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필경사 바틀비, 자기 규율과 간기울결에 낸 균열의 기운 - 소요산


장치와 생명체, 그 균열과 연결의 이중주 (2)



『필경사 바틀비』의 시점은 변호사인 ‘나’이며, 변호사가 관찰자적 입장에서 주인공인 바틀비를 서술하고 있다. 일인칭 시점은 화자인 ‘나’를 등장시켜 고백적인 친근감을 유발한다. 특히 일인칭 관찰자 시점은 관찰자인 ‘내’가 부차적인 인물로 등장하고, 주인공을 비교적 객관적으로 서술한다는 점에서 관찰자와 독자의 심리적인 거리가 좁혀진다. 또한 대체로 일인칭 관찰자 시점의 소설에서는 관찰자가 주인공을 객관적으로 서술할 수 있도록 평범하고 조금 지적인 인물로 설정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점도 독자를 객석에 앉아 있는 관찰자의 옆자리로 이끈다. 독자는 자기가 평범하지 않다하더라도 평범한 관찰자가 되어주길 원하는 작가의 의도를 따르려 하기 때문이다. 『필경사 바틀비』의 관찰자인 변호사, 즉 ‘나’도 역시 평범하고 조금 지적인  시민이다. 



『필경사 바틀비』의 관찰자, 즉 ‘나’도 역시 평범한 시민이다.



나로 말하자면 젊어서부터 줄곧 평탄하게 사는 게 최고라는 깊은 확신을 갖고 살아온 사람이다. 따라서 활기차고 흥분하기 쉬우며 더 나아가 소란에 휘말리기까지 한다고 흔히들 말하는 직종에 몸담고 있지만 나는 그런 일로 마음의 평안이 깨지는 일이 없었다. 나는 배심원 앞에서 변론을 하거나 대중의 갈채를 끌어내거나 하는 일이 결코 없는, 야망이 없는 변호사들 축에 속한다. 그리고 편안한 은신처가 주는 유유(悠悠)한 평화로움 속에서 부자들의 채권이나 저당권, 등기필증을 다루며 안락하게 살 수 있을 정도의 벌이를 한다.

허먼 멜빌, 공진호 옮김, 『필경사 바틀비』, 문학동네, 8쪽


평탄한 삶에 대한 욕망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소설의 관찰자는 배심원 앞에서 대중의 갈채를 끌어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안락하게 살 수 있을 정도의 벌이를 하는 변호사가 아닌가. 독자는 어쩌면 약간의 부러움의 심리를 내재한 채 소설을 지켜보고 있는지도 모른다. 좀 속물적이긴 하지만 이 관찰자가 앞으로 등장하게 될 주인공을 객관적으로 서술해줄 수 있는 자격은 충분히 있다는 믿음과 함께 말이다.


지난 글을 통해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변호사인 ‘나’를 통해 본 바틀비는 상식 밖의 인물이다. 또한 그 비정상적인 인물을 독자 역시 관찰자의 시선에서 공감하게 된다. 바틀비가 어떤 작업도 거부한 채 사무실을 떠나지 않고 버틸 때는 정말 변호사의 답답함이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이상하면서 왠지 동정이 가는 이 불쌍한 인물을 독자는 관찰자의 시선으로 숨죽이며 지켜본다. 그리고 소설의 끝에서 바틀비의 죽음을 지켜본 독자들은 그 먹먹함을 안고 한 동안 생각에 잠기기도 할 테지만, 책을 덮는 순간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주인공의 그 쓸쓸하고 적막한 죽음에 가슴이 아프긴 하지만 그건 독자의 평범한 일상과 동떨어진 이야기일 뿐이다.


