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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원일의 락락(樂樂)

'영적 미니멀리즘' - 아르보 패르트의 <프라트레스(Fratres)>

by 북드라망 2016. 4. 26.


고백과 반성의 음악

 <프라트레스> - 아르보 패르트



슬프다

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

모두 폐허다


황지우 시인의 시 「뼈아픈 후회」의 도입부다. 게으름, 나태함, 고의적 실수. 깨진 신뢰와 어긋나는 약속. 잘난 척에 폭력에 가까운 말로 남에게 상처를 주고 돌아선 후. 왜 그랬냐고 스스로를 한심해하며 책망할 때마다, 늘 이 시구가 머릿속을 맴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 중 하나일지 모를 작곡을 한답시고 작업실에 처박혀 마치 ‘고도’(사무엘 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처럼 결코 쉽게 찾아오지 않는 음악을 멍하니 기다리다가 마감 날짜를 지나 무심히 무섭게 흘러가는 시간 앞에서 속수무책일 때도 잘 하고자 하는 마음뿐인 가슴은 폐허가 되어 버리곤 한다.


그렇게 나를 질책하고 다시 추스르기 위한 시간에 가장 많이 들었던 음악이 작곡가 아르보 페르트의 음악<프래트레스(Fratres-형제들)>였다. (원래 '프라트레'는13세기 설립된 장미십자회의 13번째 회원이 된 전설적 신비주의자 크리스천 로젠크로이츠(Christian Rosenkreutz)와 그의 일곱 제자들(형제들)을 가리키는 말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누구나 뼈아픈 실수를 하고 뼈아픈 후회를 한다. 그 실수와 후회로부터 무엇인가 배우고 일어서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부분 자기 비하나 타인에 대한 원망으로 빠져들기 쉬울 것이다. 그런 순간이 여러분에게 찾아왔을 때 한번쯤 이 음악을 들어보길 권한다. 계속 듣고 있다 보면 어떤 울림이 들려올 것이다.




에스토니아의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Arvo Pärt, 1935년 9월 11일 ~ ). 소비에트 연방에 의하여 조국 에스토니아가 강제 점령되고 그 이듬해인 7세 때부터 음악을 시작하여 14, 15세부터 본격적으로 작곡을 하기 시작했다. 청년이 되면서 쇤베르크의 12음 기법과 쇼스타코비치, 프로코피에프, 바르톡 같은 위대한 러시아와 헝가리 작곡가들의 기법을 공부하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민하던 중 점차 소비에트 공산당에 염증을 느껴가던 아르보 패르트는 러시아 정교회의 영적 신비와 고대 그레고리안 성가, 르네상스적 폴리포니를 발견하고 빠져들게 된다.


그에게 구원의 빛처럼 재발견된 이 음악들을 더욱 깊이 탐구하였고 이 과정을 통해 그는 마침내 자신만의 새로운 음악 어법을 찾아내게 된다. 사실 다른 음악들에 비하여 매우 소박하고 단순해 보이는 그 중세적 음악의 재료들을 가지고 아르보 패르트는 자신의 신비한 색채감을 더해 간결하고 섬세하고 충만한 음악으로 빚어냈다.


이제 그가 발표한 새로운 음악들은 현대 클래식 음악계에서 거의 신드롬에 가까운 현상을 불러일으키며 널리 알려지게 되고, 그의 음악적 스타일로 대표되는 장르를 일컬어 '영적 미니멀리즘'이라 부르기 이른다. 물론 이 현상의 이면에는 오늘날 유럽에서 가장 인정받는 예술 음악 레이블로 자리 잡은 ECM 레코드 회사의 일관된 예술 정책과 홍보도 빼 놓을 수 없을 것이다,



“만일 처음부터 시작하려는 노력이 계속되지 않았다면, 예술은 없을 것이다.”

- 아르보 패르트


훗날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소리의 현상에 관하여 그는 스스로 “tintinnabular(틴티나불라-종의 울림)”라고 명명하였다. 화엄음악제에서 언젠가 그의 음악을 소개하려고 오래 전부터 생각해오고 있었기에 ‘종의 울림’을 추구한다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생각해 보았다. 침묵은 소리가 식별되기 이전의 근원적 상태인데(그렇다, 침묵은 무음이 아니라 어떤 근원적 상태에 가깝다) 그 경험 안에서 정갈한 하나의 음 또는 두 개의 음이 저절로 들릴 때가 있다. 이런 두세 개의 음만으로도 충만하고 아름다운 음악을 작곡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것은 천천히 퍼져가는 종소리나 징소리 또는 개방현의 울림 같은 강하고 빠르지 않은 리듬과 간결한 소리의 미세한 울림 속에서 차이를 창조해내는 반복 속에서만 경험된다. 두세 개의 음으로만 이루어졌으나 충분히 그 상태에 머물고 싶게 만드는 충만하고 아름다운 음악. 깊은 침묵 속에서 각성된 의식 상태에 들려오고 울려 퍼지는 소리는 마치 하나의 종소리와 같다는 저 말 속에는 음악의 신비에 관한 깊은 경험이 반영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아르보 패르트는 현대인들의 산만한 정신을 침묵시키고 '하나됨'을 갈구하는 양심 내면의 소리를 음악으로 지어내는 작곡가라 할 만 하다.


이것(종의 울림)은 내가 스스로 질문에 관한 대답들을 찾을 때 종종 서성이는 지역과도 같습니다.  ―내 삶에서, 내 음악에서, 내 작품들에서, 내 어두운 시간들 안에서, 오직 이것만이 나에게 의미를 줄 수 있다는 가렬한 확신을 저는 가지고 있습니다.


이 앨범(본 음반에는 <프라트레스>뿐 아니라 아르보 페르트의 대표적인 관현악곡인 <타블라 라사(빈 서판)>와 <심포니 3번>이 수록되어 있다) 감상을 추천하는 곡은 <프라트레스>. 머리글에서 말 한대로 나에겐 고백과 반성의 음악이다.



원곡은 1982년 12대의 첼로를 위한 버전이지만, 바이올린 협주를 위해 개작된 이 버전은 마치 장미 나무의 날카롭고 거친 가시들이 양심을 할퀴고 본성을 헐벗게 만드는 듯하다. ‘길 샤함(Gil shaham)’이 활대로 바이올린 현을 오르내리며 켜는 소리들은 가시나무의 잔가지들처럼 정교하게 들려온다.


작품은 크지 않지만 작은 격렬함으로 움직이는 바이올린의 소리로 시작된다. 바이올린-현의 소리-바이올린-현의 소리-타악기의 단순한 울림의 형식으로 반복되는 사이 음량은 점점 커져간다. 바이올린이 현과 주고받으며 점점 장중하고 거대한 음향으로 변화해간 끝에 이윽고 조용하게 침묵으로 빠져드는 듯 작품은 마무리된다.


이 곡을 통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빛의 색채와 종의 울림이란 도대체 어떤 소리인지 충분히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결코 감상하기 어렵지 않은 음악들이며 가을밤 혼자 아르보 패르트의 음악에 잠겨 소리의 환희를 통해 이미지와 색채를 경험하는 감상시간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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