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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톡톡] 사태, 뱃속에서 화석이 된 아이

by 북드라망 2015. 10. 29.


사태, 뱃속에서 화석이 된 아이



화(火)기운을 조심하라


우리는 임신을 하면 당연히 아이를 낳을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그래야 하지만 인간사 어떤 일도 생길 수 있으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를 쓴 크리스티안 노스럽은 결과가 좋지 못한 임신은 대부분 원하지 않았거나 계획하지 않은 임신으로 산모가 임신에 대한 혼란스러운 감정을 수습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고 말한다. 동의보감의 시선으로 보더라도 감정의 치우침은 태아에게 불리한 상황을 제공한다. 감정의 치우침은 열을 발생시키는데 동의보감은 계속해서 몸에 불기운이 평소보다 많아지면 유산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불기운이란 일차적으로는 화를 낼 때 생긴다. 화를 많이 내서 감정이 상하면 몸속에 있는 불의 기운이 몸의 진액을 마르게 한다. 화의 생성은 화를 내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감정을 지나치게 써도 화가 발생하게 되므로 지나친 감정 소모는 자제해야 한다. 또한 일을 너무 많이 해도 심장에 열을 받기 때문에 화가 발생하니 임산부는 특히 과로하지 말아야 한다. 



지나친 감정 소모와 과로는 화(火)를 발생한다.



화 기운이 과도한 것은 임신에 치명적이다. 불기운은 몸의 진액을 말려서 죽은 태반 즉, 사태가 되어 죽은 아이를 남기게 되기 때문이다. 태란 아이가 자라기 위한 기관으로 아기와 자궁을 연결해 주는 곳이다. 태는 자궁에 있다. 자궁은 포라고도 하고 혈실이라고도 하는데 그만큼 피가 충만한 곳이다. 충만한 피는 몸을 유지하게 시키지만 새로운 생명을 생성하는 토대이기도 하다. 자궁은 생명이 태어나는 근원, 땅은 만물이 생기는 근원으로 이것이 충만해야 생명이 탄생하는데 화가 발생하면 아이에게 기혈 공급이 부족하여 최악의 상황인 사태에 이르게 된다.   



사태를 아는 법


태아는 양수로 길러지다가 열 달이 차면 혈기가 완전해지고 형태와 정신이 갖추어져 꿈에서 깨듯이 스스로 포를 가르고 길을 찾는데 태의 근원이 튼튼할 때는 포가 터지면 양수를 따라 나오기 때문에 쉽게 아이가 나온다. 하지만 태의 근원이 약하면 양수가 말라버려 더러운 피가 길을 막기 때문에 굳어진다. 화석이 된 아이. 이것이 사태(死胎)다. 지금은 각종 검사를 하므로 죽은 아이를 낳는 상황까지 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과거에는 임신 후에 아이가 죽은 지도 모르고 몇 년 후에 꺼내는 경우도 허다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동의보감에서는 뱃속에 죽은 아이가 있을 때 증상을 감별하는 것부터 언급하고 있다.


배 속에 죽은 아이가 있을 때 어떤 증상이 나타날까? 임산부의 혀가 검어진다고 한다. 붉어야 할 혀가 검게 된 것이다. 혀는 심장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혀는 심장의 상태를 표현한다. 화가 치성하여 몸속에 피가 바짝 마르다 못해 심장이 까맣게 타버린 것이다. 타버린 심장을 우리는 검은 혀에서 볼 수 있다. 사태 증상은 이것만이 아니다. 손톱이 검푸르게 되고 명치 부위가 불러 오르면서 답답하되, 입 냄새가 아주 심하게 난다고 한다.



화가 치성하면 몸속에 피가 바짝 마르다 못해 심장이 까맣게 타버린다.



한의학에서 손톱은 간과 연결되어 있다. 간은 피를 저장하기 때문에 피의 충분한 공급과 긴밀한 연관성을 가진다. 감정적으로는 분노와 연결되는 곳이 손톱이다. 몸에서 분노의 감정은 열을 발생시켜 몸의 진액을 조리게 되는데 피가 부족하면 검푸른 손톱이 되고 만다.


입 냄새가 생기는 이유는 위열이 과도하게 발생해서이다. 위는 소화작용이 일어나는 곳으로 습과 열로 인해 음식물을 변화시켜서 미세한 입자로 만든다. 하지만 열이 지나치면 위는 건조해져서 음식은 소화되지 못하고 타버린다. 타버린 채로 한곳에 오래 적체되어 그 기운이 위로 상승하므로 냄새가 난다.



사태에 소화제를 쓰라고?


