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삼국사기에 담긴 천재지변 그리고 하늘의 뜻


너무나 역사적인 사실

: 자연사와 인간사의 함수관계




책을 읽는 묘미는 기대나 예상을 넘어설 때 찾아온다. 책이 주는 신선함, 그 의외성은 잠든 뇌를 깨우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자극이 없다면 우리는 관성적으로밖에 사고하지 못한다. 식상한 패턴으로만 뇌가 활동하면 우리의 마음도 신체도 무기력에 빠져 감각의 자극에만 민감해지지 않을까? 감각기관만 비대해지면 더 센 쾌락적 자극을 찾아 헤매다, 끝내 심신은 마비되고 만다. 마비된 뇌를 활성화하고, 뇌의 흐름을 바꾸는 가장 효과적인 활동은 독서라고 생각된다. 그중에서도 역사책은 현재라는 관성 안에 갇힌 뇌의 회로에 다른 길을 내준다. 물론 고도의 집중력과 지루한 시간을 견디는 인내력은 필수이다. 기꺼이 역사책 속으로 뛰어들면 그 유구한 시간의 흔적들 속에서 저마다 다른 방식의 삶을 살아갔음을 인지할 수 있다. 과거가 절대적으로 옳아서가 아니라 매우 ‘다른 지평’ 때문에 현실에 갇힌 인간들이 보여주는 어리석음, 매너리즘에 빠진 인간들의 기만을 비추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역사책을 읽으면 내가 믿는 게 전부가 아님을, 하여 보다 넓은 시공의 포물선을 그릴 수 있도록 뇌를 유연하게 만들 수 있으리라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어찌됐든, 책은 당연히 상식을 뛰어넘는 반전과 의외성을 담아야 한다는 것. 우리를 뜻밖에, 상식밖에 지대로 내모는 건, 이름하여 책!  


책은 '다른 세계'로 가는 문!



『삼국사기』의 「신라본기」를 읽을 때 전혀 뜻밖이어서 놀랐다. 내가 기대한 사실들은 드물게 나오고, 예상하지 않았던 사건(?)들로 채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어떤 사건보다 더 중심에 놓인 사건, ‘천문(天文)과 천재지변(天災地變)’에 관한 기사였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오늘의 날씨에 해당하는 기사들이 즐비했던 것이다. 처음에 신라시대의 역사가 부족하거나 소멸되어서 그렇다고 여겼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판단하는 게 또 하나의 편견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보는 역사적 사실과 김부식 혹은 「신라본기」의 자취를 남긴 그 편자들이 판단한 역사적 사실이 매우 다르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어쩌면 역사적 사실이라는 문제도 하나로 정의내릴 수 없는 것일지 모르겠다. 김부식에게 역사적 사실이란 무엇일까?



❚ 인간사의 한 계열, 자연사


신라사만 놓고 보자. 역사적 사실로 기술된 중요한 사건은 ‘왕의 교체’, ‘외세와의 전쟁’(백제, 가야, 왜, 고구려와의 전쟁 : “나해니사금 29년 가을 7월에 이벌찬 연진이 백제와 봉산 아래에서 싸워 이를 격파하고 사람의 머리 1천 여 개를 얻었다”와 같은 기사들), ‘반란’, ‘천문과 천재지변’이다. 앞의 사건들이야 역사책이나 국사교과서에서 흔히 접했던 사안이지만, ‘천문과 천재지변’에 관한 기사는 의외였다. 아무런 사건이 없는 날, 가장 중요한 사건처럼 한 두 줄로 기술된 천문에 관한 기사.


천지의 운행과 변화는 우주만물과 교섭하며 살고 있는 인간에게 매우 중요한 영향을 주는 것이기는 하지만, 국가사를 다루는 『삼국사기』에서 자연사가 중대사건으로 계열화되어 있다는 건, 무지의 탓이었는지 매우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 시대 인간 생활의 그 어떤 면모보다 더 주목했던 것은 천지의 운행과 변화였다는 사실. 인간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하고 필수적인 기준 혹은 사실 또한 달라진다는, 그 지당한 진리를 망각하고 살았던 것이다. 『삼국사기』를 들춰보며 새삼 놀라웠다. 올해 가장 긴 폭염에 시달린 까닭에 오늘은 섭씨 몇 도인지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도, 그것이 몇 백 년 혹은 그 이상의 과거를 담는 역사책에서 중대한 사건으로 담긴다고는 상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겐 무엇이 가장 중대한 사실일까? 경제와 관련된 사안들? 자본과 증식, 소유와 소비로 빚어지는 인재(人災)와 범죄들? 




