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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혈자리서당

정신줄 놓칠 땐? '이곳'을 찌를 것!

by 북드라망 2012. 4. 27.
기절초풍할 상점, 소상(少商)

류시성(감이당 연구원)

체할 때 엄마가 따주는 곳


너무 먹거나 급하게 먹거나. 이러면 꼭 체(滯)한다. 다들 경험해 봤을 게다. 그때 우리는 보통 엄지손톱 옆을 딴다. 바늘로 찔러서 피가 한두 방울 나오면 그 피를 보며 안도한다. ‘이거 봐! 시커먼 피가 나오자나~ 체한 게 분명해!’ 아쉽게도 거기, 언제 따도 검은 피 나온다. 온몸을 돌고 돌아 노폐물을 가득 품고 온 정맥이 흐르는 곳이기 때문이다. 엄지손톱 옆을 땄는데 선홍색 피가 나온다. 그러면 몸이 좀 이상한 거다.^^ 그런데 손톱 옆을 따고 얼마 후. 깊은 곳으로부터 참을 수 없는 울림(트림)이 전해져 온다.(꺼억~!) 자기도 놀라고 남도 놀라는 이 호쾌한 괴성을 듣고 나면 왠지 모르게 속이 좀 편안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이런 걸 플라시보 효과라고 하는 건가? 원래 검은 피가 나는 자리에서 나온 검은 피를 보고 안심(安心)하게 되는 이 사태. 실로 궁금하다.


사실 체(滯)했다는 건 음식물이 소화기관에 머물러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우리는 흔히 속이 더부룩할 때 이렇게 말한다. ‘체기(滯氣)가 있나봐.’ 맞다. 체했다는 건 ‘기(氣)가 막혔다’는 뜻이다. 음식물의 기가 흩어지지 않고 소화기관에 그대로 머물러 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인 거다. 특히 몸에 기가 부족한 사람들은 잘 체한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쌀 한 톨만 먹어도 그 기운 때문에 체하는 경우도 있다. 외부에서 들어온 기를 내 내부의 기와 소통시킬 수 있는 힘이 부족해서다. 그렇다면 체했을 때 엄지손톱 옆을 따 준다는 건 기와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우리가 속이 불편할 때면 제일 먼저 떠올리는 그 자리, 엄지손톱 옆을 집중공략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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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엄지를 펴보시라. 여기서 우리는 소상(少商)이라는 혈자리를 찾을 거다. 맞다. 엄지손톱 옆 그 자리가 바로 소상이다. 고전에서는 소상의 위치를 이렇게 설명한다. “엄지손가락의 안쪽 손톱눈 모서리에서 부추잎만큼 떨어진 곳에 있다.(『동의보감』, <침구편>) 혈자리를 찾을 때마다 부추잎을 들이댈 수는 없는 노릇이니 좀 더 찾기 쉽게 설명해보자. 엄지손톱을 보면 손톱이 자라 나오는 부분의 중앙이 있다. 여기서 몸 쪽으로 가로선을 긋는다. 그리고 손톱의 세로방향도 연장선을 그어준다. 그러면 두 선이 만나는 지점이 생기는데 바로 여기가 소상(少商)혈이다.(어렵지 않아요~)

'시장통', 수태음폐경의 작은 상점
   
소상(少商)은 직역하면 작은 상점, 중소기업이라는 뜻이다. 소(少)는 작은 물건을 네 개 모아둔 모양을 상형한 글자다. 보통은 ‘적다, 작다’는 의미로 쓰인다. 주목해서 봐야 할 것은 상(商)이다. '상'(商)은 원래 전각을 뜻하는 글자였다. 중국 은(殷)나라 때 사람들은 도시 곳곳에 높은 전각을 세웠다. 그걸 형상화한 글자가 '상'이다. 지금도 중국에 가면 '상'이라는 글자가 들어간 지명이 많다. 이건 대부분 은나라 때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이름들이다. 간혹 역사책을 읽다가 '상나라'라는 이름을 만나게 된다. 이게 은나라의 다른 이름이다. 얼마나 많은 전각을 세웠으면 나라이름마저 상(商)이라고 불렀을까 싶다. 그런데 상(商)은 보통 ‘장사, 상인, 상점’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원래 전각이었던 게 갑자기 웬 장사?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은나라가 주나라에 의해 멸망하자 은나라 유민들은 이곳저곳을 유랑하며 살아야 했다. 유랑하면서 먹고 살자면 장사만 한 게 없다. 그렇다. 상에 ‘장사’라는 뜻이 생겨난 건 이 때문이다. 유랑민의 생업, 그게 '상'의 용법을 달리하게 만들었던 거다. 그런데 왜 엄지손톱 옆을 ‘작은 상점’이라고 이름 붙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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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는 우리 몸의 시장통이다. 시장이 없으면 도시는 활력을 잃는 것처럼, 우리의 몸 또한 폐의 작용 없이는 생기를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산소와 이산화탄소의 교환은 멈춰선 안 된다~

