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중국 최초의 통일왕국 진나라를 멸망케한 인물, 조고


나쁜 놈 조고?



팔월 기해일(八月己亥), 조고가 난을 일으키려 했으나 군신들이 자기 말을 듣지 않을까 봐 걱정하여 이에 먼저 그들을 시험해 보았다. 조고는 사슴을 가져다가 이세에게 헌상하며 말하기를 “말입니다” 하였다. 이세가 웃으며 말하기를 “승상이 틀린 게 아니오? 사슴을 말이라 하네” 그러면서 좌우 측근에게 물었더니 혹자는 침묵하고, 혹자는 말이라고 하여 조고에게 아부했다. 어떤 사람이 사슴이라고 했는데 조고는 사슴이라고 말한 사람들을 모두 은밀하게 법으로 표적수사를 하여 제거했다. 이 일이 있은 후에 여러 신하들이 모두 조고를 두려워했다.

- 『사기』「진시황본기」중


"전하, 밤비라는 '말'이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지록위마(指鹿爲馬)’ 의 역사적 현장이다. 천연덕스런 표정으로 사슴을 가져와 “말”이라 하며 진 이세 황제, 호해에게 헌상하는 조고는 음흉한 눈으로 대신들을 훑어본다. “누가 걸리나 보자!” 한편, 이제 조고 없이는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이세 황제는 “사슴을 말이라니 나를 능멸하느냐!”며 호통을 치지 않고 바보같이 웃으며 그걸 또 대신들에게 물어본다. 이만하면 막장드라마 뺨친다. 진시황이 만세토록 영원하리라 했던 나라가 단 이세 만에 저물어가는 장면을 사마천은 이토록 웃프게 보여준다. 아! 저 놈, 저 나쁜 놈 조고. 환관 조고는 눈빛만 마주쳐도 소름이 끼치게 서늘할 것 같다. 그러나 사마천의 『사기』'드라마'를 놓치지 않고 끝까지 본방 사수(?)한다면 그를 미워 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사마천은 조고라는 특이한 캐릭터를 열전에 올리지 않았다. 사마천이 열전을 쓴 이유는 덕행이 드러나지 않아 세상에 알려지지 못하는 선비들이 있을까 우려해서였다. 꼭 선비가 아니더라도 “의리”에 죽고 산 자객이나 협객을 특별히 배려하여 역사에 남긴 사마천이었지만 진시황이 통일한 진나라를 단 20년 만에 기울어지게 한 장본인인 조고는 따로 기록하지 않았다. 열전에도 오를 가치도 없는 나쁜 놈. 그러나 <진시황 본기>와 <이사 열전>, <몽염 열전>에 남은 그의 흔적을 통해 우리는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려는 인간의 강한 욕망을 엿볼 수 있다.


조고는 본래 진시황의 최측근으로 황제의 옆에서 문서수발을 하던 환관이었다. 그의 형제들도 몇 명이 거세되어 환관이 된, 대대로 환관 집안 출신이었다. 그런 그가 황제의 측근에서 일할 수 있었던 것은 형법에 정통했기 때문이었다. 사슴을 사슴이라 했던 사람들을 비롯하여 자기와 함께 진시황의 편지를 위조하여 진시황의 막내 아들 호해를 진 이세 황제로 등극시킨 승상 이사를 제거할 때도 조고는 법을 이용했다. 그는 표적수사의 달인이라 할만하다.


역시 범인은 이 사람이'어'야;;;



<이사 열전>과 <몽염 열전>에는 그가 지식인과 장군을 회유, 협박하는 기막힌 장면들이 등장한다. 자기가 누리는 부와 권세를 놓지 못하는 승상 이사에게는 몽염이 돌아오면 너의 권력은 끝장이라고 협박을 하면서 자기 편으로 만들었고 대대로 걸출한 장군 집안의 장수였고 진시황을 도와 천하통일에 기여한 몽염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밤낮으로 이세 황제의 귀에 대고 몽씨를 헐뜯었다. 결국 몽염은 조고의 뜻대로 자결한다.


사기질, 이간질, 법질, 모함질, 돈질… 조고는 최고 권력을 가지려는 자들이 행하는 모든 간악한 짓을 행한다. 왜일까? 그는 황제가 되고 싶었다. 그러나 황제의 아들이 아닌 자. 그는 어떻게 해야 황제가 될 수 있을까?


