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가난한 자유인, 장자

가난한 자유인, 장자

 

 

철학책에는 철학자의 삶이 녹아들어 있다. 한 철학자의 삶의 여정과 깨달음이 곧 철학책이 제안하는 삶의 길이자 인식 지평이 된다. 어떤 철학책을 읽기 전 그 철학자는 어떻게 살았을지 궁금해지는 건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장자는 어떻게 살았을까? 알려졌다시피 장자는 자유롭게 살았다는데, 자유인 장자의 삶은 어떤 것이었을까?   

 


1. 차라리 돼지처럼 살리라!

 

장자는 공자 사후 약 100년 정도 뒤에 태어나 활약했다. 그러니까 장자는 공자를 사숙했던 맹자와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다. 시기적으로 보면 진나라, 위나라, 조나라, 한나라, 제나라, 초나라, 연나라 등의 강대국들이 중원에 군림하며 어지럽게 전쟁을 벌이던 전국시대(戰國時代 기원전 403-221)를 살았던 것이다. 이 시기 제후들은 온통 천하를 차지하는 일 즉 더 많은 영토, 더 많은 백성을 차지하기 위해 고심하고, 이를 천하 다스리는 일로 착각했다.

 

이 때문에 각국의 제후들은 부국강병을 위한 치국의 방법과 천하를 차지하기 위한 책략을 위해 뛰어난 현자와 재사들을 다투어 초빙했다. 인재를 필요로 하는 전국시대의 특성상 많은 지식인이 활약할 수 있었고, 덕분에 제자백가의 사상이 꽃피울 수 있었다. 물론 제후들에게 발탁된 인물들은 주로 법가와 병가들이었다. “진(秦)나라는 상군을 등용하여 나라를 부유하게 하고 군대를 강하게 하였고, 초나라와 위나라는 오기를 등용하여 싸움에서 이기고 적을 약하게 하였다. 제나라의 위왕과 선왕은 손자, 전기의 무리를 등용하여 제후들이 동쪽을 향하여 제나라에 조회하게 하였다.”(사마천, 「맹자순경열전」, 『사기』) 장자가 활동했던 시기는 바로 이때였다.

 

 

장자가 활동했던 전국시대


  

맹자와 장자는 전국시대의 흐름을 역행했던 대표적 인물이다. 이런 시대에 맹자는 이득을 추구하는 정치가 아니라 인의의 정치를 펼치고자 제후에게 열심히 유세했으나, 현실과 거리가 먼 이론으로 발탁되지 못했다. 공자와 더불어 맹자는 제후에게 기용되어 치국의 도를 실현하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았다. 그렇기 때문에 『논어』와 『맹자』에 드러난 공자와 맹자의 주요 인생 역정은 왕이나 대부와 같은 정치주체들과의 만남 그 자체라고 해도 크게 어긋나지 않는다.

 

그러면 우리의 장자는? 인간 장자를 재고하려면, 사마천 『사기』의 <노장신한열전>과 『장자』에 의거해야 한다. 물론 이 두 텍스트 속의 장자는 실제의 장자가 가감 없이 형상화된 모습은 아닐 것이다. 장자의 실제 모습이든, 의도된 이미지든 역사 속의 장자는 이 텍스트들을 통해야 만날 수 있다. 장자는 공자와 맹자와는 정반대의 행위로써 전국시대의 흐름에 저항했다. 공자와 맹자가 정치 현장의 중심에 들어감으로써 현실을 바꾸려했다면 장자는 정치 현장을 거부함으로써 현실을 바꾸려 했다.

 

장자의 이름은 주(周)이고 양나라 혜왕(BC 390-359)과 제나라 선왕(BC 300-270)의 시대에 활동했다. 장자는 송나라 몽(蒙) 지역 사람으로 젊어 한때 칠원리(漆園吏: 옻나무 정원을 돌보는 하급 관리)를 지낸 적이 있다. 그 후 초나라 위왕이 재상을 약속하고 폐물을 보냈지만, 장자는 "교제의 희생에 쓰이는 소를 보지 못했습니까? 수년 동안 잘 먹이고 수놓은 옷을 입혀 태묘에 들입니다. 이때 이르러서는 보잘것없는 새끼 돼지로나마 살아남고 싶어도 그게 가능합니까? 나는 차라리 더러운 개울 속에서 맘껏 즐겁게 살지언정 나라를 다스리는 군주의 속박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 평생 벼슬을 하지 않고 내 맘대로 살겠습니다."고 말한다.(사마천, 「노장신한열전」, 『사기』)

