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공자의 가장 강직한 제자, 자로 : 의를 보면 반드시 행한다


자로子路의 용기



1, 무식하면 용감하다


 ‘공자스쿨’에서 공자(孔子)의 애제자인 안회(顔回)를 제치고 사람들의 사랑을 가득 받는 인물은 바로 자로이다. 『논어(論語)』에 등장하는 자로는 공자의 가장 측근에 있으며, 공자와 생사고락(生死苦樂)을 함께 하는 인물이다. 『사기(史記)』에 의하면 자로가 죽고 공자는 매우 슬퍼했으며, 그 이유만은 아니겠지만 그 이듬해 공자도 세상을 떴다고 한다. 아마 공자와 자로의 관계는 단순한 스승과 제자 사이가 아닌 듯 보인다. 자로(子路)는 ‘공자스쿨’의 제자들 중에는 공자와 가장 비슷한 연배이다. 공자와 9살 차이가 나며, 같은 노나라 출신으로 이름은 중유(仲由)이다. 자로 혹은 계로(季路)라고 불리기도 한다. 공자와 자로가 단순히 스승과 제자의 사이가 아니라 때로는 허물없는 친구 같이 느껴지는 이유가 공자와 자로가 나이차가 별로 나지 않은 같은 동네 사람이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한다.


친구? 스승과 제자!!


그러나 나에게 자로에 대한 첫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저 시끄럽고, 무식하고, 주먹을 먼저 날리는 무뢰배의 이미지가 더 컸기 때문이다. ‘공자스쿨’과 같은 공부하는 학당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저 그가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류의 인물 같았다.


자로와 공자의 첫 만남도 썩 좋은 장면은 아니었다. 『사기』 「중니제자열전」에 의하면 그가 한 때 공자를 업신여기고 포악한 짓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는 ‘공자스쿨’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힘 좀 쓰는 동네 건달이었다. 학당에 와서 자주 행패를 부리던 그는 공자에게 감복되어 제자가 되었다.


힘 좀 쓰던 그가 공자의 제자가 되고 난 후 그는 정치적 능력으로 인정을 받았다. 당시 대부이던 계씨가 자로에 대해서 묻자 그는 결단력이 있어서 정치를 할 만하다고 대답했다. 자로는 실제 노나라에 등용이 되어 공회의 가신이 된다. 그러나 이런 정치적인 능력에도 불구하고 자로는 늘 공자에게 그의 용감함 때문에 혼이 난다. 자로하면 떠오르는 ‘포호빙하(暴虎馮河)’ 또한 그렇다.


공자가 안연에게 말씀하셨다. '누군가 써주면 곧 행하고, 써 주지 않으면 숨어 버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너와 나뿐이다.' 자로가 물었다 '선생님께서 군대를 통솔하시게 된다면 누구와 더불어 하시겠습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맨손으로 호랑이를 싸우고 맨몸으로 강을 건너며, 일을 저지르고도 절대 뉘우치지 않을 사람하고는 함께 일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임무를 맡으면 반드시 두려워하고, 일을 잘 도모해서 결국 완성해 내는 사람과 할 것이다. '
[子謂顔淵曰 用之則行 舍之則藏 唯我與爾有是夫 子路曰 子行三軍 則誰與 子曰 暴虎馮河 死而無悔者 吾不與也 必也 臨事而懼 好謨而成者也]

『논어』 「술이」


응, 자로야. 너랑은 안해...



『논어』에 공자와 자로의 대화에 대체로 많이 보이는 단어가 ‘용기(勇)’이다. 원래 힘쓰는 인물이어서인지 그는 용감함에 관심이 많았고 공자도 그의 용감함을 칭찬하는 내용도 심심치 않게 보인다. 재미있는 것은 공자가 자로의 용감함을 칭찬하는 듯 보이지만 자로가 조금만 기뻐하면 또 금방 핀잔을 준다. “네 용기는 너무 과하다. 그러니 별 쓸모가 없다.” 그러면 알 수는 없지만, 풀죽은 자로의 모습이 금방 떠오르고 나도 모르게 픽하고 웃게 된다. 자로는 이렇게 밋밋한 『논어』에 생기를 불어 넣어 주는 인물이다.



