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프란츠 카프카 Intro - K는 누구인가

프란츠 카프카 Intro - K는 누구인가


안녕하세요. <프란츠 카프카와 함께> 연재를 시작합니다.

 

카프카는 어느 날 아침에 갑충이 되고, 원숭이가 학술원에 보고하고, 굶다가 짚더미처럼 부서지는 등, 기이한 변신담을 많이 썼습니다. 하지만 그가 세운 목표는 ‘자유’였지요. ‘사람은 아래에서 위로가 아니라 안에서 밖으로 성장하는 법이며, 자유란 누군가에게 빼앗기고 획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깨고 나오는 과정에 있다.’ 카프카는 모든 글을 그 자신과 투쟁하면서 썼습니다. 출구를 향한 투쟁으로서의 변신, 자유롭기 위한 절대적 조건으로서의 쓰기!

 

<프란츠 카프카와 함께>에서는 카프카가 썼던 모든 것, 손바닥보다 짧은 단편에서부터 미완의 장편, 일기나 편지, 혹은 그의 사무적인 메모들을 읽으며 그가 그린 투쟁의 지도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재미있는 이야기 많이 기대해주세요. ^^


 

“오직 외적 조치에 의해서 얻은 거짓된 가상의 자유는 착각이며 뒤죽박죽이고, 불안과 절망이라는 쓰디쓴 풀 이외에는 아무것도 자랄 수 없는 사막이에요. 당연하죠. 왜냐하면 영속적인 실제의 가치를 지닌 것은 언제나 마음의 선물이기 때문이죠. 인간은 아래에서 위로가 아니라, 안에서 밖으로 성장하는 법이죠. 이것이 모든 삶의 자유의 근본조건이에요. 삶의 자유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사회 분위기가 아니라, 자기 자신과 세계에 맞서 끊임없이 투쟁하는 자세예요. 이것이 인간이 자유롭기 위한 조건이죠.

─구스타프 야누흐, 『카프카와의 대화』


1. 투쟁

 

카프카의 작품 중심에는 항상 어떤 투쟁이 벌어진다. 갑충은 아버지와, 포획된 원숭이는 우리의 철창과, 시골 사람은 성의 문지기와, 요제프 K는 법의 관계자들과, 또 다른 K는 성의 하급 관리들과, 요제피네는 자신의 쥐 종족과. 그리고 카프카는 이들의 투쟁 대상이 속한 세계, “모든 것이 속해 있는 세계”를 ‘법’이라고 불렀다. 법을 향한 투쟁? 카프카는 왜 법과 투쟁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던 것일까? 그런데 모든 것이 속해 있는 세계가 ‘법’이라면, 그 세계 속에 포함된 나는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 적이 나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품고 있는 대상이라면 나의 칼끝은 어디를 향해 있어야 할까? 이 투쟁의 기술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그리고 투쟁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소송』은 제목에서부터 법과의 투쟁을 노골적으로 밝히는 작품이다. 작품에서 법은 법원에 소속된 사람의 모습으로, K를 심의하는 듯한 법정의 모습으로, 그리고 최후에는 K에 대한 판결로 그려진다. 문제는 이 법을 둘러싼 사람이 법원의 세탁부, K 회사의 직원, 법원 안내 직원, 법관의 초상화를 그리는 화가, 법원에 소속된 신부, 변호사와 그 애인의 모습으로 등장하며, K 앞에 자꾸 나타나는 법정이 내 하숙집 침실(체포), 그 침실의 옆 방(심리 위원회)이나 카페 등 일상의 도처라는 점이다. K의 움직임 속에서 일상이 법정이 되고 이웃이 배심원이 된다. K의 투쟁은 그의 생활 곳곳에서 이루어진다. 그리고 K는 생일을 맞아 개처럼 죽는 최후를 맞는다. 카프카는 법과의 투쟁이란 비참할 뿐이라고 경고를 던졌던 것일까? 하지만 뭔가 석연치 않다. K가 시종일관 당당했기 때문이다.

 

 

 

2. 나는 고발한다, 나를!

 

모든 것은 ‘소송’이 시작된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 소송은 누가 걸었나? 법의 문지가? 그보다 더 높은 판사들이? 도대체 K가 그토록 거침없었던 까닭은 무엇일까?

 

“내 말을 오해했군요. 당신이 체포된 건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직장에 나가 일하는 것까지 막지는 않습니다. 당신의 일상생활도 방해받지 않을 겁니다.” “그렇다면 체포되는 것도 그다지 나쁠 건 없군요.” K는 이렇게 말하면서 감독관에게 다가갔다. “난 나쁘다고 말한 적이 없습니다.” 감독관이 대답했다. “체포 사실을 알리는 것도 꼭 필요한 일 같지는 않은데요.” K가 더 가까이 다가서면서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가까이 다가왔다. 이제 모두가 문 앞의 좁은 공간에 모여 있었다. “그건 내 의무였습니다.” 감독관이 말했다. “참 한심한 의무군요.” K가 집요하게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죠.” 감독관이 대답했다.”

─『소송

 

K가 바로 소송을 건 자였다. 침대 위에서 애써 몸을 일으킨 자는 바로 그였다. K는 체포되었다는 사실을 통고받았을 뿐, 실제로 체포되어 구금되지도 않았으며 평소와 다름없이 은행으로 출근하거나 애인 엘자를 만날 궁리를 할 수 있었다. 심의에 출석하라는 통보도 받았지만 언제 어디에서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안 가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K는 갔고, 자신의 처지를 확인하고 국면을 전환시키기 위해 가능한 모든 조건을 ‘찾아다녔다.’ K가 가장 싫어하고 죽고 싶어지는 순간은 법과 관련된 사람들이 자신을 이리저리 끌고 다닐 때이지 체포나 판결 그 자체가 아니다.

