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공자의 제자 중 가장 성공한 자공의 공부법, '절차탁마'


절차탁마(切磋琢磨)하는 자공




1, 그는 호련(瑚璉)이다


『논어(論語)』에 자로(子路) 다음으로 가장 많이 나오는 인물이 바로 자공(子貢)이다. 그의 이름은 단목사(端木賜)로 위(偉)나라 사람이며 안회와 동년배이다. 그래서인지 자공은 안회와 종종 비교된다. 공자가 호학자(好學者)로 평했지만 평생 관직에 나간 적도 없고 가난했던 안회와 달리 자공은 공자의 제자들 가운데 가장 부유하고 출세한 제자 중 하나였다. 또한 말이 별로 없던 안회에 비해 그는 언변으로 유명했다. 그래서 공자는 노나라의 실력자였던 계강자가 그의 제자들에 대해서 물을 때 “사(賜)는 사리에 통달했기 때문에 정사(政事)에 종사할 만하다.”고 했다. 그는 뛰어난 외교술로 노나라와 위나라에서 높은 관직에 올랐다.




그러나 『논어』에는 자공의 뛰어난 점을 쉽게 찾을 수 없다. 자공의 활약은 『사기(史記)』 「중니제자열전」에 등장한다. 노나라가 제나라에 침공을 당할 위기에 처하자 공자는 자공을 불러 일을 맡겼다. 자공은 제(齊), 오(吳), 월(越) 등을 돌며 유세를 펼친다. 그의 활약으로 노나라는 제나라 침공의 위협에서 벗어났다. 그런데 이 때 자공의 유세로 오나라는 제나라를 침략하여 승리한 후 진(晉)나라를 쳤다. 하지만 오는 진에게 패하게 되고, 힘이 약해진 오를 월나라가 멸망시켰다. 『사기』에는 이를 “자공이 한 번 뛰었더니 각국의 형세에 균열이 생겨 십 년 사이에 다섯 나라에 큰 변화가 있었다.”라고 적고 있다. 자공은 이재에도 밝아서 돈을 불리는 재주가 있었다. 이 덕에 그는 꽤 많은 부를 쌓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논어』에도 노나라의 대부였던 숙손문숙(叔孫武叔)은 자공이 공자보다 뛰어나다고 평했다. 물론 자공은 펄쩍 뛰었지만 말이다.


자공이 물었다. “저는 어떤 사람인가요?”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그릇이다.”
자공이 말했다.“어떤 그릇인가요?”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호련이다.”
子貢問曰 賜也何如. 子曰 女器也. 曰 何器也. 曰 瑚璉也.
(자공문왈, 사야하여. 자왈, 여기야. 왈, 하기야. 왈, 호련야.)

『논어』. 「공양장」


공자는 그러한 자공을 “호련(瑚璉)”이라고 평했다. 호련은 제사에 사용하는 옥으로 만든 그릇이다. 당시 옥은 매우 귀한 보물이었다. 공자가 자공의 재주를 매우 높이 평가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논어』에 나오는 자공은 스승에게 계속 질문을 하고, 때때로 친구들을 비교하는 찌질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하나를 들으면 둘을 안다고 했던 자공은 도대체 무엇이 궁금해서 그렇게 계속 질문을 하는 것일까?



2,  자공이 질문이 많은 이유


어느 날 자공(子貢)이 스승인 공자에게 친구 둘을 가리키며 물었다. “자장과 자하는 누가 더 나은가요?” 공자는 “자장은 좀 지나치고 자하는 좀 모자란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자공이 “그러면 자장이 더 낫다는 말씀입니까?”하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공자는 “지나치는 것과 모자라는 것은 똑같다.”라고 대답해 주었다. 자공을 이야기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대목이다. 이런 질문을 하는 자공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선생님에게 저 친구와 이 친구 중에서 누가 나으냐고 질문을 하다니 이런 찌질이가 있나?


