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정화스님 멘토링] 사회성이 떨어지는 딸아이가 걱정입니다


자기 삶의 수행자 되기




❙ ‘지각’하는 습관을 고치고 싶어요

에세이 발표시간에 지각을 했습니다. 전날 술을 먹기도 했지만 지각이 습관 같습니다. 태어날 때도 늦게 나왔다고 들었습니다. 초등학교 때도 1분이면 갈 거리를 지각을 많이 했어요. 중학교 때도 아버지가 자주 차로 태워다 주실 만큼 지각을 많이 했어요. 이걸 고치고 싶은데 고민입니다.


지각하고 싶지 않아요..


스님_습관적으로 지각을 하는 이유는 그것이 이익이라는 생각이 박혀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각’ 자체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행위를 할 때 본인은 아니라고 해도 내적인 편안함이나 즐거움이 있을 겁니다. 어렸을 때부터 형성되어온 내부적인 관점을 바꾸지 않는 한 행위는 절대로 바뀌지 않습니다. 결코 이득이 되는 것이 아닌데 좋은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을 빨리 알아차리도록 하세요. 그리고 이 재미를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지각해서 얻는 불이익을 감수할 것인가 선택하십시오.



* * *

스님께서는 내부적으로 행동과 인식이 잘못 연결되었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면 이전과 다른 행동을 하려고 해도 거부감이 생긴다고 하셨다. 지각은 나쁜 습관이니까 이제부터 일찍 가겠다는 다짐을 아무리 해봐도 몸이 안 움직인다는 뜻일 거다. 이것을 ‘몸 따로 마음 따로’라고 하는 것일까? 우선 나에게 어떤 습관이 있는지 살펴 볼 것. 그리고 자신 안에서 그 행위가 옳지 않다는 인식의 전환이 일어나도록 연습할 것.    


무척 간단명료한 처방인데 어쩐지 어렵게 느껴졌다. 그것은 평소 매뉴얼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습관적으로 인식의 전환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하는 매뉴얼을 찾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매뉴얼이 마치 정답이라도 되는 것처럼 연연하는 것은 나의 인식의 습관이다. 매뉴얼 대신 자신을 탐구하는 훈련을 즐거운 놀이 하듯이 도전해 봐야겠다.



❙ 일에 몰두하다보니 몸을 돌보지 않았습니다



대학에서 패션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좋아해서 일을 했지만, 성취에만 몰두를 하다 보니 몸을 돌보지 않고 생활을 했습니다. 감이당에 온 것도 유연한 신체를 만들고 싶다는 소망으로 왔습니다.


스님_우선 먹는 것부터 살펴보십시오. 누가 좋다고 하는 것, 문화가 좋아하는 것, 생각이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이 좋아하는 것을 선택해야 합니다. 조미료를 넣지 않고 먹었을 때 몸이 좋아하는 것이 있을 겁니다. 그것이 내 몸에 맞는 겁니다. 

우리 몸의 70%가 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음식 섭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입니다. 물을 얼마나 섭취하느냐에 따라서 두 번 머리 아플 것도 한 번만 아픕니다. 특별한 이유 없이 머리가 띵하고 생각이 잘 안 나고 머리가 아픈 것은 대게 물 부족 현상입니다. 그런데 차를 물처럼 생각해서 많이 마시면 안 됩니다. 차를 과도 섭취하면 위장에 부담이 되고 괄약근이 약해져서 역류현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차는 적당히 마시고 물을 마시도록 하십시오.

두 번째는 운동입니다. 일부 당뇨 환자처럼 운동을 제한해야 하는 경우가 있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은 꼭 운동을 해야 합니다. 동물과 식물의 차이는 운동에 있습니다. 운동은 생각을 만들어 내는 힘입니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생각을 많이 하고 있는것처럼 보여도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돌아다녀도 그것이 나중에 생각을 잘할 수 있는 기본 바탕이 됩니다. 그래서 운동은 필수입니다. 