소상(少商)은 수태음폐경(手太陰肺經)의 끝에 위치한 혈이다. 수태음폐경은 폐에서 시작해 팔 안쪽을 타고 내려가 엄지손톱 옆, 소상에서 끝난다. 지난 시간에 잠깐 이야기했듯이 경맥은 몸에서 손끝이나 발끝으로 갈수록 폭이 좁아진다.(자세한 내용은 인트로 3-해시계편을 참조하시라.) 그렇다면 폐기(肺氣)가 폭이 점점 좁아지는 길을 거슬러 간다는 의미? 맞다. 폐에서 시작된 기가 경맥을 따라가서 응축되어 있는 곳이 소상인 거다. 그래서 소상을 수태음폐경의 정(井)혈이라고 부른다. 우물[井]처럼 기가 모여 있는 곳이라는 뜻에서다. 그럼 폐는 무슨 일을 하는가. 폐는 우리 몸에서 가장 활발한 교환이 일어나는 곳이다. 우리는 보통 1분에 18번 숨을 쉰다. 이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내보내고 산소를 들이마신다. 하루 24시간 동안 이 교환은 무려 25,920번이나 일어난다. 밥은 하루 정도 굶어도 죽지 않지만 숨은 단 몇 분만 멈춰도 살 수 없다. 그만큼 우리가 숨을 쉬고 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교환이 일어나는 곳이 폐인 셈이다. 그래서 폐(肺)는 한자로도 시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폐는 육달 월(月=肉)과 저자 시(市)로 이루어진 글자다. 시(市)는 옷을 차려 입고(巾) 장을 보러 간다는 뜻으로 시장을 의미한다.(『갑자서당』, <오행편>)” 폐는 우리 몸의 큰 시장이다. 이 시장의 물건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들어와 있는 작은 가게가 소상인 것이다.

그런데! 소상이 엄지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는가. 벌써 까먹었다면 엄지를 치켜세워서 다시 한 번 소상을 확인하시라. 그리고 그 상태에서 엄지가 얼마나 큰지, 얼마나 잘~ 생겼는지 요리조리 훑어보시라. 여기에 흥미로운 이야기 하나가 숨겨져 있으니 말이다. 폐(肺), 소상(少商), 장사, 시장 요런 것들을 종합해 보면 좀 감이 잡힐 게다. 맞다. 이 엄지로 상재(商材)가 흐른다. 그래서 엄지가 유독 크고 튼실하면 평생 굶어죽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럼 얼마나 커야하는가. "다들 엄지손가락을 내밀라고 했는데 넌 왜 엄지발가락을 내밀었어!"라고 생각될 정도면 그야말로 따봉(!)이다.^^ 이 정도면 평생 집에 양식 떨어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공주처럼 느긋하게 사람들과 원만하게 지내도 걱정이 없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동작도 엄청 굼뜨다. 배부르고 등 따순데 급할 게 뭐가 있노? 맞다. 이 엄지공주(?)들은 그럴 팔자를 타고난 게다. 그런데 갑자기 왜 엄지공주라고 부르냐고?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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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태음폐경. 소상은 제일 끝 11번이다.
폐는 우리 몸에서 가장 깔끔을 떠는 장기다. 오장육부에서 가장 윗자리에 위치해서 맑은 공기와 소통하는 것이 폐다. 그러다 보니 좀 콧대가 높다. 조금만 악취가 풍기거나 추워지면 곧바로 몸에 신호를 보낸다. '나 이런 거 못해~!' 악취 나거나 추위 속에서 하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으려는 공주 스타일인 셈이다. 이렇게 깔끔을 떠니 히스테리컬한 구석이 있는 것은 물론이다. 우리 주변에도 강박적으로 깔끔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보면 무섭다. 사실 이건 일종의 정신질환이다. 정신질환은 대부분 기(氣)가 막히거나 제대로 순환하지 못할 때 생긴다. 한 곳이 꽉 막혀 있다 보니 늘 신경질적이고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몸에서 기(氣)를 폐가 담당한다. 즉, 폐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때 기가 막히고 정신줄을 놓은 현상들이 발생하게 된다는 말이다. 소상은 이러한 정신질환을 고치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는 혈자리다.

