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엄마와 아빠가 함께 쓰는 육아이야기―고령임신, ‘병명’ 아닙니다

고령임신, ‘병명’ 아닙니다



딸이 세상에 태어나고부터 우리집은 밤 9시면 한밤중이다(자정도 넘은 느낌). 이제 만 4개월의 절반을 지나고 있는 딸의 막수(아기가 잠들기 전 마지막 수유) 시간은 빠르면 저녁 7시 30분, 늦어도 8시 15분을 넘기지 않는다. 막수 후에는 잠들기 모드에 들어가야 하므로 그 전에 목욕이나 잠잘 준비를 모두 마쳐 놓아야 한다. 그러니 저녁 7시쯤이면 벌써 하루가 다 저문 느낌이다. 막수를 아빠가 책임지든 엄마가 책임지든 상관없이 딸을 재우는 데는 엄마가 출동한다. 재우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른 글에서 자세히 쓰겠지만, 아무튼 지금 현재 아빠는 놀기를, 엄마는 재우기를 맡고 있다(이 역할은 우리가 나눴다기보다는 딸이 나눠준 것에 가깝다).




집안 불을 전부 끄고 스탠드 두 개만 켜 놓은 채 딸을 안고 나름의 재우기 의식에 들어간다. 의식은 간단하다(신생아 때와 지금은 의식에 다소 차이가 있다). 먼저 나의 하루 일과를 딸에게 브리핑한다. 오늘 곰샘을 어디서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했다든지, 낭송 조선왕조실록편의 교정을 봤는데 어떤 내용이 있었다든지, 같이 일하는 이모들이랑 점심으로 뭘 먹었고 어떤 일을 했다든지 하는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그때까지도 딸이 잠들지 않으면(대체로 그렇다) 나 혼자만의 멜로디로(나는 음치다) 딸에게 하고 싶은 말들을 흥얼+중얼거린다. 


그 랩인지 노래인지 타령인지 모를 흥얼+중얼거림의 주레퍼토리는 엄마의 바람―엄마는 딸이 건강하게만 자라면 더 바랄 게 없어―과 엄마의 고백―엄마 딸로 태어나 주어서 너무 고마워―, 그리고 딸이 아직 뱃속에 있었을 때의 이야기 등이다. 품에서 까무룩 잠이 들어가는 작은 딸아이를 내 팔과 가슴에 온전히 느끼면서 이런 이야기들을 중얼거릴 때마다, 이 ‘생명’이 나에게서 나왔다는 것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신기하고, 또 감사하다. 


처음 글에서 말했지만, 딸을 가졌을 때 내 나이는 만 43세로 고령임신이었다(굳이 만 나이를 쓰는 건, 임신과 관련해 병원〔의학〕에서 취급하는 나이이기 때문이다). ‘고령’이란 단어가 주는 매우 노인 같은 느낌에도 불구하고, 만 35세 이상의 여성이 임신하면 ‘고령임신’이라고 한다. 보통 (의학적으로) 여성의 가임기를 만 15세에서 만 44세까지로 보는 걸 감안하면 나는 그냥 고령임신도 아니고 최고령임신을 했던 셈이다. 물론 만 44세를 넘어서도 임신할 수 있겠지만 이 경우는 확률적으로 매우 떨어지는지, 아무튼 시험관시술의 정부지원 자격요건에도 “법적 혼인상태의 만 44세 이하의 여성”이라고 되어 있는 걸 보면 만 44세가 임신(특히 초산)의 마지노선 같은 나이인가 보다.


임신을 확인하러 갔던 작은 산부인과에서는 내게 낳을 생각인지를 묻더니, 그렇다면 “나이가 있으니” 대학병원으로 가라며 진료의뢰서를 바로 발급해 주었다. 안 그래도 임신이면 큰 병원으로 갈 생각이긴 했지만, 그 짧은 상담에 “나이” 얘기를 몇 번이나 하며 대학병원으로 서둘러 보내니, 어쩐지 ‘나이가 많은 것’이 굉장한 ‘불치병’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물론 의사로서는 나를 환자처럼 대한 이유가 있다. 만 35세가 넘어서, 특히 만 40세가 넘어서 임신을 하면 그 자체로 ‘고위험군 산모’에 속하는데 아기의 염색체이상, 자연유산, 임신성 당뇨의 위험확률이 급격히 증가하기 때문이다. 염색체이상 가운데 자주 거론되는 다운증후군의 경우를 보면 만 35세에 다운증후군 아기를 낳을 확률은 1:353인데, 만 40세에는 이 숫자가 1:83이 된다. 