드러난 증상을 통해 배 속에 아이가 죽었음을 알게 되었다. 어떻게 치료를 해야 할까. 위중하고 슬픈 상황이라 특별한 처방이 나올 줄 알았는데 동의보감은 의외의 처방을 내린다. 소화제 평위산. 양방에서 소화제 하면 훼스탈인 것처럼 한방에서 평위산은 대표 소화제이다. 아이가 죽은 상황에서 소화제로 치료하라니. 양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말도 안 되는 처방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처방이야말로 한의학의 세계를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소화제 평위산은 뱃속 기운이 뭉쳤을 때 기운을 풀어주는 약이다. 우리가 체했다는 것도 내 몸을 순환하는 기운이 뭉쳐서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기운을 풀어주는 평위산을 등장시킨 것으로 보아 아이의 죽음조차 기운의 뭉침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역시 동의보감은 쿨하다. 죽은 태반을 체하는 것과 같은 지반에서 보고 있다니. 결국 사태도 소화가 안 되는 것도 기운을 풀고 소통을 시키는 것에 치료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렇다고 소화제 평위산을 그대로 사용하지는 않고 약간의 가감을 하고 있다. 평위산을 주약으로 하되 열을 내리고 수분을 공급하는 약재 박초와 물과 술을 섞어 달여 먹으란다. 물은 수분 공급을 위한 것이고, 술은 기혈의 순환을 돌리겠다는 의지이다. 이렇게 처방된 약을 먹으면 수분이 부족하여 말라 비틀어져 죽은 태반이 스르르 풀려서 핏물이 되어 나온다는 것. 치료법에 어혈을 풀어주는 대표 약 계지복령환도 등장한다. 모두 피와 기의 뭉침으로 보아 풀어서 내보내겠다는 것이다.



한의학에서는 사태를 피와 기의 뭉침으로 보아 처방을 내린다.



이런 경우 현대 의학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죽은 아이를 무조건 몸에서 분리하기 위해 당장 수술실로 향했을 것이다. 보이는 것이 전부인 세계에서는 단절하고 분리하는 것 외에 다른 치법을 사유하기가 어렵다. 하지만 동의보감은 모든 것을 기의 다른 양태로 보기 때문에 뭉친 기운을 풀어서 피로 배출하는 사유가 가능하다. 에너지와 물질이 넘나드는 변화의 세계에서는 얼마든지 새로운 접근법이 가능한 것이다.


동의보감은 아이가 나온 후 태반이 나오지 않을 때 산파에게 함부로 손으로 더듬어 꺼내게 하면 절대 안 된다고 엄중한 경고를 하고 있다. 이로 인해 방광이 찢어져 평생의 해가 될 수 있으니 조심하라는 것이다. 만약 나쁜 피가 태반으로 들어가면 나쁜 피로 인해 태반이 팽창해서 막힌다는 것. 피가 나오지 못하고 가슴으로 치밀어 오르면 죽게 된다는 것이다. 이때 처방도 기운을 풀어주는 원리에 충실하다. 이 밖에도 기름을 먹어 치료하는 방법, 구역질을 나게 하는 방법 등 재미있는 치료법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이것 모두 막힌 곳을 뚫으라는 명제에 충실하다. 


“태반이 나오지 않는 것을 치료한다. 돼지기름, 꿀, 식용유 각 반 잔을 불에 녹인다. 데워서 2번에 나누어 먹으면 곧 나온다. 아주 효험이 좋다. 혹 돼지기름만 많이 먹어도 좋다고 한다.(산서) 또한 세 집안의 계란 3개, 세 집안의 물 각 1숟갈, 세 집안의 소금 1자밤을 모두 섞어 단번에 먹고 입속을 더듬어 구역질하게 하면 곧 나온다.(속방) 또는 동변 1되, 생강, 총백 각 3돈을 달여 몇 번 끓어오르게 달여 뜨거울 때 먹는다.(본초) 또 총백을 진하게 달여 음부에 김을 쏘이고 씻으면 태반이 바로 나온다.(속방)”


위에 소개된 치료법이 누구에게는 정답이기도 하고 오답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름대로 많은 사람이 이런저런 방법으로 태반을 빼내었을 것이고 성공한 여러 사례가 동의보감에서는 여과 없이 소개되어 있다. 정상과 표준을 중시하는 우리로서는 도대체 이런 처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아주 난감하다. 하지만 난감해 할 필요는 없다. 그럼? 정상과 표준을 버리면 된다. 내가 삶의 방향을 잃고 휘청거릴 때 주변 친구들은 이런저런 조언을 해 줄 것이다. 이때 우리는 정답을 바라지 않는다. 나의 속마음을 터놓을 친구가 있는 것만으로도 기운이 통하는 중이기 때문이다.



동의보감에는 정답과 오답, 정상과 표준이 없다.



동의보감도 다양한 치료를 우리에게 제안하고 있다. 정답은 없으니 각자 여건에 맞게 치료해 보라고. 어혈을 풀지 못하면 기름으로 빼내겠다는 의지가 돼지기름과 식용유를 생각하게 했을 것이다. 구역질을 통해 내보내겠다는 생각, 아이 오줌과 생강과 총백(파 뿌리) 등 온갖 것이 총동원되면서 일상에서 해결하는 과정이 매우 흥미롭다.


이제 현대 의학의 발달로 인해 사태를 겪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하지만 동의보감이 사태를 바라보는 시선은 의미심장하다. 뱃속에서 화석이 된 아이. 참으로 슬픈 일이지만 동의보감은 죽음에 대해 어떤 의미 부여도 하지 않는다. 기운의 뭉침이라는 물리적인 원리로 사건을 대할 뿐이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죽은 아이의 화석을 풀어내고 계속 세상과 통하게 하는 것. 그것이 생명이고 우리가 살아가는 원리라고 동의보감은 말하고 있다.



글_박장금(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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