 

 

정치 현장을 거부했던 장자


칠원리였던 장자가 천하에 알려진 계기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장자는 초나라 위왕의 귀에 들어갈 정도로 유명 인사였던 것 같다. 또한 흥미로운 점은 제후들을 찾아가 애타게 유세했으나 발탁되지 못한 맹자와는 대조되게 제후가 먼저 장자를 재상으로 초빙한다는 사실이다. 어떤 포석이 깔린 이야기임이 틀림없지만, 어쨌든 중요한 건, 장자가 재상 자리를 발톱의 때만큼도 중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장자는 제후의 사신에게 당당히 전한다. 군주의 종으로 사느니, 차라리 개울에서 노니는 돼지로 살겠다고. 왜냐? 군주의 종으로 산다는 건, 짧고 굵고 화려하게 그러나 자유롭지 못한 위태로운 행보이기 때문이다. 국가 혹은 군주에게 소속된다는 건, 부자유함의 다른 이름이었던 것이다, 장자는 이런 삶을 원하지 않았다. 가늘지만 길고 자유롭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장자가 선택한 삶은 초라하기 짝이 없지만 살고 싶은 대로 살 수 있는 자유가 확보된 생활이었다. 그야말로 어디에도 속박되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기를 자처했던 것이다.

  

혜자가 양나라의 재상이었을 때, 장자는 찾아가 그를 만나려 했다. 어떤 이가 혜자에게 "장자가 와서 당신 대신 재상이 되고 싶어 한답니다"고 했다. 이에 혜자는 두려워져 사흘 낮과 밤 동안 온 나라 안을 찾게 했다. 장자는 찾아가 그를 만나서 말했다. "남쪽에 새가 있는데, 그 이름을 원추(鵷鶵)라 한다오. 당신은 그걸 아시오? 대저 원추는 남해에서 출발하여 북해로 날아가지만, 오동나무가 아니면 머물지 않고 멀구슬나무 열매가 아니면 먹지 않으며 감로천이 아니면 마시지 않소. 여기 썩은 쥐를 얻은 올빼미가 있다가 원추가 지나가니까 위를 올려다보며 "꽥"하고 소리를 질렀다는 거요. 지금 당신도 당신의 양나라 벼슬자리 때문에 내게 "꽥"하고 소리를 지를 건가요?

─ 『장자』, 「추수」, 442쪽


이렇게 『장자』 텍스트 안에서도 벼슬아치 생활을 혐오하는 장자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혜자는 장자의 절친이자 명가(名家)의 대가 혜시이다. 친구 사이임에도 혜시는 장자가 재상 자리를 노리고 자신을 만나러 온 게 아닐까 의심하며 전전긍긍한다. 이렇다면 높은 자리는 구속이자 장애임이 틀림없다. 친구도 경쟁자로 보는 구도. 나보다 더 능력 있는 사람은, 내 자리를 탐내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배치. 목표가 뻔한, 그리고 한정된 방향을 향해 나아갈 때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하여 장자는 누구나 오르고 싶어 하는 재상직을 썩은 올빼미를 욕심내는 행위로 치부해버린다. 어디 감히 그런 자리를 오동나무에 머물며, 멀구슬나무 열매를 먹고, 감로천을 마시는 그런 우아하고 깨끗한 생활에 비할 수 있겠는가? 세상의 상식으로는 재상이 가치 있는 삶이라고 여기지만, 장자에게 재상은 하찮은 일일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자는 가장 낮은 그러나 맘껏 살 수 있는 현장을 떠나지 않았다. 정치로부터의 자유, 국가 혹은 군주 시스템으로부터의 자유, 장자가 원한 건, 아니 지켜낸 건 그런 삶이었다.

 

 

2. 단지 가난할 뿐, 지친 게 아니라오!

 

재상직을 마다한 장자의 자신감은 어디서 나왔을까? 집안이 원래 부자라서? 먹고 살게 충분해서? 우리의 예상을 깨고, 장자는 가진 게 없었다. 장자는 먹을 게 충분해서 군주의 종이 되기를 거부한 게 아니다. 군주의 종으로 복무하기 싫었기 때문에 기꺼이 가난을 감수했던 것이다. 직위와 재물과 명예를 중요하게 여기면서 자유까지 원한다면 그것은 이루어질 수 없는 욕심임이 틀림없다. 우리는 장자처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아무것도 아닌 채 가난하게 자유롭게 놀 것인가? 아니면 높은 자리에서 부자로 이름을 내며 구속의 딜레마를 견딜 것인가? 결단해야 할 사안이지 이 양자를 다 누리는 행운을 바랄 수는 없다. 우리도 알다시피 직장을 다니면 자유를 외치고, 놀면 아름다운 구속을 부르짖지 않는가?

