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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소설 읽는 수경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 무라카미 하루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by 북드라망 2017. 4. 21.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 무라카미 하루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이하 『다자키』)가 국내에 출간된 그 주에 서점에서 책을 구입했고 아마 그날 책을 다 읽었을 거다. 하루키를 읽는 데에는 그다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으니까.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그가 발표한 소설을 전부 읽었다. 최소한 도서관에서 빌려서라도. 그런데 이상하지, 스스로 하루키를 좋아한다고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누군가 묻는다면 차라리 논픽션 <언더그라운드>를 거론할 것 같고. … 그럼 나, 하루키를 왜 읽는 걸까?

 

학창시절 어느 날 이유도 듣지 못한 채 친구 그룹으로부터 ‘아웃팅’ 당한 주인공 다자키가 삼십대가 된 지금 비로소 그들을 차례로 만나 그때 왜 그랬는지 듣게 된다는 것이 『다자키』의 대략적 내용. 말하자면 서른이 지나 소위 ‘자아 찾기’란 걸 할 마음이 생긴 ‘키덜트’ 이야기인 셈이다. 흔히 거론되는 하루키의 자기 복제니, 동어반복이니, 사소설이니 하는 말은 말기로 하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하루키를 읽고 있다면, 읽게 되는 바로 그 이유를 생각해보는 게 보다 생산적인 일이니까.


일단 나는 하루키가 하나의 작은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 쓰는 문장에서 감탄한다. 예컨대


 “고마워.” 그리고 그녀는 페이지 끝에 작은 글씨로 각주를 다는 듯한 느낌으로 덧붙였다. “언젠가 자기랑 만날 기회가 있을지도 몰라.”


“페이지 끝에 작은 글씨로 각주를 다는 듯한”이라는 구절을 읽는 동안 텐션이 올라가는 걸 느낀다. 적재적소에 배치된 산뜻하고 신선한 설명은 순수하게 읽는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이야기를 축축 처지게 하는 아포리즘들을 상쇄할 만큼 강력하게, 군데군데 빛나는 문장들이 상황과 분위기를 확 살려놓는다. 


대학 수영장에서 하이다 뒤에서 헤엄치며 늘 그런 발바닥을 보았다. 밤길을 운전하는 사람이 앞차 꼬리등에서 눈을 떼지 않는 것처럼.


두 번째로, 하나의 작은 세계를 생생하게 형상화해내는 재주. 예컨대 리스트가 작곡한 소품 『르 말 뒤 페이』, 주인공이 온 신경을 집중해 설계하는 철도역, 요즘 데이트하는 그녀와 함께 가는 레스토랑 등등이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면서 작품 속의 세계를 고치처럼 감싼다. 이를 통해 형성되는 분위기, 확실히 ‘하루키 표’라고 할 수밖에 없는 그런 게 <다자키>를 비롯, 하루키의 어떤 작품에도 있다. 그의 작품에 대해 진지하게 논하려 들 때 궁색해지는 이유 중 하나가 이것일지 모르겠다. 실제로 『다자키』가 내게 남긴 인상은 작가의 주제의식이나 문학적 사유의 깊이에 기인한 것이기보다는 그 분위기에 있었다.


 「르 말 뒤 페이」. 조용한 멜랑콜리가 어린 그 곡은 그의 마음을 감싼 형체 없는 슬픔에 조금씩 윤곽을 그려준다. 마치 허공에 잠겨든 투명한 생명체의 표면에 수없이 많은 가느다란 꽃가루가 달라붙어 전체 형상을 눈앞에 조용히 떠오르게 하는 것처럼.

 

하루키는 적확한 표현으로 우리를 취하게 한 뒤 이상하고 자그마한 이야기들을 잔뜩 들려준다. 묵직하고 웅장한 오케스트라 심포니가 아니라 소품을 끝내주게 뽑아내는 기예.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하루키 월드에서 마음껏 향유할 수 있는 즐거움이다.

 

십여 년 전 어느 날 하루키를 좋아하는 친구에게 신간을 선물하면서 왜 좋아하나 물었더니 홍상수나 김기덕의 세계(“물론 둘도 서로 참 다르지만”)를 잊게 해줘서 그렇단다. 친구 말에 따르면 인간의 체액냄새가 다 지워진 그 세계에서 우리는 새하얀 침대시트와 지금 삶고 있는 파스타와 바에 앉아 주문한 하이볼을 본다. 그런 데서 벌어질 만한 이야기가 주는 매혹에 우리는 기다렸다는 듯 젖어든다.


비평가들은 그런 하루키의 소설을 깃털처럼 가벼운 대중문학으로 분류하고 싶어 하지만, 그렇게만 말하기에는 하루키가 구축한 세계가 동시대 작가와 독자들에게 끼친 영향이 너무 막강하다. 그렇게 쓸 수 있는 사람은 하루키 단 한 명이다.

 

그의 신간 『여자가 없는 남자들』이 조만간 국내에 번역되어 나올 것이다. 이번에도 난 그 책을 읽겠지. 그리고 하루키 월드만이 보여주는 그 분위기에 흠뻑 취할 테지. 뭐 그거면 됐다.


(*이 글의 제목은 시인 오은의 시집 제목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글_수경(고전비평공간 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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