2, 그저 용감한 사람인가


흔히 용기가 있는 사람은 두려움이 없다. 전쟁이 빈번히 일어났던 이 시기에 용기(勇)는 중요한 덕목이었다. 그래서인지 노나라 대부들이 제자들에 대해서 물었을 때 공자는 자로가 국가의 삼군을 통솔할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도 대답해 준다. 너무 과한 용기는 쓸데없다고 핀잔을 주던 공자는 사실 자로의 용감함을 높이 평가했다. 하지만 무조건 앞으로 뛰어나간다고 좋은 장수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그러고 보니 자로는 공자를 가장 가까이에서 모셨을 뿐 아니라 ‘공자스쿨’에서 가장 훌륭한 제자 10인 중의 한 명이었다. 공문십철(孔門十哲)에 자로는 염유(冉有)와 더불어 정사(政事)에 능하다고 했다. 


그렇다면 자로가 단순히 용기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공자가 높이 평가했다고 보기에는 미흡한 부분이 있다. 단지 그가 군대를 이끌고 전쟁에 승리할 수 있는 것뿐 아니라 분명히 정치를 할 능력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자로는 실제 염유와 함께 노나라의 유력한 정치가였으며, 공자가 천하 주유를 끝내고 노나라로 돌아갈 당시 위나라에 남아 대부인 공회의 가신이 된다.


그가 어떻게 정치를 잘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저 주먹이나 앞세우고, 공자에게 혼이나 나는 자로의 모습이 다가 아님이 분명하다. 단지 공자가 그의 말에 칭찬해 주지 않고, 계속 주의를 주는 것은 그의 급한 성격으로 용맹함만을 앞세워 무모한 일을 저지를까 염려했기 때문이다.


공자를 옆에서 모실 때 민자건은 공손했으며, 자로는 강직했다. 염유와 자공은 조용하고 평안했다. 공자께서도 즐거워하셨다. 공자는 자로의 강직함을 걱정하시어, '자로[由]같은 사람은 명대로 살기 어렵겠구나'하셨다.
[閔子侍側 誾誾如也 子路 行行如也 冉有 子貢 侃侃如也 子樂 若由也 不得其死然]

『논어』 「선진」



『논어』에 공자는 자로의 강직함을 걱정하며 그가 명대로 살지 못할까를 걱정한다. 실제 공자의 걱정대로 그는 위나라의 변란 중에 죽었다. 변란이 일어났을 때 그의 동료가 벌써 상황이 끝났으니 같이 도망가자고 했지만 자로는 녹봉을 받는 사람이 그럴 수 없다며 반란군에 맞서 싸우다 죽임을 당했다. 이미 위나라의 군주인 출공은 도망가고, 반란군이 장악한 성 안에 들어가 싸우는 것이 과연 용감한 행동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할 볼 일이긴 하지만, 고지식하게 강직한 그의 태도는 상황에 따라 처신이 변하는 보통의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다.


이 당시 용기는 어쩌면 전투에서 필요한 덕목에 불과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공자는 용기를 말할 때 자주 의(義)를 언급했다. 용기는 그저 두려움 없이 하는 행동이 아니라 의(義)에 마땅한 일을 할 때만이 빛을 발했다. 공자는 군자에게 용기만 있고 의로움이 없다면 난(亂)을 일으키게 될 것이라고 했고, 소인이라면 도둑질이나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위나라에 변란이 났을 때 그는 녹봉을 받는 자라면 의당 해야 하는 일이라며 성안으로 들어가 반란군과 맞섰다.




