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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과학

콧물은 '건강'이다

by 북드라망 2012. 3. 21.
코찔찔이를 허하라!

정철현
(남산강학원 Q&?)


안 돼~ 그래선 안 돼!

연구실 선배에게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당시 초등 1학년들은 하나같이 왼쪽 가슴에 손수건을 달고 생활했었다는 것이다. 신기해서 왜 그랬는지 물어봤더니, 콧물을 닦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물론 휴지가 흔하지 않은 시절이라 그랬을지 모른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TV나 영화 속 옛날 아이들은 언제나 코 찔찔이에 꼬질꼬질한 모습이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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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그때 그 시절 모습. 절~대로 '품위 있어서' 손수건을 꽂고 다닌 게 아니라는 거^^

지금은 어떤가. 요즘 꼬질꼬질한 애들을 찾아보는 건 힘들다. 예전에 비해 생활환경이 깨끗해졌고, 자기 몸을 더럽힐 곳은 이제 드물다. 오히려 너무나 깨끗한 나머지 그들의 모습에선 윤기마저 흐른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옛날에 비해 아토피, 비염, 천식 같은 알레르기로 고생하는 아이들이 많아졌다.

우리들은 이런 아이들에게 좀 더 ‘깨끗한 곳으로’라고 외친다. 더러운 환경을, 안 좋은 음식을 피하기만 하면 될 것처럼. 그러다 보면 할 수 있는 것도, 먹을 수 있는 것도 별로 없다. 깨끗하지 않은 사람과도 접촉하면 안 된다. 손도 안 씻고 아기를 안는 할아버지, 먹던 음식 먹이는 할머니. 그들은 경계대상 1호다.

갑자기 의문이 든다. 단순히 더 깨끗해지면 알레르기가 치유될까? 비위생적인 것들을 피하기만 하면 알레르기가 나아질까? 사실 우리는 알레르기 인자를 확실히 모를 뿐만 아니라, 이것과 언제 어디서 마주치게 될는지조차 알 수 없다. 그렇기에 ‘행여 문제가 될 만한 위험한 일을 피하는 게 상책이다, 조금이라도 의심스러운 것을 피하라’는 것은 알레르기 치료를 위한 최선의 생활방식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런 식이 아닌, 알레르기에 대처하는 새롭고 다른 길은 없을까?
  
'콧물'은 '건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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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초등학교에서도 꾀죄죄한 코찔찔이들을 볼 수가 없다. 엄마들이 아이들을 반짝반짝 광(?)내기 전에는 학교에 보내지 않기 때문~                                                                       ㅡ「사랑해 파리」 스틸컷

손자․손녀가 너무 예뻐 그저 안아주고 싶은 할아버지, 제대로 씹지 못하는 손자를 위해 음식을 씹어서 주는 할머니. 알레르기를 가진 아이의 엄마들은, 비위생적이라며 이런 분들을 말리기 바쁘다. 하지만 분들은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우리 땐 다들 그러고도 잘 살았어.’ 한편으로 일리가 있다. 옛날에는 지금처럼 청결한 환경이 아니었지만 적어도 알레르기로 고생하는 아이들은 별로 없었다.

심하게 불결한 상태가 병을 부르는 건 사실이다. 위생상태의 개선이 질병들을 예방할 수 있게 해주는 것 또한 맞다. 그래도 요즘 엄마들, 너무 예민하다. 사실 엄마들이 알레르기라고 생각하는 대부분의 것은 아직 면역계가 자리 잡히지 못한 아이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과민성 반응이다.

아이들의 위생에 대해서도 너무 민감하다. 일례로 엄마들은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코를 흘리고 있으면, 지저분해 보이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심각한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온갖 걱정을 한다. 그래서 즉시 깨끗하게 닦아주거나, 기계까지 동원해 콧물을 빨아내기도 한다. 혹은 병원까지 가서 콧물을 없애는 약을 지어온다. 하지만 생각만큼 이런 행동은 아이들에게 도움이 안 된다. 

내가 어려서는 아이들이 늘 누런 코를 흘리고 있었다. …… 누런 코에는 녹농균을 포함한 여러 종류의 세균이 있다. 그것이 코와 목구멍을 통해 점막에 분포하고 있는 면역계를 강하게 자극하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런 화농균에 대해서 IgG 항체는 만들어지지만, IgE 항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세균 감염은 IgE 항체의 생산을 억제한다.
 
ㅡ타다 토미오, 『면역의 의미론』


콧물흡입기. 정말로 콧물'만' 없애면 만사해결일까?

우리는 면역계의 본질이 자기를 지키기 위해 외부물질을 거부, 배제하는 데에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배제 이전에 배제의 메커니즘이 어떻게 형성되는지가 중요하다. 면역계의 발달은 외부물질을 수용하고, 그들과 함께 했던 기억들에 의존하고 있다. 만일 이 기억들이 편협하다면 면역계는 지나치게 예민해진다.


콧물을 흘리는 것은 아이의 면역계를 성장시키기 위한 생명의 오묘한 활동이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점점 더 폭 넓은 기억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아이들은 평범한 물질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알레르기와는 작별을 고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아이들의 ‘코찔찔’한 모습이 보기 불편하더라도 좀 참는 건 어떨까.  