책을 덮는 순간, 바틀비는 나의 일상과 동떨어진 이야기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는 특별하게 살다간 주인공을 생각하느라 정작 우리 자신의 위치에 있는 관찰자를 놓치게 된다. 바틀비의 독특한 행동은 변호사에게 기이한 경험을 주었으며, 이로 인해 변호사는 평탄한 삶에 대한 기대와 자본주의의 욕망이 뒤섞인 견고한 ‘장치’에 균열을 일으킨다. 지난 주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변호사는 바틀비와 같이 살도록 운명 지어졌다는 확신을 한다. 바틀비를 그의 운명 안으로 끌어들임으로써 그의 평탄함은 깨지기 시작했다. 그는 “난생처음 나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가슴 아린 우수에 사로잡혔다”고도 고백했다. 저항할 수 없는 우울감이 그에게 부담스런 과제이기도 했던 행복한 삶을 위한 모든 계획들을 붕괴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지만 아감벤이 장치(내재화된 규율과 통치)에 저항하는 힘의 주체를 ‘생명체들’이라 했던 것처럼 붕괴된 장치는 강렬한 생명력을 가진 새로운 주체의 탄생을 예고한다. 이것은 한의학적으로 또 다른 신체로의 거듭남, 즉 질병의 치유를 의미한다. 한의학에서의 병은 음양의 치우침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치우침을 바로 잡는 것이 치료의 목표가 될 것이다. 장치는 제한적이며 억압적이다. 규율은 밖에서도 들어오고 안에서도 일어난다. 한병철은 푸코의 규율사회는 이제 사라졌고, 대신에 성과사회가 도래했다고 했다. “이제 금지, 명령, 법률의 자리를 프로젝트, 이니셔티브, 모티베이션이 대신”(한병철, 김태환 옮김, 『피로사회』, 문학과 지성사, 24쪽)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삶의 행복을 위한 강박적인 의지 역시 자기 규율이며 또 다른 억압이다. 그런 점에서 억압으로부터 저항하는 것은 억압에서 생성된 질병을 치료하는 행위이며 억제된 생명력을 회복하는 일이다.


한의학적으로 억압에서 생성된 질병은 간병(肝病)이다. 간은 목(木)에 배속된 장부다. 목은 겨울의 얼었던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새싹의 힘을 닮았다. 작은 새싹이지만 그 힘은 때론 아스팔트도 뚫고 나올 정도로 저돌적이다. 간은 이러한 기운을 가지고 몸에서 뭉친 기운을 흩어서 소통시킨다. 이를 ‘소설(疏泄)’이라고 한다. 소설은 소화를 촉진하고 감정을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이 작용이 원활하지 않으면 소화가 잘 안 되고, 감정이 잘 흩어지지 않는다. 이를 ‘간기(肝氣)’가 ‘울결(鬱結)’되었다고 한다. 간기가 울결되어 감정에 문제가 생기기도 하지만 반대로 감정의 촉발로 간기울결이 생기기도 한다. 특히 억울함과 분노, 억압과 강박적인 조건에서 ‘간기울결’이 잘 일어난다. 그래서 간기울결은 ‘화병’과 연결시키기도 한다.


감정의 촉발, 특히 억울함과 분노, 억압과 강박적인 조건에서 ‘간기울결’이 잘 일어난다.



변호사는 이런 강렬한 증상을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나는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다. 부정이나 폭력에 분노해 위험을 초래하는 일은 더더욱 없다(『필경사 바틀비』, 10쪽)”고 단언했다. 하지만 새로 제정한 주(州) 헌법으로 자신이 몸 담고 있었던 법원 서기직이 강제로 폐지된 것에 대해 조용히 불만을 토로했다. 왜냐면 그 “일은 힘들지 않았는데 보수는 상당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불만은 평탄한 삶에 대한 욕망과 동일한 선 위에 있다. 보수가 적거나 힘든 일은 평탄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이런 욕망은 평탄함을 깨는 많은 사건들에 대한 두려움과 이런 번뇌를 피해야 한다는 강박적인 심리가 잠재되어 있다. 별로 부족한 게 없는 것 같은데 왠지 불안한 느낌. 여기도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감정들은 자기의 의식을 밖으로 흐르지 못하게 하고 내면의 욕망으로만 한정시킨다. 그러한 측면에서 변호사는 억압과 강박을 잠재하고 있다고 볼 수 있고, 따라서 이를 예고된 ‘간기울결’ 혹은 이미 진행하고 있는 간병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소요산(消遙散)이라는 방제가 있다. 비기(脾氣)가 허해지고 혈허(血虛)가 동반되면서 간기울결이 나타나는 병증에 주로 쓰인다. 쉽게 말해, 간병(쉽게 화남, 옆구리 통증, 두통, 월경이상 등)과 비병(소화불량, 심신의 피곤함)이 같이 나타난다는 말이다. 소요산은 시호, 당귀, 작약, 백출, 복령, 자감초로 구성된 약이다. 시호는 간기의 울체를 풀어주는 대표 약이고, 당귀는 혈이 모자랄 때 쓰는 자주 쓰이는 약이다. 비기가 허약하면 피가 잘 만들어지지 않아 간에 혈이 잘 저장되지 못한다. 간에 혈이 부족하면 간기가 울결될 수 있다. 작약은 당귀가 만든 혈을 간으로 저장하는 역할을 한다. 백출과 복령은 비기를 보하는 약이고 자감초는 이 약들을 조화시킨다. 요컨대, 소요산은 비허, 혈허, 간울(肝鬱)이라는 세 가지 증상이 함께 나타날 때 처방하는 방제라 할 수 있다.