* 신라 혁거세
4년 여름 4월 초하룻날 신축에 일식이 있었다.
9년 봄 3월에 왕량성좌에 혜성이 나타났다.
14년 여름 4월에 삼성성좌에 혜성이 나타났다.
24년 여름 6월 그믐날 임신에 일식이 있었다.
30년 여름 4월 그믐날 기해에 일식이 있었다.
32년 가을 8월 그믐날 을묘에 일식이 있었다.


지마니사금
여름 4월 큰물이 났다. 죄수들을 재심사하여 주고 죽을죄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죄다 용서하였다.
9년 봄 2월에 큰 별이 월성 서쪽에 떨어졌는데 그 소리가 우렛소리 같았고 3월에 서울에 전염병이 크게 돌았다.


나해니사금
8년 겨울 10월에 복숭아와 자두가 꽃이 피고 사람들은 전염병을 많이 앓았다.
31년 봄에 비가 내리지 않다가 가을 7월에 이르러서야 비가 내렸다. 백성들이 굶주리므로 창고를 헤쳐 구제하였다.
겨울 10월에 서울과 지방의 죄수를 재심사하여 주고 가벼운 죄는 용서했다.


파사니사금
21년 가을 7월에 우박이 내려 나는 새가 죽었고, 겨울 10월에는 서울에 지진이 있어서 민가가 쓰러지고 죽은 자가 생겼다.
30년 가을 7월에 누리가 곡식을 해하므로 왕이 산천에 두루 제사하여 기도로 액막이를 했더니 누리가 없어지고 풍년이 들었다. 


소지마립간
22년 여름 4월에 폭풍이 불어 나무를 뽑고 용이 금성 우물에 나타나고 서울에 누런 안개가 사방에 자욱하게 끼었다.


진평왕
50년 여름에 몹시 가물어 저자를 옮기고 용을 그려서 비를 빌었고 가을과 겨울에 백성들이 굶주려 자녀를 팔았다.


경덕왕
2년 봄 3월에 주력공의 집 소가 한 배에 송아지 세 마리를 낳았다.

- 「신라본기」


혁거세 4년 여름 4월 초하룻날 신축에 일식이 있었다.


* 봉상왕
9년 봄 정월에 지진이 있었다.
2월부터 가을 7월까지 비가 오지 않았으며, 흉년이 들어 백성들이 서로 잡아먹었다.


고국양왕
3년 겨울 10월에 복숭아와 자두나무 꽃이 피었다. 소가 말을 낳았는데 발이 여덟이요, 꼬리가 두 개였다.
6년 봄에 기근이 들어서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으므로 왕이 창고를 헤쳐서 구제하였다. 


양원왕
12년 봄 3월에 바람이 크게 불어 나무를 뽑고 기왓장을 날렸고, 여름 4월에는 우박이 내렸다.

- 「고구려본기


비류왕
28년 봄과 여름이 크게 가물어 풀과 나무가 마르고 강물이 말랐다가 가을 7월에 이르러서야 비가 내렸으므로 흉년이 들어 사람들이 서로 잡아먹었다.

- 「백제본기


『삼국사기』에 기재된 왕조의 기사를 좀 길게 열거해 보았다.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자연재해를 어느 정도까지는 조절할 수 있는 최근세에도 자연의 막강한 융단 폭격에는 속수무책인 게 자명한 현실이다. 인간이 일구어놓은 터전은 지진 혹은 토네이도나 쓰나미가 몰아치면 삽시간에 폐허가 되고 만다. 실상 자연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회가 어디 있는가 말이다. 최근세도 그럴진대 자연현상이 생활 곳곳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할 때, 인간의 촉수가 자연을 향해 뻗치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이 시대, 자연현상은 인간의 삶을 좌우하는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다는 것, 그래서 일식이나 기후는 그냥 자연현상이 아니라 인간의 삶이자 역사 자체였던 것이다. 가뭄이나 해충은 백성들의 생계와 직결되는 문제였다. 천지가 궤도를 벗어나는 현상은 백성들의 생활에 직접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천재지변으로 인해 병들거나, 굶주려 죽거나, 사람끼리 서로 잡아먹는 일이 생긴다. 천지자연은 인간을 제약한다. 자연의 흐름은 인간들을 풍요롭게도 궁핍하게도 한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자연의 움직임을 역사적 사건으로 보았던 것이다. 자연이 인간생활에 절대적이니만큼 자연의 변화는 중요한 역사가 된다.


