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카프카의 창, 카프카의 사랑

카프카의 창, 카프카의 사랑



1. 연애는 그의 힘


카프카는 1912년 9월부터 1912년 12월 사이에 중편 세 작품 「선고」(1912.9.22.~23.),「화부」(1912.9.25.), 「변신」(1912.11.18.~11.19, 1912.12.6. 탈고)을 완성했습니다. 카프카는 이 시기에 고쳐쓰고 있던 많은 단편들을 완성했으며, 새로운 형태로 단편집을 구상해보기도 했지요. 분량으로 보면 그가 생전에 ‘발표’했던 작품 중 반 정도가 이 시기에 쓰여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선고」는 카프카가 스스로 만족했던 몇 안되는 작품 중 하나였는데요, 그 탄생과정이 대단히 신비로웠습니다. ‘오늘도 못 썼다’, ‘써야만 한다’라는 카프카식 반성과 다짐 없이 단숨에 완성되었던 것이죠. 그의 특기인 문단, 문장, 부호의 끊임없는 수정이나 각각의 비교분석도 없었습니다. 카프카는 일기에서 참으로 많이 작품을 구상하고, 연구하고, 써보기를 반복했지만 「선고」처럼 순식간에 일어난 불꽃은 거의 없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칼다 기차의 추억」(1914년 8월 15일 일기)처럼 꽤 많이 진행시킨 것도 있었지요. 허나 결국 출판까지 간 것은 「선고」와 「화부」뿐이었습니다. 카프카는 일기에서 몇 번이나 「선고」의 탄생과정을 회상했습니다. 자신이 낳기는 했지만 완벽하게 낯설고 이질적인 존재! “완전히 기진맥진한 상태에 처해 있으면서도 이제야 비로소 오랜 존재의 출발점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존재!(발터 벤야민,「프란츠 카프카」중에서)  카프카는 자신의 출산을 기적이라도 되는 듯 감탄했습니다.


# 나는 이 「선고」라는 이야기를 22일에서 23일까지 밤에, 저녁 10시부터 다음 날 아침 6시까지 단숨에 썼다. 오래 앉아서 뻣뻣해진 다리를 책상 아래서 꺼내는 것도 거의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끔찍하게 힘들기도 했지만 기쁨도 있었다. 이 이야기는 내가 물에서 앞으로 나가듯이 발전되어 나갔기 때문이다. 이날 밤에 나는 몇 번씩이나 나의 무게를 등에 싣고 있었다. 어떻게 그 모든 것을 과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그 모든 것, 그 모든 환상적인 착상들을 위한 거대한 불꽃이 마련될 것이며, 그 불꽃 속엣 그것들이 사라진 후 다시 살아나게 될 것인가.(1912년 9월 23일 일기)


이 시기의 작품은 내용적으로도 독특합니다. 「선고」에 연이어 쓴 「화부」는 카프카 작품에는 거의 없는 ‘소중한’ 인연이 나옵니다. 고향에서 쫓겨난 청년 카를은 배에서 쫓겨나기 직전의 화부와 친구가 되지요. 두 사람은 강렬하게 서로에게 이끌립니다. 「변신」에 나오는 오빠 그레고르는 누이 동생의 바이올린 레슨을 죽기 직전까지 걱정합니다. 그러면서도 카를과 그레고르는 새로운 지평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또 상당히 과격합니다. 인정사정 보지 않고 처음 본 미국 사람을 따라 배에서 하선해 버리거든요. 갑충이 되어 집을 빠져나가기도 합니다. 아! 「선고」의 게오르그는 그냥 다리 밑으로 뛰어내리는 군요. 이 세 주인공들은 눈 앞에 있는 인간에게 자신의 전부를 주려고 달려들며, 또 다른 만남을 위해 계산없이 돌진합니다. 그래서, 작품의 온도가 뜨겁습니다.


이 희안한 넉 달 동안 카프카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여기에는 중요한 단서가 있습니다. 그것은 카프카가 일기에 「선고」를 썼던 날짜입니다. 1912년 9월 20일. 카프카는 며칠 뒤에 「선고」를 완성한 날은 23일이라고 쓰지만, 실제로 작품이 시작되는 일기장의 날짜는 9월 20일이며, 이날은 그가 처음으로 연인에게 편지쓰기를 시작한 날이었습니다. 카프카는 한 달 전, 막스 브로트와 동행했던 어떤 모임에서 우연히 펠리체 바우어 양을 만났어요. 9월 20일에 카프카가 쓴 편지도 결코 짧지 않았습니다. 카프카는 1912년 9월 20일부터 시작해서 1917년 10월 16일까지, 두 번의 약혼과 두 번의 파혼을 반복하며 엄청난 양의 편지를 펠리체에게 보냈는데, 이 문제의 넉 달 동안 그 전체 양의 4분의 1을 썼습니다. 카프카는 이 시기에 정말 엄청난 정력으로 썼지요. 일기를, 편지를, 작품을! 우리의 카프카 님은 연애를 시작했던 것입니다. 연애는 그의 힘!