또 자공의 질문은 끝이 없다. 내용도 다양하다. 정치에 대해서도 묻고, 인(仁)에 대해서도 묻고, 친구에 대해서도 묻는다. 그는 그냥 대충 질문하지도 않는다. 구체적으로 자세히 묻는다. 한 번에 넘어가는 법도 없다. 하루는 자공이 정치에 대해서 물었다. 공자가 백성을 잘 먹이고 국방을 튼튼히 하고 백성들이 믿음을 갖게 하는 일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자공이 다시 질문한다. “만약 어쩔 수 없이 세 가지 중에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먼저 포기 할까요?” 공자가 군대를 먼저 포기하라고 대답해 주자, 자공은 또 질문한다. “그럼 둘 중에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공자는 배불리 먹이는 것을 포기해 해야 한다고 하면서 백성의 믿음이 없다면 정치는 제대로 설 수가 없다고 대답해 준다.


자공은 왜 이렇게 묻고 또 묻는 것일까? 자공이 우둔해서 스승의 말을 못 알아들어 계속 물어보고 있는 걸까?


스승님, 질문 있어요, 여쭐 것이 있습니다!!


자공이 말했다. “가난하지만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지만 교만하지 않다면 어떻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괜찮다. 그러나 가난하면서도 즐거워하며,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자만은 못하다.” 자공이 말했다. “『시경』에 ‘자르는 듯하고 가는 듯하며 쪼는 듯하고 닦는 듯하도다.’하였으니 이를 말함이군요.”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와 비로소 더불어 시를 말할 만하구나! 지난 것을 말해주자 올 것을 아는구나.”
子貢曰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子曰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 好禮者也.
子貢曰 詩云 如切如磋如琢如磨 其斯之謂與.
子曰 賜也 始可與言詩已矣 告諸往而知來者.

(자공왈, 빈이무첨 부이무교 하여.
자왈, 가야 미약빈이락 부이 호례자야.
자공왈, 시운 여절여차여탁여마 기사지위여.
자왈, 사야 시가여언시이의 고제왕이지래자.)

『논어』,「 학이」


그러나 자공은 공자의 말을 듣고 스승의 가르침을 금세 깨달을 줄 아는 명민함을 갖추고 있었다. 스승의 대답이 어떤 의미인지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공은 다시 질문함으로써 자기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옳은 것인지 계속 확인했다. 사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때 내 생각을 기준으로 듣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보면 같은 말을 하고 있지만 다른 의미로 이야기하고 있는 경우도 다반사다. 어쩌면 자공은 그러한 것을 경계한 것인지도 모른다. 묻고 다시 묻고, 그래서 생각의 덩어리가 아니라 쪼개고 갈아서 정교하게 다듬어질 때까지 물었던 것이다.



3, 자르고 쪼고 갈고 닦는다


공자가 죽고, 위나라의 재상이 된 자공이 친구 원헌(原憲)을 만나러 갔다. 위나라의 재상이 된 자공은 재상의 신분에 걸맞게 화려한 옷을 입고 고급 수레를 타고 갔다. 당시 원헌은 스승님이 돌아가시자, 세상을 등지고 숨어 살고 있었다. 원헌은 친구가 온다고 하자 의관을 정제하고 마중을 나갔다. 자공이 초라한 행색의 원헌을 보고 가난하여 병들었다며 그를 걱정했다. 그러자 원헌은 자공에게 “도(道)를 배우고도 실행하지 못하는 사람을 병들었다고 하는데, 나는  재물이 없어서 가난할 뿐이지 병든 것은 아니라네.”하고 대답했다. 원헌을 말을 듣고 자공은 매우 부끄러워했다. 초라한 행색의 원헌을 보고 무조건 안 됐다고 생각한 자신의 경솔함에 낯이 뜨거워졌다. 자공이 친구인 원헌을 만나러 갔을 때 그가 자기의 부나, 지위를 자랑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을 리 없다. 원헌의 초라한 행색을 보고 그는 진심으로 걱정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같이 공부한 친구인 원헌에게 그의 입장이 아니라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말을 한 것이 자공은 더 부끄러웠다. 앞서 스승님께 말하지 않았던가? 절차탁마(切磋琢磨), 항상 말과 행동을 자르고 갈고 쪼고 닦듯이 신중하게 해야 하는 것인데 말이다.


자공은 나름대로 성공한 인물이다. 공자가 ‘수양’을 강조했지만 어쨌든 당시의 공부가 관직에 나가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자공은 스승에 가르침을 잘 실현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가 구현하고자 했던 삶은 단지 성공한 정치가가 아니었다. 배움을 통해서 관직에 나가는 것뿐만 아니라, 자공이 되고자 했던 것은 스승이 추구했던 이상적인 인물인 ‘군자(君子)’였다.


