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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하고 인사하실래요 ▽/씨앗문장

낮에는 조선의 백수, 밤에는 한국의 백수와 놀았다더라

by 북드라망 2016. 2. 29.


백수와 함께한 시간,
晝朝白手 夜韓白手
(주조백수 야한백수)

― 낮에는 조선의 백수, 밤에는
한국의 백수와 놀았다더라



가수의 운명이 히트곡의 노랫말을 따라간다는 이야기가 있다. 〈세월이 약이겠지요〉라는 곡으로 데뷔했던 송대관 아저씨가 세월의 약발을 받고 비로소 〈해뜰 날〉로 떠버렸던 것이나 장덕(이라고 아실랑가들 모르겠네요;;;)이 자신의 짧은 생을 예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예정된 시간을 위하여〉란 곡을 남기고 요절했던 것이 그러한 예로 회자되곤 했다(아, 회자된 것조차 과거형이라니;;;). 앗, 그러고 보니 가수는 아니지만 유재석과 서해안고속도로가요제의 히트곡 〈말하는 대로〉 역시 비슷한 예다. 어떤 이들은 그 원인을 말의 힘에서 찾기도 한다. 가수가 곡을 받고 그 노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이삼천 번은 부른다고 하는데, 그러면서 노랫말을 통해 자기 암시를 거듭하고 그것이 자신의 인생이 되어 버린다는 것이다(아, 이런 에피소드는  『낭송 천자문/추구』, 『낭송 명심보감』, 『낭송 대학/중용』이 3월 10일에 출간되면 써먹어야 하는 것인데! 하지만 당장 궁하니 어쩔 수 없다;;;)



이쯤에서 들어보는〈말하는 대로 〉위 영상에서 2분 33초부터 들을 수 있다.


원고를 이삼천 번이나 읽은 것도 아닌데, 만들고 있던 책의 메세지가 전이된 행운(?)이 나에게도 찾아왔다. 그 책의 제목은 『18세기 조선의 백수 지성 탐사』. 이 책을 만들면서 나는 출근해서는 18세기 조선의 백수 농암 김창협·성호 이익·혜환 이용휴·담헌 홍대용과 노닐었고, 퇴근해서는 21세기 대한민국의 백수 중 한 명과 놀았다. 바로 내 남편이다. 이 책 때문에는 당연히 아닌데, 공교롭게도 거의 이 책의 편집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무렵, 남편은 ‘드디어’ 백수가 됐다. 만으로 10년을 꽉 채워서 회사를 다니는 동안 남편은 몇 번인가 탈출을 시도했으나 결국 미수에 그치고 말았었는데 ―실은 그래서 나 역시 이번에도 못 나오겠지, 하긴 했었다 ― 진짜로 사표를 낸 것이다.


1차적인 퇴사 사유는 조선의 백수 지성 4인방 중 (감히) 농암과 비슷하다. 농암은 환국 정국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사된 아버지 김수항의 유언에 따라 목숨을 보전하기 위해 백수가 되었다. 살기 위해서였다.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남편의 회사는 감사를 받아야 했고, 남편은 기본 업무도 과중한데 감사 업무까지 떠맡게 되었다. 아침 8시까지 출근하기 위해 늘 7시가 되기도 전에 집을 나서야 했고, 평상시 퇴근이 밤 10시, 11시였다면 감사를 받으면서는 새벽 1시도 좋고, 2시도 좋았다. 불이 활활 타는 사주인 데다, 생활이 그 지경이니 <미생>의 오과장처럼 시뻘개진 눈으로 집과 회사를 오갔다. 오후가 되면 가슴이 뜨거워지고 심장이 터질 것 같다는 말도 자주했다(사주가 불덩이니 내가 얼마나 쫄았겠는가!). 잠들기 전에는 “여보, 나 회사 그만둬도 돼?”를 몇 번이나 물었고, 나는 한 번도 빼놓지 않고, “당장 내일부터 나가지 마”라고 대답해주었다. 내가 누군가. 직업을 오래 가져본 적이 없는 아빠 밑에서 자란 실전에 『18세기 조선의 백수 지성 탐사』라는 이론을 갖춘 근자에 보기 드문 양처(良妻)가 아닌가. 나의 응원(?)에 힘입어 남편은 감사를 마치고 회사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나에게 ‘살려줘서 고맙다’고 했다.


