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논어』라는 텍스트 - 배움에 뜻을 둔 자들의 책②

『논어』라는 텍스트 - 배움에 뜻을 둔 자들의 책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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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2; 배움에 꽂히면 밥 먹는 것을 잊고


葉公, 問孔子於子路, 子路不對.

(섭공, 문공자어자로, 자로부대)

子曰, 女奚不曰, 其爲人也, 發憤忘食, 樂而忘憂, 不知老之將至云爾.

(자왈, 여해불왈, 기위인야, 발분망식, 락이망우, 부지노지장지운이)

섭공이 공자에 대해 자로에게 묻자, 자로가 대답하지 못했다.

선생님(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어찌 이렇게 말하지 못했는가? (공자) 사람됨은 한 번 꽂히면 먹는 것도 잊어버리고 그 즐거움에 근심 걱정도 잊으며, 장차 늙음이 이르는 것도 알지 못하는 위인이라고.“

─『논어, 「술이」


논어』 「술이편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하루는 자로(子路)가 거리에서 초나라의 섭공(葉公)을 만납니다. 보통 공()이라는 호칭은 주나라 왕()이 인정한 제후국 군주를 일컫는 용어인데, 이 초나라에서는 큰 현의 우두머리에도 공이라는 호칭을 썼습니다. 하여튼 초나라 군주까지는 아니지만 주요한 지역의 우두머리였다는 뜻이죠. 그런데 이 사람과 자로가 만난 겁니다. 아마 공자께서 천하를 주유할 무렵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공자가 천하를 주유할 무렵 섭공과 자로가 만나다!


초나라는 남쪽에 위치한 큰 나라입니다. 아시다시피 공자는 14년간이나 천하 주유를 하면서 열심히 이력서를 넣는 시절이었죠. 그런데 초나라의 높은 인물이 자로를 만나 공자에 관해 물어본 상황인 겁니다. 상황을 좀 더 극적으로 만들어 볼까요. 길거리에서 초나라 섭공이 우연히 자로를 만납니다. 섭공이 한눈에 자로를 알아봅니다. 사실 자로는 알아보기 쉬워요. 수탉 깃털을 꽂고 돼지가죽으로 된 물통을 차고 다니시는... 그래도 그런 옷을 입고 비단옷 입은 사람들 곁에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을 사람이 자로입니다.(웃음) 그런 자로를 섭공이 만난 거죠. “어이! 자로!” , 섭공이 자로를 반갑게 부르고는, 이렇게 묻습니다. “자로! 자네 스승 공자는 어떤 사람인가?”


, 이게 지금 무슨 상황 같으세요? 이게 요즘으로 따지면 일종의 길거리 캐스팅 상황입니다. 자로가 대답 잘하면, 공자님은. 딱 길거리 캐스팅돼서 초나라로 갈 수도 있는 거에요. 그런데 공자님이 운이 좀... 하필이면 그 많은 제자 중에 자로를 만날 게 뭡니까.(웃음). 이 자로 어르신은 스승님에 대한 충성심은 굉장히 높은데, 백점 만점에 백이십 점쯤? 우직하고 충직하고 강직한 제자지만, 안타깝게도 빠릿빠릿한 부분은 좀 떨어지는 분이었습니다.(웃음) 자로 입장에서는 느닷없이 질문을 받는 바람에 좀 당황도 했는지, 갑자기 스승 공자를 어떻게 말해야 할지 멍해져 버립니다. “? 우리 스승님? 이름은 짱구고, 야합으로 태어나셨고, 키가 완전 크시고, 주먹도 세고....(웃음)” 자로부대(子路不對). 즉 자로가 제대로 대답을 못한 겁니다.


자로가 시무룩하게 공자님한테 옵니다. 뭔가 자신이 사고를 쳤다고 직감했겠죠. 아무것도 모르는 스승님은 그날도 이력서 여러 군데 넣고 늦게 돌아오셔서 자로에게 뿌듯해하시는 거죠. 자로가 그냥 아무 일 없는 척 눈 딱 감으면 됐을지도 모르는데, 자로의 성품이 그러지를 못해요. 자로는 솔직담백한 분이라서 선생님한테 고백을 합니다. “선생님! 좀 전에 초나라 섭공을 만났는데, 그 냥반이 선생님이 어떤 분이신가 묻더라구요.” 그러자 공자가 반색이 되셨죠. “! 그래? 뭐라고 대답했니? 어떻게 말해주었느냐?” “사실대로 말씀드렸습니다,.. 밥 많이 드신다고...”(웃음). “주먹 엄청 쎄다고.”(웃음). 자로가 제대로 대답을 못했다는 걸 알게 된 우리의 공자님은 어떠셨을까요? 우리가 아는 공자님은 인의 사상가이시고, 도덕적인 분이시니 그냥 이해하셨을까요? “자로야 말을 못했다니, 참 아쉽구나. 머리 나쁜 게 오로지 네 탓이겠니...” 이렇게 달래주셨을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 제가 보기엔 공자님이 박살을 내주었을 것 같아요. 일단 힘으로요. 그리고는 이렇게 말씀하신 겁니다. 여해불왈(女奚不曰). 너는 왜 이렇게 말하지 못했느냐! 앞으론 누가 물으면 이렇게 적어 다니면서 대답해라. 적어. 적어.


