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입덧, 아기 존재 증명 _ 엄마 이야기

입덧, 아기 존재 증명 _ 엄마 이야기


임신 초기에 나타나는 입덧은 태아를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국립아동보건-인간발달연구소(NICHD)의 스테파니 힝클 박사는 임신 중 입덧을 겪은 여성은 그렇지 않은 여성에 비해 유산율이 현저히 낮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고 메디컬 뉴스 투데이와 헬스데이 뉴스가 26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2016-09-27 기사


열심히 뒤집기 연습 중



이제 막 생후 120일 만 4개월차에 진입하는 우리 딸은 갓 태어났을 때의 사진과 비교하면 엄청 커지고 살도 많이 붙어 다른 아기 같은 느낌까지 난다. 태어날 땐 가늘었던 다리가 일명 ‘미쉐린 아기’라고 해도 좋을 만큼 토실토실해져 있는 걸 보고 있자면, 어떻게 분유만 먹고도 이렇게 쑥쑥 커 주는지, 신기하고 고마울 따름이다. 아, 그렇다. 엄마가 되니, 아기가 잘 먹고 잘 자고 때에 맞게 자라나는 것만으로 정말 우주의 모든 신들과 세상 모든 사람들과 그리고 우리 아기에게 마음 저리도록 감사한 마음이 솟아난다. 불만과 걱정을 달고 살던 내가 하루에도 몇 번이나 “감사합니다”를 입에서 되뇌는 사람이 될 줄이야….


현재 대략 키 65cm, 몸무게 7.5kg 전후인 딸이 내 뱃속에 있다는 걸 처음 알았을 때 딸은 0.3cm 그러니까 3밀리미터, 아직 사람 형체를 채 갖추지도 못한 상태였다. 그때 딸아이의 첫 심장음을 들었던 순간은… 아마 내 생애 가장 강렬한 기억 중 하나일 것이다. 지금도 그때를 떠올리면 금세 콧등이 시큰해진다. 임신이 맞다는 의사의 말 끝에 기계를 통해 들려오던 그 박동음. 이어지던 의사의 말. “심장도 잘 뛰고 있네요.” 임신 6주. 3밀리미터밖에 안 되는 생명의 심장이 내 뱃속에서 힘차게 뛰고 있었다. 쿵.쿵.쿵.쿵.쿵… 그리고 이날부터 아기는 자기가 있다는 걸 힘껏 알리려는 듯 본격적으로 입덧이 시작되었다.  


아기가 생긴 것을 확인한 후 본격적으로 시작된 입덧은 드라마에서 보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내가 한 입덧은 “웩웩” 하며 헛구역질을 하거나 특정한 음식이 너무너무 먹고 싶다거나 한 것이 아니라 하루 종일 멀미하듯 메슥거리는 속(막상 정말 게우는 일은 없었다)과 냄새에 굉장히 예민해진 것이었다. 찾아보니 세상에는 참 다양한 입덧이 있었다. 토덧, 먹덧, 침덧, 냄새덧, 양치덧……. 나는 심하면 변기 옆에 붙어서 산다는 ‘토덧’은 아니었고, ‘냄새덧’ 쪽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자연의 냄새는 평소 불쾌하게 여겼던 냄새―예컨대 똥냄새―라도 괜찮은데, 화학물질이 들어간 제품의 냄새는 미칠 것처럼 싫고 견딜 수 없이 메슥거렸다. 담배나 차량 배기가스 냄새 같은 누구나 싫어하는 냄새는 물론이고 비누, 샴푸, 로션, 각종 세제, 섬유유연제, 향수, 새옷에서 나는 냄새까지 화학적 물질이 많이 들어간 냄새일수록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에 비하면 음식 냄새들은 싫은 축에도 못 들었다. 화장실에 들어가는 게 비누 냄새 때문에 괴로울 정도라 집에 있는 바꿀 수 있는 모든 제품을 무향으로 바꿨다. 가끔 무향이라고 해놓고 아주 옅은 냄새가 나는 제품을 만나면 화가 솟구칠 정도로 냄새에 예민해졌다.



운이 좋게도 ‘토덧’이 아니었고 메슥거림만 있었기에 끼니는 먹을 수 있었지만, 먹는 게 전혀 즐겁지 않았다. 먹고 나면 아무래도 ‘메슥거림’이 더 심해졌기 때문이다. 입덧 기간 내내 퇴근하면 현관부터 기어서 들어와 거실 바닥에 붙어 있었다. 누워 있으면 그나마 불편함이 덜했고, 기력도 없었기 때문이다. 책은 읽히지 않았고, 직업이 편집자인데도 텍스트를 집중해서 보는 것 자체가 힘에 부쳤다. 그나마 맘카페 등에서 입덧에 대한 얘기들―주로 입덧의 괴로움에 대한 호소, 언제 입덧이 끝나느냐는 질문―을 보며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나랑 똑같이 혹은 나보다 훨씬 더 혹독하게 입덧을 치르고 있는 사람들이 있구나, 하며 마음을 추스렸다. 나의 이 괴로움을 알아줄 사람은 지금 같은 괴로움을 겪고 있는 익명의 임산부 동지들뿐이었다.   


입덧이 미칠 것 같은 이유 중 하나는 언제 끝날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일반적인 정보는 있다. 입덧은 보통 5~8주에 시작하여 16주쯤에 끝난다고(그런데 그 정보 끝에는 “사람에 따라 임신 막달까지 하기도 한다”는 말이 붙어 있다-_-;;). 가끔 12주부터 덜해진다는 이야기들도 종종 보여서 나는 12주가 되기를 목이 빠지게 기다렸는데, 오히려 그때가 입덧의 피크기였다. 그러자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한계에 다다른 느낌이었다. 나아질 줄 알았는데, 더 심해지니 영영 입덧이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절망적인 기분이 되어 눈물까지 났다. 


