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카프카, 『변신』 : 그레고르 잠자가 굳이 해충으로 변신한 이유는?

그레고르 잠자가 굳이 해충으로 변신한 이유는?




많은 발을 갖게 된다는 것


카프카의 쥐와 들짐승들은 모두 벽을 사랑하는 존재였습니다. 카프카는 끊임없이 벽이 솟아오르는 황제의 땅에서 벽에서 벽으로, 다시 또 벽을 향해 돌진하는 칙령사의 이야기를 쓰기도 했지요. 『실종자』,『소송』,『성』등. 카프카의 모든 장편에서 확실하게 나타나듯 카프카식 투쟁은 언제나 벽에서 또 다른 벽으로 진행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우화」의 쥐도, 「선고」의 게오르크도, 『소송』의 요제프 K도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고 간단히 결론내릴 수가 없지요. 게오르크는 다리 너머로 몸을 던져, 강바닥이라는 벽을 향했던 것입니다. 요제프 K는 자신의 무덤이 파들어가는 그 옆에서, 땅이라는 벽을 파들어 갈 채비를 마친 개가 되었던 것이지요. 그렇다면 저 유명한 『변신』의 그레고르 잠자는 어떨까요? 흉측한 해충 잠자도 부딪치고, 부딪혀야 하는 온갖 벽을 사랑했을까요? 잠자는 왜 하필 해충의 몸으로 변신을 시도했던 것일까요?


그레고르 잠자는 외무 사원이었습니다. 물건을 팔러 돌아다니거나, 큰 회사에 속한 여러 지점 사이를 연결하기 위해 새벽부터 늦은 오후까지 기차를 타고 돌아다녔었지요. 만나야 하는 지점들의 사원들은 날마다 바뀌고, 돌아다니며 먹게 되는 음식들도 천차만별. 주위에 보는 눈도 없고, 알아서 잘만 하면 아무도 방해하지 않는 삶. 그런 의미에서 그를 가두는 것은 딱히 없어 보입니다. 오히려 이 외무 활동은 여행을 좋아하는 그가 가족 외의 사람들, 회사에 속하지 않는 이들을 계속 만나게 해주는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모든 것은 달라져 있었습니다. 자신의 작은 방 안을 도저히 벗어날 수 없게 되버린 거죠. 장갑차처럼 딱딱한 등, 활 모양의 각질로 나뉘어진 불룩한 배, 형편없이 가느다란 여러 개의 다리. 이런 몰골로는 침대에서 일어나 내려올 수도, 방문을 밀어 젖히고 계단을 내려갈 수도, 심지어 ‘어머니, 도와주세요’라고도 말할 수도 없었습니다. 쉽게 쉽게 돌아다니면서 돈을 벌고, 날마다 새로운 사람들과 사업을 구상하는 잠자에게 사방을 가로막는 벽이 들이닥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잠자는 해충이 되자마자 딱히 벽이라고는 없던 생활에서 무려 벽을 네 개나 갖는 상황이 됩니다. 그런데 그는 점차 깨달아 갑니다. 이 네 개의 벽이란 자신이 탐험해야 할 새로운 땅이라는 것을. 또한 벽은 잠자의 방 안에서 점차 늘어납니다. 뚱뚱해진 배를 애써 들이밀어 보고 싶은 침대 밑바닥과 저 먼 천장까지도 어서 밟아보라며 잠자를 유혹하지요. 그는 낡은 옷장과 아끼던 책장의 옆면을, 소중한 여인이 그려져 있는 액자의 표면을, 자신의 많은 발로 더듬으면서 신대륙을 딛는 기쁨을 안고 돌아다닙니다. 내리누르는 모양새였던 천장도, 주저앉고 싶게 하던 바닥도, 이제 그에게는 전천후로 내딛고 달릴 수 있는 대지입니다. 어? 그렇다면 잠자는 외판원이었을 때보다, 더 다채로운 생활 반경을 가지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요?