그다음에 시간 나면 가만히 앉아서 밖으로 향했던 힘들을 내부로 향하게 해야 합니다. ‘자기 들여다보기’ 명상을 하는 겁니다. 명상은 밖으로 나갔던 시선을 내부로 돌리는 겁니다. 자기 몸과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세요. 우리가 자연을 볼 때, ‘저 푸른 것이 빨갛게 됐으면 좋겠네, 파랗게 됐으면 좋겠네’하고 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봅니다. 자기 몸과 마음도 그냥 그대로 보는 훈련을 하는 겁니다. 본다는 것은 ‘내가 이런 상태로 존재하기를 바라는 뜻’으로 보는 게 아닙니다. 남을 보고 좋다고 하듯이 내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보고 그냥 ‘좋다’고 하는 겁니다. 명상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밖으로 갔던 소리를 자기 안쪽으로 돌려서 자신의 몸과 마음에서 일어난 일들을 편안하게 보는 훈련을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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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돌보고 싶다는 학인 분에게 스님은 세 가지 제안을 하셨다. 자신에게 맞는 음식 먹기와 운동, 명상이다. 그것으로 삶의 원칙을 세운 후에 앞에서 이야기한 ‘인식 바꾸기 훈련’을 하면서 일상을 전혀 다르게 경험할 것이라고 하셨다. 스님은 수행을 하면 어떤 것이 될 것처럼 기대를 하지만 그런 것은 없다는 말씀을 하셨다. 대신 나의 기대가 별 것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하셨다. 덜 불편한 삶을 살 수 있고 온전히 자신의 삶을 살 수 있는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수행을 시도해 봐야겠다.


물도 많이 마시세요!




❙ 사회성이 떨어지는 딸이 걱정이에요

작년에 딸아이가 갑자기 학교 다니기 싫다면서 힘들어했어요. 공부는 잘하는데 사회성이 조금 떨어지는 거 같아요. 친구들하고 관계가 힘들대요. 왕따가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다른 환경에서 지내보면 괜찮을까 싶어서 미국 유학을 보냈는데 이제 돌아올 때가 됐습니다. 제가 아이한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스님_일반적으로 사람이 관계 맺는 방식을 보면 4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극도로 자기하고만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주 드물지만, 아무하고도 관계를 맺지 않고 사는 겁니다. 우리가 볼 때는 그렇게 살면 안 될 것 같아서 걱정을 하지만 오히려 그것을 온전히 인정받고 살면 이 사람은 상상력이 풍부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 상상력은 특별한 경험을 하게 합니다. 같은 나무를 봐도 거기서 다른 것을 발견할 힘이 있습니다. 그런 상상력으로 충분히 세계하고 살아가는 힘이 있습니다.


두 번째, 아주 소수의 사람하고만 관계를 맺고 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50명이 한 학급에 있는데 2, 3명 사람하고만 친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별로 안 친한 경우죠. 그래서 사회성이 별로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충분히 서로를 인정하고, 인정받으면서 이해의 폭을 훨씬 깊게 할 수 있습니다. 

그다음에 많은 사람과 교류를 하면서 관계성은 좋은 부류가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하고 교류를 맺는 사람은 속까지 깊이 이해해주는 관계는 없을 수 있습니다. 아주 많은 사람이랑 친해서 사회적으로는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기 스스로의 삶이라는 것은 거의 없는 겁니다. 자기 내면이 없는 것이랑 똑같습니다. 

보통 두 번째 부류와 세 번째 부류의 중간쯤 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네 부류에 속하게 되어 있습니다. 간혹 온전히 자기에게 침잠하거나 자기가 없는 것처럼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네 가지 다 관계 맺는 유형이 다른 것일 뿐 절대적으로 좋거나 나쁜 방식은 없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부모성향이 외향성이 강하면 이런 아들딸을 볼 때 큰일인 거죠. 내 딸이 덜 관계를 구성하는 쪽으로도 잘살고 있으면 지켜봐 주는 것이 부모가 할 일이지 이걸 이렇게 만들어주려고 하면 성공하지 못합니다. 설사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내가 왜 그렇게 살았는지 모르겠어”라는 원망을 듣기도 합니다. 먼저 내 딸이 어디에 속하는가를 잘 살펴보십시오. 봐서 한 두세 사람하고 잘 친해지고 있으면 그 애가 충분히 자기 만족도가 높을 것이기 때문에 여러 사람하고 친하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각기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자기 삶들을 살아가는 겁니다.


