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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나의 고전분투기

『중용』에 「귀신」이 산다고?? - 귀신과 과학

by 북드라망 2016. 10. 20.

귀신② - 귀신과 과학




옛사람들은 동, 서양을 막론하고 귀신을 믿었다. 예전에 우리 할머니는 햅쌀밥을 하시는 날에는  꼭 “고시레”라고 낮게 외치시면서 흰쌀밥 몇 알을 주변에 뿌리시곤 하셨고 해마다 동짓날에는 팥죽을 쑨 것을 집안 곳곳에 뿌리곤 하셨다. “고시레”를 하시는 것은 귀신에게 햅쌀밥을 주신 것을 감사드리는 것이고, 팥죽을 뿌리는 것은 잡귀를 쫓는 것이라고 하셨다. 팥죽은 마당 끝에 있는 화장실 벽에도 어김없이 뿌리셨는데, 나는 오히려 잡귀를 물리친다는 팥죽 자국이 더 무서웠다. 요즘에는 영화 속에서나 귀신을 볼 수 있고, 일상의 생활에서 귀신을 떠올리는 일은 제사 밖에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제사조차도 귀신께 드리는 것이라기보다 남겨진 가족들이 고인을 추억하는 자리다. 과학의 세례를 듬뿍 받은 나로서는 귀신이 되신 아버지가 정말 차려진 제수를 흠향하시리라 생각하기는 조금 어려웠던 것 같다. 귀신을 믿는 것은 미신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여러분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과학과 미신을 나누는 경계가 정말 그렇게 명확할까? 『중용』의 「귀신」장을 통해서 과학을 생각해 보고자 한다.  



공자는 “귀신의 덕됨은 성대하다(鬼神之爲德 其盛矣乎).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고 해도 들리지 않지만 만물에 깃들어있다 (視之而弗見 聽之而弗聞 體物而不可遺)”라고 말했다. 이 문장의 귀신에 대해 정자(程子)는 “천지의 쓰임이고(天地之功用), 조화의 자취(造化之迹)”라는 주석을 남겼다. 조화의 자취를 귀신이라고 하는 정자는 공자보다는 실증주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 것 같다. 정자에게 귀신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다면, “저 자연현상을 보아라, 귀신이 깃들지 않았다면, 해는 어찌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을 반복할 수 있으며, 겨울이 가면 봄이 오기를 반복할 수 있겠는가? 이 모두는 조화의 흔적이니, 비록 귀신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찌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오늘날 우리는 아마도 이 대답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은 지구가 자전하기 때문이고, 더욱 구체적으로는 뉴튼의 만유인력법칙에 의해서인데, 귀신의 작용이라니! 그런데 만일 정자가 우리에게 과학 법칙은 어찌 그리 확신하는가를 되묻는다면 어떨까? 우리는 말할 것이다. “이 문명을 보시오. 이것이 모두 과학의 성과요. 오늘날은 심지어 지구바깥의 우주까지 날아갈 수 있고, 인공지능컴퓨터는 사람보다 바둑을 잘 둔다오.” 정자는 아마도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그대들은 내가 말한 귀신을 과학이라고 부르고 있군요. 우리는 귀신을 대개 음과 양의 기운으로 설명했는데, 그대들은 기하학이나 산술의 체계로 설명을 한다는 점이 다른 것 같소. 조화의 자취는 무궁무진하기에 여러 가지 방식으로 그것을 말 할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하오.” 


조화의 자취를 남기는 귀신의 작용을 주자는 이렇게 말했다. “귀신은 두 가지의 기운으로 말하면 귀(鬼)는 음의 기운이고 신(神)은 양의 기운이다. 그러나 하나의 기운으로 말하면 이르러 펴지는 것을 신(神)이라 하고 반대로 되돌아가는 것을 귀(鬼)라고 할 수 있다.” 주자의 주석에 따르면,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것은 귀(鬼)의 기운이 물러나고 신(神)의 기운이 오기 때문이고, 해가 뜨는 것은 신(神)의 기운이고 해가 지는 것은 귀(鬼)의 기운이다. 조화의 자취로부터 우리는 귀(鬼)와 신(神)의 기운이 교차 반복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과학은 객관적 사실을 앞세워 진리를 주장해왔다. 그런데 유가(儒家)에서 말하는 조화의 자취는 미신이고, 과학이 말하는 객관적 사실은 진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어떤 분들은 과학의 객관적 사실은 정량적으로 다룰 수 있지만 조화의 자취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들지도 모른다. 그런데 자연에 숫자가 내재해 있을까? 우리가 익숙하게 말하는 1시, 2시라는 시간이 자연에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정량화란 임의의 척도를 설정하는 것 뿐, 그것이 자연과 일치한다는 진리성을 담보하는 것이 아니다. 엄격한 논리학의 시대인 중세에는 자연을 수학화하는 것이 철학적으로 큰 논란거리가 되기도 했는데, 예컨대 우리가 익숙하게 아는 속도의 개념이 그렇다. 속도는 거리에 시간을 나눈 것인데, 사실상 시간과 거리는 질적으로 전혀 다른 것들이기에 연산할 수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아이작 뉴턴, "근대 물리학의 아버지"