어찌 보면 바틀비는 소요산의 군약(君藥)인 시호와 비슷하다. 시호는 “오래된 것을 밀어내고 새로운 것이 이르게 하”(명 이천, 『의학입문)는 약으로, 간기의 울결을 해소하고 새싹의 힘인 목기운을 소통시킨다. 바틀비는 변호사의 내면에 침투하여 그가 지켜온 자기 규율의 벽에 균열을 일으킨다. 그 균열로 인해 변호사는 변하기 시작했다. “내게 큰 변화가 생겼다. 나는 모든 능력을 총동원해서 이 견딜 수 없는 악령을 영원히 제거하기로 했다.” 이 분노는 변호사 자신의 신전을 지키려는 반항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이 분노로 인해 삶의 평탄함이 깨지면서 스스로 신전이 불경하게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더 큰 변화는 바틀비를 운명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이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는 죽음으로 치닫는 작은 희망들을 긍정하게 된 것이다. 곧 사라질 운명이지만 소소한 희망과 희소식을 안고 사는 사람들. 그들은 바로 인류다. 그 절망과 희망의 이중주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는 것은 평탄함에 대한 환상을 깨버렸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것이 변호사에겐 오래된 것을 밀애내고 얻은 생기로운 기운이다. 이로써 그는 자신 안의 억압에 저항한 것이고, 이를 통해 일종의 치유의 행위를 하게 된 셈이다.


소요산의 군약인 '시호'는 "오래된 것을 밀어내고 새로운 것이 이르게 하"여 간기의 울결을 해소하고 목기운을 소통시킨다.



시호의 이런 치유의 힘은 능동적인 목기운으로부터 나온다. 바틀비 역시 겉으로 보기엔 비참하기도 불쌍하기도 한 인생을 살았지만 절대 수동적으로 끌려다니진 않았다. 언제건 주도권은 그에게 있었다. 참으로 묘한 힘이 아닐 수 없다. 손자는 이런 능동성을 강조한다.


적보다 먼저 요지를 차지해 적을 기다리는 군대는 여유가 있고, 적보다 늦게 전장에 달려가 적을 마주하는 군대는 고달프다. 그러므로 전쟁을 잘 하는 장수는 적을 끌고 다니지, 적에게 끌려 다니지 않는다. (...) 적이 편안하면 피로하게 만들고, 배부르면 굶주리게 하며, 안정되면 동요시킨다. 적이 반드시 전진할 곳으로 출동하되, 적이 생각지 못한 곳을 습격한다.

손자 씀, 손영달 풀어읽음 『(낭송) 손자병법/오자병법』 50쪽


바틀비가 예치지 못한 방식으로 변호사의 장치에 균열을 냈듯이, 전투에서도 예기치 못한 전법이 통한다. 때를 앞서고 생각지 못한 곳을 습격하는 것이 그런 예가된다. 그 힘은 능동적인 추동력으로부터 나온다. 기존의 관습과 전형적인 전술을 수동적으로 따르지 않을 때 사유의 모험이 일어나며, 거기서 그런 능동적인 힘이 발생하게 된다. 그 목의 기운은 얼어붙은 겨울 땅을 뚫고 올라온 새싹처럼 혁명적인 기운으로 비유된다. 이는 사회시스템에 일으킨 균열(지난 글 참조)과 함께 도래할 새로운 시절인연을 낳는 기운이기도 하다.

글_도담(안도균)

필경사 바틀비 - 10점
허먼 멜빌 지음, 공진호 옮김, 하비에르 사발라 그림/문학동네
낭송 손자병법 / 오자병법 (큰글자본) - 10점
고미숙 기획, 손무.오기 지음, 손영달 옮김/북드라망
낭송 손자병법 / 오자병법 - 10점
고미숙 기획, 손무.오기 지음, 손영달 옮김/북드라망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설정

트랙백

댓글

  • 옥이낭자 2015.11.03 12:34 신고 답글 | 수정/삭제 | ADDR

    바틀비가 죽나보네요. 이거 스포일러인데요 ㅋㅋ
    마지막 문단을 여러번 읽게 되네요. 능동적이 추동력, 함께 도래할 시절인연
    답답한 현실에 작지만 희망적이랄까요
    ㅠㅠ

    • 북드라망 2015.11.03 13:06 신고 수정/삭제

      흠.. 개인적으로 '절름발이가 범인'정도로 다 알고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요^^;;
      네. 능동적인 추동력으로 '답답한 현실'을 잘 돌파해 나가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