다행하게도 임신 15주에 들어서자 입덧이 점점 덜해졌고, 한두 주 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한 상태가 되었다(입덧 기간 빠졌던 살은 눈 깜짝할 사이에 그 이상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입덧이 끝나자 유산 확률이 높은 임신 초기를 지나 중기에 접어들고 있었다. 문득 아무 티도 내지 않으면 엄마가 몸 생각 안 하고 무리하게 일하고 혹은 나쁜 음식들을 섭취하고 건강에 치명적일 수도 있는 제품을 사용하고 할까 봐, 아기가 엄마에게 입덧으로 자기가 있다는 걸 계속 상기시켜 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덧을 하는 정확한 이유가 아직 과학적으로 분명히 밝혀지지 못한 것도 이런 아기의 의지가 작용하기 때문은 아닐까…. 엄마, 아무 거나 먹지 말라고, 누워서 푹 쉬라고, 그래야 내가 단단히 붙들고 자랄 수 있다고. 


겉으로는 아무 티가 나지 않는 임신 초기에 입덧마저 없으면 사실 아기가 뱃속에 있는지 어떤지를 잊게 된다. 아마 나처럼 신체적 변화나 자극에 둔한 사람은 더 심할 것이다. 실제 냄새 때문에 피로감 때문에 힘들 때마다 ‘그래, 우리 아기가 잘 있구나, 잘 크고 있나 보다’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곤 했다. 그리고 많은 엄마들이 나처럼 입덧 기간 중 갑자기 입덧이 덜해지는 날이면, 혹시 아기가 잘못된 게 아닐까 불안해한다. 입덧 시기는 덜하면 엄마 마음이 힘들고 더하면 엄마 몸이 힘든 나날이다. 임신-출산 과정이 다 그런 것 같지만, 입덧 역시 개인차가 크기 때문에 엄마가 불편감이 최대한 덜한 상태를 이것저것 실험해 보며 찾아내어 그 상태를 유지하려 애쓰면서, 입덧의 괴로움을 아기가 건강하게 뱃속에서 자라고 있다는 신호로 바꾸면서, 몸과 마음을 다스리며 시간이 가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듯하다.


끝으로, 그런 과정에서 찾았던 내 입덧의 동반자, 나에게 ‘입덧’ 하면 잊을 수 없는 TV프로그램 이야기를 해야겠다. 당시 입덧의 괴로움을 좀 잊어 보려고 TV를 켜면 굳이 먹방이 아니라도 그렇게 먹는 장면이 많이 나올 수가 없었다. 보기만 해도 메슥거려서 즉시 채널을 돌렸고, 채널을 돌리다 돌리다 보니 평소 잘 보지 않던 채널까지 다다랐고, 그곳에서 내 괴로움을 달래 줄 그들을 만나게 되었다. 바로 코미디TV의 <맛있는 녀석들>(이하 맛녀석들). 세상에. 이들이 먹는 모습은 봐도 봐도 전혀 메슥거리지 않았고 오히려 저 음식을 먹고 싶다라는 생각까지 들게 했다(당시 내 감각으로 이것은 거의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급기야 나는 매일매일 <맛녀석들>을 찾아서 한 회씩 보기 시작했고, 본방 사수를 했으며, 그들과 더불어 웃으며 입덧 시기를 지날 수 있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어떻게 입덧의 괴로움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으랴. 아, 예능 프로그램 하나가 삶의 질에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무엇이든 지극한 활동은, 그것이 먹는 것이라도, 다른 이에게 이렇게 흐뭇함, 즐거움, 감동까지 줄 수 있는 것이다! 새삼 <맛녀석들> 네 명의 출연진과 연출진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다. 덕분에 먹는 즐거움에 대한 끈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고, 그 덕에 건강한 아기를 낳았어요! 감사합니다! 


글쎄… 아마 모르긴 몰라도 <맛녀석들>을 1회부터 빼지 않고 본 사람이 나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나무위키’에 떡하니 이런 정보가 올라 있는 걸 보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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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삐꼼 2017.08.19 11:42 신고 답글 | 수정/삭제 | ADDR

    0.3센치면 얼마만할까 엄지와 검지로 가늠해 보았어요. 이렇게 쪼그만한데 그 안에 심장이 있고, 그 심장이 소리를 내며 뛰고 있다니 믿기지 않을만큼 신기하고 놀라워요.
    그런데 그 0.3센치도 삶을 붙들려고 애쓴다는 사실에 눈물이 쏟아졌어요.
    요즘 제 자신이 너무 싫고, 내 삶에 앞으로 무엇이 더 남아있을까하는 생각에 무너진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었는데,
    내게도,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모르면서도 삶을 붙들려고 애쓰던 0.3센치의 시절이 있었다고 생각하니,
    제 자신이 너무너무 위대해 보이고, 소중해집니다.
    엄마 그리고 아빠가 써주시는 아이의 글 읽으며 왠지 제가 다시 태어나고, 살아날 것만같은 예감이 듭니다.

    • 북드라망 2017.08.22 18:01 신고 수정/삭제

      어떤 일인지 모르지만 기운내시고, 좋게 느껴주시고 잘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기운 드릴 수 있는 글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