발끝에서부터 낯설어지는 세계


도처의 벽을 기어다닐 수 있게 되고부터 잠자의 여행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지난 날 매일 아침 기차를 타고 낯선 풍경 속을 돌아다녔다고 해서, 그가 딱히 벽이 없는 생활을 한 것은 아니었다는 점도 밝혀지지요. 왜냐하면 그는 늘 가족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되돌아와야 했기 때문입니다. 빚을 떠넘긴 아버지, 부엌에 주저앉은 어머니, 바이올린이나 부등켜안고 있는 여동생. 이들의 아들이자 오빠인 이상, 잠자는 어디에서나 집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잠자는 해충이 되자마자 익숙했던 모든 것을 낯설게 체험하게 됩니다. 좋아하던 우유는 맛없어지고, 반쯤 상한 오래된 야채와 소스로 범벅이 된 먹다 남은 뼈다귀로는 자꾸만 손이, 아, 아니군요, 발이 갑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비대해진 머리와 많지만 약한 발들은 소파 밑바닥에서 새로운 안락을 발견합니다. 잠자는 가족의 그림자가 차마 밀치고 들어올 수 없는 도처의 틈들을 그의 방, 바로 그 안에서 찾아내게 되지요.


그리하여 그는 심심풀이로 벽과 천장을 이리저리 기어다니는 습관을 갖게 되었다. 그는 특히 천장에 매달려 있기를 좋아했다. 그것은 마룻바닥에 누워 있는 것과는 전혀 달랐다. 그렇게 하면 보다 자유롭게 호흡할 수 있었고 쉽사리 몸을 흔들 수도 있었다. 그레고르는 천장에서 갖게 되는 거의 유쾌한 방심 상태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몸을 떼고 방바닥에 찰싹 떨어지는 일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가 자기 몸을 훨씬 더 잘 다룰 수가 있어서 그렇게 높은 데서 떨어져도 다치지 않았다.(「변신」)




잠자가 수많은 발로 더듬거리며 돌아다닐 때마다, 가족들과의 친밀한 관계는 뒤틀렸습니다. 특히 잠자 씨네 가족을 좌지우지한 원칙이나 무게 중심이 급변했지요. 아버지가 잠자의 등짝을 내리치고 사과를 집어던지면서 아들에게 선고를 내립니다. ‘너는 내 아들이 아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옛날의 잠자처럼 밖으로 나가서 돈을 벌어오기 시작합니다. 아들의 출퇴근 시간을 챙겨주던 어머니는 어떻게 하면 저 거대한 벌레로부터 도망갈 수 있을까만 걱정하지요. 징징거리던 여동생 그레타는 해충이 된 오빠를 돌보게 되면서 갑자기 집 안에서 힘 좀 쓰는 존재가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그레타는 잠자에게 새로운 이름을 붙여주지요. ‘너는 그것이니라!’ 덕분에 잠자는 아들도 오빠도 아닌 존재, 인칭도 딱히 없어서 인간과는 사회적 관계를 맺을 수도 없는 희안한 존재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잠자는 낯선 해충이 되어 가족의 그물을 빠져나가고 말았습니다.



변신, 낯선 질문들 갖기 


해충이 된 잠자가 가장 많이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질문입니다. 세계가 낯설어진 만큼 궁금한 것도 많아졌어요. ‘왜 누이 동생은 다른 사람들한테로 가지 않는 걸까?’, ‘그런데 그 애는 도대체 왜 우는 걸까?’, ‘벌써 잊어버릴 때가 다가왔단 말인가?’ 질문을 하는 자가 잠자인지, 해충인지, 아니면 작품의 화자인지, 그도 아니면 작가 카프카인지? 어디서 발화되는지가 불분명한 비인칭의 질문들 속에서 잠자는 더듬더듬!