2. 창문 없이는 쓸 수 없어요 


카프카는 매력 있었던 남자입니다. 여행지에서, 요양원에서, 프라하와 베를린의 거리에서 그는 선하고 우아한 여인들과 순식간에 만나 사랑의 불꽃을 태우곤 했습니다. 펠리체 바우어, 율리 보리체크, 밀레나 예젠스카, 도라 디아만트. 이제 그녀들은 이름만으로도 카프카라는 문학 세계에 없어서는 안 될 풍경을 제공합니다. 그가 연인에게 보낸 편지의 양은 그가 썼던 모든 일기와 작품들을 압도하지요. 내용도 사소한 즐거움에서부터 문학에 대한 자신의 열정, 집필 중에 있는 작품의 문제, 갖가지 철학적 단상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며 절절합니다. 카프카는 연애를 하면서 자신이 고양되는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 실제로 글을 충분히 쓰고 있다는 확신을 가지기도 했고, 작가로서의 삶에 대한 비전을 찾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결혼은 하지 못했지요. 시절 인연이 맞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저는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해보아야 할 것은 그가 결혼을 결국 못한 일이 아니라, 세 번씩이나 하려고 했다는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카프카는 펠리체와의 첫 번째 파혼 직후에 자신이 여전히 그녀를 사랑하고 또 필요로 한다는 것을, 결혼이 꼭 글쓰기의 방해물만은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카프카에게는 파혼이야말로 도피였어요. 아래는 두 번째 파혼 직후에 쓴 일기입니다.


# 생각하고 관찰하고 규명하고 기억하고 말하며 더불어 사는 능력이 점점 더 떨어진다. 내가 돌처럼 굳어간다.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심지어 직장에서도 더 무능력해진다. 일로 나를 구제하지 않으면 나는 끝장이다. 내가 그 사실을 그렇게 잘 알고 있다니. 내가 사람들 앞에서 숨는 것은 조용히 살아가기 위해서가 아니라 조용히 망해가기 위해서다.[1914년 7월 28일 일기]


카프카는 펠리체 덕분에 삶의 한계를 정면에서 바라보면서 문학의 본질에 대해 성찰할 수 있었습니다. ‘도대체 문학이란 무엇인가?’ 펠리체와의 결혼 문제가 없었더라면, 이 물음은 아예 떠오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결혼과 문학 사이에 대차대조표를 그리면서, 카프카는 글이란 것이 지상에 발 딛고 있으면서 천상(문학)을 지향할 때에만 씌어질 수 있음을 이해했습니다. 펠리체는 그가 문학이라는 저 무시무시한 곳으로 완전히 빠져들어가지 않고, 광기에 사로잡히지 않고, 계속해서 두 발을 땅에 딛고 글을 써 나가게 하는 지상의 닻이었습니다.



어디 펠리체 뿐이던가요? 카프카는 많은 이들과 깊이 사귀었습니다. 한참이나 어린 직장 동료의 아들 구스타브 야누흐가 약속 없이 사무실 문을 두드려도 무조건 환영했지요. 우연한 만남을 두려워하는 것은 무능력이라며! 야누흐는 왜 카프카와 있었던 모든 일을 기록해두었을까요? 그는 카프카의 몸짓과 말이 오직 자애로 자신을 키우는 자양분임을 알았습니다. 어째서 막스 브로트는 모든 원고를 불태워달라던 카프카의 유언을 과감하게 배신할 수 있었을까요? 카프카는 브로흐에게 그의 정신 전체에 대한 권리를 양도했던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헤어진 연인 밀레나는 카프카가 사경을 헤맬 때 그로부터 유품이 될 일기와 작품의 대부분을 건네받았습니다. 아래는 밀레나가 쓴 추도사입니다. 여기서 다 인용할 수는 없지만, 밀레나는 추도사의 끝부분에서 카프카가 쓴 작품의 제목을 바꾸어 말하는 등, 상심으로 제정신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카프카라는 ‘특별하고 심오한 세계’와 연인이 되었고, 헤어졌고, 그 글 안에서 살 권리를 받았습니다. 우리는 이 두 사람을 어떤 사이라고 해야 할까요?


# 그는 두려움과 겁이 많았고, 부드러운 성품에 착했지만, 그가 쓴 책들은 무시무시하고 고통스러웠습니다. 그는 세상이 무방비 상태의 인간과 싸우며 인간을 파멸시키는 보이지 않는 악령들로 가득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형안을 지닌 데다 너무나도 현명하여 세상에서 살 수가 없었으며, 너무 약해서 투쟁할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고귀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 지닌 연약함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두려움, 오해, 불친절, 진실하지 못한 정신에 맞서 투쟁할 힘이 없기에, 처음부터 자신의 무력함을 알고 복종하며 그래서 승자를 부끄럽게 합니다. 그에게는 고독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진,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러한 사람들의 고도로 민감한 정신은 얼굴 표정만 봐도 그 사람 전체를 예언가처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 대한 그의 지식 역시 특별하며 심오합니다. 아니, 그 자신이 특별하고 심오한 세계입니다.(1924.6.6.)


카프카는 인간관계가 깊어지는 것을 두려워한 사람도 아니었고, 상대 때문에 글 쓸 시간이 뺏길까 전전긍긍하는 사람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카프카가 펠리체와 한참 연애할 때 다듬고 펴낸 작품집의 제목은 『관찰』입니다. 그 안에 「골목길로 난 창」이라는 손바닥만한 작품이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창문같은 존재가 바로 펠리체나 브로트가 아니었을까요? 세상으로 고개 내밀 수 있게 도와주는 틀, 소음과 냄새 속으로 더더욱 나아가게 하는 열린 문. 모두에게 열려 있으나, 그 누구도 넘어가지 못하게 하는 법의 문과는 상반되는 문!(「법 앞에서」) 그 창문 너머를 보며 카프카는 글을 쓸 꿈을 꾸었던 것입니다

아래 그림은 1787년 친구 티슈바인이 그린  로마 여행중의 괴테입니다. 창가의 괴테! 카프카도 괴테를 열심히 읽었지요.


글_오선민(고전비평공간 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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