공존 그리고 새로운 나

아이들의 ‘코찔찔’은 결과적으로 알레르기를 막는 일이었다. 콧물을 흘림으로써 억제되는 IgE. 그리고 이물질들과 공존한 기억. 면역계는 공존의 실험으로부터 시작했다. 그런데 선천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도, 이 기억들을 만들지 않아 알레르기로 고생하는 사람은 어찌해야 할까? 계속 아픈 채 살아가야 할까?

면역계는 …… ‘자기’에 적응하고 ‘자기’에 조회하면서 새로운 ‘자기’라는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이렇게 ‘자기’는 성립과정에서 차차 변형된다.…… 외부로부터 항원이라는 이물이 침입할 때마다 특정한 클론이 증식하고, 인터루킨 등에 의해 내부세계에 소란이 일어난다. 항체를 만드는 유전자에는 높은 빈도로 돌연변이가 일어난다는 것…… 이런 ‘자기’의 변형에 조회하면서, 이 시스템은 평생 자기 조직화를 계속한다. 이것이 면역계의 원칙이다.
 
ㅡ타다 토미오, 『면역의 의미론』

외부물질과 끊임없는 공존관계에 스스로를 놓으면서, 자신을 갱신하는 면역계. 면역계는 고정된 체계가 아니라 자신의 한계지점에서 시작해 자기 자신을 항상 새로이 조직하는 유동적 체계다. 이로부터 우리는 알레르기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다. 어떤 행동이나 자극을 통해 자신을 변하게 하는 것. 그럼으로써 면역계의 수용능력을 키우기.

이를 이용한 알레르기 치료 중 한 가지로, 면역주사라는 게 있다. 알레르기 유발물질을 일부러 조금씩 투입해서, 이에 대한 반응을 무디게 하는 방법이다. 그러면 다음에 그 물질이 들어와도, 이에 대한 관용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에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지 않는다.

이 주사약은, 알레르기의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여러 가지 꽃가루, 곰팡이, 동물비듬, 집먼지 진드기 등의 성분을 섞어서 만들어 진다. 처음에는 이 추출액을 5~6개월간 한 달에 한번 주입하게 된다. 그 뒤로 약 1~2년간 또 한 달에 한번 주사를 맞는다. 최소 3년 이상은 주사를 맞아야 재발률이 낮다고 한다. 그러나 면역주사 18개월 후에도 아무 효과가 없으면? 간단하다. 중단하든지, 아니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면 된다. 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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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런 게 면역주사라면 우리 실생활에서도 충분히 시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알레르기가 발생하면, 좀 힘들더라도 급한 불을 끄듯 약을 먹는 대신, 그 반응들과 변화들을 관찰하는 시간들을 가져 보는 거다. 물론 이게 쉽지는 않다. 그러나 코 때문에 답답하거나 불편함 없이 편한 어린 시절을 보내지 않았던가. 그래서 지금 내 몸의 공존 능력이 현저히 부족해 진 것. 그러니 어릴 때 겪지 않았던 일을 지금 겪고 있을 뿐이다. 우리 몸은 결코 공짜를 모른다.

단, 너무 욕심 부리지 마시라. 나이가 들어 면역계가 굳어진 만큼 과한 시도는 심각한 결과를 가져 올 수도 있으니.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고 조금씩~.

한 살이라도 어릴 때부터

어른들은 나이가 먹으면 먹을수록 새로운 환경에 대처하는 것이 어렵다고 말씀하신다. 그것은 이미 굳어진 습관이나 사고방식을 깨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는 면역계도 마찬가지다. 외부 물질과 공존했던 기억들을 전혀 가지지 못한 채 자란 사람이 그 기억들을 수정하기란 쉽지 않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말한다. 한 살이라도 젊을 때 공부하라고, 나이 먹으면 머리가 굳어 잘 안된다고. 면역계도 예외는 아니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면역계를 발달시켜야 한다. 어른이 돼서 이것을 만회하려면, 커진 몸집만큼이나 어릴 때 흘린 콧물의 몇 십 배를 흘려야 할지도 모른다(^^;;). 어릴 때 흘리는 콧물이 보약이다.

어릴 적부터 아이들은 일상적으로 면역계의 능력을 키울 자연스러운 기회들을 가진다. 그리고 면역계를 발달시키기 위해서, 또 그 발달의 과정에서 아이들의 몸에는 자연스러운 증상들이 끊임없이 나타난다. 일테면 붉은 반점이나, 지금까지 얘기했던 콧물 같은 거.

하지만 엄마들은 너무나 걱정스러운 나머지 이에 심각하게 반응한다. 그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엄마의 과도한 예민함은 훗날 아이의 예민한 신체로 나타난다는 사실. 당신의 아이들이 쪼잔하게도, 그 평범한 물질 하나와도 같이 살지 못하면 좋겠는가. 이젠 아이들에게 면역계의 성장을 허하자! 콧물을 허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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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정철현 (남산강학원 Q&?)

연구실 안과 밖에서 자연학을 공부하고 있다. 공부를 해 나갈수록 펼쳐지는 이 세계가 참으로 멋있고 근사하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 세계에서 나 또한 멋들어진 삶을 일궈 보려 노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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