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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드라망 이야기 ▽/북드라망의 책들

『한국의 근대성 소설집』엮은이 인터뷰 "한국 근대성을 탐사하는 가장 재미있는 방법!"

by 북드라망 2016. 6. 29.

『한국의 근대성 소설집:
이해조의 <자유종>, 이광수의 <재생>, 나도향의 <환희>』

엮은이 mini 인터뷰


목멱산(木覓山) 북동(北東)편 붓[筆]자루 모양의 동네에 어떤 어리석은 사람이 사는데 성은 문리요 이름은 ‘스(?)’라. 천성(天性)이 총명치 못하고 허리 부실하여 큰일을 맡길 만하지 못했는데, 성격 또한 수줍음이 많고 움직임을 싫어하여 주변과 잘 어울리지 못하였다. …… 스물아홉에 우연히 지인(至人)을 만나 개과천선(改過遷善)하는데, 시간이 지나매 더불어 함께 공부와 밥과 우정을 나누어 먹는 무리들이 늘어갔다. 이 지인은 스스로를 곰마음[熊心]이라 불렀는데, 스는 첫눈에 곰마음을 존경하였다. …… 원래 스는 단순하여 동시에 여러 일을 벌이지 못했는데, 이는 그가 금문(今文)을 위주로 학문을 시작했으면서도 사실상 고문(古文)만 열중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예전에 스를 알던 사람 사람들은 그가 제비바위(燕巖)나 찻뫼(茶山), 치양지(致良知) 따위를 들먹이는 걸 희한하게 여겼고, 새로이 그를 알게 된 사람들은 가끔씩 그가 봄동산(春園) 같은 곳에 놀러다니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나, 스에게 이 둘은 멀지 않고 다르지 않다(〈문리스뎐 중에서, 전문은 요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

아, 이 명문장을 언젠가 꼭 세상에 알리고 싶었는데 드디어 기회가 오네요.^^ 이 글은 <남산강학원>의 대표이신 문성환 선생님이 <남산강학원>의 홈페이지에 “붓을 들어 자신의 일을 적은” 자기 소개글의 일부인데요. 네… 그러니까 그 문성환 선생님이 『한국 근대성 소설집』을 엮으신 그 ‘문성환’ 선생님이십니다. 연구실에서는 대개 ‘문리스’라고 불리시는데 “성은 문리요 이름은 ‘스(?)’”라는 것은 저도 이 글에서 처음 알았네요^^. 문성환 선생님으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저희 북드라망의 소중한 저자 선생님이시지요. 아시다시피 『전습록, 앎은 삶이다』를 쓰셨고, 『낭송 전습록』을 풀어 읽으셨으니까요. 이렇듯 “고문(古文)만 열중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 ‘스’ 선생님은 “금문(今文)을 위주로 학문을 시작”하셨지요. 무려 최남선 연구자로 박사 학위를 받으셨고, 그렇기에 저희는 ‘스’ 선생님만을 믿고 『한국의 근대성 소설집』을 출간할 수 있었더랬지요.^^ 저희 덕분에 이번에도 “봄동산[春園]”에서 아주 재미나게 노셨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이광수의 호가 ‘춘원’이라고 굳이 사족을 답니다, 제가;;). ‘봄동산’ 꽃놀이를 재미나게 마치고, 이제는 돌아와 “목멱산(木覓山) 북동(北東)편 붓[筆] 자루 모양의 동네”에서 『한국의 근대성 소설집』의 해제 「한국 근대문학과 계몽·연애·위생 담론의 영원회귀」를 탈고하신 문성환 선생님을 인터뷰했습니다. 

_성은 ‘Moon’이지만, 정체는 Star!


1. 책의 제목이 『한국의 근대성 소설집』입니다. 시대적으로 근대에 씌어진 ‘근대 소설’이 아닌 ‘근대성’ 소설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문학’이란 단어는 엄밀히 말하자면 리터러쳐-문학을 의미합니다. 번역된 것이죠. 보통 시, 소설, 희곡, 수필 등으로 떠올리는 문학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시기적으로도 문학은 우리에게 근대 전환기에 새로 등장한 무엇이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문학은 곧 근대문학이기도 한 셈이죠. 얼핏 생각해 봐도 근대 이전에는 시, 소설, 희곡, 수필 등을 가리켜 (그럴 장르도 불분명했지만) 문학이라 지칭하는 예가 없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어찌됐든 문학은 근대라는 이름으로, 근대적인 것으로서 새로 등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학이 근대적인 것이었다는 사실은 외국(서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하지만 근대의 후발주자였던 우리가 보기엔, 그것이 일종의 착시입니다만, 서구의 문학은 본래적인 것처럼 보였던 겁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문학 같은 것이 서구의 근대를 표상하는 것처럼 보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문학이 우리에게는 없다는 생각, 그렇게 우리에게 없는 것들을 하나씩 실현하는 것이 근대라는 생각에서 좀처럼 자유로울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근대소설 작품집과 근대성 작품집은 전혀 다른 말입니다. 간단히 말해 이 책은 근대문학의 흔적(성취)을 찾는 게 아니라, 한국의 근대적 성격을 주제로 살펴볼 수 있는 문학작품(이미 문학은 근대적 사건인데)을 모은 것입니다. 자칫 광범위할 수 있는 주제인데, 한국의 근대적 성격에 관해서는 이미 고미숙 선생님의 훌륭한 연구가 있기 때문에, 이 책은 고미숙 선생님이 그려낸 한국의 근대성에 관한 몇 가지 주제들(계몽, 위생, 연애)을 문학 작품으로 묶는 형식으로 기획되었습니다.