3, 의(義)를 보면 반드시 행한다


‘공자 스쿨’에 하나도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자로는 내게는 어려운 사람이다. 『논어』를 읽다보면 스승의 질문에 가장 먼저 대답하고, 잘 모르겠지만 분명 목소리도 다른 사람들보다 컸을 것 같은 자로가 내 눈에는 신중하지 않는 사람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분명히 공자가 가장 아끼는 제자 중에 하나였으며, 제후국들에서 높은 관리를 지냈다. 이는 그가 그저 용감한 사람인 것으로만 설명하기 어려운 무엇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로는 들은 것이 있으면서 아직 행하지 못했는데 또 들을까 두려워했다.'
[子路有聞 未之能行 有恐有聞]

『논어』 「공야장」


 ‘공자 스쿨’이 공부를 하러 모인 사람들이라면 하나라도 더 배우려 하는 것이 보통 학인(學人)의 태도일 것 같은데 자로의 태도는 좀 달라 보인다. 자기가 배운 것을 실천하지 못했는데 스승께 또 다른 것을 배우면 어쩌나하고 걱정을 한다는 것이다. 나는 배운 대로 실천하려고 들면 우리는 아무것도 배우면 안 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배움과 실천이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 그렇게 하기는 정말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로의 이러한 태도를 보면 정말 자로가 이렇게 생각하고 행동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공자는 ‘자로가 한 마디 말로 옥사(獄事)를 판결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고 그는 약속한 일을 다음날로 미루는 일이 없다’고 자로를 평했다. 옥사, 즉 소송을 자로가 한 마디의 말로 정리 할 수 있다는 것은 그 만큼 사람들이 자로의 판단을 신뢰한다는 의미이다. 서로의 이익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소송에서 자로가 내린 판단에 대해서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다는 것은 단지 그가 명민해서 사건 판단에 능해서라기보다 평소에 그의 정직하고 꾸밈없는 생활 모습을 사람들이 신뢰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공자는 의(義)를 보고도 행하지 않는 것은 용기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당당히 하는 것이 용기이다.


자로는 가난했는데, 쌀이 생기면 백리나 떨어진 부모님댁에 쌀을 들쳐업고 달려가 부모를 봉양했다고 한다.



자기의 생각을 직선적으로 내뱉는 자로는 확실히 거칠다. 하지만 그의 태도는 소박하고 꾸밈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말에는 힘이 있다. 어떤 일을 용기 있게 할 수 있는 것은 단지 두려움이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자기의 말과 생각에 군더더기가 없어야 앞으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를 배우면 반드시 그것을 실천에 옮기려 노력했던 자로 그는 죽음 직전에 “군자는 죽더라도 관을 벗지 않는다.”며 풀어진 갓끈을 고쳐 매고 죽었다고 한다. 이런 자로의 모습은 강작하다 못해 고지식하고 답답하게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배운 것을 실천하려고 애쓰는 태도에는 경건함마저 느껴진다. 공자가 가장 아끼던 두 제자, 성인과 같은 모습으로 범접할 수 없는 안회와 범인과 다를 바 없이 친근하게 다가오는 자로는 많이 달라 보이지만 사실 두 사람은 배움을 자기 삶 속에 고스란히 드러냈다는 점에서 같다고 볼 수 있다.  


글_진달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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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애독자 2015.12.23 17:52 신고 답글 | 수정/삭제 | ADDR

    "용기는 그저 두려움 없이 하는 행동이 아니라 의(義)에 마땅한 일을 할 때만이 빛을 발했다"... 단순한 용기와 의로움을 구별하여 자로는 단순무식하여 용감했다 즉 무모했다가 아니라(노예도덕의 희생자), 자신의 앎을 충실하게 실천한, 즉 자기 윤리에 충실한 의인이었다는 이 글의 뽀인뜨에 공감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자로는 그렇게 할 수 있었나. <자기의 말과 생각에 군더더기가 없어야 앞으로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하 그렇군요. 군더더기 없는 소박함 진실함! 그것이 삶의 한 걸음을 내딛게 하는 힘이군요!

    • 북드라망 2015.12.23 18:01 신고 수정/삭제

      그렇지요, 무모한 것과 용감한 것은 다르지요.
      진달래 선생님께서 풀어주신 자로의 '뽀인트'를 잘 짚어주셨네요. 군더더기가 없는 소박함과 진실함이 배운 것을 그대로 실천하고자 했던 강직함으로 나아갔던 것이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