적어라, 적어.


 

여기에 발분망식(發憤忘食)이란 말이 나옵니다. 발분. 분을 내면 밥 먹는 걸 잊어버린다는 말이죠. ? 내가 밥을 많이 먹는다고? (웃음) 나 발분망식하는 사람이야. 그리곤 락이망우(樂以忘憂). 즐거움에 근심을 잊지. 그래서 부지노지장지운이(不知老之將至云爾). 장차 늙음이 이르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 자로야, 적으라니깐.(웃음)

 

공자 문화에서는 발분하다라고 하는 말은 내력이 있습니다. 그건 배움에 마음을 일으킨다는 뜻이에요. 논어다른 장에서 공자님은, 누구라도 배움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작은 예만 갖춰도 가르치지 않는 경우가 없다고 말해요. 하지만 한 모퉁이를 들어 보여줬는데, 다른 세 모퉁이가 반응하지 않으면 더는 가르치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그러면서 불분(不憤), 즉 분을 내지 않으면, 다시 말해 배우겠다는 분을 내지 않으면, 불계(不啓) 즉 깨우쳐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공자가 자기 자신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 건지. 자로에게 공자는 자신이 분을 일으키면 밥 먹는 것도 잊는 사람이라고 했죠. 그때 그 분()을 낸다는 말은 배움에 열을 낸다는 뜻입니다. 공자는 자기 자신을 배움으로 특징화하고 계시다는 것. 공자는 자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했는가. 증거 둘.



증거3; ()과 신()보다 배움()


한 가지만 더 얘기해보죠. 공야장편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子曰 十室之邑 必有忠信 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

(자왈 십실지읍 필유충신 여구자언 불여구지호학야)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열 가구 정도뿐인 마을에도

반드시 나만큼 정성을 다하고 믿음직한 사람은 있을 테지만,

나보다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논어, 공야장


공자님, 배우기를 좋아한 사람



십실지읍(十室之邑). 열 가구쯤 되는 작은 마을이에요. 한 집에 서너 명이라고 치면 대략 30-40명 정도 사는 작은 마을인 겁니다. 그런 마을에도 공자만큼 충()하고 신()한 사람은 있다는 겁니다. 사실 조금 전 자로에게 말씀하신 대목에 비하면, 이 구절은 공자님께서 굉장히 겸손하게 말씀하고 계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지구상 60억 인구 중에 나만큼 겸손한 사람이 한두 사람 있을 수 있을 거다. 만약 이런 식으로 말한다면 이건 겸손한 게 아니잖아요. 그런데 고작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작은 마을에도 충직함과 신의로는 나와 견줄만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는 것. 이때 충()자는 나라에 대한 충성 아닙니다. 주자께서 잘 풀어줬던 것처럼 가운데 중() + 마음 심()인 겁니다. 마음의 중심 혹은 마음에 적중하는 걸 말하는 거죠. ()이라는 글자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말을 지키면 믿음직한 사람이 되죠.


다시 인용한 글을 좀 보시죠. 하지만, 끝내 뭘 양보할 수 없는 겁니까? . 그렇습니다. 호학(好學). 배우기를 좋아함. 이것만은 공자가 스스로 자긍하고 있는 겁니다. 호학. 이 말 묘합니다. 공자가 스스로 많이 배웠다고 자랑하는 게 아닙니다. 다시 말해 박학이나 다식 등을 자부하는 게 아니란 말입니다. 공자는 다만 자신은 배우기를 좋아한다는 것, 에 관해 분명히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다시 또 좀 천박하게 비유해 볼까요. 공자께서 세 장의 패를 쥐고 있습니다. 막상 차례가 왔는데 먹을 건 없고, 어떤 거든 내야 하는데 뭐부터 내는가 뭐 그런 겁니다. 공자께서는 충(), ()를 내신다는 겁니다. 최후까지 뭘 버리고 싶어하지 않으신다고요? . 맞습니다. 호학(好學)입니다. 공자는 호학자였습니다. 증거 3.



참을 수 없는 배움()의 혁명성


지금 우리가 무슨 얘길 하는 중이었는지 기억하세요? 논어에서 공자가 자기 자신을 직접 가리켜 이야기하고 몇 개의 구절을 보고 있었습니다. 이 말들 속에 공자가 자기 자신을 가리켜 지적하고 있는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 맞습니다. 바로 배움()이죠. 그러니까 우리는 적어도 공자와 배움이라는 문제가 공자 스스로 대단히 중요한 문제였다는 사실을 지적할 수 있습니다.

