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신생아 돌보기 4탄 _ 육아는 결국... 아이템으로 통하는가?

돌보기 4탄 

_ 육아는 결국... 아이템으로 통하는가?



육아란 결국 시간과의 싸움이다. 아기는, 결코, 기다려주지 않기 때문이다. 결코!! 말하자면, 이들은 ‘대화’도, ‘타협’도 할 줄 모른다. 뭐랄까, 원초적인 욕망의 덩어리 같은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00아, 아빠가 이거 한 다음에 그거 해줄께’라는 이야기는 아무 의미가 없다. 아기에게 가 닿지 않는다. 아기는 일단 운다. 그도 그럴 것이 ‘울음’은 그의 언어이자, 도구이며, 무기니까. 가만히 있다가 요구 사항이 관철되지 않고 있음을 느끼면 크게, 그래도 안 되면 더 크게, 더 더 크게 운다. 아빠는 애당초 소음에 몹시 민감한 성격인지라... 우리딸이 신생아였을 땐 그 엄청나게 크고 째지는 울음 소리를 감당하는 것이 참 힘들었다. 울어서 달래주려고 안아 올리면, 바로 귀에 대고 운다. 아기의 요구에 합당한 ‘일’, 분유를 탄다거나, 기저귀를 가지러 간다거나 하려고 바닥에 아기를 내려놓으면 아기는 그야말로 온몸으로, 온힘을 다해 운다. 안고 있을 때보다 더 큰 소리로. 아마도 바닥에 내려놓아진다는 것은 요구가 무시당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아이가 신생아 티를 벗으면서 상황이 훨씬 나아지는 줄 알았는데..., 음... 일단 한달 정도는 나아지기는 했었다. 훨씬 덜 울고, 생활도 규칙적으로 바뀌어 갔으니까. 그런데 최근 들어 갑작스럽게 난이도가 팍 올라가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제 슬슬 직접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다. 잠깐 한눈을 팔고 있으면, 소파 밑에 가서 낑낑거리고 있거나, 물티슈 통을 열려고 낑낑거리고 있거나, 책장 밑동에 가서 머리를 박고 있거나 한다. 이틀 정도 전부터는 책장에 책들을 뽑으려고도 한다. 그러니 아빠는 아기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다. 그런데 어떻게 눈을 안 뗄 수가 있겠는가. 아빠는 이유식도 만들어야 하고, 분유도 타야 하고, 설거지도 해야 하며, 빨래도 해야 하는데? 게다가, 아빠도 사람인지라 화장실엘 가야 하고, 제 녀석을 돌보려면 뭐라도 먹어야 하는데?


그러니까 ‘육아’란 시간과의 싸움이다. 아기로부터 얼마만큼의 시간을 벌어 낼 수 있느냐의 승부다. 그 승부에서 패퇴하는 날엔... ‘육아’ 자체가 위협을 받게 된다. 시간을 벌어내지 못하면 아빠는 힘이 든다. 힘이 들면 아기의 울음을 온전히 받아내기가 어렵다. 사람인지라 울컥하기도 하고, 버럭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런 ‘울버럭’은 고스란히 아기에게 전달되고 만다. 그런 감정들 뿐이 아니다. 아기가 다른 데 주의를 돌리는 틈을 타서 아기가 다음에 꼭 해야만 하는 것들, 옷을 갈아입는다거나, 분유를 먹는다거나 하는 그런 필수 요소들을 준비해 두어야 한다. 시간을 벌지 못하면 그 사이클이 깨진다. 아빠가 ‘시간 벌기’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 다음부터는 엄마와 함께 아기를 보는 날에도 이런 관점에서 접근하게 되었다. 육아의 파트너로서 아빠는 또는 엄마는 상대의 시간을 벌어줘야 한다.


사정이 그러한 관계로 아기를 돌보는데는 정말이지 ‘아이템’ 중요하다. 특히나, 엄마든 아빠든 평일 낮에 둘 중 한 사람만 남아 아기를 돌봐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것들의 중요성은 말할 필요가 없다. 3대가 한 집에 살면서 부모 형제 자매가 돌아가며 아이를 돌보는 환경이 아닌 다음에야 잠깐이나마 아기의 주의를 돌려줄 장난감, 묶어둘 구속도구 등등이 없는 상태로 아기를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옛날엔 그런 것 없어도 잘만 키웠어’라고 말하는 경우들이 많은데, 옛날엔 그런 게 없고 사람이 많았으니까 ‘그런 것 없어도’ 잘 키울 수 있었던 거다.


우리가 지금까지 크게 도움을 받았던 아이템 몇가지를 소개해 보는 건 어떨까 싶었다. 출산을 앞둔 부부들이라면 크게 도움이 되지는 않아도 적당히 참고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사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냥 적당히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그냥 아기가 나오길 기다리기만 했다. 미리 준비했더라면, 필요성을 몸으로 느낀 후 택배가 집에 도착하기까지 겪었던 며칠 동안의 암담함을 피할 수 있었으리라. 


