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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카프카와 함께

카프카, 산책을 나서다 - 무엇을 관찰할 것인가?

by 북드라망 2018. 1. 25.

카프카, 산책을 나서다 



1. 무엇을 관찰할 것인가?


카프카가 처음으로 발표한 작품집의 제목은 ‘관찰’(1913년)입니다. 카프카는 1904년부터 1912년까지 일기와 연구 노트,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작품을 쓰곤 했는데요, 그것들을 엄선하여 펴낸 것이 바로 『관찰』입니다. 이 작품집에 수록된 18편의 짧은 이야기에는 아이들, 사기꾼, 독신자, 상인, 전차의 승객, 말의 기수, 인디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출현합니다. 사건도 가출, 전차에서의 하차, 등산, 말달리기 등 산만합니다. 이후에 카프카가 집중적으로 다루게 되는 가족 드라마, 법정 공방, 민족과 예술의 문제 같은 거시적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관찰’이라는 주제와 관련해서만 보면 더욱 희안한데요. 관찰할 만한 대상도, 관찰 가능한 도구도, 관찰된 결과로서의 앎도, 뭔가 ‘관찰’과 어울릴만한 것은 하나도 나오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뭘 바라보는 장면이 하나 있지만, 그는 멍 때리는 중일 뿐입니다. 카프카의 ‘관찰’이란 무엇을, 왜, 어떻게 하는 걸까요? 작가로서 첫 걸음을 내딛은 카프카의 마음에 왜 ‘관찰’이라는 화두가 타올랐던 걸까요?


지금 급히 다가오는 이 봄날에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오늘 아침 하늘을 잿빛이었다. 그런데 이제 창가에 가보면, 깜짝 놀라서 창문 손잡이에 볼을 기댄다. 아래엔 분명 벌써 지고 있는 태양빛이 주위를 둘러보며 걷고 있는 순진한 소녀의 얼굴을 비추고 있고, 그리고 바로 연이어 그 소녀의 뒤를 급히 따라가고 있는 한 남자의 그림자가 보인다. 그리고 나서 그 남자는 벌써 지나가버렸고, 그 어린아이의 얼굴은 아주 밝다.(「멍하니 밖을 내다보다」) 


카프카가 쓴 첫 작품은 「어느 투쟁의 기록」입니다. 카프카는 1904년부터 1910년까지 이 작품을 고치다가 말고, 고치다가 말고 했습니다. 작품집 『관찰』의 탄생 과정을 함께 한 작품인 셈이지요. (영혼의 벗 막스 브로트에게 보여주기도 했고, 그 앞에 낭송하기도 했습니다만, 카프카는 이 작품을 발표하지는 않았습니다. 「어느 투쟁의 기록」은 카프카 사후에 막스 브로트에 의해 출간됩니다.) 혹시 「어느 투쟁의 기록」에는 누가 뭔가를 관찰하고 있지나 않을까? 해서, 저는 ‘투쟁’을 읽어보았습니다. 그런데 헉! 이 작품에는 정말로 대상을 관조하는 시선이 없습니다. 심지어 ‘투쟁’도 나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잘 들여다보니 『관찰』과 「어느 투쟁의 기록」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바로 그 산만함! 어쩌면 이 어지럽게 흩어지고 장면 장면의 전환, 단편 단편의 뜬금없는 전개. 이것이야말로 관찰의 문제를 생각해볼 수 있는 단서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2. 산책의 글쓰기


「어느 투쟁의 기록」은 전체 3부로 이루어진 중편 소설입니다. 미완의 유고인지, 완성의 유고인지는 알 수 없지만 카프카는 작품의 형식과 문체에 대해 많이 고민했습니다. 「선고」처럼 어느날 밤에 아이를 낳듯 쑤욱 출산해버린 작품은 아니었죠. 주인공은 자정 무렵 친구와 함께 등산을 시작합니다. 도시의 밤 거리에서 바람이 치올라오는 언덕으로, 어둡고 깊은 계곡 아래로, 그러다가 예배당을 통과해서 다시 거리로 나오지요. 이글거리는 정념도, 초조한 분노도 없습니다. 멱살을 잡고 악다구니 하거나 적의 무릎을 꿇리기 위한 계략 비슷한 것은 나오지도 않습니다. 화자는 단지 걷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는 산책자입니다. 목표나 진리에 도달할 의사라고는 없고, 이 골목에서 저 담벼락으로 훌쩍 떠나기를 반복하는. 하지만 여느 산책자와 다릅니다. 주어진 길 위를 따라가는 일에는 관심이 없으니까요. 그는 특별한 풍경에 이끌리지 않습니다. 다만 지금 여기를 떠날 뿐이고, 움직이면서 풍경을 펼쳐 냅니다. 그의 실력을 한번 볼까요?


내가 무동을 타고 가는 국도는 돌이 많고 꽤나 오르막길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게 내 마음에 들어서, 나는 길을 좀더 돌이 많고 좀 더 오르막길이 되게 했다. … 나는 무관심하게 계속해서 갔다. 그러나 행인이 된 나는 산길을 걷는 노고를 겁내고 있었으므로, 길을 점점 더 평평하게 만들었고, 결국 길은 먼 곳에서 계곡으로 가라앉게 되었다.


