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끝까지 간다?!' 노력이 아니라 양생에 반하는 고집불통!


고집불통에게 필요한 양생법은?



무너진 자만

올해 5월, 태어나 처음으로 한의원에 갔다. 학기도 끝났겠다 몸을 한 번 점검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선생님들의 제안이었다. 얼마나 상태가 안 좋아 보였으면 그런 얘기를 하셨을까.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한 번도 못 가본 한의원에 간다는 것에 마냥 기뻤다. 과체중을 몰아내고 표준체중에 한층 가까워진 상태이므로 꽤 건강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감이당에 와서 운동도 하고 몸 공부까지 하고 있는데 괜찮겠지 하는 자신감도 한 몫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웬걸, 난데없는 이야기를 들었다. “박준오 선수, 아랫도리가 안 좋은데~? 왜 그랬어~.” 의사분이 말씀하시길 내가 몸이 찬 편이라고 했다.(냉증:冷症) 남자가 냉증에 걸리는 것은 쉽지 않다며 양기를 내는 명문화(命門火:오른쪽 신장)가 부실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만약 명문화의 기능이 더욱 약해진다면 양의 힘을 받아야 하는 성기능 쪽이 위험해진다고.

"내가, 내가!!"

병원에서 남자들이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었다. 나는 뭔 농담인 듯싶었으나 점점 밝혀지는 진실 앞에서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인간사(人間事),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던가. 남 일이면 웃고 넘겼을 텐데 나는 충격에 휩싸인 표정을 도저히 숨길 수 없었다. 그 모습이 엄청 웃겼을 거다. 같이 간 멤버(장금샘, 시연누나, 나경누나)가 박장대소하는 동안 나는 눈물을 흘릴 뻔했다. 아, 공부하는 백수가 자랑으로 내세울 것이 내 몸에게 기쁨을 주고 있다는 자부심인데, 상태가 이지경이라니. 정말 죽을 맛이었다.

충격에 휩싸인 며칠 동안 나를 되돌아봤다. 여태껏 나는 스스로 몸이 건강한 편이라고 자부했다. 한창 술에 탐닉하여 매일 소주 2병, 막걸리 2병씩을 먹으면서 110kg가 넘어갔을 무렵에도 몸이 좀 무거운 정도라고 여겼다. 작년 감이당에 와서 살이 빠질 때에도 너무나 건강해졌다고 생각했다. 겨울에 엄청 피곤할 때도 걷다가 쓰러지지 않을 정도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이런 식이면 숨이 붙어 있으면 다 건강한 거라고 하는 말 아닌가. 죽거나 건강하거나. 이런 이분법은 극단적 성향의 나를 그대로 반영했었다. 물론 한의원에 가기 전에도 이런 상태였다. 내 몸을 파악하고 있지 못하다는 뼈아픈 반성을 했다.

벌어진 상황은 돌이킬 수 없고, 더 나빠지지 않도록 하는 수밖에 없었다. 냉증의 원인을 알아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런데 병원에서 나는 이상하게 경직되어갔다. 한의사 선생님은 엄청 친절했지만 그분께 내가 왜 냉증에 걸리게 되었냐고 물을 수 없었다. 내 몸에 정보를 더 알려달라고 하는 것은 왠지 무리한 부탁으로 여겨졌다. 약을 다 먹은 후 병원에 찾아가 한의사 분께 건강하다는 말을 듣는 순간 몸이 엄청 좋아지는 기분(너무 즐거웠다)이 드는 것도 이상했다. 스스로 몸이 좋아졌는지 안 좋아졌는지를 전혀 알지 못하고, 한의사 선생님의 말로만 내 건강을 판정했다. 남이 내리는 평가로만 자신을 느낄 수 있는 신체라니. 정말 무기력한 상태 아닌가. 이번만큼은 내 건강을 스스로 판단하고 싶었다.


계절과 소통하지 않으면 병이 든다

다행히 기탄동감 세미나에서 도움을 받았다. 동의보감에서 나의 문제점을 알려줄 구절을 찾았는데, 그것은 내게 다소 충격적인 반전이었다.

冬三月 此謂閉藏. 水氷地圻 無擾乎陽 早臥晩起 必待日光. 使志若伏 若匿 若有私意 若已有得. 去寒就溫 無泄皮膚 使氣亟奪. 此冬氣之應 養藏之道也. 逆之則傷腎 春爲痿厥 奉生者少.