 

그럼에도 우리는 철학자 장자에게 기대를 한다. 무언가 대단하게 살았으리라는 기대. 그러나 장자는 해진 옷을 입고 구멍 난 신발을 신었으며, 때로는 생계가 어려워 곡식을 빌리러 다니기도 했다. 가난이라는 불편함을 견딜 수 없는 우리는 즉각 반응할 것이다. 아마도 경멸과 혐오를 담아 말할 것이다. 그렇게 살려고 재상직을 마다한 거야? 도대체 뭘 믿고 그렇게 살아? 아니나 다를까 장자 시대에도 그랬던 것 같다. 남루한 장자를 만난 위왕은 한껏 안쓰러워했다.

 

장자가 누덕누덕 기운 남루한 옷을 입고 삼끈으로 신발을 얽어 묶은 채 위왕을 찾아갔다. 위왕이 물었다. "어째서 선생은 그렇듯 병들고 지쳤소?" 장자는 대답했다. "가난한 거지 병들고 지친 게 아니오. 선비가 도덕을 지니면서 실천하지 못하면 병들고 지쳤다고 하오. 옷이 해지고 신발에 구멍이 난 것은 가난이지 병들고 지친 게 아니오. 이는 말하자면 때를 만나지 못했다는 거요. 왕께선 저 나무에 오르는 원숭이를 보지 못했소. 원숭이는 녹나무나 가래나무에 올라가 그 가지를 잡고 그 사이에서 의기양양할 때면 예나 봉몽이라 하더라도 겨냥을 할 수가 없소. 그러나 원숭이가 산뽕나무나 가시나무, 탱자나무 사이에 올라갔을 때는 위태롭게 걷고 이리저리 살펴보며 두려워서 부들부들 떱니다. 이는 힘줄이나 뼈가 위급함을 만나 부드러움을 잃은 게 아니오. 있는 곳이 불편해서 그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기 때문이오. 지금같이 어리석은 군주나 어지러운 신하가 있는 사이에는 병들고 지치지 않으려 해도 어찌 그럴 수가 있겠소. 비간(은나라 주왕의 숙부)이 가슴을 찢긴 일을 보아도 분명하지 않소."

─ 『장자』, 「산목」, 499쪽


위왕은 헐벗은 장자를 병들고 지쳤다고 판단한다. 그러나 장자는 딱 잘라 말한다. 나는 가난할 뿐이지 병들고 지친 게 아니라고. 가난은 단지 재물이 없는 데 불과하다. 그럴 때 적게 먹고 적게 쓰면 그뿐이다. 그러므로 가난하다고 병들거나 지치는 것은 아니다. 장자가 보기에 왕은 착각하는 것이다. 가난은 병들고 지친 상황과는 층위가 다른 문제이다. 어지러운 나라와 어지러운 신하들이 판치는 나라에 사는 선비들을 병들고 지쳤다고 하는 것이다. 어지러운 나라에서 치국의 도를 간직한 선비들이 뜻을 못 펴면 아프고 지친다. 군신 관계를 벗어난 사람은 지칠 일이 없다. 다만 가난할 뿐이다. 군신 관계를 벗어난 장자는 위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병들고 지친 건 당신들의 신하라고 말한다. 왜? 위왕의 정치가 위태롭게 때문에 그 밑에 있는 신하들의 삶도 위험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두려움에 떨다 보니 아플 수밖에 없다. 위왕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장자는 위태로운 사회에 목매고 사는 선비들에게 일침을 가한다. 군주의 종으로 풍족하게 살길 마다하지 않는다면 기꺼이 병들고 지쳐 사는 걸 감수해야 한다고. 그러므로 장자에게 가난은 불편하지 않다. 오히려 가난에 대해 당당하다. 가난은 건강할 수 있는 자유의 조건이다.

