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정화스님 멘토링] 어질러진 게 좋다는 남편, 이해할 수가 없어요!


소통의 시작,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것




‘너, 고민 많잖아’ 멘토링 질문을 유도하는 말에 “고민은 본래 해결되지 않는 것”이라고 스님은 말씀하셨다. 하지만 고민은 자기 안에서 약간의 실마리들이 형성되는 거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고민이란 인간이 살아갈 때 자기가 부딪치는 일들이므로 사건 하나하나를 그때마다 편한 마음으로 이야기 하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오늘은 또 어떤 실마리들이 형성되고 그것을 어떻게 풀어갈지 학인들의 고민들을 들어보자.  



Q1_요즘 따라 나와 다른 의견을 대할 때면 훅하고 감정이 올라와요…. 그렇게 감정을 쏟아내고 나면 너무 민망해서 잠이 잘 오질 않아요.


스님_감정이 올라오는 것은 지금 당장 고칠 수가 없어요. 감정이 올라오는 것이 잘못됐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럴 때는 ‘이런 상태에서 나는 이런 감정이 올라오는 구나’라고 자기 긍정을 해야 돼요. 그 감정을 누르려고 하면 안 됩니다. 다만 표출하는 방법을 훈련해야 됩니다. 상대에게 내 감정을 상하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은 애초에 성립되지 않는 말이에요. 상대를 보면 나는 감정이 상할 수 있는 조건이 되어 있어요. 그러나 이 감정이 상대의 잘못만은 아닙니다. ‘아, 나는 저런 상태에서 대해서 기분 나쁜 감정이 올라오는 구나’ 여기까지만 하고 그쳐야지 그것을 상대에게 표출하는 것은 바보짓입니다. 상대는 저 사람이 왜 저러는지 전혀 알 수가 없어요. 마땅히 이런 일에는 화를 내고 이런 일에는 기뻐하는 몇 가지 일 외에는 우리가 연기자가 아닌 이상 이런 일에 기뻐하고 이런 일에 슬퍼하고 나는 그런 감정이 안 생기는데 그런 감정을 끄집어 낼 수가 없죠. 연기자도 훈련이 안 되면 안 되잖아요. 내가 이런 일에 딱 부딪히면 기분이 나쁜 쪽으로 반응하게 되어 있구나 이것은 내가 만든 내 삶의 코드예요. 이 방향을 다른 사람이 대신 해 줄 수 없는 거예요. 부모도 안 됩니다. 왜 안 되냐면 부모가 자식을 낳을 때 유전자 자체를 자기하고 달리 물려줍니다. 똑같이 물려주는 것이 아니고 형제하고도 다르고 자매하고 다릅니다. 여성의 난자와 남성의 정자는 평생 동안 단 하나도 동일한 유전정보가 없어요. 왜냐면 수백만 년을 살아오는 과정을 통해서 동일한 유전정보는 죽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모든 생명체들은 유전자를 달리해서 보내주게 됩니다. 이렇게 달라지기 때문에 보고 듣고 이해하는 것이 조금씩 차이가 나도록 되어 있어요. 그래서 다른 사람이 말하면 다른 사람은 감정 손상이 전혀 안 일어나는데 나는 감정 손상이 일어날 수 있어요.  


감정을 누르거나 폭발하지 않도록, 표출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Q_그런데 그것이 감정을 삭이는 일과 어떻게 다른가요?


