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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가 좋다

[정화스님 멘토링] 1년 공부에도 끊을 수 없던 술버릇, 끊고 싶습니다!

by 북드라망 2016. 6. 17.


지금의 삶을 바꾸려면 10년훈련하라



Q1. 억울해서 그런지 갑자기 눈물이 납니다. 이 감정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저는 어떤 일이 생기면 갑자기 눈물이 나는데, 왜 눈물이 나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는 이유를 찾아보려 하지만 찾을 수 없었고 이 우는 행동이 습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난번에 스님께서 모든 판단을 내려놓고 감정을 그대로 보라고 하셨는데 제가 억울해서 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억울한 감정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요?


스님_대개 누구나 억울한 감정들이 떠올라요. 그렇게 흘러가지 않고 안에서 억울한 감정이 쌓이면 신체적인 호르몬의 변화가 와요. 그리고 억울하다는 호르몬이 나오고 억울하다는 마음이 계속 들게된답니다. 이때는 울어야 해요. 이때 눈물의 성분을 조사해보면 처음 울기 시작했을 때의 눈물, 10분후의 눈물, 20분후의 눈물이 성분이 달라요. 처음의 눈물은 억울하다는 감정들로 인해서, 자기를 힘들게 했던 물질들이 아주 많이 들어 있어요. 눈물을 팍 쏟고 나면은 안에 쌓인 감정의 찌꺼기들이 밖으로 배출돼요. 그래서 울고 나면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지는 거예요. 우리의 사회적 통념상 남자들은 거의 울지 못해요(남자들은 함부로 울지 말아야 된다고 주입받으면서 자라게 되므로). 거기에 비해 여자들은 쉽게 울 수 있어요. 그래서 대개 남자들은 쌓여 있어요. 이런 점에서는 여자가 남자보다 훨씬 좋은 조건인 것 같아요. 

어려서 자아가 형성되어갈 때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하는데,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굉장히 어려워요. 우리가 자라면서 남과 비교당하거나 사회적 기준에 의해서 뒤떨어졌다고 대접받게 되면, 자기는 자기 삶을 온전히 살았는데 뭔가 잘못 살았다는 것으로 내면화되어요. 현재의 삶들이 억울할 이유도 없는데 억울한 조건으로 살도록 조건화 되는 거예요. 예를 들면 아이가 시험을 보아서 50점을 받았을 때 당사자는 최선을 다했는데 마치 50%만 최선을 다한 것처럼 여겨서 억울해지게 해요. 누가 50점을 맞고 싶었나요. 다만 점수로만 판단을 하니 억울할 수밖에 없어요. 우리는 이런 식으로 알게 모르게 억울함이 쌓여 있어요. 불필요한 전제가 삶들을 억울하게 만들어요. 우리 인류가 함께 서로 서로를 억울하게 만드는 거예요. 그렇게 쌓인 많은 층위의 억울한 것들이 울도록 요구하는 거예요. 그러므로 울고 싶으면 울어야 해요. 이때 중요한 것은 우는 이유를 붙이면 안돼요. 울고 싶은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므로. 


그리고 지금이라도 나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훈련을 하세요.



Q2. 술을 마시면 남자를 찾습니다. 끊을 수 없을까요?

술을 마시면 종종 남자와 관계를 가지곤 했습니다. 그것을 반복할수록 마음이 점점 불안해지고 이것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연구실에 접속하여 공부한지 1년 정도 되었습니다. 그런데 잠깐의 방학 동안에 다시 술을 마시게 되었고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게 되었습니다. 공부를 하면서 새로운 길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길을 찾지 못하는 것 같아 혼란스럽습니다.


