙휙 지나가버리는 게 아쉽다는 반응들이 많은데, 예전엔 어째서 그런 것인지 공감이 되질 않았다. 오늘이라고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은 알 것도 같다. 요즘 아빠는 딸의 활동 영역이 넓어져 가는 것이 약간, 아주 약간 아쉽기도 하다. 그러나 역시, 크는 걸 보는 재미가 더 압도적이다. 


그러니까 딸아, 

아빠의 아쉬움은 신경 쓰지 말고, 제 갈 길을 가라! 언제든!

 



덧,

글을 쓰고 있는 오늘, 드디어 우리 딸이 제 힘으로 섰다. 소파에 의지한 채이기는 하지만, 아무런 외력 없이 선 것은 그야말로 처음이었다. 사진을 찍어뒀어야 하는데 너무 놀라기도 한데다, 감동적이기까지 해서 미처 사진을 남겨놓지 못했다. 한 인간이 홀로 서는 모습은 대체로 감동적이지만, 한 아기가 스스로 일어서는 모습은 언제나 감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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