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루쉰, 길 없는 대지』 - "그렇다. 다시, 갈 뿐이다."

『루쉰, 길 없는 대지』 - "그렇다. 다시, 갈 뿐이다."


혁명은 한 번에 ‘헤까닥’ 뒤엎는 게 아니라 어둡고 비좁고 답답한 참호 속에서 매일매일 반복되는 과업을 묵묵히 수행하는 것이라는 것을 전달하고 싶어진다. 루쉰의 글자들 사이에서 싸우는 것은 루쉰과 청팡우 등만이 아니다. 나도 그들과 뒤엉켜 싸우고 있다.


이희경, 「혁명은 어디에 있을까」, 고미숙 외, 『루쉰, 길 없는 대지』, 북드라망, 2017, 185~186쪽


도무지 참을 수 없는 유혹, 아니, ‘참아야지’ 생각할 겨를조차 주지 않고 슬쩍 다가와 의식 전체를 점령하고 마는 그런 유혹이 있다. 다름 아니라, ‘한방의 유혹’이다. 이 유혹은 정말이지 너무나 강력해서 평소엔 그 강력함마저 느낄 수 없다. 가령, 누구를 대통령으로 뽑으면 한 번에 많은 것들이 바뀔 수 있을 것 같다. 또는, ‘시민’의 힘으로 정권을 갈아엎으면 그야말로 민주의 새시대가 열릴 것만 같다. 그러나 결과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는 것과 같다.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그냥 단순하게 일상을 보아도 그렇다. 하루하루씩 수십년 동안 적체된 습관은 오늘 이렇게 마음 먹는다고 하여 내일 달라지지 않는다. 최소한 그런 습관을 쌓아온 시간만큼 매일 마음을 새로 먹어야 겨우 바뀔까 말까다. 


그 한방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걸 문득 깨닫는 날, 어떨까?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대로 살거나, 그대로 허무 속에 몸을 던지거나. 그렇다. 결국 어쩌면, 인생은 ‘허무’와 대결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와중에 이마저도 한 번에 해결하고 싶어진다. 이 문제에 ‘답’은 없다. ‘답’이란 언제나 극적으로 상황을 역전시키는 ‘한 방’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차라리 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까? 매일매일 조금씩 답을 써가는 것이라고. 상투적이지만, 거기엔 정답이 없다. 그리고, ‘끝’도 없다. 설사 내가 죽어 사라지더라도, 그게 끝이 아니다. 영원히, 혹은 아주 짧은 찰나에 잠정적으로 써 내는 답일 뿐이다.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다.


그렇다. 다시, 갈 뿐이다. 인생에 ‘되돌아감’이란 없다. 루쉰 말대로, “되돌아가 봤자 거기에는, 명분이 없는 곳이 없고, 지주가 없는 곳이 없으며, 추방과 감옥이 없는 곳이 없고, 겉에 바른 웃음이 없는 곳이 없고, 눈시울에 눈물이 없는 곳이”(루쉰, 「길손」) 없는 것을, 하여, 끝까지 가리라는 보장도 없고,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 죽음 뿐이라 해도, 그저 가 보는 것, 걷고 또 걷는 것,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다.


채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한다」, 고미숙 외, 『루쉰, 길 없는 대지』, 북드라망, 2017, 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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