하지만 통계는 통계일 뿐이다. 의미가 없다고는 당연히 할 수 없겠지만, 내 생각에는 그보다 평소에 몸 관리를 어떻게 해왔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다(혹시 이에 대해서 얘기할 기회가 있다면 그때 자세히 하겠다). 아무튼 고령임신을 하면 워낙 걱정되는 통계 수치들을 의사들은 이야기하고, 또 주변에서도 걱정하는 말들을 하니 이런 말들이 오히려 임산부에게 스트레스가 되어 태아에게 더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생각될 정도다. 물론 나쁜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고, 고령임신 비율이 점점 높아지는 상황을 반영한 조언이나 장점에 대한 이야기들도 있다. 임신 관련 책이나 정보에서 고령임신의 장점으로 공통적으로 꼽는 것이 보통 아기를 돌보는 데 경제적이나 정서적인 면 등에서 우호적인 환경에 있다는 것과 연륜이 있기 때문에 아기에게 안정적으로 반응할 수 있다는 것 등이다. 임신부 자신이 심리적 안정을 유지하고, 태어난 아기에게 안정적으로 반응하는 것―내 생각에는 이것이 어떤 태교보다 어떤 육아법보다 중요하다. 


임신 기간 중 나는 남편과 종종 “나이가 들어 아기를 갖게 되어 다행”이라는 말을 했다. 임신과 출산을 거치며 생기는 호르몬의 변화 때문에 감정 기복이 심해질 때 이런 생각은 오히려 더 강해졌다. 별일이 없어도 감정이 롤러코스터를 타대던 20대 때와 달리 40대가 되자 웬만한 일에는 크게 놀라지도 흥분하지도 않게 되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놀라고 흥분하는 일이 수적으로 적어졌고, 지속시간도 짧아졌다. 특히 너무 격한(?) 희노애락의 상황에 빠졌을 때 최소한 내가 지금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있다는 걸 빨리 자각하게 되었다(자각하면 그 감정도 빨리 식힐 수 있다).


임신과 출산 기간 동안 호르몬은 참 끊임없이 별것 아닌 일에 서운함을 느끼게 하고, 불안감을 치솟게 만들며, 슬픔에 쉽게 빠져들게 한다. 별것 아닌 일에도 중등도 이상의 서운함, 불안, 슬픔 등을 느끼는데, 누구나 그럴 만한 상황이 오면 어떻겠는가. 그 모든 감정들은 스트레스가 되고, 스트레스는 당연히 엄마는 물론 태아에게 가장 나쁜 영향을 미친다. 


나 역시 임신 기간 동안 스트레스 받는 일이 없을 수 없었다. 일상의 자잘한 문제들은 변함없이 계속 생겨났고, 어떤 식으로든 해결하며 지나가야 했다. 청년기의 나였다면 그 단계 단계가 모두 엄청난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하지만 중년의 나는, 어떤 문제는 그냥 두어도 되고 어떤 문제는 안달복달해봐야 소용이 없으며 또 다른 문제는 이리저리 처리하면 된다는 걸 경험적으로 알고 있다. 가장 큰 무기(?)는 그 모든 문제를 설령 엉망으로 해결해 가더라도 또 어떻게든 다른 길이 난다는 걸 안다는 것이다(그 길이 평탄한가 아닌가와는 별개의 문제로). 따라서 대체로 마음을 평온한 상태로 (내 수준에서) 빨리 되돌릴 수 있고, 나쁜 일은 빨리 잊을 수 있다(혹은 나이 덕분에 저절로 그렇게 되고;;). 


나는 이 평정(하려고)한 마음이 최고의 태교였다고, 우리 아기에게 내가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이 마음은 모든 것이 당황스러움의 연속이던 신생아 육아 때도 큰 힘을 발휘했다. 당황스럽기는 하지만 그걸 밖으로 표현해 아기를 더 당황시키지 않을 만큼은 자기 콘트롤을 할 수 있다고나 할까. 덕분에 출산 후 4주 동안 우리집에 출퇴근하며 아기 돌보기의 기초를 알려주신 산후관리사님께 초보 엄마아빠 같지 않다는 칭찬을 듣기도 했다(참고로 나는 산후조리원을 가지 않았는데 여러 면에서 내 경우에는 잘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서는 역시 다음에 쓸 기회가 있기를). 




나이가 많은 사람이 아기를 낳을 때 누구나 하는 걱정의 레퍼토리들(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 엄마 아빠 나이가 몇이라거나 하는 식의)이 있다. 그런데 어려서 아기를 낳을 때도 역시 그런 레퍼토리들이 있고, 가난한 사람이 아기를 낳을 때도, 남편 없이 아기를 낳을 때도, 지병이 있는데 아기를 낳을 때도… 오랜 시간 반복되어 온 그 상황 상황에 따른 걱정 레퍼토리들은 사실 없었던 적이 없다. 누구나 (사실은 별 관심도 없으면서 기계적으로) 하는 걱정을 받아 기어이 자기 걱정으로 끌어안기보다 지금 자신이 아기에게 줄 수 있는 것에 주목한다면, 어느 나이 어떤 상황에서 임신을 하든 뱃속의 아기에게 최고의 태교를 할 수 있고, 내 아기에게 최고의 엄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어찌 보면 아기가 엄마를 선택해서 온 바로 그때가 가장 임신에 적당한 때인 게 아닐까. (최)고령임신이었던 내가 임신 기간 내내 모든 검사에서 걱정없는 수치로 통과하고 건강하게 지냈던 것도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만) 지금이 딸과 내가 만날 가장 좋은 때였기 때문이 아닐까, 가슴이 뻐근해질 만큼 사랑스러운 딸의 잠든 얼굴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해본다.

_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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