"2월에 큰 별이 월성 서쪽에 떨어졌는데 그 소리가 우렛소리 같았고 3월에 서울에 전염병이 크게 돌았다."



❚ 조짐으로서의 천재지변, 이것도 사실이다!


자연의 순환이 순조로울 때엔 인간들은 편안하다. 자연의 순환이 순조롭지 못할 때 인간들은 고통스럽다. 위정자인 왕은 산천초목에 제사지내거나, 죄수들을 사면해주거나(억울한 자를 풀어주기 위해), 사회의 약자인 고아, 홀아비, 과부, 자식 없는 늙은이 등에게 먹을 것을 베푼다. 생각해보면 천재지변으로 인해 사람들이 헐벗고 굶주릴 때 그들을 구휼하는 행위는 인정상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으로, 정치하는 자들의 당연한 임무이다. 그런데 왕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하늘과 땅의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 몸가짐을 경건하게 하고, 억울한 사람이 있을까 죄수를 사면하여 덕을 베푸는 행위를 했던 것이다. 물론 거대하고 막강한 자연 앞에 경건해지면서 행동을 삼가는 것도 인간이 할 수 있는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태도로 보인다. 하늘의 거친 기세로 인하여 땅에 살고 있는 인간 사회를 다시금 돌아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마음의 행로라 비합리적이거나 신비스럽게 여겨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였다. 『삼국사기』에 기술된 자연현상은 농사와 같은 인간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중시되는 것이지만, 그 자연현상은 생존 때문에만 기술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천지의 운행과 변화에 관한 기사 중 많은 부분이 인간들에게 어떤 사건을 예고하거나 경고하는 ‘조짐’으로써 사건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가뭄, 장마와 같은 기상의 변화는 물론 때에 맞지 않은 더위와 추위 등의 이상 기온, 일식이나 혜성의 출현, 그리고 별자리의 움직임, 돌연변이종들, 천지만물의 기이한 현상들이 촘촘히 나열되어 있었다. 김부식에게 이런 현상은 천지자연의 질서 속에서 일어나는 독립적이며 특별한 흐름으로 취급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특별하고 이상해서 상기된 것이 아니라, 모두 인간들의 행위와 관련된, 일종의 원인이자 결과로 하나의 계열을 구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어떤 천문 현상, 자연 현상은 국왕의 죽음, 반란, 전쟁과 같은 혼란을 예고하거나 혼란이 발생하는 사건으로 계열화되어 있었다. 자연현상과 인간의 일 사이에 인과관계가 설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물론 혜성이 출현한 자체는 사실에 해당되며, 전쟁이 일어난 것도 사실에 해당한다. 우리에게 그 각각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저 독립된 사건일 뿐이다. 전자는 하늘계의 사건, 후자는 인간계의 사건. 그러나 김부식은 이 둘이 인과로 이루어진 하나의 사실이라고 믿었다. 하늘과 인간은 상호작용한다. 인간은 하늘에 영향을 미치고, 하늘은 인간에게 영향을 미친다. 하늘은 조짐을 보여주고 인간은 그 하늘의 뜻을 읽어서 풀어내거나 혹은 하늘이 뜻한 바대로의 일을 겪는다.