당시 군자는 귀족 통치 계급을 지칭하는 것이었지만 공자는 군자를 단순히 혈통으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수양 통해 완성된 인격을 지닌 자로 새롭게 의미를 부여했다. 그래서 군자가 되려는 사람에게는 배움(學)이 중요했다. 그리고 배웠다면 그것을 익혀 실천(行)하는 것이 중요했다. 공자는 “군자는 그릇이 아니다.(君子不器)”라고 했다. 군자는 그릇과 같이 고정된 형태가 있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절차탁마’가 필요했다. 매순간 부딪히는 사건 사이에서 때에 맞추어 정밀하게 행동해야 했기 때문이다.


옥도 갈고 닦지 않으면 단지 돌일 뿐. 군자가 되기 위해서는 매 순간 '절차탁마'가 필요하다.



때로는 찌질하게 보였던 자공의 질문들은 자공의 그러한 배움의 자세로 볼 수 있다. 자공이 친구들을 공자에게 질문했던 것도 친구들의 모습을 통해서 자신을 돌아보기 위함이다. 누구는 과하고, 누구는 부족함이 있다면 모자란 것보다 과한 것이 나은 것인지, 아니면 모자란 것이 나은 것인지. 그래서 자공은 묻고 또 물었다. 자공의 그 많은 질문들은 스스로를 갈고 닦고, 다시 쪼아 군자가 되기 위한 자공의 노력이었다. 공자가 호련이라며 칭찬했던 자공. 그러나 자공이 진정으로 훌륭한 점은 그가 배움을 통해 높은 지위에 오르고, 많은 부를 쌓았다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군자가 되기 위해서 늘 자기를 갈고 닦은 그의 진실한 태도에 있다.


글_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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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애독자 2016.01.13 12:00 신고 답글 | 수정/삭제 | ADDR

    논어에 나오는 안회를 보면 “공부를 한다는 건 이렇게 무능해지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돈도 못 벌고, 벼슬도 못 하고, 장수도 못 해서 일찍 죽어버리고. 다만 스승한테 칭찬받는 거 외에는 아무 낙이 없는(스승의 편애를 받았으니 친구들한테는 얼마나 따를 당했겠어요) 이런 불행한 인생을 우리가 배워야 하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장자에서 안회의 도덕적 고결함은 융통성없음으로 신랄하게 비난받지요.

    안회와 대조되는 제자가 자공인 것 같습니다. 공부 잘 하는 사람은 가난하고 불운하다가 아니라(공부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라는 이상한 편견을 우리는 가지고 있어요) 현실에서도 성공한다는 사례. 출세하려고 공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출세한다고 공부 못하는 것 아니다! 공부의 길은 빈천에 상관없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것. 그런데 자공은 자꾸 불안해집니다.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힘들다 했는데, 많은 것을 가진 내가 올바른 도를 실천한다 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묻고 또 묻고 스승이 자기가 원하는 답을 해줄 때까지 계속 묻습니다.

    - 가난하지만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지만 교만하지 않는다면 어떻습니까?
    - 괜찮다. 그러나 가난하면서도 즐거워하며,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자만은 못하다.
    - 시경에 ‘자르는 듯하고 가는 듯하며 쪼는 듯하고 닦는 듯하도다’라고 하였으니 이를 말함이군요.

    이 문답에 이르러서야 자공은 비로소 오랫동안 맘속에 품고 있었던 의구심을 풉니다. 아항~ 가난과 부귀가 따로 없구나. 진정한 군자는 내가 지금 어떤 자리에 있는가가 아니라, 내가 선 자리에서 <한 걸음 나아가는> 자로구나! 이 나아가는 방법이 <자르는 듯하고 가는 듯하며 쪼는 듯하고 닦는 듯>한 절차탁마切磋琢磨로구나! 내가 원하는 답을 들을 때까지 스승을 들들 볶는, 자공의 질문공세는 질문 속에서 스스로 답을 찾을 때까지 자신의 인격을 갈고닦는 절차탁마의 과정인 것 같습니다.

    • 북드라망 2016.01.13 09:44 신고 수정/삭제

      자공뿐 아니라 우리도 모두 절차탁마가 필요하지요.
      애독자님께서 이리 열심히 읽으시려고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