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친절한 강의 중용』 - 모든 사람이 선하게 태어났다

『친절한 강의 중용』 - 모든 사람이 선하게 태어났다


“인간은 스스로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지 않으면 자기 자신을 성실하게 할 수 없어요. 존재의 근원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일생 동안 성실하게 살 수 있는 거죠. 그렇지 않으면 그냥 거짓되게 붕 떠서 사는 겁니다. 어려운 글자도 없이 평범한 말인데 참 중요하고 또 새겨야 할 말이죠?”

- 우응순, 『친절한 강의 중용』, 250쪽


‘인간’은 누구나 가지고 태어난 ‘성’(性)이 있는데, 그것의 내용이란 바로 ‘인, 의, 예, 지, 신’이다. 날 때부터 훌륭함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금 현재의 상태가 아무리 악하고, 더럽고, 치사하더라도 마음만 고쳐먹으면 누구라도 얼마든지 훌륭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 근거해서 보자면, 어떤 인간이라도 희망이 있고, 누구에게라도 기대를 걸 수 있게 된다. 


인간에 대한 이런 관점은 서양 근대 사유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자유의지’에 관한 이론을 떠올리게끔 한다. 요약하면 인간은 누구나 ‘자유’를 가지고 태어나며, 그 자유에 따라 선을 행할 수도, 악을 행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이론에서 ‘악’은 어떤 실체가 아니라 단순히 선의 결여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때에도 결국 가지고 태어난 것은 ‘선’(善)이다. 유학의 인간관과 아주 비슷하다.


이쯤 되면 누구라도 ‘정말로 그런가’ 하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우리는 정말 선하게 태어난 존재들인가? 더불어 그것을 행할 수 있는 자유, 혹은 능력이 있는가 하는 의문도 함께 떠오른다. 이른바 탈근대적 사유들이 대부분 극복하려고 했던 주제들이 모두 이러한 의문들에 함축되어 있다. 선/악의 이분법이나 자유의지의 허구성 같은 주제들 말이다. 그러한 흐름에 속했던 사상가들(들뢰즈, 푸코… 등등)이 동양의 노장사상에 친화성을 보이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이분법이나, 자유의지의 허구성 같은 주제들을 잠깐 접어두면 어떨까 싶기도 하다. 인간은 누구나 선하다, 악한 행동은 천성이 아니므로 얼마든지 고쳐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 보자는 말이다. 그렇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참 많은 것들이 달라지는데, 일단은 ‘극단’을 피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선함을 확대하려는 좋은 의지가 ‘악’에 대한 격렬한 혐오가 되고, 결국엔 악이 되고 마는 극단성의 예들을 주변에서 아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그럴 듯한 ‘탈근대적 사유’라 하더라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가져다 붙이는 이유만 달라질 뿐 변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설혹 그게 진리가 아닐지라도 ‘인간은 태어날 때는 모두 선하게 태어났다’고 믿어 보자는 것이다. 이것 악을 행하는 자를 용인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내가 품은 악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이다. 나는 이게 어떤 신도 섬기지 않으면서도 어떤 영성을 갖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게  『중용』의 제목 ‘중용’(中庸)을 내가 이해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친절한 강의 중용 - 10점
우응순 강의/북드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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