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루쉰, 길 없는 대지』 : 나는, 내가 인간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

『루쉰, 길 없는 대지』

“인간은 인간에게 절망하지만, 

그 인간이 바로 나를 살게 하는 힘”



루쉰을 읽으며 나는 재차 확인했다. 내 절망은 세계와 타인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내 기대의 붕괴에서 비롯된 것임을. 내가 구축한 환상에 내가 깔린 셈이다. 루쉰의 텍스트는 내 우울함을 삼켰고, 내 헛된 기대마저 날려 버렸다. 그리고 이렇게 가르친다. 인간은 인간에게 절망하지만, 그 인간이 바로 나를 살게 하는 힘이라고. '모래바람에 할퀴어 거칠어진 영혼, 그것이 사람의 영혼이기에, 나는 사랑한다. 나는 형체 없고 색깔 없는, 선혈이 뚝뚝 듣는 이 거칢에 입 맞추고 싶다. 진기한 꽃이 활짝 핀 뜰에서 젊고 아리따운 여인이 한가로이 거닐고, 두루미 길게 울음 울고, 흰 구름이 피어나고…. 이런 것들에 마음 끌리지 않는 바는 아니나, 그러나 나는, 내가 인간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는다.'_루쉰, 「일각」, 『들풀』(루쉰문고 05), 한병곤 옮김, 그린비, 2011, 93쪽


내게 루쉰은 그 자체로 영원한 ‘질문’이다. 미워하든 사랑하든, 자신을 속이지 않을 수 있는가? 절망도 희망도 없이, 끝까지 갈 수 있는가? 그런 것으로서의 혁명을, 너는 진심으로 원하는가? 내게 루쉰을 읽는다는 것은 이 질문을 쥐고 모래바람 가득한 사막에 서는 것이다.

[채운, 「3장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한다」, 고미숙 외, 『루쉰, 길 없는 대지 』, 북드라망, 2017, 97쪽]



6인의 저자들을 통해 루쉰을 새롭게 안내받는 책을 만들면서, 다시 루쉰의 글들을 뒤적이고, 루쉰 평전을 훑어 읽어가면서 내 입에서 작은 탄식처럼 몇 번인가 흘러나왔던 말이 있다. “아, 정말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 이건 뭐랄까… 비판적 의미는 물론 아니고, 굳이 말하자면 어떤 경이와 안타까움을 담은 탄성 비슷한 것이라고 할까.


어쩌면 이렇게 단 하나도 수월하게 넘어가지 않는지, 어쩌면 이렇게 자기 자신에게까지 ‘해부의 칼’을 들이댈 수 있는지…. 이런 ‘전사’가 있었던가. 루쉰을 흔히 “투창과 비수의 정신”으로 ‘전사’라고 부를 때, 갖는 이미지는 이런 것이다. 적에게는 물론 자기편에게도 냉정하게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는 사람. 중국좌익작가연맹(약칭 ‘좌련’) 창립대회 연설에서 그가 “나는 지금의 ‘좌익’ 작가들이 아주 쉽게 ‘우익’ 작가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그러나 이번 책 『루쉰, 길 없는 대지 : 길 위에서 마주친 루쉰의 삶, 루쉰의 글쓰기 』를 통해, 루쉰이 ‘전사’라면 그것은 그가 자기 자신도 믿지 않았기 때문, 그래서 자신에 대한 사정없는 해부도 멈추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동안 보아온, 남에게는 엄격하고 자기 자신에게는 관대한 ‘혁명가’들, ‘전사’들과 루쉰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어떨 때는 자기 환멸과 자기 해부가 너무 처절해 보여서 옆에서 보는 이가 다 안타까울 지경이기도 하고,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 또 그렇지 않았다면, 루쉰이 쉽게 ‘희망’을 말하고, 민중 혹은 특정 계급을 한없이 (관념적으로) 믿고, 자신의 믿음을 의심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오늘 ‘흔한’ ‘혁명가’ 혹은 ‘전사’ 한 사람을 목록에 더할 뿐이었을 것이다.


“루쉰은 천국을 꿈꾸는 대신 사람들과 함께 지옥을 살았다. 희망을 의심하고 절망에 저항하면서.”(채운, 「무(無)를 통해 생(生)에 이르다」, 고미숙 외, 『루쉰, 길 없는 대지 』, 273쪽) 루쉰은 사람들을 믿지 않았다. 아니, 사람을 믿지 않았다기보다는 사람의 마음, 사람의 생각, 사람의 생활… 이런 것들이 얼마나 쉽게 바뀔 수 있는지, 때로 자신의 믿음마저 자신의 마음이 배반하고, 자신의 마음이 생활로 인해 어디까지 바뀔 수 있는지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삶에 그저 회의하기만 하거나 절망하기만 했다면 루쉰과의 만남은 그저 답답하고 숨 막히기만 했을 것이다. “모래바람에 할퀴어 거칠어진 영혼, 그것이 사람의 영혼이기에, 나는 사랑한다”는 루쉰의 말은 인간에 대해 가졌던 그의 마음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케 한다. 



우리는 쉽게 사람에 희망을 갖고, 또 쉽게 사람에 절망한다. 어쩌면 삶이 그런 희망과 절망의 반복인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희망이 쉽게 절망으로 바뀌는 걸 보면서 절망 속에만 빠져 있지 않는 것, 타인에 대한 환멸과 자기에 대한 연민 속에 자신을 파묻어 버리지 않는 것. 그리고 희망이 영원할 거라 생각하지 않는 것, 그저 오늘의 희망을 즐기고, 지나가게 하는 것. 그것이 아닐까. 내가 ‘인간 세상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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