조고가 궁중에서 야심을 불태우는 한편, 남의 집 머슴살이를 하며 논두렁에서 일하던 진섭은 “연작이 어찌 홍곡의 뜻을 알리오[燕雀安知鴻鵠之志]”라며 곡괭이를 들고 봉기를 일으켰다. 세상은 금이 가기 시작했다.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가?” 진섭은 자기가 들 수 있는 호미와 곡괭이를 무기로 삼아 자신과 같은 무리의 농민들을 이끌고 일어났다. 조고가 자신의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 동원한 그 “간악한” 수법들은 아마도 그가 궁궐에서 그간 보고 듣고 배운, “권력을 얻고 지키는” 방법이었다. 진섭은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계략과 이간질들, 조고가 진시황의 진나라를 망하게 한 방법은 지난날 진시황이 천하의 제후국들을 망하게 한 방법들이었다. 나에게서 나간 것이 나에게 되돌아올지니!


애초 조고는 큰 죄를 지어 환관명부에서 삭제되는 벌을 받았다. 이때 법대로 처리한 자가 바로 몽염의 아우였던 몽의였다. (조고가 몽씨 집안에 갖는 원한 감정은 오래 된 것이었다.) 그러나 시황제는 조고의 일 처리 능력이 뛰어나다면서 그를 용서하고 그의 관직과 작위를 회복시켜 주었다. 그리고 시황제가 천하를 법으로 통치할 때 옆에서 수족처럼 움직이며 문고리 권력을 행사한 것이 조고였다. 조고는 시황제의 죽음도 은폐시킬 정도로 최측근이었다. 시황제는 자기가 멸망의 씨앗을 키우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불행히도 조고를 키운 건 8할이 시황제였다.


그리고 훗날 시황제의 막내 아들에게 사슴을 '말'이라며 바치게 된다!



일개 평민도 아닌, 거세당한 환관이 가지려 했던 천하. 그것은 그가 감당할 몫이 아니었다. 원한감정과 개인적 욕심 그리고 타인을 굴복시키는 여러 가지 방법을 몸에 습득한 그는 자기가 쓸 수 있는 방법을 다 썼지만 결국 궁궐을 넘어 가지 못했다. 환관의 운명!


결국 조고는 백만 대군이 와도 두렵지 않은, 철벽 수비를 자랑하던 진나라를 안에서 썩어 문드러지게 만든 장본인이 되었다. 관문은 언제나 안에서 열린다! 역사상 가장 간악하고 나쁜 놈의 전형이 된 조고이지만 이제는 어쩐지 짠한 마음이 든다. 그도 자기가 경험하고 살아왔던 그 조건에서 욕심이 생겨났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술수를 다 썼고 그러다가 자기 덫에 걸려 넘어진 인간이었다. 게다가 우리는 이후 역사에서 그리고 지금껏, 조고들의 그런 발버둥질을 수 없이 보고 있지 않은가? 어쩌면 이런 이들 때문에 한 시대가 마감하고 새로운 역사가 씌어지는 지도 모르겠다.


선하거나 악하거나 좋거나 나쁘거나 그 모든 일체 중생이 부처라는 말을 사마천의 『사기』로 이해할 것 같다. 세상에 이런 나쁜 놈일지라도 그는 인간에게 있는 하나의 일면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이제 그를 미워하는 것으로 끝내는 게 아니라 슬퍼할 수밖에 없다. 그도 인간의 오점을 뒤집어 쓴 사람이었다.


글_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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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애독자 2015.12.26 12:55 신고 답글 | 수정/삭제 | ADDR

    난 니가 너무 싫어! 근데 내가 너랑 똑같은 짓을 하고 있어! <사기>를 읽다 보면 ‘남의 일’이 없다는 것을, 세상만사 다 내 맘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섬뜩해집니다. 환관의 신분으로 천하를 쥐락펴락 했던 권력의 화신 조고의 탐욕을 어리석다고 탓할 수만 없는 것이 조고의 마음이 내게도 있기 때문이겠죠. ‘나쁜놈 조고’를 특별한 개인의 운명이 아니라 보편적 인간의 조건으로 조명한 이 글은, 특별한 노력이 없이는 그 자리에 서면 누구나 조고가 될 수밖에 없는 우리들의 오랜 무지-권력 만세-를 돌아보게 합니다.

    • 북드라망 2016.01.04 10:33 신고 수정/삭제

      게다 사기가 쓰여진 시기를 생각해보면.. 이천년 전의 일인데도 여전히 '남의 일'이 아니라니... 여러 생각이 드네요ㅜㅠ
      좋은 해석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