 

나는 가난할 뿐이지 병들고 지친 게 아니다


장주는 집이 가난하여 감하후(監河侯)에게 곡식을 빌리러 갔다. 감하후가 말했다. "좋소. 나는 머지 않아 세금을 거둬들일 텐데 그러면 선생께 삼백금을 빌려드리죠. 그거면 될 테죠." 장주는 불끈 성이 나서 낯빛이 달라지며 말했다. "제가 어제 올 때 도중에 부르는 자가 있었습니다. 돌아보니 수레바퀴 자국에 붕어가 있더군요. 제가 그 붕어에게 물었습니다. "붕어야, 무슨 일로 그러느냐?" 대답하기를 "나는 동해의 소신이오. 그대가 약간의 물로도 나를 살릴 수 있을 거요!"라고 했습니다. 제가 "좋다. 내가 이제 남쪽의 오월의 왕에게로 가는데 촉강의 물을 밀어보내서 너를 맞게 해주지 그럼 되겠나?"라고 했더니 붕어는 불끈 성을 내며 말했습니다. "나는 늘 나와 함께 있던 물을 잃었기 때문에 있을 곳이 없는 거요. 나는 한 말이나 한 되의 물만 얻으면 살아날 수 있소. 당신이 그렇게 말하다니 차라리 건어물전에나 가서 나를 찾는 게 나을 거요!"라고요.

─ 『장자』, 「외물」, 655~656쪽


장자는 생계가 어려워 곡식을 빌리러 갈 때도 당당하다. 비굴하거나 위축되지 않는다. 장자는 감하후에게 곡식을 빌리러 간다. 감하후의 한자를 풀어보면 황하를 감독하는 제후이다. 국가의 복지 시스템을 패러디한 듯한 단어 속에 이미 뼈가 들어 있다. 역시나 감하후는 우리의 예상을 저버리지 않는다. 당장 굶주려 쓰러질 지경인 장자에게 세금이 걷히면 삼백금을 빌려주겠다고 말한다. 감하후의 우화는 생명을 우선하는 공동체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예다. '국가라는 이름으로 베풀어지는 관용'과 '제도라는 이름으로 베풀어지는 구제'는 당장 한 되의 곡식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구제할 수 있는가?

 

장자는 감하후에 발끈하여 수레바퀴 자국에 괸 물에서 허우적거리는 붕어[涸轍鮒魚]를 통해 관료주의를 패러디한다. 장주가 길에서 만난 붕어는 한 되의 물만 있으면 살 수 있다. 그러나 장주는 붕어에게 저 촉강의 물을 끌어다 살려주겠다고 말한다. 장자는 감하후의 말을 패러디하여 되돌려준 것이다. 촉강의 물을 끌어야 구해줄 수 있다는 이 번거로움. 절차를 거쳐야 하는 이 번다함은 물고기의 생명은 배려하지 않는 무자비한 구제술일 뿐이다. 이토록 잔인한 자비가 또 있을까? 그 물이 도달하기 전에 붕어는 건어물 전에 올라가 있을 것이다. 최소한으로, 심플하게 서로를 살려주는 관계. 장자는 가난에 대한 사유가 달랐다. 굶주린 사람에게 필요한 곡식을 즉각 주면 된다. 그러면 그 이후의 대책은 가난한 자 스스로가 해결할 수 있다. 대책을 위한 대책, 서류를 위한 서류는 한 되의 곡식을 능가할 수 없다. 장자는 제도로부터의, 관료주의의 관행으로부터의 자유를 꿈꿨다.

 

붕어는 한 되의 물만 있으면 살 수 있다.


 

이렇듯 장자의 생활은 지극히 평범하고 일상적이다. 높은 벼슬자리를 물리치고 그저 가난하게 살뿐이다. 장자의 일화들은 규칙을 깨거나, 규칙 너머에서 평범하게 일상을 뚫고 나가는 가난한 철학자의 생활을 보여줄 뿐이다. 지금-여기 그 자리에서 상식을 격파하기 혹은 상식과 다른 삶을 살아가기. 장자가 보여준 대자유한 삶의 모습은 이런 것이었다.

 

 

3. 죽음도 삶처럼!

 

장자는 삶과 죽음의 문제에서도 진정 자유로웠다. 삶과 죽음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어떤 존재에게나 오는 자연스러움이다. 그런 의미에서 늙음도 죽음도 자연의 혜택이다. 장자는 그렇게 담담하고 무심하게 죽음에 대면한다. 사람들은 삶은 기뻐하고 죽음은 슬퍼한다. 그러나 장자는 죽음을 휴식이라 생각하며 기꺼워한다. "자연은 내게 형체를 주었지. 삶으로 나를 수고롭게 하고, 늙음으로 나를 편하게 하며, 죽음으로 나를 쉬게 해주네. 그러므로 내 삶을 좋다 함은 바로 내 죽음도 좋다고 하는 게 된다네.(장자, 대종사, 201쪽.)" 사람들이 생각하는 바와 전혀 다르게 생로병사를 이해한다. 늙음도, 죽음도 능동적으로 넘어야 늙음이 나를 위축시키지 않고 죽음이 나를 비굴하게 만들지 않을 수 있다는 것. 장자는 죽음을 맞이하는 생의 한 국면에서까지 우리를 깨우쳐주고 간다. 늙음을 누리고, 죽음을 누리자!! 죽음을 이렇게 인식한다면 삶의 어떤 국면도 두렵지 않을 것이다. 진정 장자는 죽음을 통해 삶을 사유했다고 할 수 있다.