논어라는 책을 편집하기 위해 공자의 제자들이, 아니 그 제자의 제자 그룹들이, 그 개성과 자존심이 강한 인물들이 모여서 왕 스승님(공자)의 어록을 모으기 시작했죠. 30대에 제자를 받고 70대까지 삼천여 제자를 거느릴 정도로 왕성하고 건장한 스승님께서 40년을 강조한 말씀들입니다. 그 말씀들이 얼마나 많겠습니까마는, 여차여차 책이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말들이 노미네이트 되었다가도 탈락하고 탈락하고 또 탈락하기를 거듭했었던 것 같습니다. 현행본 논어가 불과 500여 개의 구절, 15,000여 글자로 살아남게 된 것이 그 편집과정의 지난함을 말해주는 것일지도 모른다고도 앞에서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 남은 문장들을 끝끝내 주제별로 모으지 못했던 건 단지 제자들의 무능력이라기보다 그 자체로 읽는 사람들의 적극적 해석을 필수조건으로 한다는 논어의 특징일 것이라는 말도 드렸었죠.

그런데!! 그렇게 저렇게 해서 드디어 존재하게 된 논어, 비록 편집에 참여했던 제자들의 어떤 합의에는 실패했지만, 한 번 더 편집에 참여한 이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앞으로 이게(논어) 책으로 나오면 이제부터는 스승님의 공식적인 말씀이 되는 건데, 그렇게 되면 선생님을 싫어했거나 선생님에게 비판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도 이 책을 보게 될 테고... 그런데 20개 편()을 제목도 못 정했으니...’ 저 같으면 이런 마음을 가졌을 것 같고, 그렇기 때문에 최후까지도 포기할 수 없는 편집에의 욕망이 있을 것 같아요. 그건 바로 전체가 안 된다면 최소한 한두 편만이라도, 아니 단 한 구절 만이라도 우리 스승님의 핵심 사상을 제대로 전달하고 싶은 욕망 아니겠습니까?

 

『논어』를 편집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


어떤 사람들이라도 딱 책을 펼쳤을 때, 단 한 구절을 읽더라도 우리 스승님의 핵심 사상 정수를 만나게 하고 싶다는 욕망. 모르긴 몰라도 공자는 무슨 얘기를 한 사람이야?’라고 책을 들춰볼 사람들에게는 책의 초반부 한두 편(chapter)이 이후의 독서를 가름하는 무척 중요한 지렛대 역할을 할 거라고 생각했을 거란 말이죠. 그런 점에서 처음 학이편과 위정편은 그 편집 위치만으로도 특별합니다. 그리고 그런 마음과 눈으로 다시 보면! 아무리 어쩔 수 없이 각 편의 시작하는 두 글자로 정한 제목이라고 하더라도 학이(學而)’ 편의 제목이 예사롭지 않음을 느끼게 됩니다. 왜냐구요? 지금까지 열심히 살펴본 것처럼 공자께서 스스로 자신을 배움()이라는 말로 규정했기 때문인 겁니다. 그리고 논어첫 단어가 배움()? 우연치곤 놀라운 우연 아닌가요?

스승을 존경하는 제자(의 제자)들이 모여 스승의 말씀들을 모아 편찬하면서, 최소한 첫 번째 문장은, 최소한 책의 앞머리 쪽에 있는 문장들은 그래도 이런 문장들을 우리 스승님이 진짜 여러 차례 강조하신 문장이다. 적어도 이 문장은 우리 스승님의 가르침을 대표하는 핵심 중의 핵심이지.”라는 생각이 드는 문장으로 채우려 노력하지 않았을까요? 전 제가 그 자리에 참석했던 제자였다면 그랬을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나 문파(?)도 각각 달라졌고 마구 가지치기 되어 어렵고 또 어려운 작업이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책의 첫머리 첫 구절 정도는 아 그래. 그 말씀은!! 맞아. 스승님이 참 여러 번 강조하셨지.”라며 공히 모든 제자들이 기꺼이 평소 스승의 가르침으로 인정할 만한 말이었어야 하지 않을까요.


스승의 말로서 의심할 수 없는 정도의 말이라거나 서로 합의할 수 있는 말 정도가 아니라, 그냥 끄덕일 수밖에 없는 말. 이런 의미에서 저는 논어의 첫 번째 문장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첫 글자가 배움()’이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대단한 경외감과 놀라움을 갖습니다. 이런 사실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믿습니다. 학이시습지(學而時習之)로 시작되는 논어의 첫 번째 문장은, 물론 우연의 일치일 수 있지만, 단순히 500여 문장 중 한 문장이 아닌 것입니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學而時習之, 不亦悅乎.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人不知而不慍, 不亦君子乎.) 배움()이란 말로 시작하는 논어의 이 첫 문장. 이 한 구절만으로도, 공자와 논어는 이미 굉장하다고 말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웃음)

 

_문성환(남산강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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