그러니 너무 내가 원하는대로 돼야 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부모님의 입장에서 상담해올 때 스님은 무척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부모님들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지나친 염려인 경우가 많다. 또한, 부모의 입장에서 아이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좌충우돌하면서 본인이 스스로 자신의 길을 찾아가도록 옆에서 지켜봐 주면 된다. 아이들이 살아갈 세계는 부모가 상상하는 것과는 분명 다른 세계일 것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가장 큰 가르침은 자신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 다른 사람들 말에 신경쓰여요

TV를 보면 요즘 큰 사건들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 사건을 보면 생각이 거기에 집중돼서 다른 일을 못 합니다. 그래서 TV를 거의 안 보게 됩니다. 그랬더니 주변 사람들이 “그것도 모르느냐, 그런 것에도 관심이 없느냐?” 이런 이야기들을 합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이야기들에 신경 쓰지 않고 중심을 잡을 수 있을까요?



스님_누구나 부정적인 소리는 세배나 크게 들립니다. 반면 칭찬하는 소리는 1/3 정도로 작게 들립니다. 그 말은 상대에게 긍정적인 반응과 부정적인 반응을 각각 한 번씩 받더라도 신체는 외부의 반응을 기분 나쁜 것으로 인식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외부의 반응에 흔들리지 않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상대의 반응이 자신을 인식하는 기준이 되지 않도록 하라는 겁니다. 나의 행동에 대해 어떤 말을 하던 그것은 그냥 상대방의 반응일 뿐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너는 왜 그런 식으로 말을 하는 거야?”라고 말하는 순간 내 내부에서 부정하는 힘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것은 외부의 말보다 더 강력합니다.  


생각이 내부에 자신의 통로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머리에 있는 신경세포는 팔이 적어도 5천 개 내지 만개까지가 있고 어떤 것은 10만 개까지 있다고 합니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연결 통로가 만들어집니다. 상대가 나한테 뭐라고 했을 때 기분 나빠하면 기분 나빠하는 것이 강화된 통로를 계속 만드는 겁니다. 그래서 “저 사람이 나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생각은 한 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이 생각이 더 쉽게 들도록 시냅스의 연결을 강화합니다. 연결의 강화가 기억 됩니다. 이 기억이 자주 되면 몸의 장기 기운으로 바뀝니다. 생각하는 것이 무형으로 있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그것이 우리 몸을 특별한 상태로 도로화시키는 겁니다. 그래서 외부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가지고 내부의 통로를 그렇게 만들어내면 나중에 외부의 소리가 없어도 내부 스스로가 자기를 그렇게 말하도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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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의 말씀을 정리하다 보니 사람을 잡아다가 침대에 눕혀보고 침대보다 크면 다리를 잘라서 맞추고, 침대보다 작으면 잡아당겨서 침대에 몸을 맞추는 괴물 이야기가 생각났다. 이런 괴물 같은 짓을 자신에게 하고 있었다니. 좀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기억들이 내 몸에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 앞으로 하나하나 연구해 볼 일이다.


멘토링 시간은 언제나 편안하다. “고민을 털어놓으면 스님은 너무 고민할 필요 없어요, 그럴 수도 있어요” 라고 말씀을 시작하시기 때문이다. 잘못 들으면 그냥 나는 나대로 살면 된다는 식으로 안일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 하지만 스님의 따뜻한 위로 안에는 날카로움이 담겨있다. 어떤 문제든 그 해결은 자신 안에서 나온다는 강한 신념에서 나오는 말씀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님의 해결책은 하나로 귀결된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스스로 수행을 해라’ 상처를 위로하며 맘 편히 듣고 있을 수만은 없는 말이다.


글/정리_시연


누구의 눈치도 보지 말고 스스로 수행을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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