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서른 일곱, 아빠가 되고 보니...

서른 일곱, 아빠가 되고 보니...


아, 오늘은 횡재한 날이었다. 마지막 수유를 마친 우리 딸이 평소와 다르게 ‘잠들기 과정’을 거치지 않고 트림 한번 ‘거억’한 후에 바로 잠이 들었기 때문이다. 평소라면 짧게는 20분, 길게는 1시간, 더 길게는 2시간 동안 엄마가 안고서 재워야 한다. 태어나서 오늘까지 대략 두어번 정도 이런 날이 있었는데, 엄마와 아빠는 어쩌다가 찾아온 이 횡재에 평일 TV시청을 하였다. 물론 글을 쓰고 있는 아빠는 지금 후회 중이다. 그대로 원고나 쓸걸. 




당장 내일 낮에 딸과 함께 보낼 시간이 걱정이다. 요즘 우리 딸은 아빠와 눈이 마주치면 활짝, 아주 화알짝 웃곤 한다. 심지어 꺄르륵 소리를 내면서 웃기도 한다. 어찌나 예쁜지 아빠는 그냥 바보가 되고 마는데……. 아기의 발달 사항들을 다룬 책에서 이르길 그런 웃음은 이른바 ‘사회적 웃음’, 쉽게 말해 ‘나를 잘 돌봐주세요’라는 의미라고 한다. 어쩐지 웃음의 의미를 축소시키는 듯한 뉘앙스다. 아빠 입장에서는 그 웃음에서 아기의 어떤 ‘기대’를 보곤 한다. 이를테면, ‘아빠가 슈퍼맨 놀이를 해주시려나’ 또는 ‘이번엔 무당벌레 뿅뿅인가’ 아니면 ‘우리 강아지 놀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이쪽저쪽 얼굴 흔들기?’ 같은 곧 아빠와의 놀이가 시작된다와 같은 기대 말이다. 이 놀이들은 저마다 특색이 있고 다 다르지만 극심한 체력소모를 동반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아빠는 한바탕 아기와 놀고 나면 본능적으로 먹을 것을 찾아 입에 넣는다. 신나게 놀다가 쿨하게 딸을 바운서에 묶어놓고 식탁에 앉아 와구와구 먹고 있노라면 딸은 ‘우워어어어’ 또는 최근에 익힌 소리지르기 ‘우와악’을 하며 더 놀 것을 요구하곤 한다. 체력이 방전된 아빠는 그저 음식물을 입안 가득 넣고 ‘오옹~ 잠가마 이서~ 아바 여기 이서요~’(응, 잠깐만 있어, 아빠 여기 있어요) 할 뿐 쉽게 다가가진 못한다. 마음속으로는 ‘아빠는 너를 얼른 재우고 빨래 돌리고, 빨래 개고, 빨래 널고 밥도 앉혀야 돼. 딸아 미안, 한숨 자. 크흑!’ 한다. 그러니까 지금 아빠는 하룻 저녁 횡재를 무분별하게 써버린 다음이라, 내일을 어찌 감당할지 걱정하는 중이라는 이야기다. 지금도 눈꺼풀이 무겁다.


이제 내 나이 서른일곱이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나를 낳으셨을 때가 두분 나이 서른이었을 때니까, 오늘의 나보다 무려 일곱살이나 젊으셨다. 어머니는 결혼도 하지 않을 것이며 아이는 낳을 생각이 전혀 없다던 나에게 ‘빨리 낳아 길러야 덜 힘들다’고 말씀하셨다. 엄마가 너를 늦게 낳아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시며 말이다. 말씀 들을 때는 그저 귓등에 스쳐가는 어머니 은혜 중 하나겠거니 하고 말았는데, 기왕 딸이 생긴 다음에 돌이켜 생각해 보니 십년은 아니더라도 사오년만 일찍 아빠가 되었으면 좀 낫지 않았을까 싶기는 하다. 스물 일곱이면 내가 아직 질풍노도의 막바지에 있을 무렵이라 딸에게나 나에게나 아내에게나 서로 이롭지 못하다. 삼십대 초반이었다면 그래도 이제 질풍노도도 끝났고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습기 그지 없지만) ‘젊음’이 끝나고 말았다는 생각에 마음이 헛헛하여 이런 저런 사치들로 구멍난 가슴에 창호지 바르던 때였다. 그때 아기를 낳아 길렀다면…, 체력적으로는 아주 조금 나았을 테지만 지금처럼 아기가 예쁘지는 않았을 것 같다. 그러니까 어느 쪽으로 가든 일장일단이 있는 법, 그렇게 생각한다.


아내로부터 아기가 생겼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다. 그때 아빠는 엄마가 임신했다는 소식과 함께 큰 병원으로 이동 중이라는 소식을 함께 들었다. 말인즉, 개인병원에서 님은 ‘고령임신’이시니 대학병원으로 가시라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그때 아빠의 마음속에는 기쁨이 넘치는 분홍 언덕이 융기함과 동시에 걱정의 붉은 계곡이 함께 침강 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걱정은 기쁨만큼 강렬하진 않은 법이다. 엄마가 아빠보다 생물학적인 나이는 많지만, 신체 나이는 훨씬 젊을테니까 괜찮을거야 정도로 생각했다. 원래 성격이 좀 안이한 편인 게 큰 도움이 되었다.  그 순간에는 그냥 그렇게 넘어갔다.


고향풍경



문제는 길고 긴 임신 기간이었는데, 엄마의 컨디션이 나빠질 때마다 안이하게 덮어둔 걱정이 불쑥불쑥 튀어나오곤 했다.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아빠는 그럴 때 종종 ’엄마가 나이도 있는데 낳기로 한 게 잘한 걸까’ 하는 생각을 내심 하곤 했지만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차라리 그때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온 의식을 집중시켰다. 그러면 어쩐지 즐거워졌고, 그래야 산모도 기운을 내지 않겠나 싶었다. 그렇게 순간순간의 위기들을 최대한 안이하게 넘어가곤 했다. 물론 병원 검진은 꼬박꼬박 다녔기 때문에 나름 믿는 구석도 있었다.


‘군대를 두 번 가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자기가 갔다 온 군대가 세상에서 가장 빡세다’는 말이 있다.(우리 아버지가 생전에 남기신 말씀이다) 우리의 경우도 임신을 두번 해본 것이 아니었으므로 남들의 임신 생활이 어떤지 잘 모른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 보면, 우리가 특별히 더 어렵거나 고생하지는 않은 것 같다. 남들이 겪는 정도에서 위아래로 조금씩 등락이 있었을 뿐 평균을 넘어서진 않은 것 같다는 말이다.  물론 아빠는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지 여전히 대략만 가늠할 뿐, 실제 느낄 수는 없다. 여전히 그때를 생각하면 조금 마음이 아프지만, 이번에도 대략 안이하게 생각하고 만다. ‘뭐, 우리 딸을 아빠가 더 열심히 돌보면 되는거 아니겠어’라고 말이다. 그러니까 딸을 즐겁게 해주고, 엄마를 좀 더 편하게 해주자. 졸린 아빠는 그런 다짐을 한다. 매일매일.


_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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