마침내 백수가 된 남편은 그로부터 방탕한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늦게까지 놀다가 해가 중천에 떠도 일어날까 말까, 하루 종일 거실 바닥과 일체가 되어 시선은 TV에 고정되어 있고, 운동이라고는 리모컨을 만지는 정도?……는 거짓말이다. 실은 나 역시 이것이 백수 남편의 모습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대개들 그렇게 생각하듯이, “백수라는 말에서 풍기는 뉘앙스는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오죽하면 건달이란 말이 자동으로 뒤따르겠는가.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노는 사나이, 백수건달!”(『18세기 조선의 백수 지성 탐사』, 21쪽)이라고 나도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물론 백수가 되고 시간도 생겼으니 잠시 여행도 다녀오긴 하였으나, 그러고 나선 아침엔 늘 내가 일어나는 시간에 맞춰 일어났다(실은 남편이 깨운다;;;). 내가 씻는 동안 아침을 준비한다. 백수가 되고 나서야 남편은 비로소 아침밥을 제대로 먹기 시작했다. 참나, 돈을 벌 때는 시간이 없어서 밥을 못 먹고 다녔다(지금은 남편이 다시 非백수 상태가 되었는데, 그래서 아침을 못 먹는다;;;). 내가 출근 준비를 마치고 나오면 거실에서 신문이나 책을 보고 있다가 나와 함께 집을 나와서 자기는 도서관으로 향한다. 아침마다 황홀(?)해하며 이런 세상이 있는 줄 몰랐노라고, 회사를 다니지 않으면 세상이 끝나버릴 줄 알았었다고 놀라워했다. 아무튼 그러면서 자기가 새로 시작할 일을 준비했다. 백수가 되니 좋지 않은 점은 휴일이 따로 없다는 것이었다. 회사를 다닐 때처럼은 타이트하게는 아니었지만 남편은 또 일에 매달렸다. 회사를 다닐 때에도 휴일에 일을 해야 할 때가 많았다.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그런데 백수가 되고 휴일에 일을 하고 있던 어느 날인가 남편이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아, 나는 그때 (또 감히) 남편에게서 홍대용을 보았다. 하고 싶은 일이 있었기에 아예 관직을 돌아보지도 않았던 사람, 천체를 관측하고, 중국어를 배워 중국을 여행하고, 여러 사람들을 만나고, 과학 기구를 만들고, 악기를 연주하고…… 세상이 바라는 스펙과는 전혀 상관없지만 자신이 원하고 하고자 한 일을 ‘즐겁게’ 했던 사람, 홍대용. 그래, 홍대용처럼 살아라. 내 홍대용 아부지처럼 뒷바라지 해주마, 그런 생각도 했던 것 같다(아, 콧노래가 뭐라고;;;).


그래, 여보. 내가 뒷바라지 해줄께.


하지만 남편에게선 끝내 이익과 이용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쌀 한 톨 만들어 내지 못하고 글만 읽는 자신이 부끄러워 소찬(素饌)을 생활화했던 성호 이익과 달리 “나는 백수니까^^” 하며 이 사람 저 사람이 불러서 사주는 산해진미들을 얻어먹고 다녔다. 다만 내 앞에서는 그래도 약간의 이익 코스프레를 했다. “백수가 이래도 되나…” 하며 먹고 싶은 메뉴 앞에서 망설이는 시늉을 했다. 참 식욕이 왕성한 백수였다(;;). 이용휴는 평생 백수로 살며 문장으로 일세를 풍미했으나, 남편은 백수가 된 후 자신의 문장력을 실감하고 말았다. 그래도 붓을 꺾는 대신 글쓰기 책도 보며 닥치는 대로 쓰고는 있다.


백수는 말 그대로 맨손, 빈손이다. 아무것도 없을 뿐만 아니라 아무것도 아닌 상태. 어쩌면 그 어떤 것도 아니기를 원하는 상태. 세상이 가라는 길을 갈 수도 없지만 한편으로는 일부러 그 길을 가지 않은 채 머뭇거리는 순간이 백수의 상황이다. 그래서 백수라는 존재성은 수동이든 능동에 의한 것이든 세상을 따라가지 않고 자기대로 살아 내게 한다. 백수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그 무엇도 될 수 있지만, 그 무엇도 되지 못할 수 있다. 그래서 위기라면 위기이고 기회라면 기회의 순간이다.

『18세기 조선의 백수 지성 탐사』, 34~35쪽


남편은 초중고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고, 군대를 다녀오고, 대학을 졸업하고, 또 운 좋게 바로 직장생활을 했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세상이 가라는 길”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고 살다가 회사를 그만두고 백수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세상을 따라가지 않고 자기대로 살아 내게 한” “백수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잘 보낸 듯하다. 다시 백수가 아닌 상태가 됐기 때문이 아니라, 불안해하지 않고 그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 기술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게는 언제 그런 날이 올까?(아니 그렇다고 해서 제가 북드라망을 그만두고 싶다는 뜻은 아니옵고;;;) 언제가 되든 기다리고 있겠다. 백수 지성의 노하우가 이 손 안에 있으니!


"종이창이 달린 흙 벽집에서 평생토록 벼슬하지 않는 포의로 시나 읊으며 살리라." 백수의 시간을 불안해하지 않고 보낼 수 있는 백수의 노하우!!


18세기 조선의 백수 지성 탐사 - 10점
길진숙 지음/북드라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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