하지만 과학이 지적세계에서 형이상학을 누르고 헤게모니를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수치로 말할 수 있는 실험결과와의 일치가 결정적이었다. 유럽의 근대과학과 귀신과의 관계를 파헤친 과학기술철학자 부르노 라뚜르는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에서 근대과학이 헤게모니를 잡는 과정을 보고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근대 과학자들이 엄정한 논리적 체계인 스콜라 철학을 뚫을 수 있었던 것은, 마치 주술처럼 정량적인 데이터를 사실로 보여주는 신통력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주술을 믿는 것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눈앞에서 실제로 벌어지기 때문이다. 라뚜르는 영국의 자연학자 보일과 수학자인 홉스의 진공에 대한 대결을 비교 분석했는데, 홉스는 논리적 추론을 통해 진공이 부재함을 보였고, 보일은 잘 세팅된 실험실에 신사들을 모아놓고 실험시연을 보였다. 여기서 공기펌프의 수은주는 신통력을 발휘한다. 신사들은 무슨 실험인지 모르지만 수은주가 내려갔다는 “사실”을 증언했다. 알다시피 보일의 경험주의가 완승을 거두었다.   


라뚜르는 이를  fact(팩트, 사실)와 fetish(페티쉬, 물건에 깃든 귀신)를 합성해서 factish(팩티쉬)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합리의 대명사인 유럽의 근대는 팩티쉬, 즉 사실에 깃든 귀신의 힘을 빌어서 가능했다는 것이다. 실험실은 마치 신통력을 발휘하는 주술사의 무대처럼  완벽하게 잘 통제될 수 있는 곳이고, 그곳에서 “사실”들은 제작된다. 보일의 실험실에서는 진공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실험조수들은 숨이 턱에 차도록 공기를 빨아내어야 했었다. 그러나 그렇게 제작되는 사실들이 인위적인 것인가 하면 그렇게 볼 수는 없다. 실험은 실험에 요구되는 조건을 엄격히 지키면 언제나 동일하게 재현되기에 법칙화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험시연이 보여주는 과학 법칙은 무차별적인 보편법칙은 아니고, 언제나 조건이 명기된 법칙인 셈이다. 



실험실이 아닌 곳에서의 관찰은 실패하기 일쑤였다. 갈릴레이는 신사들을 모아놓고, 울퉁불퉁한 달의 표면을 증명하기 위해서 망원경 관찰시연을 시도 했다. 개량된 망원경은 아득하게 멀리 떨어진 성당 창문의 레이스무늬를 볼 수 있을 만큼 성능이 좋았다. 그러나 갈릴레이를 제외하고는 울퉁불퉁한 달의 표면을 관찰한 사람은 없었다. 관찰시연에 모인 신사들은 갈릴레이가 발견한 울퉁불퉁한 달표면을 상의 찌그러짐이라 보았기 때문이다. 과학사의 많은 에피소드들은 이처럼 관찰은 이미 이론을 전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객관적 사실은 우리가 믿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중립적인 것은 아니다. 


그래서 물리학의 경우는 이론의 진리성을 판별하기 위해 실험결과 대신 자신의 공리계 내에서 정합적인가 아닌가를 따지기도 한다. 예컨대 뉴튼의 공리계는 만물에게 모두 동일하게 적용되는 ‘절대시간’이라는 시간의 척도를 전제한다. 그 공리계안에서 뉴튼의 이론은 하나의 완전한 이론적 체계를 갖추고 있다. 양자역학 역시 그 자신의 공리계를 가지고 있음이 증명되었다. 그런데 공리계란 수학적인 약속의 체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과학은 정합적인 공리계를 가진 여러 개의 과학이 가능한 것이고, 그 중 어느 하나가 독점적인 진리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이 곤란한 상황을 재치 있게 설명하고 있다.(스티븐 호킹, 레오나르도 믈로디노프, 『위대한 설계』, 까치)