겨울철 석 달을 폐장이라고 한다. 이때는 물이 얼고 땅이 얼어 터지는데, 양기를 요동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일찍 자고 늦게 일어나되 반드시 해가 뜬 뒤에 일어나서 마음의 뜻을 굽힌 듯 숨긴 듯이 하여 사의가 있는 듯이, 또는 이미 얻은 것이 있는 듯이 해야 한다. 그리고 추운 데를 피해 따스한 곳으로 가고, 살갗으로 땀을 흘려 갑자기 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이것이 겨울철에 적응하여 감추어 들이는 기운을 길러주는 방법이다. 이것을 거역하면 신을 상하게 되고 봄에 위궐에 걸리며, 봄의 소생하는 작용에 공급되어야할 것이 부족해진다.

답은 의외로 가까운 데에 있었다. ‘사계절의 기후에 맞게 정신을 조절한다(四氣調神)’ 부분이다. 『낭송 동의보감 내경편』에는 「사계절의 리듬에 맞춰라」(84쪽)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만물의 근본인 사계절에 호응 할 수 있도록 각 계절 마다 지켜야할 행동 지침을 정해주는 내용이다. 그 중 겨울철 석 달에 지켜야할 부분에서 내 냉증의 비밀이 밝혀졌다.

겨울 석 달을 閉藏(폐장)이라고 한다. 閉藏(폐장)은 감추어 저장한다는 뜻이다. ‘닫다, 닫히다’라는 뜻을 가진 閉(폐)는 국경선이나 성(城)의 관문을 폐쇄할 때 사용하는 글자로, 감추고 저장하는 藏(장)과 합해져 겨울에 단속하고 감추는 자세를 의미한다. 겨울은 만물의 기운이 땅 속으로 들어가는 시기이다. 이때는 다른 때보다 에너지가 더 크게 소모되는 까닭에 양(陽)을 쓰는 일을 최대한 자제하고 음(陰)을 길러야 한다. 마음 자세도 자기의 뜻을 다 드러내지 않고, 숨어 있는 듯, 숨겨 놓은 듯이 하여 꿍꿍이 속(私意]이 있는 것처럼 해야 한다. 새로운 일을 펼칠 수 있는 에너지를 오롯이 저장하겠다는 자세다. 

去寒就溫 無泄皮膚 使氣亟奪

추운 데를 피해 따스한 곳으로 가고, 살갗으로 땀을 흘려 갑자기 기가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

체온을 유지하는 것에 쓰이는 기를 아끼기 위해 따뜻한 곳으로 나아가야[就] 한다. 특히 땀이 나지 않게 해야 한다. 겨울에 내는 땀은 기를 과도하게 소모하는 위험요소다. 몸이 많은 양기를 내고 있다는 신호가 바로 땀이다. 게다가 땀이 난 후에는 땀이 식으면서 체온을 떨어뜨려 또 양기를 빼앗기게 된다. 기의 운용에 있어서 이중고를 겪을 수밖에 없다.

저번 겨울, 남산타워로 매일 산책을 갔다. 그간 나의 라이프 스타일은 ‘끝까지 간다!’였다. 타워산책을 가려고 마음먹었다. 그렇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가야 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한겨울에 칼바람이 불어도, 눈이 쌓여도, 빙판길에 자빠질 위험에도 타워를 향한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따스한 곳을 떠나 추운 곳으로 갔으므로 겨울의 양생 지침을 어긴 셈이다. 더한 것은 뛰어갔다는 것. 두터운 잠바를 입고 뛰었으니 땀이 났고, 땀이 나서 옷을 벗었으니 급격하게 기를 빼앗긴 채 온 피부로 한사(寒邪)를 받아내게 되었다. (氣)를 ‘갑자기(亟) 빼앗기지(奪) 않게 해야 한다.’는 동의보감 구절을 아주 정확하게 어겼다;; 남방 하나만 입은 채 타워를 오르며 겨울의 밤공기에 상쾌해 했지만 그것은 몸이 상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짓이었다.

동의보감이 제안하는 양생이라는 것은 똑같은 행동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자연의 변화에 호응하는 행동을 말한다. 매번 바뀌는 상황에 맞추어 적절한 변화를 취하는 것이 바로 일상에서의 양생인 것이다. 그런데 나의 산책은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이었다. 이는 유연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경직되고 굳어진 행동이었다.

겨울과 호흡을 맞추는 것을 거부한 자에게는 신장병(傷腎)과 위궐(痿厥)이 배달된다. 결국 나는 봄이 되어 신장에 적신호가 켜졌다. 또 위궐(痿厥)이 걸린다고 하는데, 위궐은 손발에 힘이 빠지고 차가워지는 증상이다. 그렇다면 설마 이 위궐 때문에 입춘에 다리가 풀려가지고 된통 넘어져 얼굴이 깨진 것이었나! 놀랍도록 정확한 동의보감의 예측력에 나는 그만 한사가 침입한 듯 오싹해졌다.


