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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드라망 이야기 ▽

독자님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보람찬 연휴를 위한 '백수 지성 탐사' 추천!

by 북드라망 2016. 2. 5.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에도 계속되는 백수 지성 탐사!




지난 설에는 입춘과 설이 멀찍이 떨어져 있더니, 올해는 입춘 쇠고 네 밤만 자면 바로 설이 오네요. ‘아직은 새해가 아니야’ 하는 핑계를 댈 수 있는 날이 그만큼 당겨졌다고 생각하니 새해라고 뭐 큰 결심을 한 것도 아닌데도 괜히 아쉽습니다. 내일과 모레는 주말이니 원래 쉰다 치더라도 8일부터 10일은 설 연휴라 11일에야 블로그에서 다시 뵐 것이라 생각하니 또 아쉽구요. 연휴 중에라도 저희 블로그 잘 살아 있는지 가끔 들어오셔서 확인해 주셔요.^^


이번 연휴는 주말이 붙어서 꽤 긴 편인데요, 혹시나 이 긴 연휴를 어찌해야 하나 고민도 하시면서 어쩌면 근처에 계실지도 모르는 분들을 위해 18세기 조선의 백수 지성 4인방의 흔적을 소개해 드릴까 합니다. 시간이 나시면 슬슬 한번 다녀오시는 것도 괜찮겠지요? 물론 그전엔 『18세기 조선의 백수 지성 탐사』를 읽고 가시는 게 좋구요.^^



서울 동(북)부, 경기 동북부 지역에 계신다면……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 소재의 김창협묘와 석실서원 터


농암의 아버지 김수항이 죽으면서 아들 형제들에게 남긴 유언은 “현요직을 피하여 몸을 편안히 하고 집안을 보존하라”는 말이 전부였다. …… 농암은 아버지의 유언을 지켰다. 기사환국이 일어난 후부터 죽을 때까지 시골에 은거했다. 처음엔 경기도 영평에서 거주했고, 이후 경기도 양주의 석실서원에서 아우 삼연 김창흡과 함께 학문을 연마하고 제자를 기르다 그 근처 삼주三洲에서 생을 마감했다.

길진숙, 『18세기 조선의 백수 지성 탐사』, 북드라망, 2016, 51쪽


아시는 바와 같이 농암 김창협은 아버지 김수항이 사사된 후 백수 선비의 길을 걷습니다. 이후 농암이 동생 삼연과 함께 학문에 매진하며 제자를 길러낸 곳이 석실서원인데요. 석실서원은 농암의 증조부이자 병자호란 당시 대표적 척화신(주전파)이었던 김상헌을 기리기 위해 세워졌던 서원이었습니다. 그리고,


담헌은 열두 살에 노론 산림으로 낙론의 종장이었던 미호渼湖 김원행金元行(1702~1772)의 제자로 들어간다. 김원행은 몽와 김창집의 손자요, 농암 김창협의 질손으로 그 학문을 계승했으며, 담헌의 종조從祖인 홍귀조洪龜祚의 사위였다. 즉 김원행은 담헌에게 5촌 고모부가 된다. 담헌은 김원행이 이끌던 석실서원에서 과거를 위한 공부가 아니라 자기 실현을 위한 학문을 연마했다.

길진숙, 『18세기 조선의 백수 지성 탐사』, 225쪽


담헌 홍대용 역시 어린 시절 이 석실서원에서 공부를 합니다. 즉, 석실서원은 18세기 노론 학맥의 중요한 거점 구실을 했던 것이지요. 하지만 현재 석실서원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폐허가 되었습니다. 당시의 서원철폐령이 워낙 무시무시하기도 했다지만 특히 석실서원은 세도정치 가문이었던 안동 김문의 가묘와도 같은 기능을 했기에 더 심하게 훼손되지 않았까 싶네요. 지금은 석실서원 터를 알리는 비석만 하나 세워져 있구요. 혹시 자동차를 가지고 가시는 분이라면 내비게이션에 ‘조말생 묘역’이라고 검색하시는 게 편리하실 것 같습니다. 실은 석실서원 자리에 여말선초의 관리이자 얼마 전 <육룡이 나르샤>에서 이방원(유아인 분)을 도우며 강렬한 첫인상을 남긴 조말생의 묘가 들어서 있기 때문입니다. 때는 1900년, 자신의 묏자리를 찾고 있던 고종이 조말생의 묘가 명당 자리임을 간파하고 ‘찍는’ 바람에 조말생의 묘가 석실서원 자리로 이장되었다고 합니다. 좌우간 조말생의 원래 묏자리가 얼마나 명당이었는지는 몰라도 석실서원 자리도 그에 못지않아 보입니다.