스님_길이라는 것은 특별히 따로 있는 것도 아니고 정해진 것도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삶의 방식을 17년간 살아왔기 때문에 반복하게 되는 거예요. 이때 어떻게 살았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19살 때부터 지금까지 훈련되어왔던 거예요. 그래서 어떤 상황이 오면 그전의 행동을 반복하게 되는 거예요. 습관이 되어 있기 때문에 다음날이 되면 이게 아닌데 하는 생각을 하고 후회하는 것도 습관이 되어있어요. 이 삶의 방식이 옳다 그르다가 아니라 내가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 그렇게 되어있어요.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살아가게돼요. 지금부터라도 바꾸고 반복하지 않으려면 적어도 10년의 절제가 필요해요. 우리들은 대부분 가지고 있는 유전자풀의 정보 중 살아오는 과정에서 내가 특정한 유전자 스위치를 잘 켜도록 훈련되어 있어요. 이것을 안 바꾸고 살 수도 있지만 바꾸고 싶다면 다른 유전자 스위치가 켜질 수 있도록 임계점 수치를 높여야 해요. 그런데 그 기간이 1년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 10년은 지나야 한답니다.  한번 켜진 스위치가 얼마나 강력한지 쥐를 가지고 실험해 보았어요. 켜지는 스위치를 쾌락중추에 심어놓고 먹이라는 다른 스위치를 주었답니다. 먹이를 선택하면 쾌락중추에 자극이 가지 않고 먹이가 나오도록 하였어요. 그러나 쥐는 쾌락중추의 스위치를 계속 눌러서 굶어 죽었어요. 우리에게 형성된 것이 그런 거예요. 잘못된 것이 아니고 그것을 계속해서 누르도록 되어있어요. 쥐가 왜 쾌락중추를 누르게 되는지 모르듯이 우리가 살아오면서 계속 눌러서 습관이 되는 것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을 바꾸려면 마음 단단히 먹고 끊어야 해요. 끊으려면 공부를 해야 합니다. 안 켜진 스위치에 불이 켜지는 것이 공부가 되는 것이고, 공부란 이제까지 켜지 않았던 스위치를 누르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다른 삶을 살고 싶은 것이지 지금까지의 삶을 잘못된 것이라 생각하여 죄책감의 스위치를 키면 안 됩니다. 1년 이곳에서 공부하면서 뭔가가 달라졌다고 생각하는데 1년은 사실 거의 배운 게 없어요. 우리 몸은 정해진 수치의 임계점이 와야 변하도록 되어 있는데 어떤 충격들은 대단히 커서 한 번에 변할 수 있는데 이런 경우는 인생에 별로 없어요. 그리고 있더라도 이 충격으로 죽을 수도 있어요. 그러므로 어렵더라도 앞으로의 삶과 방향이 다르면 딱 끊는 훈련을 해야 해요. 이 훈련이 습관이 되는데 걸리는 시간이 10년입니다. 앞으로는 술과 술을 마시면서 형성되는 인간관계를 끊어야 합니다.


100세 인생, 10년 훈련해서 나머지 40년을 문제 없이 살면 얼마나 좋은가!



Q3. 급하면 다른 사람은 안중에도 없고 내 문제만 해결하려 합니다. 제 안에 인정욕망 때문일까요?

평소에 다른 사람을 잘 배려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급한 문제가 생기자 다른 사람의 상황은 전혀 배려하지 않고 내 문제만 해결하려 했습니다. 한마디로 역지사지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내 안에 인정욕망도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급하면 주변 사람은 보이지도 않아요.


태어나서 성장하는 25살 까지는 인정욕구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살 수 있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인정욕구보다는 독립하려는 욕구가 강해져요. 미운 7살이 바로 시작이예요. 엄마로부터 독립하려고 하는 거죠. 요즘은 서른이 넘어도 독립할 수 없다는 전구가 켜져 있어 독립을 안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캥거루족, 헬리콥터 엄마가 나오는 것입니다. 예전에 우리들은 역지사지하는 삶을 살았어요. 그것이 인생을 살아가는 중요한 덕목으로 여겼고 혼자서 역지사지 할 수 있는 정보를 가지고 있었어요. 지금의 부모들은 대부분 경쟁만 하게 훈련시킵니다. 그러면서 계속 불만만 키웁니다. 


만족하려면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우리가 누구와의 만남에서도 내 삶을 완벽하게 충만하게 사느냐가 마음을 비웠다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제대로 긴밀하게 맺는 관계는 많아야 150명입니다. 그리고 나쁜 사람 많이 안 만나요. 필연적으로 나빠도 만나야 할 사람은 평생 같이 가야 할 사람입니다. 누구와의 만남에서 삶을 충만하게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사실 누구라도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충 맞춰서 살아가면 되는 거예요. 그 주축은 불과 몇 십명 안돼요. 세상 사람 모두와 역지사지 하려 하지 말고 이 주축이 되는 사람들과 역지사지 하여 불편하지 않아야 해요. 그리고 사실 세상사람 모두와 역지사지 하는 것보다 가까운 이들과 역지사지 하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상대가 내가 원하는 조건을 하지 않았을 때 거기서 멈추어야 하는데 계속 나의 조건을 요구하게 되면 둘의 관계가 충만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것이 불만입니다. 마음을 비우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마음을 비웠다는 것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을 빨리 알아채는 것입니다. 인생은 본래 내가 원하지 않는 일이 일어나게 되어 있어요. 사실상 뜻대로 되는 게 별로 없어요.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하고 동시에 상대가 하는 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지난 1년 동안 에세이를 쓰면서 똑같은 습을 반복하여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헤매다가 한 학년을 마쳤다. 이번 년도에 첫 에세이를 쓰면서 겨우 그 습에서 빠져 나온듯하였으나 두 번째 에세이를 쓰고 도반에게 지난해와 달라진 점이 없다는 충고에 엄청 힘들었다. 이제 겨우 빠져 나왔나 싶었는데 용수철처럼 제자리로 돌아갔다는 것이 나를 더욱 힘들게 했나보다. 이번 멘토링을 정리하면서 내가 이제까지 해왔던 습을 반복하지 않으려면 1년으로는 어림도 없고 최소한 10년을 훈련해야 한다는 정화스님의 말씀이 죽비가 되어 나를 내리치는 것 같았다. 


이복순 (목요 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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