소통을 위한 덕목, 유연함

그렇게 상황파악이 되자 지난 과거가 다시 꿰어졌다. 올해 봄에 곰집에서 옷을 몇 겹으로 입고도 나 혼자만 추워서 어쩔 줄을 몰라 했던 것, 밖에 돌아다닐 때에도 이를 덜덜 떨면서 다녔던 것은 몸에 문제가 있어서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위의 ‘사계절의 기후에 맞게 정신을 조절한다[四氣調神]’ 부분은 자주 암송하던 구절이었다. 겨울에 산책을 할 때, 이 구절이 가끔 생각나기는 했다. 그렇지만 내용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땀을 내지 말라고 했었지? 그런데 운동하니깐 건강해지는 거잖아. 좀 쌀쌀하지만 뭐 어떻게 되겠어?”하고 넘어갔다. 되돌아보니 나는 내 생활에서의 문제들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을 애써 외면했다. 물론 산책에 건강악화의 누명을 씌우려는 것은 아니다. 자기 것만 고집하느라 계절에 ‘맞추어’ 살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겨울에는 겨울에 맞는 산책법이 있어야 했다. 코스를 조정하거나 땀을 내지 않고 산책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그리고 정 안되는 날에는 다음날 산책을 위해서 쉬어야 했다.

고루하게 자기 것만을 고집하면 문제가 생긴다. 자기가 가지고 있어야 할 것들을 챙기느라 밖의 것을 제대로 못 본다.

밖의 것을 받아들이기에는 내 것으로 너무 꽉차있다. 그때 외부의 모든 것은 불쾌하기 그지없는 침입이 된다. 그것들을 받아들이는 대신 자꾸 튕겨내려고 한다. 확실히 튕겨내기 위해서는 자기 것을 한층 단단히 만들어야한다. 아집으로 똘똘 뭉쳐 더욱 더 꾸역꾸역 자기를 채운다. 말 그대로 고집불통! 불통의 부피와 밀도를 높여갈수록 주변과의 다툼은 더 잦아지고 커진다. 그렇게 점점 한계 상황에 다다르면 뻥! 하고 사건이 터진다. 풍선이 부풀수록 더 쉽게 터지는 원리와도 같다. 자기 라이프 스타일을 지킨다고 겨울의 추위를 튕겨내 버린 내게는 신장병과 위궐이라는 사태가 터졌다. 그것은 소통의 길을 촉구하는 경고의 바늘이었다.

자연 속에서의 삶은 변화의 연속이다. 훅훅 뛰어드는 변화의 태클에 쓰러지지 않으려면 비움으로 빚어낸 유연함이 필요하다. 주유소 풍선인형 같은 유연함 말이다. 반드시 꼭해야만 하는 것들을 없애고 나를 얼마간 비워둬야만 변화의 공기바람에 맞추어 꾸준한 춤사위를 펼 수 있다. 나는 나를 알고 있고, 엄청 열심히 살고 있고, 건강하다고 자만했다. 다 아는 것 같고 유치해 보인다는 그런 꽉 채운 마음을 버리고 사계절의 변화에 호응하여 행동을 맞춰나가는 유연함이 필요했다. 여름에는 좋아하는 것이 밖에 있는 듯 땀을 내고, 겨울에는 꿍꿍이속이 있는 듯 따뜻하게. 그때 사계절의 변화는 나를 옭아매는 한계가 아니라 매번 새로운 양생을 할 수 있는 조건이 될 것이다. 성인이 봄·여름에는 양의 기운을 기르고 가을·겨울에는 음의 기운을 길러서[所以聖人 春夏 養陽 秋冬 養陰] 생의 역량을 키웠던 것처럼 말이다.

감이당 공부와 활보 일을 통해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각각의 만남에도 사계절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계절에 따라 관계 맺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도. 각 시절의 변화에 맞는 관계법이 있어야 모든 시절들이 남김없이 뜻 깊어질 것이다. 사계절에 맞추어 사는 유연의 양생법은 모든 관계들을 충실히 만들어 가는 중요한 밑바탕이 되지 않을까.


글_박장순감이당 대중지성)


낭송 동의보감 내경편 - 10점
허준 지음, 임경아.이민정 풀어 읽음, 고미숙/북드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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