김부식은 합리적인, 고증 가능한 사실의 역사를 기술하고자 했던 역사학자이다. 그럼에도 사실에 대한 관념은 우리와 현저하게 달랐던 것이다. 지금의 우리는 믿지 않는, 어렴풋한 비의로만 간주하는 하늘의 예시와 조짐을 삼국시대와 고려시대, 심지어 조선시대까지도 계속해서 사실로서 인지했던 것이다. 우리의 시대는 더 이상 하늘과 인간의 상호 감응을 사실로 믿지 않는다. 하늘과 인간이 감응한다는 사실은 사실이 아니다. 합리의 세계로는 설명 불가능한 신비의 영역일 뿐이다. 현대의 우리들은 이것을 비의적인 판단이자 해석의 문제로 간주한다.


우리의 시대는 더 이상 하늘과 인간이 감응한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따라서 우리는 김부식이 판단이나 해석의 차원을 사실로 착각했다고 평가한다. 그런데 엄밀하게 따졌을 때 우리가 사실이라고 규정하는 것이 정말 사실인가? 그 또한 “우리가 받아들인 판단들의 연쇄에 지나지 않는”(김용옥, 『노자 철학 이것이다』상, 통나무, 1989, 131쪽.) 것일 수 있다. 그 어떤 사실도 사실로 존재하지 않는다. 가치와 판단이 개입되지 않은 사실은 없다. 삼국시대 사람들에게는 자본과 소유의 관계가 사실로 보이지 않고 비의적이고 신비한 세계일 수 있다. 우리가 하늘과 인간이 상응하는 관계를 신비하다고 여기는 것처럼 그들은 인간과 화폐의 관계성, 즉 자본주의 자체가 신비롭지 않을까?


인간은 소우주이다. 중국의 음양오행설의 입장에서 보자면 인간은 우주의 흐름과 함께 하고 있으며, 인간 자체가 우주라는 점에서 인간과 우주의 질서는 상관적일 수밖에 없다. 이것이 김부식의 역사관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한나라 무제 때 동중서는 천지-인간의 상관성을 역사-정치-철학으로 정립했다. 이것은 직관으로 얻어진 이론이 아니다. 역사 경험 중에 얻어진 것으로 하늘에 대한 체험의 총결에 다름 아니다.


사람의 신체 하나를 관찰해 보면 무엇이 사물보다 훨씬 더 뛰어났다고 할 수 있는가? 사람이 뛰어난 것은 하늘과 종류를 같이 했기 때문이다. 이는 사람을 물것들과 단절시켜서 하늘과 땅에 참여한다는 것을 보이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사람의 몸에서 머리가 동그란 것은 하늘의 형용을 본뜬 것이며, 머리털은 별과 별을 본뜻 것이며, 코와 입으로 호흡하는 것은 바람과 기를 형상한 것이며, 가슴 속에서 아는 것이 이르는 것은 신명(神明)을 형상한 것이며, 배와 태가 실하고 허한 것은 온갖 사물을 형상한 것이다. 온갖 사물이란 가장 땅에 가까운 것이다. 그러므로 허리 아래를 땅이라 한 것이다. 하늘과 땅의 형상은 허리로써 띠를 만들었다. 목 이상은 정신을 존엄하게 여기는 것으로 하늘과 같은 형상을 밝힌 것이고, 목 이하는 풍후하고 낮고 수치스러운 것으로 흙덩이와 비교되는 것이다. 발이 퍼져서 모난 것은 땅의 형상을 닮은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예에는 큰 띠를 두어서 띠게 하고 반드시 그 목을 곧게 하여 마음을 분별하는 것이다. 띠를 띤 위쪽은 모두 양이 되고, 띠를 띤 아래쪽은 모두 음이 되며 각각 그것으로 나누는 것이다.


양은 하늘의 기이고 음은 땅의 기이다. 그러므로 음과 양이 활동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발이 병들고 목구멍이 마비되어, 일어나면 땅의 기는 위로 솟아 구름과 비가 되는데. 상(象)이 또한 응한 것이다. 하늘과 땅이 부합하고 음과 양이 알맞게 되어 항상 신체에 베풀어지게 되면 신체는 하늘과 같아져 수(數)가 함께 하여 서로 참여하게 된다. 그러므로 운명도 함께 하여 서로 연결되는 것이다.