 그는 만약 둥근 어항 속에 있는 물고기가 세상을 물리학으로 기술한다면 우리와는 전혀 다른 체계를 만들게 될 거라는 것이다. 어항속의 물고기는 오목렌즈를 통해서 세상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호킹의 말로 미루어보면, 과학자들은 어항 제작자인 셈이다. 그들은 자신이 만든 어항 속에서 보는 세상에 대해서 탁월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물리학만 해도 뉴튼의 어항, 상대성이론의 어항, 양자역학의 어항들이 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과학의 세상에는 단 하나의 어항만 배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궁무진하게 다양한 어항들이 함께 존재하고, 어떤 어항이 진리라고 단정할 만한 근거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시각 체계가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다면?"


유가(儒家)에서는 귀신을 음(陰)의 기운과 양(陽)의 기운으로 파악했다. 이는 조화의 자취를 관찰해서 나온 결론이다. 귀신은 조화의 자취에 대한 충분한 설명력을 갖추고 있기에 정합적이다. 귀신의 대표적인 해석체계인 역(易)은 하늘과 땅의 양과 음의 기운을 효(爻)로 삼아서 배치한 것이다. 역(易)의 해석은 역의 체계 내에서 정합적이다. 사실 황당무계한 이야기는 설득의 힘이 떨어지기 때문에 구비 설화조차도 그 이야기 구도 속에서 정합성을 추구하기 마련이다. 그래서 정합성이란 것도 과학만 독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과학이 정량적인 객관적 사실에 근거한다고 하면, 귀신은 정성적인 조화의 자취에 근거하는 것이고, 과학이 공리계의 정합성을 근거로 삼는다면, 귀신은 그 이야기의 구도 속에서 정합적인 체계를 갖추고 있는 셈이니 과학과 미신의 경계는 생각만큼 뚜렷한 것이 아니다. 


『중용』의 「귀신」장을 통해 라뚜르가 말한 팩티쉬로서의 과학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과학의 진리성이 명확하지 않다고 해서 과학이 무가치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fact)"이 보여주는 그 주술적인 신통력을 사용해서 강고한 진리체계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을 뚫었다는 것은 과학이 가장 칭찬받을 대목이다. 원인과 결과의 거대한 논리적 체계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학에서는 천체의 운동에서 정치적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모두 인과로 연결되어 있었다. 이런 체계에서는 뭔가 새로운 것을 하나라도 만들기 위해서는 천체의 운동마저 달라져야 했기에 새로움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귀신에 기댄 과학이 그 강고한 논리 사슬을 끊어버렸기에 거대한 체계에 복종할 의무에서 해방된 성대한 증식의 힘이 작동할 수 있었다. 덕분에 세상은 그만큼 성대해 졌다. 마치 공자가 귀신의 작용은 성대하다고 말한 것처럼, 귀신에 기댄 서양의 근대 과학은 세상을 놀랍도록 성대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귀신의 성대함이 꼭 우리가 원하는 좋은 것만으로 채워진 것이 아니다. 그래서 우리 할머니는 감사의 ‘고시레’도 하시고 잡귀를 쫓기 위해 팥죽도 뿌리셨다. 하지만 우리는 과학은 미신과는 다른 확고한 진리라고 생각하기에 좋은 것만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진리는 곧 선(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현재의 과학이 바람직하지 않는 면모를 보일지라도 아직 과학기술이 미흡해서 그렇다는 소박한 믿음을 가진다. 공자는 귀신에 대해 대단히 신중한 입장을 취했다. 가급적 귀신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고,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는 것이 앎이라고 하기도 했다. 왜 그랬을까? 귀신의 작용이 성대하기 때문이다. 그 힘이 파워풀하기에 귀신을 안다고 하는 자는 권력을 거머쥐기 쉽고, 진리의 이름으로 사람들을 속이기 쉽게 된다. 라뚜르가 말하고 있듯이 과학이 독점적인 진리가 아니라 성대한 귀신의 작용인  팩티쉬라고 생각한다면 과학=진보라는 소박한 생각은 신중한 접근으로 바꾸어야 마땅할 것이다. 우리 할머니가 때에 맞게 ‘고시레’와 팥죽 뿌리기를 하셨듯이 말이다. 


글_최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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