스님_감정을 삭이는 것은 ‘전제를 바꾸지 않은 것’이에요. 내가 절대적으로 옳은데 지금 다른 여러 가지 때문에 억눌리고 있는 것이죠. 이것이 병을 만듭니다. 그런데 이것도 틀린 것은 아니에요. 하지만 이것이 상대한테 갈 때는 다른 식으로 표출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자기 감정도 틀렸다라고 보지 말고 긍정해 줘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내가 틀렸다”라고 말하잖아요.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다른 기준을 두고 틀렸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감정을 누르게 되면, 이것이 속에서 효소 장치가 돼서 어느 날 폭발이 일어날 정도로 발효가 됩니다. 삭이면 발효가 돼요. 감정이 나오는 것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살아오는 과정에서 그렇게 나오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감정이 나올 때 딱 보고 밖으로 탁 나가는 순간에 이것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한테 갈 때부터 코드가 다르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하는 것이지 잘못하면 너 때문에 울었다 내가 알아주지 않아서 그렇다 하는 바보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왜 바보짓인가 하면 자신의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을 잘 살펴서 스스로 좋은 감정으로 가도록 해야지 이것을 대상(타인)을 통해서 하려고하기 때문에 실패하게 됩니다. 대상과 나는 같은 코드로 갈 수가 없어요. 반드시 어긋나도록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감정이 안 올라오는 평온한 상태를 좋은 상태(?)라고 생각한다. 매순간 내 의지와 관계없이 감정은 수시로 바뀐다. 이때 나쁜 감정이 올라오면 우리는 자기검열에 들어가게 된다. 하지만 스님은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이 올라오는 것이 자기 삶을 사는데 대단히 중요하다고 하셨다. 감정의 기복이 있는 것은 아주 정상적인 상태이며 그것이 잘살고 있는 것이기에 평온한 상태가 되길 바랄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 감정이 올라오는 그 자체를 인정하고, 더 이상 감정에 휘말리지 않는 훈련을 해야 한다.  


감정이 오고 가는 것에 휘말리지 않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Q2_저는 감이당 공부에서도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사주명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그리고 스님께서는 사주에 스님이 될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스님_저는 사주를 안 봐서 모르긴 한데 이렇게 떨어져 있으면서도 가족이라든지 뭐 이런 것들이 강하게 나오지 않고 떨어져 사는 것을 편안하게 생각할 수 있는 그런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별로 애틋한 것이 없어요. 부모가 굉장히 속이 아파도 나는 별로 속이 안 아픕니다.(하하하) 사주에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는 모르지만 성격상 혼자 살아도 될 만하고, 두 번째 출가를 해서 한 20년은 더 산 것 같습니다. 왜 더 살았냐면 제가 20대 초반에 소주를 먹으면 몇 잔까지는 괜찮은데 정해진 양을 넘어가면 막 어디를 돌아다니다가 그때부터 정신이 없어요. 어느 날은 집에 와 있기도 하고 어느 날은 길거리에서 자고 있더라고요. 그러고 나면 다음 날 아침 한 10시쯤 깹니다. 그때부터 술이 취하기 시작하는데 방 천장이 계속 돌아요. 뱃속에 있는 것을 계속해서 토하기를 오후 4-5시까지 하고 나면 좀 편해집니다. 어떨 때는 온몸에 빨간 반점이 생기기도 하고 서서 다닐 수가 없어서 기어 다녔어요. 요즘 대학생들이 MT가서 술 먹고 죽은 얘들이 있죠, 아마 그런 얘들이 나 같은 얘들일 거예요. 저도 사회생활을 했으면 술 먹고 하다 진작 죽었지 살아 있겠습니까. (하하하) 그래서 난 인연이 출가 인연인지는 모르지만 다른 사람이 저를 볼 때는 가족애가 없는 순 불효막심한 놈이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그것은 서로 감정 층이 다른 거예요.