(무려) 겸재 정선이 그린 <석실서원도>인데요, 강 건너편에서 석실서원을 바라보는 구도이고, 요즘 현대인들이 찍은 사진(출처: 경기문화재단 홈페이지)은 이렇습니다.



한강이 탁 펼쳐지는 전망! 이렇게 뷰가 좋은 곳에서 공부에만 매진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랍네요! 좋은 경치를 보니 자동으로 (최근 새로 사귄 부여 알밤) 막걸리와 전을 떠올리는 저란 여자는 그래서 지성을 탐구하는 백수가 되지 못하고 회사를 다니고 있지요(응?). 아닙니다, 아닙니다. 못 보신 걸로 하시고요. 저 앞에 보이는 한강의 별명이 바로 미호(渼湖)라고 합니다(미호는 김원행의 호였지요^^). 근처 사시는 분들은 한강변을 따라 자전거 타고도 많이 오가시는 것 같았습니다. 저희 집에서 차 타고 한 40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지만 저는 (무려^^;) 며느리라 설 연휴에는 힘들고, 봄 되면 한번 다녀와 볼까 합니다.



충청남도 북부, 경기 남부 쪽에 계신다면……

충남 천안시 동남구 수신면 소재의 홍대용과학관

천안, 하면 대개 독립기념관을 떠올리실 테지만, 『18세기 조선의 백수 지성 탐사』를 읽으신 여러분들은 이제 홍대용과학관도 떠올리셔야 합니다! 담헌이 농수각을 지어 천체를 관측했듯, 담헌이 태어난 바로 그 마을에 세워진 홍대용과학관에서도 천체관측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야간 천체 관측인만큼 미리 예약을 하셔야 하고요(요기서요), 설 전날과, 설날(2/7~8일)은 휴관이라고 합니다.


총 4층으로 되어 있는데, 1층에는 해시계, 혼천의 등의 천문기기가 전시되어 있고 천체투영관에서는 가상의 별자리와 천문영상을 관람할 수 있고요. 2층에는 기획전시실, 3층에는 홍대용주제관이 있어 담헌의 일생과 업적을 관람할 수 있고, 과학체험관이 있어 무중력체험 같은 것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4층이 천문대로 여기서 천체 관측을 한다고 하네요.



홍대용과학관이 있는 언덕 아래로 남양 홍씨 집성촌 내에 담헌의 생가터가 있다고 합니다. 지금은 주춧돌만 남아 있는 상태고요, 『담헌서』 내집 3권에 실려 있던 시 「건곤일초정주인」의 일부가 생가 터 앞에 현판으로 세워져 있습니다. 역시 같은 동네에 홍대용의 묘 역시 단정히 정리되어 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홍대용과학관 역시 저희 친정이나 시댁에서 차로 한 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있지만 역시나 저는 (무려) 며느리이기에 설 연휴 때는 힘들 것 같습니다(전 8일에 서울에 다시 돌아올 거니까요;;). 다…다음 기회에;;;

그리고 이익과 이익의 조카이기도 했던 이용휴의 자취를 더듬어볼 수 있는 안산의 성호이익기념관도 소개해드리려고 하였는데 안타깝게도 2월 7일부터 10일까지 계속 휴관이라고 합니다. 요기는 홈페이지로라도 둘러보시라고 주소 남겨놓고 갑니다.^^


http://seongho.iansan.net/



드디어 설입니다! 양력과 입춘을 지나 이제 빼도 박도 못하게 새해가 됐네요. 그러니 이 마지막(?) 새해를 맞아 아직 못 받으신 복 싹싹 긁어서 마저 받으시고, 2월 10일에 다시 뵙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18세기 조선의 백수 지성 탐사 를 책으로 만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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