소상은 귀신(鬼信)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우리 몸의 365혈 가운데 귀(鬼)가 들어간 별명을 가진 혈은 13개 존재한다. 이들을 한데 묶어서 십삼귀혈(十三鬼穴)이라고 부른다. 이 십삽귀혈은 대대로 정신질환을 고치는 데 쓰이던 혈이었다. 그런데 왜 귀(鬼)라는 글자를 붙였을까. 고대인들은 정신질환을 귀신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귀신이 앙심을 품고 달라붙어서 생긴 것이 정신병이라는 것이다. 귀신은 기운이 흩어지지 않고 떠도는 일종의 음기(陰氣) 덩어리다. 요게 우리 몸에 달라붙으면 기(氣)를 쭉쭉 빨아들이고 정체되게 만든다. 그래서 정신병을 낫게 하는 자리엔 귀(鬼)라는 별명을 붙인 것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귀(鬼)는 우리 외부의, 눈에 보이지 않는 기운 덩어리다. 음식물도 기 덩어리고 사람도 기 덩어리다. 정신병은 이런 외부의 기와 소통이 잘 되지 않을 때 발생하는 질병이다. 현대의 만연하는 우울증이나 자살충동도 다 소통부재에서 생겨난 것들이 아닌가. 그런 점에서 현대인들에게 소상은 몹시도 귀(鬼)한 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귀신도 울고 갈 혈

소상은 귀신(鬼信) 말고도 귀곡(鬼哭)이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풀이하자면 귀신이 운다는 뜻이다. 왜 귀신이 운다는 별명이 붙었는지는 직접 소상에 침을 맞아 보면 안다. 귀신도 울고 갈 만큼, 잘못 찌르면 기절할 만큼 아프다. 그래서 이런 농담마저 생겼다. ‘너무 아파서 아픈 곳을 잊게 만드는 혈자리다!’ 믿기지 않으면 맞아보시라.^^ 사실 귀곡의 원래 의미는 귀신도 울고 갈 만큼 효과가 좋은 혈이다라는 뜻이다. 소상은 급체나 정신병에도 효과가 좋지만 감기, 기침, 중서(中暑:더위를 먹어서 정신을 잃는 상태), 혼궐(昏闕:갑자기 쓰러져서 사지가 차지고 의식을 잃어 인사불성이 되는 증후), 중풍(中風), 인후가 부어오르고 아픈 증상, 실신(失神) 등에도 효과가 좋다. 특히 정신을 잃었을 때 찌르면 곧 깨어나는데 무지 아파서 깨어나는 게 아닌가 싶다. 재밌는 것은 재물을 잃거나 직장에서 짤려서 생긴 마음의 병도 소상으로 치료한다.

소상은 무릎관절을 치료하는 데도 특효혈로 불린다. 이걸 이해하기 위해서는 좀 전문적인 지식이 필요한데 간단하게 설명하면 이렇다. 수태음폐경과 족양명위경은 서로 좋아하는 관계라서 한쪽을 찌르면 다른 쪽도 그 영향을 받는다. 사랑하는 남녀 사이에 한쪽이 아프면 다른 쪽도 마음이 아픈 것처럼 이들도 그런 관계다. 우리 몸에서 무릎 쪽으로는 족양명위경이 흘러간다. 수태음폐경의 혈자리인 소상에 침을 놓으면 위경이 흘러가는 무릎까지 영향력이 발휘된다. 실제로 산에서 내려오다가 무릎이 좋지 않을 때 소상을 자극해 주면서 내려오면 한결 수월하다. 무리한 운동으로 하체에 있는 관절이 좋지 않을 때도 소상을 자극해 주면 효과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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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소상은 어떻게 자극해 주면 좋을까. 일단 침을 놓을 때는 오랫동안 꽂아 두어서는 안 된다. 기(氣)가 응축되고 강하게 모인 곳[井穴]이기 때문에 오랫동안 침을 맞으면 기가 다 빠져나가 버린다. 침이 없을 때는 지압을 해주는 것이 좋다. 엄지와 검지로 반대편 엄지를 잡고 사정없이 문질러 주면 된다. 이걸 백 번만 하면 침을 맞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낸다. 단 방향은 손톱의 끝 쪽으로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 방향으로 해야 수태음폐경의 기가 보충되기 때문이다. 주변에 정신이 혼미하거나 정신줄을 놓고 사는 친구를 만나면 소상을 집중타격 해줘라. 돈 뜯기고 직장에서 잘린 친구와 소주를 마실 때면 지긋이 소상을 문질러 줘라. 관계고립 때문에, 돈 때문에 지친 우리들을 위해 기억해야 할 혈자리! 관절염을 앓는 부모님을 위해서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효도혈! 엄지손톱 옆, 기를 유통하는 작은 상점, 소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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