하늘은 한 해를 마치는 수로써 사람의 신체를 성취시킨다. 그러므로 작은 마디 366개는 1년의 일수와 적합하고, 큰 마디는 12개로 나누어졌는데, 이는 12달과 적합한 것이다. 안으로는 오장이 있는데 이는 오행의 수와 적합한 것이며, 밖으로는 사지가 있는데 이는 네 계절과 겆갛ㅂ하며 잠깐 보이고 잠깐 어두운 것은 낮과 밤과 적합하며, 잠깐 슬러하고 잠깐 즐거워하는 것은 음과 양에 적합한 것이다.

- 동중서, 『춘추번로』, 자유문고, 380-381쪽


동중서는 인간과 천지는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과 천지는 동형구조로 이루어졌다고 인식한다. 인간은 천지와 같은 형상을 하고, 같은 기운을 탔으며, 인간 마디의 수는 1년 366일, 12달, 5행, 4계절이라는 천지의 운행 주기에 상응한다. 이러니 천지와 인간이 어찌 서로 감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천지의 기운은 인간에게 영향을 미치고 인간의 기운은 천지에 영향을 미친다. 천지가 그 궤도를 이탈하는 것은 궤도를 이탈한 인간의 기운이 전달되어서이다. 그러니 천지의 이상한 변화는 인간 탓이며, 인간은 그 조짐에 응답해야만 하는 것이다. 동중서에게 정치는 이 조짐을 읽어내어 그에 상응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는 이 조짐의 경험들을 기술하는 것으로, 인간은 이 경험을 통해 조짐을 해석하는 방법을 배울 뿐만 아니라, 이 조짐들을 바꾸는 기운을 내는데 동참해야 하는 것이다.



많은 삿된 기운[邪氣]이 누적되면 그 화가 미치지 않음이 없다. 바람과 비는 알맞게 오지 않고, 음양이 순서를 잃고 네 계절이 뒤바뀌고, 백성들이 음란하여 생육하지 못하고, 짐승들은 태가 없어져 번식할 수 없으며, 초목은 왜소하여 생장하지 못하고, 오곡은 말라 비틀어져 결실을 맺지 못한다.

 - 불위 지음, 『여씨춘추』, 「명리(明理)」


군주가 부덕하여 형벌로써 다스리면 삿된 기운이 생긴다. 재해는 천하가 평화롭지 못할 때 발생한다. 악한 정치는 악한 기운을 만들며, 악한 기운은 재해를 생기게 한다.

- 육가 지음, 『신어』, 「明誠」,


하늘과 인간은 서로 통하는 데가 있다. 그러므로 나라가 위망하면 이에 감응하여 천문은 변한다. 세상이 미혹되고 어지러우면 홍현(虹蜆:무지개나 이상한 기운)이 나타난다. 만물은 서로 연계되어 있고 상서롭지 못한 기운은 서로를 요동치게 한다.

- 유안 지음, 『회남자』, 「泰族


『주역』의 형성 이래로 동아시아에서 성인은 천지의 법칙을 관찰해서 인간사의 법칙을 정립했다. 인간과 우주가 별개의 세계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 이런 사고는 전국시대로부터 한나라에 이르러, 유가의 정치철학에 입각한 천인감응설로 이어졌다. 전국시대의 『여씨춘추』, 전한 시대의 『춘추번로』, 『회남자』, 『신어』에서 인간과 우주의 기운을 연결시키면서, 인간 마음을 제어하는 장치로 천재지변를 의미화시켰다.


인간과 우주는 하나의 몸체이다. 분리되어 다른 몸체가 되었지만 인간은 천지와 똑같다. 형상과 수만 똑같은 게 아니라 기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사악한 기운은 사악한 기운을 만들고, 좋은 기운은 좋은 기운을 만든다. 서로가 그렇다. 천지와 인간 어느 일방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 상호작용, 상호감응이다. 동아시아에서 이것은 팩트다. 김부식은 이 사실을 역사에 충실히 반영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오늘날과 김부식의 시대는 연속이 아니라 단절이다. 완전히 다른 사유의 지대. 이 단절적인 사유의 대지에서 우리는 무엇을 봐야 하는가? 『삼국사기』의 「신라본기」를 따라 가며, 천지자연이 인간에게 무엇이었는지, 그 천지자연과 어떤 관계를 맺었는지 탐사해보자.  


글_길진숙(남산강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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