 

“예심판사님은 방금 제게 도장공이냐고 질문하셨는데, 사실 판사님은 질문하신 게 아니라 단정적으로 말씀하신 것이지만, 판사님의 그 질문은 저에 대해 진행되고 있는 이 소송 절차의 전체적인 성격을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판사님은 이것이 결코 소송 절차가 아니라고 반박하실지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판사님의 말씀이 정말 옳습니다. 제가 그것을 소송 절차로 인정할 때만 소송 절차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저는 지금 이 순간 그것을 소송 절차로 인정합니다. 말하자면 동정심에서 그렇게 하겠다는 겁니다. …”

─『소송』


 

게다가 K의 체포는 누군가의 중상모략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어쩌면 체포되어야 할 자는 K가 아닐 수도 있다. K의 죄를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그러나 K는 따져 묻는다. 세상의 모든 죄는 그렇게 시작하지 않는가! 정말 인간이라는 것이 죄가 될 수 있는가? K의 소송이란 그가 움직이지 않았으면 시작되지도 않았을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소송은 오직 그에게만 달린 소송이랄 수 있다. 그런데 그가 자발적으로 이 소송을 수락함으로써 그에게는 하나의 죄가 생긴다. 무고죄. 무고한 그 자신을 고발한 죄. 조르조 아감벤은 K가 단지 Kafka를 지칭하는 게 아니라, Kalumnia(거짓 고소), Kalumniator(거짓 고발자)를 뜻할 수 있다고 지적(조르조 아감벤, 「3장 K」,『벌거벗음』)한다. 이렇게 해서 지게 되는 ‘죄’는 ‘자기 자신’이라는 원인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K는 스스로 죄를 만듦으로써 신이 부여한 죄목을 짊어지는 대신, 자신의 죄라는 업을 가지게 된 것이다.

 

여기서 더 나가서, K는 법이 허가한 변호사 대신해서 스스로 변론하기를 선택한다. 만약 그 자신에게 ‘원래의 죄’가 없다면 자신의 허위 고발은 ‘죄’가 될 것이다. (검사 측의 입증 요건) 만약 그 자신에게 ‘원래의 죄’가 있다면 ‘자신의 무고죄’는 방면되겠지만 ‘애초의 죄’에 대한 심판을 받아야 한다. (변호사 측의 입증 요건) K가 활약해야 할 법정에서는 K의 원래 죄를 입증해야 할 변호사도, K의 원래 무죄를 입증해야 할 검사도 모두 K 자신이며, 이 소송은 어쨌든 K에 대한 심판으로 끝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K의 죽음을 선고하게 만드는 전 과정은 K 스스로가 끌어내는 과정이 된다. 법이라는 초월적 심급으로부터의 명령이 아니라. 그를 개처럼 죽게 한 것은 오직 그 자신이었던 것이다.

 

K는 오늘은 더 이상 수치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어떻게든 청원서를 써야만 했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만, 만일 사무실에서 청원서를 쓸 시간이 나지 않으면 밤에 집에서라도 써야 했다. 밤 시간에 쓰는 것이 여의치 않다면 휴가라도 내야 했다. 하여튼 도중에 중단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것은 업무에서만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가장 어리석은 일이다. 물론 청원서를 쓴다는 것은 거의 끝이 없는 작업이다. 특별히 소심한 성격이 아니더라도, 청원서를 완성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은 누구든지 쉽게 가질 수 있다. 그것은 변호사가 청원서를 완성하지 못하는 이유로 보이는 게으름이나 간교한 속셈 때문이 아니다. 현재 무슨 이유로 기소되었는지도 모르고 앞으로 그것이 어떻게 확대될지 전혀 감조차 잡을 수 없는 상황에서, 지금까지의 삶 전부를 아주 사소한 행동과 사건들에 이르기까지 기억 속에 떠올려 서술하고 모든 방면에서 검토해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소송』


K와 K 자신의 투쟁! 『소송』이라는 작품은 K가 ‘모든 것이 속해 있는 세계’의 규칙으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한 지난한 과정이지만, 카프카는 이 투쟁을 인간의 자기 투쟁으로 그렸다. K가 자기가 먹고 잠자고 숨 쉬던 일상 전부인 법정과 배심원인 이웃들 속을 헤매는 까닭은 그 때문이다. 법정의 신부는 인간이라는 사실이 죄라고 했다. K는 인간이라는 죄를 부여한 세계로부터 빠져나오기 위해 자신의 이웃과 가족을 문제 삼았고, 마침내 개가 되어 그들에게서 떨어져 나올 수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K가 마지막에 개처럼 죽어갈 때 우리는 비참을 읽어낼 것이 아니라 K의 고투가 이룬 승리를 향해 미소를 보내야 하지 않을까?

 

카프카 : “유감스럽게도 저는 가장 기진맥진하게 하면서 동시에 거의 전혀 승산이 없는 폭동에 연류되어 있습니다.”

친구 : “누구에게 대항합니까? 친구가 물었다.

카프카 : “제 자신입니다.” “제 자신의 편협과 게으름에 대항합니다. 그러니까 근본적으로 이 책상과 제가 앉는 의자에 대항합니다.”

─구스타프 야누흐, 『카프카와의 대화』 


글_ 오선민(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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