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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아기가왔다 1

그러니까 아빠는, 엄마와는 다르다.

by 북드라망 2017. 8. 11.

그러니까 아빠는, 엄마와는 다르다 _ 아빠편



‘100일의 기적’이라고들 한다. 사실 처음에는 ‘뭐 기적씩이나’ 했던 것이 사실이다. 무엇보다, 아기를 키워본 적도, 커가는 아이를 옆에서 본 적도, 키울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기적은 기적이다. 이제 100일 고개를 넘긴 우리 아기는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눈을 잘 마주치고, 잘 웃고, 가끔은 ‘얘가 말도 알아듣는 건가’ 싶을 정도로 소리에도 잘 반응한다. 그리고, 또는 그래서인지, 뭐랄까, 시간이 지나가는 느낌도 100일 전과는 사뭇 다르다. 100일 전에는 그냥 그대로 순수한 생명의 덩어리 같았다. 분유를 주면 먹고, 이런 저런 배냇짓을 하기는 하지만 자고, 먹고, 싸고, 또 자고, 먹고……. 봐도 봐도 지루하지 않았던 것은 지금하고 다르지 않았지만 주고받는 상호작용이 거의 없다보니, 음……, 그러니까 이건 마치 (잘 우는) 식물?



아……. 어쩌다 내가 무려 ‘아빠’가 되었던가? 단언컨대 나는 아이가 생기기 직전까지도, 최소한 ‘의식’ 영역에서는 내 인생에 그런 일은 ‘없다’고 믿었다. 무엇보다 나는 나 하나 돌보는 것도 늘 힘에 부쳐하는 종류의 사람이었던 데다가, 근본적으로 인생은 허무 위에 세워져있다고 믿는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살아야 하니까 살기는 하는데, 살면 살수록 사는 게 썩 달갑지가 않았던 것이다. 이 탐탁잖은 일을 물려주기까지 해야 하다니, 아니 될 말이다. 최소한 ‘의식’ 차원에서는.


그런데 그러면서도 나는 나를 믿지 않았다. ‘계획이란’이라고 물으면 ‘언제나 어긋나는 것’이라고 대답하는 성격이어서,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하여도 역시, 마음 한켠에서는 ‘아마 생길지도’하며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도 같다. 결국 무조건 ‘아기는 낳지 않겠어’ 정도의 각오는 아니었던 것. 


그러한 상태에서 소식을 들었다. 아이엄마가 임신한 게 맞다고, 콩알보다도 작은 뱃속 아이의 초음파 사진을 보내온 것이다. ‘오 마이 갓’. 그 문자를 받는 순간은 지금도 생생한데, 마치 곧 죽을 사람처럼, 돌아가신 아버지, 아버지가 날 붙잡고 놀아주던 그 많은 순간들, 엄마한테 떼쓰다가 얻어맞았던 기억, 여하간 내가 자라 성장해오면서 받았던 일련의 사랑과 은혜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면서 뱃속부터 뜨끈한 감정이 함께 복받쳐 왔다. 그때 뭔가 불현 듯 깨달은 것도 같다. 결국 올 아기는 내가 어떻게 하든 온다는 것을. 그러니까 (다른 댁들의 경우엔 어떤지 알 수 없지만) 나의 경우엔 마치 올 것이 왔다는 느낌이었다. 좀 더 정확하게는, 내 인생에 원래부터 이 녀석이 있었다는 느낌? 음……, 또는 이제야 뭔가 제자리를 찾은 것 같은 느낌? ‘아마 생길지도’가 실제로 일어나니 오히려 안심이 되고, 그걸 넘어서 ‘내가 뭔가 굉장한 걸 해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리고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간 내 인생의 지난날에 이어서, 앞날이 몽그르르 떠오르는데, 그 풍경은 무언가 분홍빛 들판에서 노란 공이 이리 저리 왔다갔다 하며 ‘아빠~, 아빠아~~’ 하는 소리로 가득차 있었다. 아, 이런 게 감격이라는 것인가?


여하튼 그랬다. 여전히 ‘인생’을 두고 보면 그것인 인생(人生)이 아니라 돌맹이(石)나 나무(木)의 生이면, 하다 못해 개(犬)의 生이어도 좋았을 텐데 싶지만, 태어나 살겠다고 그러니까 사람이 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이 녀석의 몸짓을 보자면, 나의 그런 ‘의식’ 따위 아무렴 어떠랴 싶다. 이건 무언가 근본적인 지점에서 바뀌고 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기꺼이 그것을 받아들이겠다는 의식조차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데, 말하자면 이것은 ‘운명’이다. 임신 초기부터 그 운명에 대한 사랑이 하루하루 더해져서, 점점 커졌다. 심지어 어쩔 때는 나 말고 엄마 뱃속에만 아이가 있다는 게 조금 섭섭하기도 했다. 물론, 입덧 때문에 잘 먹지도 못하고, 나중엔 바로 눕지도 못하는 아내를 보면서 ‘역시 난 운이 조쿤’ 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기는 했지만, 원래 사람 마음이 좋은 것만 쏙쏙 골라먹고 싶지 않은가.


우리 아기의 태명은 '돌구'였다. '구르는 돌'의 줄임말.



아내의 갖은 고생 끝에 튼튼한 녀석이 나왔다. 사실 아이가 본격적으로 나오는 내내 나는 참 무서웠다. 시시각각 오르내리는 산모의 고통이나, 아기가 나오고 난 후의 처치 같은 것이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것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아기는 절대로 엄마가 ‘악악’ 몇 번 한 다음에 ‘응애’ 하고 나오지 않는다. 아기를 밀어낼 때 엄마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지경이고, 아기는 좁은 산도에 끼어서 정말 죽을힘을 다한다. 내가 무서웠던 것은 그러다 진짜 나만 남게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원초적인 공포였다. 결국엔 산모도 아이도 건강하게 끝이 났지만, 그리고 많은 경우 그렇게 되곤 하지만,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난다고 해서 그게 기적이 아닌 것은 아니다. 아기가 여기로 오는 것이나, 자라는 것이나, 각자의 오늘 하루가 무사한 것이나 어느 것 하나 기적이 아닌 게 없다. 


_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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