"혼자 살 수 있는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유전자 중에 전성유전이라고 부모의 세포핵 속에 들어있는 유전자가 있는데 이 세포핵 속의 유전자가 밖으로 표현되어야 하는데 표현되는 것을 결정하는 것을 후성유전이라고 합니다. 후성유전은 수정이 될 때부터 시작합니다. 정보를 받아들이는 것은 부모가 정소와 난소에 만들어 놓았다가 자기 후손한테 그대로 핵으로 XY가 만나서 물려줍니다. 이 안에는 어떤 유전자를 켜고 끌 것인가는 아직 결정을 안 해서 물려줍니다. 그다음에 켜고 끌 것을 누가 결정하냐면 수정란, 자기가 결정을 합니다. 그래서 이제 엄마 뱃속에 있는 양수에 환경조건, 엄마가 먹는 밥에 조건, 엄마가 생각하는 조건, 가족의 조건, 이 사회의 조건, 몸의 조건 이런 것에 따라서 후성유전이 옵니다. 그러니까 사주 같은 것도 전성유전에서 보는 것은 크게 영향은 없는데 후성유전에서 보면 어떤 유전자를 켜고 끌 것인가가 그 수정란이 어떤 부모 밑에서 어떤 환경을 가지고 어떤 때에 태어났느냐가 영향을 미칠 수 있어요. 그래서 그것도 100%로는 아니지만 약간의 영향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사람을 살펴보는데 도움이 됐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태아의 성별이 결정되는 것은 임신 6주가 되어서야 결정됩니다. 그런데 XY 유전자를 주어도 이 유전자가 변이를 일으켜 성을 결정하는 Y 영역에서 남성호르몬이 나와야 되는데 6주가 지나도 남성 호르몬이 안 나오도록 변이가 되어 여성이 되는 경우도 있어요. 또 XX를 타고 났는데 남성이 된 사람도 있어요. 성 결정, 즉 남성을 결정하는 호르몬이 Y 염색체에서 나와야 하는데 이 유전정보가 X로 가 있는 경우가 있어요. 그래서 XX가 남성이 되어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이런 경우는 내부적 이상으로 후손을 낳을 수가 없어요. 앞에서도 말했듯이 임신 6주 사이에 거의 안 일어나지만 외부에 다른 어떤 조건이 들어와 유전체를 변이 시켜버리면 부모한테 받을 때는 정상적으로 받았는데 남성이 여성으로 또 여성이 남성으로 바뀔 수도 있는 것예요. 이런 일이 드문 이유는 부모의 난소와 정소는 방화벽처럼 벽이 딱 쳐져 있어서 부모가 아무리 술을 많이 마시거나 아무리 천재소리를 들을 정도로 똑똑한 머리를 가지고 있어도 정소나 난소에 들어가서 영향을 주지는 못합니다. 자식에 자식 그러니까 손자 때에나 약간의 영향을 줄 수 있어요. 아주 극한에 몰렸을 때 거의 죽을 정도까지 갔을 때만 방화벽을 뚫고 유전자 변이를 시켜 놓아요.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일어나지 않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주팔자라고 하는 것도 일부분으로 자기를 볼 수 있는 것도 이런 것에서 이야기가 될 수 있어요. 과학적 사실이 아닌 것이 아니고 그때는 요즘 말하는 과학적 지식은 알지 못했지만 살아온 과정 중에서 그렇게 읽혀졌는데 그런 일들이 요즘에 발견된 이런 사건들과도 연결이 되는 거죠.




Q3_결혼해서 살면서 가장 큰 문제가 청소 문제였어요. 저는 깔끔해야 일을 할 수가 있는데 남편은 깔끔하면 일이 진전이 안돼요.


스님_그러면 집에서 공간을 나눌 수 있는지 없는지를 빨리 생각해서 남편을 지저분한 방에서 살 수 있도록 공간을 만들어 줘야 돼요.


저는 이 정도 어질러진 공간이 편안합니다.



Q_그래서 그런 것도 했었어요. 남편이 지방으로 전출가게 돼서 일주일마다 가보면 저는 지저분한 것 밖에는 안 보이는 거예요.


스님_그렇죠. 내가 잘한 것처럼 보이지요. 엄청 잘못했어요.


Q_내려가서 이틀 동안 계속 청소하고 정리하다가 올라오는 거예요. 제가 청소만 하면 모르겠는데 살림에 직장생활까지 하다 보니 똑같이 돈을 벌면서 내가 너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스님_그렇죠. 본인이 잘못했구먼.…. 왜 남편은 억울하다고 안 생각했겠습니까. 아내가 치워놓으면 얼마나 불편했겠어요.


