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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카프카와 함께

프란츠 카프카, 「유형지에서」 - 목숨을 건 도약

by 북드라망 2017. 11. 16.

프란츠 카프카,  「유형지에서」 목숨을 건 도약



카프카가 1919년에 발표한 단편 「유형지에서」는 ‘몸에 계율을 써주는 자동기계’ 즉, 형벌기계에 스스로 몸을 눕히는 장교를 다루고 있습니다. 작품은 누구를 초점에 놓는가에 따라 여러 해석이 가능합니다. ‘복종하라’고 선고받은 죄수를 중심에 놓는다면, 규율권력을 몸 깊숙이 각인(刻印)시킴으로써 스스로를 완성해가야 하는 근대인의 운명에 대한 이야기가 됩니다. 죄의 심판자인 장교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신의 창조주를 산산조각 내 버리는 테크놀로지에 대한 비판이 됩니다. 그런데 이 ‘묘한 기계’ 자체를 해석의 축으로 삼으면 어떻게 될까요? 그러면 하나의 변신담이 지면 위로 떠오르게 됩니다. 상반된 운명을 가진 것처럼 보였던 죄수와 심판자의 드라마가 아니라, 인간이 기계로, 그것도 글쓰는 기계로 변하는 변신괴물 이야기가 되는 거죠. 카프카는 '글쓰기'를 무엇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알면 죽는다


먼저 이 기계에 대해 알아볼까요? 이 기계에는 분명한 목표가 설정되어 있습니다. 알려주마! 그런데 이 목적이 달성되면 죄수는 죽습니다. 왜냐하면 기계에 매달린 써레가 그의 몸 깊숙이 ‘알아야 할 것’을 새기는데, 그 결과 죄수는 피칠갑된 계율의 서판이 되기 때문입니다. 쓰여지면 알게 되지요, 알면 죽게 됩니다. 우리의 신체는 온갖 법이 새겨지는 신체이고, 갖가지 법률들에 점령되며, 결국에는 한없는 넓이와 끝없는 깊이를 가졌던 본성을 잃게 된다는 것. 이것이 「유형지에서」가 말하고 있는 ‘무지했고, 어리석었고, 유치했던 존재가 죽고, 계율이 살아남는다’의 의미입니다.


비인간적이라구요? 그렇습니다. 카프카가 보기에 앎은 원래 인간적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삶을 죽이는 장치입니다. 죄수가 죄수가 된 이유는 오직 하나였습니다. 몰랐다는 것. 그는 장교나 다른 사람들의 말을 이해 못했고, 자신에게 내려진 판결문도 읽지 못했죠. 심지어 유죄 선고를 받았다는 사실 조차 몰랐습니다. 한 마디로 말해 그에게는 앎을 전수받고 소화시킬 수 있는 언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그에게 알려주는 일은 쓸데없는 일입니다. 그것은 자신의 몸에서 알게 될 테니까요.” 언어 없는 자에게 글자를 주는 것, 옳고 그름의 경계를 정함으로써 그를 죽이는 것. 이것이 유형지 기계, 판결 기계의 존재이유입니다. 카프카는 그 과정을 아주 끔찍하게 그렸습니다.


죄수가 즉시 죽어서는 안 되고 평균적으로 열두 시간이라는 시간이 걸리게 됩니다. 여섯 시간이 되면 전환점이 됩니다. […] 아무리 어리석은 자라도 분별력이 생기지요. 그것은 눈에서 시작하여 온몸에 퍼집니다. 그걸 보면 써레 아래에 누워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지요. 이제 다른 일은 없고, 죄수는 글자를 해독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마치 무엇인가 엿들으려는 듯이 입을 뾰족하게 내밉니다. 당신도 보셨다시피 눈으로 해독하기가 쉽지 않아요. 그러나 죄수는 상처로 글자를 해독하게 됩니다. 그건 물론 대단한 일이지요. 그 일이 완수되는 데 여섯 시간이 필요하니까요. 그 다음에는 써레가 죄수의 몸을 쿡 찔러 올려 구덩이 속으로 내던집니다. 그래서 그는 구덩이의 핏물과 탈지면 위로 철썩 떨어집니다. 그걸로 재판은 끝납니다. 그러면 나와 사병은 그를 땅속에 묻습니다.



이방인의 선물


유형지에 이방인이 오게 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합니다. 그는 탐험가래요. 온갖 나라를 돌아다니며 많은 경험을 했고, 마침내 여기까지 왔지요. 그런데 그의 측량법이 희안합니다. 무심히 관찰만 하는 거죠. 뭘 조사하려지는 자신도 잘 모르고요, 보고 들은 것을 분석할 의지도 별로 없습니다. 뭐든 알려고 하지 않지요. 그런데 이 사람, 어디서 본 것 같아요. 바로 카프카 최후의 장편 소설 『성』에도 나오는 측량사 K! 그도 갑자기 성이 있는 마을에 나타나, 여기저기를 들쑤시고 다니지요. 유형지의 탐험가와 성의 측량사는 둘 모두 이방인이며, 자신에게 낯선 땅에 도착한다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서게 된 동네의 규칙을 모르고, 심지어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관찰하지만, 그건 그때그때 겪는 일에 관한 단편적 인상일 뿐이지요. 이들은 법률을 인정하지도 부정하지도 않고, 그냥 그 효력을 정지시켜 가며 매순간을 버팁니다.