 

스와들업


‘스와들업’은 이른바 기능성속싸개라고 할 수 있다. 갓 태어난 아기들은 아직 신체에 대한 관념이 완성되지 않은 상태여서 자기 손을 보고 놀라곤 한다. 그걸 ‘모로반사’라고 하는데, 여하튼 그렇게 놀라면 어떻게 되느냐, 잠을 못 잔다. ‘잠을 못 잔다’는 것은 신생아 부모에게는 그야말로 재앙이다. 신생아들은 하루에 분유를 세시간에 한번씩 총 8번을 먹어야 한다(아기에따라 10번을 먹기도 하고, 두 시간마다 먹기도 하고, 아무튼 신생아 때는 아기가 먹고 싶어하면 먹여야 한다). 당연히 새벽에도 두 번은 일어나서 분유를 먹어야 하는데, 정규시간만 준수해도 부모는 수일 내에 좀비가 되고 만다. 그런 와중에 아기가 3시간 안에 깬다면? 부모는 그날 밤에 아예 못 자게 될 수도 있다.


 스와들업은 신축성있는 섬유로, 통짜로 만들어진 속싸개다. 보통 ‘속싸개’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전통적인 싸개들은 특별히 무슨 기능이 있는 것들이 아니다. 그냥 큰 보자기 같은 것인데 그것로 아기를 특정한 방법으로 잘 말아주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아기가 팔 다리라도 흔들 수 있게 되면 쉽게, 정말 너무나 허무하게 풀려버린다. 이걸 걱정해서 너무 꽁꽁 싸매면 ‘고관절 탈구’가 생길 수도 있다. 그러니까 다리가 빠진다는 말이다. 풀리면 잠에서 깨고, 꽁꽁 싸매면 탈구가 일어날 수도 있고, 여간 신경쓰이는 게 아니다. 스와들업을 쓰기 전에는 정말 수도 없이 속싸개를 풀고 싸길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말이다. 스와들업 덕분에 그 일이 줄었다. 정말이지 십 년 후에 최고의 육아 아이템을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스와들업을 꼽을 것 같다. 그 정도다.



모빌


정말 고맙고 또 고마운 육아 아이템 두번째는 모빌이다. 엄마 아빠가 하루 종일 아기만 바라보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잠깐이라도 틈을 내야 하는 순간들이 당연히 있게 마련인데, 그 사이에 아기를 어떻게 둘 것인가. 뒤집지도, 뭘 쥐지도 못하는 녀석이 가만히 누워서 뭘 할 수 있겠나. 멀뚱하게 그냥 두는 건 영 마음이 좋지가 않다. 모빌은 바로 그럴 때 필요하다.



사진상에 있는 모빌은 이른바 ‘국민 모빌’이라고 불리는 모빌인데 틀어놓으면 음악이 흐르면서 자동으로 모빌이 돌아간다. 시각이 거의 발달하지 않은 진짜 갓난 아기 때는 모빌에도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데, 조금 날짜가 지나고 나니 아주 넋을 놓고 바라본다. 가끔 모빌을 보면서 웃기도 하는데 아마 배냇짓이었겠지. 여하튼, 모빌은 100일 전까지 훌륭하게 자신의 역할을 다했다. 우리 딸은 하루의 시작을 모빌 보기로 했을 정도다. 낮에도 모빌을 틀어주면 바로 모빌에 집중할 정도였다. 엄마 아빠는 그 시간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 빨래도 하고, 젖병도 소독하고, 밥도 먹을 수 있었다. 



바운서


바운서. 바운서다. 위대하신 바운서님이다. ㅠㅠ 사실 처음에는 ‘바운서가 꼭 있어야 하나?’ 생각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난 바운서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어’가 되었다. 왜냐하면, 아기가 주의를 돌리지도 않고, 잠이 들지도 않은 상황에서 꼭 해야만 하는 일이 있을 때가 있다. 아빠가 화장실이 급하다던지, 아니면 택배기사님이 온다든지, 받아야만 하는 전화를 받아야 한다든지 하는 일이 하루에 한두번 정도씩은 꼭 생긴다. 그럴 때면 아기를 자리에 가만히 눕혀진 상태로 있게 두어야 하는데 바운서는 그걸 가능하게 해준다. 요약하자면, 아기가 깬 상태에서 아빠가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려야 할 때, 바운서는 꼭 필요하다.



그 뿐이 아니다. 우리 딸은 모드 전환이 확실해서, 엄마가 안아주면 잔다. 아빠가 안아주면? 놀려고 한다. 그래서 아빠 혼자 딸과 있을 때는 낮잠을 재우기 어려웠다. 요즘은 졸려 하면 바로 바운서에 묶는...아니 눕혀준다. 눕혀 놓고 조금 흔들어주면 금세 잠이 드는 경우가 많기는 하지만, 그게 통하지 않을 때면, 아빠 말로 '기술'을 건다.


기술거는 중


최근에는 우리 딸이 이유식을 먹기 시작하면서 범보의자도 필요해지고, 마음껏 굴러다닐 수 있도록 매트도 필요하게 되었다. 그뿐인가 장난감도 하나, 둘 늘어 어느새 거실 여기저기에 장난감이 굴러다니고 있다. 그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들, 그냥 단순하게 ‘아기 장난감’이라고 생각하면 그만일수도 있지만, 아기를 방에 재워놓고 거실 이곳저곳을 보고 있자니 물건 하나하나가 고맙고 소중하게 느껴진다. 생각해 보면 우리 딸이 세상에 나와 처음 만나는 친구들 아닌가. 내가 본래 물건에 과도하게 애정을 느끼는 타입이기는 하지만, 아빠의 물건들과는 다른, 특별한 느낌이 딸의 물건들에는 있다. 어떤 의미에서 그것들은 나의 동료들이기도 하니까. 얘들아, 앞으로도 같이 놀자. 


_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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