가족들도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들의 노동과 봉사가 당연했던 때와는 달리, 이제는 그를 둘러싼 모든 것이 궁금해집니다. ‘저것은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도대체 뭘 먹여야 하나?’, ‘치워 없앨 좋은 방법은 따로 없을까?’ 서로에게 자연스러운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게 되지요. 그렇게 잠자 씨네 집은 더 이상 그들만의 것이라고는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릅니다. 집 안이 온통 이상한 것들 천지가 되거든요. 마지막에는 이상한 존재 중의 이상한 존재, 가족 구성원으로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이방인들이 잠자 씨네 집을 차지하게 됩니다. 가족들은 세 명의 하숙생을 위해 추억이 깃든 짐들을 다 치워없애야 했지요. 나를 둘러싼 세계가 좀 이상해졌을 뿐인데, 그래서 좀 질문이 많아졌을 뿐인데, 견고해보였던 모든 벽들이 비틀거리기 시작한 겁니다.


잠자의 변신은 바로 질문으로부터! 카프카는 변신이란 곧 질문하기라는 것을 단편 「튀기」에서도 설명한 바 있습니다. 이 작품의 ‘튀기는 반은 고양이 새끼이고 반은 새끼양인 존재이지요. 잠자가 반은 해충(몸)이고 반은 인간(정신)이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런 튀기를 데리고 살면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과 만날 수밖에 없겠지요?


나는 그것에게 달콤한 우유를 먹이는데, 우유가 제일 잘 받기 때문이다. 그것은 맹수같은 이빨로 우유를 길게 꿀꺽꿀꺽 들이마신다. 물론 그것은 어린아이들에게 하나의 커다란 구경거리이다. 일요일 오전은 방문 시간이다. 나는 그 작은 짐승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모든 이웃집 아이들은 내 주위에 빙 둘러선다.


그러면 인간으로서는 대답할 수 없는 정말 멋진 질문들이 나온다. 왜 그런 짐승밖에 없는지, 왜 하필이면 내가 그것을 가지고 있는지, 그것이 있기 이전에도 그와 같은 동물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것이 죽으면 어떻게 될 것인지, 그것이 외로워하는지, 그것은 왜 새끼들이 없는지, 그것의 이름은 무엇인지 등등.(「튀기」) 


카프카는 말합니다. 우리가 낯선 질문을 갖게 될 때, 지금 발 딛고 있는 이 세계가 전혀 당연하지 않게 될 때, 변신은 시작된다고. 변신이 시작되는 순간, 우리는 그때까지 의존하고 있던 그물을 서서히 빠져나가게 되는 거라고. 카프카는 자신의 첫 단편집에서부터 줄곧 세상은 참 희안하다, 희안하다, 말하고 있었는데요. 입은 옷, 치마의 주름, 갈색 얼굴, 양편으로 약간 눌린 듯한 코. 우리가 자신의 외양 중 그 어느 것도 자연스럽다고 느끼지 않게 된다면, 그 순간 변신이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편안하고 즐거웠던 모든 것이 어딘가 어색하고 이상하게 여겨진다면, 그때야말로 얏호! 기회입니다. 새로운 벽을 향해 수많은 발들을 내뻗을 수 있는, 해충이 되어볼 찬스!


전차가 정류장으로 다가온다. 한 소녀가 내리려고 계단 가까이에 선다. 마치 그녀는 내가 만져보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확실하게 보인다. 그녀는 검은 옷을 입고 있었는데, 치마의 주름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블라우스는 몸에 꽉 끼고 작은 그물 모양의 흰 레이스로 된 칼라를 달고 있다. 그녀는 왼손을 평평하게 벽에 대고 있고, 오른손에 쥔 우산은 두 번째 계단 위에 놓여 있다. 그녀의 얼굴은 갈색이며, 양편으로 약간 눌린 듯한 코의 끝은 둥글고 넓적하다. 그녀는 숱이 많은 갈색 머리를 가지고 있고, 오른쪽 관자놀이에는 잔머리털이 바람에 나부낀다. 그녀의 작은 귀는 바짝 붙어 있다. 그러나 나는 가까이 서 있었기 때문에 오른쪽 귓바퀴의 뒷면 전체와 귀뿌리의 음영을 본다.


당시 나는 이렇게 자문했었다. 어떻게 그녀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의아하게 생각하지 않을 수 있으며, 입을 다물고 전혀 그와 같은 것을 아무것도 말하지 않을 수 있는가?(「승객」)


글_오선민(고전비평공간 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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