내 의지에 의해 돌들은 사라졌고, 바람은 조용해졌다가 밤에는 아주 없어져버렸다. 나는 씩씩하게 행진하면서 갔다. 그리고 산을 내려가고 있었으므로, 나는 머리를 쳐들고 몸을 똑바로 세우고 양팔은 머리 뒤로 깍지끼고 있었다. 나는 전나무 숲을 좋아하므로, 전나무 숲을 지나갔다. 또 별이 빛나는 하늘을 말없이 바라보기를 좋아하므로, 광활하게 펼쳐진 하늘에서는 별들이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내 위로 떠올랐다. 물론 별들은 늘 그런 식이긴 하지만, 나는 단지 몇 조각의 펼쳐진 구름을 보았을 뿐이었는데, 구름 높이에서만 불고 있는 바람이 그 구름들을 대기를 통해 끌어당기고 있었다. 


길 건너편 – 아마도 강이 나와의 사이를 갈라놓고 있을 것이다 –꽤 먼 곳에 나는 높은 산을 우뚝 세웠는데, 그 산의 꼭대기는 잡목숲으로 덮인 채 하늘과 맞닿아 있었다. 가장 높은 나뭇가지들의 작은 움직임과 그것들의 잔가지들까지도 선명하게 보였다. 그 광경은 아주 평범하기는 했지만 나를 기쁘게 해서, 나는 한 마리 작은 새가 되어 그 멀리 떨어져 있는 텁수룩한 관목들의 가는 나뭇가지에 매달려 그네를 타면서 달을 떠오르게 하는 것을 잊고 있었다. 달은 벌써 산 뒤에 와 있었는데, 아마도 늦어지게 되어 화를 내고 있었을 것이다.(「어느 투쟁의 기록」)




나는 길을, 풍경을 펼친다. 전나무를 좋아하니까. 먼 산 위에 뜬 달이 보고 싶으니까. 이 땅으로 내가 왜 왔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지만, 아무 것도 기억할 수 없다. 순간, 넓어지고 깊어지는 시야. 눈앞에서 산이 꺼지고, 등 뒤에서 달이 투덜거린다. 사물은 그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않는다. 우리는 믿음과 진리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다. 기억도 없이 약속도 없이, 세계는 발밑에서 피어났다 흩어진다. 나는 단지 걸을 뿐!


산책자의 움직임과 함께 풍경이 태어납니다. 단단한 땅이란 어디에도 없지요. 덕분에 고정된 시점에서 객관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대상이 없습니다. 보이는 것들은 모두 산책자의 걸음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는 사랑을 정박시켜 주는 연인의 입맞춤, 깊은 밤 라우렌치 산으로 동행해주는 친구의 발걸음, 들판과 강물 위를 편안하게 이동시켜주는 하인의 가마, 이런 안락의 것들을 휙 떨치고 일어섭니다. 왜냐하면 그는 단단한 땅에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거든요. 그에 따르면, 모든 확실한 관계는 우리를 “매일 똑같이 값비싼 옷을 아침에 걸쳤다가 저녁에 벗어버리는 그렇게 비참하고 우스꽝스러운” 사람으로 만들어버립니다. 아하하 웃고 있는 애인의 붉은 입이란, 어디로든 흘러다닐 수 있는 우리의 영혼을 영원히 봉인하려는 어둡고 좁고 굽은 골짜기에 불과합니다.


『관찰』은 산책의 문체로 쓰여졌던 것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 영혼을 앗아가 버리는 ‘단단한’ 것들의 뿌리 없음에 놀라고 또 놀라는 이야기들로 가득했던 것이죠. “어떻게 그녀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으며, 입을 다물고 전혀 그와 같은 것을 아무것도 말하지 않을 수 있는가?”(「승객」) 그래서 국도의 아이는 어머니가 마련해주시는 잠자리를 뒤로 하고 남쪽 도시를 향해 힘껏 달려갑니다.(「국도의 아이들」) 내게 어머니가 있다고? 그런 갑작스러운 의문과 함께 아이는 “가족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게 되고, 가족은 흔들거리며 비실체 속으로 떨어지게” 되지요.(「갑작스러운 산책」) 확고한 것처럼 보이는 모든 것들이 다만 그렇게 ‘보일’ 뿐이라니! 『관찰』은 관찰할수록 낯설어지는 세계, 객관적으로 관찰 가능한 그 어떤 입각점도 없는 세계의 출현을 보여줍니다. 카프카는 이렇게 묻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계에 대한 너의 믿음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가?