"『한국의 근대성 소설집』은 고미숙 선생님의 <근대성3부작>의 문학 버전이라고 보면 됩니다."


2. 이 책은 ‘고미숙의 근대성 3부작’인 『계몽의 시대』, 『연애의 시대』, 『위생의 시대』과 관련하여 각각 계몽·연애·위생의 키워드에 맞는 소설을 선별해서 엮은 책이라고 하셨고 각각 계몽은 이해조의 『자유종』, 연애는 이광수의 『재생』, 위생은 나도향의 『환희』로 선정되어 있습니다. 각 작품들이 해당 키워드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왜 이 작품들을 고르셨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우선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사실 한국의 근대성을 ‘계몽/ 연애/ 위생’ 등으로 분석했다고 해서, 이들 주제가 서로에게 외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여기 실린 작품들은 같은 역사적 시기를 공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각각의 작품이 사실상 그 자체로 한국의 근대성을 표상하는 작품들입니다. 하지만 이왕이면 최대한 주제를 선명히 부각시킬 수 있는 작품 위주로 작품집을 구성하고자 했고, 그 결과 ‘계몽’이라는 키워드에는 이해조의 『자유종』을, ‘연애’에는 이광수의 『재생』을, ‘위생’에는 나도향의 『환희』를 선정하게 되었습니다. 『자유종』은 신소설 작가 이해조의 대표작 중 하나입니다. 근대계몽기에 각종 계몽의 주제들을 토론의 형식으로 제시하는 작품입니다. 여기서 다루고 있는 계몽의 언설들을 보다보면 1900년대 초기 한국(당시 조선)의 과제가 무엇이었는지 민낯을 볼 수 있습니다. 아울러 지금 현재 우리의 모습이 보이기도 하죠. 이광수의 『재생』과 나도향의 『환희』는 1920년대 중반에 씌어진 장편 연재소설들입니다. 얼핏 보면 두 작품은 내용과 주제가 비슷하다고 여겨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연애와 위생이 서로에게 걸쳐져 있는 면 때문인데, 앞서도 말씀드렸듯 계몽기 작품들이 역사성을 공유하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여하튼 이번 책에서는 『재생』을 ‘연애’에 관한 작품으로, 『환희』를 ‘위생’에 관한 작품으로 분류했습니다. 『재생』에서는 순영과 봉구, 백윤희를 통해 근대적 연애의 적나라한 원형(^^)을 볼 수 있을 겁니다. 『환희』도 연애소설적 요소가 강렬한 작품인데요. 일단 연애소설은 『재생』에서 찐하게 한 번 읽었으니까 이번에는 혜숙과 선용과 백우영의 연애담을 통해 순결성의 강박이 죄의식으로, 병(폐병)으로 전이되는 과정에 주목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동아일보』에 연재된 나도향의 『환희』1회. '"어머니"하고 금방울을 울리는 듯한 귀여운 목소리'의 혜숙을 그린 듯한 삽화.


3. ‘고미숙의 근대성 3부작’이 근대계몽기의 신문과 잡지 기사를 통해 근대성에 대한 계보학적인 탐사했다면, 이 책 『한국의 근대성 소설집』은 당시의 소설로 그것을 하는 것인데요. 근대성을 탐색하는 데 있어 소설이 다른 매체에 비해 어떤 장점이 있을까요?

질문 속에 대답이 들어 있는 것 같습니다. 고미숙 선생님은 이미 오래전에 근대 계몽기 매체들에 주목해서 한국의 근대성에 관해 여러 가지 유의미한 문제 제기를 하셨습니다. 이번 근대성 소설집은 한국의 근대성에 관한 문학작품집 버전인 셈이구요.
한국의 근대성을 당시 신문과 잡지 등 근대 매체를 통해 탐구했던 것은, 제가 알기론 일단 그것이 한국의 근대성을 탐사할 거의 ‘유일한’ 자료였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한국의 근대성을 탐사하는 문제는 근대 문학이라는 형태로 시도 혹은 축적되기 이전에 이미 폭발하고 분화하고 있던 어떤 시대성에 대한 탐구였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근대 문학이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는 여전히 논의 중인 문제입니다만, 문학(리터래처)이란 말은 아무리 당겨 잡아도 1910년 이전으로 넘어가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근대성에 관한 탐사의 핵심은 근대가 실험되던 시대를 읽는 문제와 연결되는 한에서 문학 작품은 실물이 없었던 셈입니다.
그러니까 근대성 3부작을 문학 작품 버전으로 읽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한국의 근대성을 근대적인 언어로 형상화된 형태로 만나 보는 것입니다. 이상은 공식적인 대답이구요. 한마디로 하면 이 책은 신문이나 잡지 등에 실린 기사들보다 훨씬 재밌게 한국의 근대성을 만나 보는 장점이 있습니다.(^^)



4. 마지막으로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으신 말씀이 있다면?

이 작품집은 기본적으로 고미숙 선생님의 근대성 3부작의 문학 버전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니까 최소한 고미숙 선생님의 근대성 3부작에 관한 문제의식이나 거기에서 다루고 있는 주제들을 공유하는 것이 이 작품집을 즐기고 이해하는 출발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밖으로는 기본적으로 소설 작품들이기 때문에 그저 한국 근대 소설을 즐기는 것이어도 좋겠습니다.

한국의 근대를 살펴보기에 가장 즐겁고 확실한 방법 『한국의 근대성 소설집』

한국의 근대성 소설집 - 10점
이해조 외 지음, 문성환 엮음/북드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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