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아니 내가 입덧이 하기 싫은 것도 아닌데'

아빠는 억울하다

'아니 내가 입덧이 하기 싫은 것도 아닌데'


우리 아기는 이제 한 살, 많은 것(?) 같지만 고작 130여일을 살았다. 10000일도 넘은(후훗) 아빠의 살아온 날과 비교해 보자면 130일이란 참 별 것 아닌 숫자다.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아기와 130일을 굴렀다고 하면 그건 정말이지 길고, 길고, 몹시 긴, 그런 여전히 시작에 불과하기 때문에 아득한 그런 숫자가 된다. 아무래도 이것은 태어나서 처음 130일이 몹시 밀도가 높은 나날들이기 때문에 그렇다. 


뒤집기 연습 중



갓 태어난 아기는 하루에 여덟끼 정도를 먹고, 다만 서너시간 깨어 있을 뿐이다. 그러다가 겨우 바깥세상(이라고 해봐야 '집')에 적응할 무렵이 되면, 잠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다. 걷지도 못하고, 기지도 못하고, 팔다리를 휘두는 것도 제대로 못하지만, 그렇게 아무것도 못하는 가운데에서도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는다. 아마도 지구의 중력이나, 기압, 온도 기타 등등 처음 마주하는 외부 세계와 제 몸의 리듬을 동조시키는 연습 같은 것일 게다. 아기는 그런 연습들로 자신의 시간을 꽉꽉 채운다. 물론 그 와중에 놈의 뒤치다꺼리는 오롯이 아빠, 엄마의 몫.


아마 아기는 엄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적응'을 해 왔으리라. 엄마가 먹는 음식, 들이쉬고 내쉬는 공기, 기분까지 생명을 획득하는 그 순간부터 아기는 그 모든 것과 리듬을 맞추려고 애를 썼을 것이다. 멈추고 잠깐 쉴도 없었을 테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엄마의 입덧이 시작될 무렵이었다. 괴로운 것은 알겠으나 아빠는 도무지 그게 얼마나 괴로운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엄마는 평소에 어디가 잘 아프거나 하는 그런 타입도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아빠는 평소처럼 '뭐 조금 괴롭다 마는 거 아니겠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아니 아예 '생각' 자체를 그다지 안 했다고 하는 게 맞겠다. 그래서 아빠는 평소처럼 그냥 '룰루랄라, 난 아빠다' 하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날 임신 소식을 듣게 된 지인 누군가로부터 전화가 왔다.


거두절미하고,

"입덧은 안 심해?"

"어, 뭐 괜찮은 것 같아." (벌써 분위기가 조금 이상하다. 그렇지만 뭐 괜찮은 걸 괜찮다는데...)

"야, 다행이다, 이쪽은 완전 데굴데굴 굴렀어."

"아, 정말 다행이네. 이쪽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아." (아깐 서늘했는데, 지금은 춥다)


그렇다. 그 다음 일은 모두의 예상대로다. 엄마는 다만 티를 많이 내지 않았을 뿐, 괴롭기는 마찬가지였던 것. 아빠는 그 무심함과 자신의 철없음을 반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문득 억울하다는 느낌이 있었다. 말이 조금 이상하기는 하지만,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아니 내가 입덧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것도 아닌데...'


지난 글(링크)에서 말한 바 있는, '어째서 아기는 엄마 뱃속에만 있어야 하는가'와 비슷한 맥락의 억울함이다. 그러니까 나도 입덧을 할 수 있다면 차라리 떳떳하겠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물론, 시간이 차츰 지나서, 엄마가 거의 아무런 음식에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이리 앉아도 괴로우며 저리 앉아도 편치 않은 상황까지 되자, '아, 그래 내가 안 해도 되니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다. 그래도 역시, 미안함은 어찌할 수 없기에 나름대로 이런저런 음식도 만들어 보고, 최대한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고 꽤나 노력하였다. 그러나 역시 노력한 만큼 뭐가 되지는 않더라. 그런데, 그게 기본임을 명심해야 한다. 입덧 중의 아내에게 내가 이렇게 이렇게 노력한다고 해서 금방 입덧이 괜찮아지길 바라거나, 내 노력의 가상함을 알아달라고 하면 안 된다. 




왜냐하면 무엇보다 입덧은 엄마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말 안 통하는 아기에게, 아빠가 이렇게 해주고 있으니 그만 울라든가, 그만 자라든가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것은 엄마에게도 마찬가지. 그러니까 사실 '육아'란 엄마 뱃속에 아기가 있을 때부터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니까 엄마는 본격 육아 이전에 이미 10개월 동안 육아를 한 셈이다. 아기가 겨우 뱃속에서 나왔으니, 이제 나머지는 아빠 몫이다.


이제 와서 다시 생각해 본다. 엄마가 입덧을 하는 동안, 그 시간은 아기에게 어떤 시간이었을까? 그것은 말 그대로 세상에 제 존재를 드러내고, 그것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었으리라. 누구나 그런 투쟁을 겪고서 세상에 나왔다. 말하자면 모두가 '생존자'다. 어쩐지 뭉클하다. 그렇게 놓고 보면, 아기에게는 매일매일이 살아남은 날들이다. 모든 것이 고비다. 아마 한참 더 자랄 때까지, 어쩌면 평생이 그럴지도 모르겠다. 우리 모두의 하루하루가 그러한 것처럼. 아빠는 그저 우리 아기가 좋은 리듬으로 세상과 만날 수 있도록, 잠깐 동조가 깨지더라도 기어이 다시 동조할 수 있도록 너를 튼튼하게 키우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구나. 


_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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