“우리는 본래 필요 없는 전쟁 무기, 탑, 담벼락, 비단으로 된 커튼을 만들고, 그리고는 우리가 그들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갖게 되면 그것들에 대해 대단히 놀라워하지요. 우리들은 계속해서 부유하면서 서로 떨어지지 않고, 비록 박쥐들보다 더 추하긴 하지만 날개를 퍼덕거립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아아, 오늘은 얼마나 좋은 날인가’ 하고 아름다운 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방해할 수는 없을 거예요.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지상 위에 내놓여 있고, 합의를 근거로 살고 있기 때문이지요.”


“말하자면 우리는 눈 속의 나무 등걸과도 같아요. 겉보기에 그저 미끄러지듯이 놓여 있어 조금만 밀쳐도 밀어내버릴 수 있을 것 같지요. 그렇지만 아니예요. 정작 그럴 수는 없지요. 그것들은 땅바닥과 단단하게 결합되어 있으니까요. 하지만 봐요, 그것마저 단지 그렇게 보일 뿐이에요.”(「어느 투쟁의 기록」) 



3. 프라하의 산책자 


카프카는 산책을 좋아했습니다. 한 밤중에 홀로 깨어 책상에 앉아있는 일 만큼이나, 한낮이나 저녁 무렵 산책하는 일을 중요시했지요. 그의 인생에서 결정적인 만남은 모두 길 위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평생의 지기 막스 브로트와 우정을 쌓을 수 있었던 것도 갑자기 시작된 두 사람의 밤 산책 덕분이었습니다. 구스타프 야누흐가 영혼의 스승으로부터 배우고 또 배웠던 것도 프라하의 구도심 여기저기에서 였어요. 카프카는 여행을 좋아했고, 가끔씩 프라하를 떠나 베를린이나 다른 도시로 옮겨 살 궁리를 하기도 했지요. 그러나 평생 그가 머물렀던 도시는 프라하였습니다. 프라하로도 충분했습니다. 산책 할 때마다 그 어디에도 없는 낯선 풍경을 만들어낼 수 있었으니까요.


카프카가 단단한 땅 위에서 뱃멀미를 느끼고 있을 때, 프라하의 유태 청년들은 단단한 땅을 찾아 떠나고 있었습니다. 프라하는 오랜 세월 합스부르크 왕가 즉, 독일계 오스트리아인들의 지배를 받는 도시였죠. 그 아래에서 전통적으로 뿌리 내리고 살던 체코 주민과, 유럽 여기저기에서 흘러들어와 프라하에 뿌리를 내리려던 유태인들은 넘버 2의 자리를 놓고 오랜 반목을 거듭해 왔습니다. 1900년대의 프라하에서는 반유태주의가 극도로 기승을 부리고 있었습니다. 독일인들의 퇴조가 두드러지게 진행되고 있었고,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해서 체코를 독립 국가로 만들려는 대대적인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 속에서 진취적인 유태 청년들의 사회 활동은 심각할 정도로 공격받았습니다. 카프카의 친구들도 팔레스타인으로 돌아가 유대민족만의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는 데로 의견을 모았어요. 프라하 곳곳에서는 체코인, 유태인 각각이 중심이 된 집단 시위가 날마다 일어났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카프카가 죽기 직전까지 점점 더 고조되었습니다. ‘체코 땅은 체코 민족의 것이다. 나가라!’, ‘유대인에게는 유대적 고향이 있다. 떠난다!’ 청년 카프카는 온통 뿌리 찾기에 열중해 있는 거리의 소음을 들으며 질문했던 것입니다. ‘나의 자유를 이해하고 보장해줄 수 있는 땅이 어디 따로 있다고?', '정녕 집단적 해방과 영구적 정착이 자유의 근본 조건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오직 외적 조치에 의해서 얻은 거짓된 가상의 자유는 착각이며 뒤죽박죽이고, 불안과 절망이라는 쓰디쓴 풀 이외에는 아무것도 자랄 수 없는 사막이에요. 당연하죠. 왜냐하면 영속적인 실제의 가치를 지닌 것은 언제나 마음의 선물이기 때문이죠. 인간은 아래에서 위로가 아니라, 안에서 밖으로 성장하는 법이죠. 이것이 모든 삶의 자유의 근본조건이에요. 삶의 자유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사회 분위기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 세계에 맞서 끊임없이 투쟁하는 자세예요. 이것이 인간이 자유롭기 위한 조건이죠.”(구스타프 아누흐, 『카프카와의 대화』중에서)




산책자 카프카, 그는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깨달았습니다. 우리가 의지하고 따르는 이 장면은 한 걸음만 옮겨도 전혀 다른 풍경이 된다는 것을. 한 번의 산책으로도 우리는 단지 그렇게 보일 뿐인 것들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카프카는 자신의 첫 작품 서두에 시를 한 편 붙입니다. 이후에는 그 어떤 작품에도 이렇게 과도히 의미 부여하지 않았는데요. 덕분에 우리는 산책이 카프카에게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옷을 입고 

흔들리면서 자갈밭으로 산책하러 간다.

저 멀리 언덕으로부터

머나먼 언덕까지 펼쳐져 있는 

이 거대한 하늘 아래서.(「어느 투쟁의 기록」)


글_오선민(고전비평공간 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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