Q_그런데 우리가 일단 무엇을 하려면 주변이 정리가 되지 않으면 그다음은 아무것도 못하잖아요.


스님_대부분 그런 것을 잘 해내면 좋다고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러니까 청소를 하고 다음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보살님이 세상하고 만나는 방법이에요. 그러니까 보살님한테는 아주 옳은 이야기입니다.  전혀 틀린 이야기가 아닙니다. 자 그렇게 되면 쓰임도 좋지만 내가 그 공간에 있으면 편해요. 지저분하면 불편하잖아요. 남편은 깨끗하면 불편해요. 자 그런데 우리가 인생을 불편하자고 삽니까 편하자고 삽니까? 기본적으로 편 하려고 살잖아요. 자 그러면 아내가 남편한테 불편한 공간을 계속 만들어 주면서 “당신은 왜 나한테 고마움을 잘 못 느끼고 이렇게 좋은데서 불편을 느끼냐” 라고 하면……. 보통 사람한테 이야기하면 아내가 잘했다고 말하니까 말도 못하고 속으로는 불편한 인생을 사는 거예요. 이상하잖아요. 나는 남편한테 정말 최선을 다해서 좋은 공간을 만들어 주려고 했는데 그 안에 들어온 남편은 정작 불편한 거예요.


Q_그러면 안 고쳐지면…….


스님_그걸 고치려고 하면 안 되는 거예요. 어떤 집에 가면 안 좋은 예인 것 같지만 거실 한 공간을 커튼을 만들어서 자기 공간을 확보하고 살더라고요. 그렇게 해서 적당히 불편하면 같이 살면 되지만 그 불편이 같이 있는 강도를 넘어서면 한 평 자리라도 분리된 공간을 만드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입니다. 아니면 베란다에라도 그런 공간을 만들어서 그곳에서 마음대로 하라고. 그러고 나면 깨끗한 곳도 편해져요. 항상 깨끗한 것은 불편하지만 지저분한 곳에서 1시간이고 2시간 자기를 정화 합니다. 그 사람은 지저분한 곳이 자기감정을 정화시키는 곳이에요. 그렇게 정화하고 오면 편해요. 그런 것을 이제 나도 한 3일 치우고 그 사람은 계절별 한 번 치우면 못살아도 한 달에 한 번씩만 하면 돼요.


어지러운 것을 못 참는 것이나 치워진 것을 못 참는 것이나 둘 다 감정의 강도가 비슷한 거예요. 그런데 어떻게 한 겁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옳고 그름이 없어요. 다른 사람들이 다 말할 때는 보살님이 잘했다고 말을 하죠. 청소를 하고 살아야 된다는 진리 같은 전제가 있잖아요. 청소를 일 년에 4번만 해도 된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다 이상하게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데 일 년에 4번하고 살아도 됩니다. 평생 안하고 사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지만 어째든 나는 게으른 측에 드니까 남편이 금방 이해가 됩니다. (하하하)



이 부분에서 얼마 전에 읽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이 생각났다. 헉은 과부댁의 편안한 침대와 격식에 맞게 차려진 맛있는 음식을 불편해 한다.(왜!) 헉은 음식이 통에서 이것저것 뒤섞여 서로 어우러지는 맛이 더 낫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잠자리는 편안 침대보다 숲으로 들어가 나무 위에서 자거나 빈 설탕 통속에 들어가서 자는 것을 편하게 느낀다. 그래서 모두가 잠든 후에 창문을 통해 몰래 집을 나와 숲에서 자다 아침이 되면 다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헉은 이전의 자신의 삶과 현재의 삶을 왔다 갔다 하면서 전혀 적응할 수 없어 도망까지 쳤던 과수댁 생활을 해나간다.


이번 멘토링에서는 서로가 다른 존재임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다. 나와 코드를 맞추기 위해 아니면 그와 코드를 맞추기 위해 사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며 그것이 바로 소통에 가장 큰 장애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서로 어긋날 수밖에 없는 존재들. 이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수행인 것 같다. <끝>


글/정리_박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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