문제는 이 일자무식 K덕분에 마을이 곤경에 처한다는 점이지요. 사람들은 갑자기 튀어 들어온 K에게 관습을 설명해줘야만 했고, 그 와중에 질서의 허위와 무책임함이 드러났습니다. K는 그런 풍경 속을 울지도 웃지도 않고 걸어 다니기만 하지요. 탐험가 역시 자신의 눈앞에 벌어지는 일들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장교가 그에게 유형지의 관습을 설명하자마자 이 기계의 비인간적 본성이 드러나기 시작하지요. 사실 「유형지에서」의 이방인은 K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의 K가 마을의 주인인 백작의 시선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던 반면, 탐험가는 유형지 자체를 망가뜨리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그 일이 가능했을까요? 탐험가가 도착하자마자 장교는 어리숙하고, 변변찮은 하급 관리에서 기술자(기계의), 역사가(유형지의), 심판가(죄수의)로의 변신을 시작하죠. 그 모든 과정은 탐험가에게 유형지의 사정을 ‘설명’하는 가운데에서 일어납니다. 유형지의 설정이 ‘부당’하다는 둥, ‘비인격적’이라는 둥, 그는 점점 더 기술적이고 사법적인 어휘를 쓰게 됩니다. 논리도 점점 더 추상적이고 고급한 것으로 바뀌지요. 결국 그는 자기 외의 모두를 어리석게 바라보게 되는 위치에 서게 됩니다. 앎의 정점에 오르게 되는 셈이죠.


장교는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니까 우리의 재판 방식이 당신에겐 납득이 가지 않는군요.” 그는 혼자말을 하더니 빙긋이 웃었다. 그 미소는 노인이 어린아이의 미련한 짓을 보고 미소 지을 때, 그 미소 뒤에 자기의 본래 의도를 숨기고 있는 그런 미소 같았다. 


자, 그럼 앎의 끝에 도달하게 된 장교는 어떻게 될까요? 헉! 자신이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그는 기계와 하나가 되어버렸어요! 장교는 다 안다는 듯한 미소를 짓고서, 써레 밑에 있던 죄수를 석방하고 자신의 몸을 대신 눕힙니다. 써레가 무지한 신체에 앎을 새기듯, 장교의 언어는 그의 육체를 점령해버렸고, 그의 삶을 끝장내 버리는 것이죠.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보다 더 주목해야 할 사실은 장교가 유형지 기계와 하나가 되자마자, 기계는 고장나고 죄수는 풀려난다는 점입니다. ‘알게하라’가 알게 뭐야? 기계를 작동시키던 수많은 톱니바퀴들은 온 방향으로 튀어나왔고, 써레는 장교의 몸을 반복적으로 찍어대기만 함으로써 계율 자체의 맹목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게다가 죄수! 애초에 그는 상관에게 ‘복종’할 줄을 몰랐기 때문에 죄수였습니다. 그러므로 죄수의 부활은 지배와 종속을 뜻하는 온갖 사슬이 끊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모든 일은 탐험가가 이 유형지에 도착하면서 시작되었죠. 무식한 죄수를 살린 것은 무지한 자, 이방인이었습니다.



카프카의 글쓰기 


언어 없는 자에게 글자를 주고, 그를 죽이는 것이 앎의 운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쓰기의 운명은 앎의 운명을 거스릅니다. 마침내 쓰기 기계가 된 자는 스스로를 해체함으로써 아무 것도 모르는 존재를, 그래서 복종할 수 없는 존재를 세상에 다시 풀어놓기 때문입니다.


측량사 K가 마을의 일그러진 얼굴을 보았듯이, 탐험가도 장교의 마지막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안식? 그럴리가요. 그는 머리가 뚫린 채로 눈을 뜨고서 유형지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살아있는 시체가 되어서라도 유형지를 지배하겠다는 듯. 그것은 앎의 끝에 이르고자 한 자의 처참한 최후였습니다. 그러나 그 옆에서는 죄수가 아무 상관도 없다는 듯, 또 다른 여행을 꿈꾸며 뛰어다니고 있었지요. 카프카에게 글쓰기란 끔찍한 앎의 문턱을 넘어, 광활한 불복종의 땅으로 들어가는 통과의례였습니다. 앎의 죽음을 담보로 하는, 목숨을 건 도약! 그것이 카프카의 글쓰기인 것입니다.


영화 <카프카> 중에서



탐험가는 거의 본의 아니게 시체의 얼굴을 보았다. 그 얼굴은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였다. 그가 다짐했던 구원의 흔적은 엿볼 수 없었다. 전에 다른 모든 사람들이 그 기계에서 발견했던 것을 장교는 발견하지 못했다. 그의 입술은 꽉 다물어져 있었고 눈은 떠 있었으며 살아 있는 기색이었다. 그 시선은 조용하고 확신에 차 있었다. 큰 쇠바늘의 끝이 이마를 뚫고 지나갔다. […] 사병과 죄수는 마지막 순간에 탐험가에게 자기들을 데려가달라고 억지를 부릴 작정이었다. 


두 개의 문제가 남습니다. 이방인의 '무지'와 죄수의 '무지'는 어떻게 다른가? 그리고 카프카는 왜 '쓰기 기계'를 유형지에 설치했을까? 즉, '유형지'와 글쓰기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하하! 이 문제는 다음 기회에. ^.^;;


글_오선민(고전비평공간 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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