 

 

장자의 아내가 죽어서 혜자가 문상을 갔다. 장자는 마침 두 다리를 뻗고 앉아 질그릇을 두들기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혜자가 "아내와 함께 살고 자식을 키워 함께 늙은 처지에 그 아내가 죽었는데 곡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것도 무정하다 하겠는데 또 질그릇을 두들기고 노래를 하다니 이거 심하지 않소"하고 말했다.

장자는 대답했다. "아니, 그렇지가 않소. 아내가 죽은 당초에는 나라고 어찌 슬퍼하는 마음이 없었겠소. 그 근원을 살펴보면 본래 삶이란 없었던 거요. 그저 삶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본래 형체도 없었소. 비단 형체가 없었을 뿐이 아니라 본시 기도 없었소. 그저 흐릿하고 어두운 속에 섞여 있다가 변해서 기가 생기고, 기가 변해서 형체가 생기며, 형체가 변해서 삶을 갖추게 된 거요. 이제 다시 변해서 죽어가는 거요. 이는 춘하추동이 서로 사철을 되풀이하여 운행함과 같소. 아내는 지금 천지라는 커다란 방에 편안히 누워 있소. 그런데 내가 소리를 질러 따라 울고불고 한다면 나는 하늘의 운명을 모르는 거라 생각되어 그쳤단 말이오."

─ 『장자』, 「지락」, 451쪽


장자가 바야흐로 죽으려 할 때, 제자들이 후하게 장사지내고 싶다고 했다. 장자가 말했다. "나는 천지를 널로 삼고 해와 달을 한 쌍의 옥으로 알며 별을 구슬로 삼고 만물을 내게 주는 선물이라 생각하고 있다. 내 장례식을 위한 도구는 갖추어지지 않은 게 없는데 무엇을 덧붙인단 말이냐?" 제자가 "까마귀나 소리개가 선생님을 파먹을 일이 염려됩니다."라고 하자 장자는 대답했다. "땅 위에 있으면 까마귀나 소리개의 밥이 되고 땅 밑에 있으면 땅강아지나 개미의 밥이 된다. 그것을 한쪽에서 빼앗아 다른 쪽에 주다니 어찌 편견이 아니겠느냐!

─ 『장자』, 「열어구」, 773쪽

 

장자는 죽음을 통해 삶을 사유했다.​


장자는 부인의 죽음에도, 자신의 죽음 앞에서도 평안했다. 장자에게도 제자들이 있었는지 스승님의 장례식을 멋지게 치르고 싶어 했다. 그러나 장자는 허락하지 않는다. 부인의 죽음 앞에서 소박하고 즐겁게 노래했듯이 장자는 담담하게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기를 원했다. 천지 만물 사이에서 나와서 천지만물 사이로 되돌아가니 삶과 죽음은 결국 하나다. 슬퍼할 일이란 없다. 그리하여 죽음의 의식에 덧붙일 것도 없다. 천지가 나를 허여하는데, 그 무엇이 더 필요하랴. 천지가 나를 반기고 장식해주는데 성대한 장례식(厚葬)은 쓸데없는 군더더기일 뿐이다. 관에 넣거나 풍장으로 하거나 천지의 자양분이 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러니 편견을 갖고 장례식에 구속될 필요는 없다. 자연대로 돌아가 만물의 하나로 흐르게 하자. 장자는 일상 어디에서도 상식대로 살지 않았다. 죽음에서조차 상식을 뛰어넘었다. 그리하여 삶과 죽음의 의식으로부터 진정 자유로웠다.

 

장자는 초지일관 자유롭게 살다 죽었다. 장자가 바라본 세상은 어떤 것이었기에 가난도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것인가? 장자를 이렇게 거침없이, 이렇게 겁도 없이, 이렇게 마음껏 살 게 한 원리는 무엇이었을까? 


글_길진숙(남산강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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