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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원일의 락락(樂樂)

정신에 '약'이 되는 음악, 데이빗 보위 〈I'm Deranged〉

by 북드라망 2015. 10. 23.


David Bowie의 《Outside》 앨범 수록곡

〈I'm Deranged〉





1995년 내게는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UCLA 대학에 1년간 머무르며 Ethnomusicology(민족음악학)를 중심으로 여러 음악 강의를 자유롭게 청강할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주어졌었다. 돌이켜보면 학교 굥부보다는 캘리포니아 곳곳을 돌아다니며 접했던 음악과 영화들이 지금까지 유익하게 남아있는 것 같다.


그 당시 어느 여름밤이 또렷히 기억난다. LA 다운타운을 지나다가 한 장의 영화 포스터에 눈길이 사로잡혔다. 평소 예술가로서 존경하는 데이빗 린치(David Lynch) 감독의 새 영화 "Lost Highway"(1996)의 포스터였다. 인적 없는 도로를 미친 듯 질주하는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노란 차선 변경선 위를 질주하는 그 강렬한 이미지 앞에서 단번에 내 심장은 얼어붙는 듯 했다. 동시에 뭔가 가슴 한 켠으로 밀려드는 불길함. 아무도 없는 어두운 밤의 도로를 미친 듯이 질주 하는 자.


그로부터 며칠 후 영화 "Lost Highway"를 보았다.(영화 스포일러는 하지 않겠다.) 사운드트랙은 밴드 Nine Inch Nails(NIN)의 리더 '트랜드 레즈너'가 맡아 사운드 트랙 전반을 차갑고 강렬하고도 묵직한 일렉트릭 록으로 깔아준다. 그 가운데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서 바로 데이빗 보위의 〈I'm Deranged〉가 흐르며 그와 더불어 노란 변경선 위를 헤드라이트가 달린다. 다중적인 내면 속의 나, 그리고 현실 속 프리재즈 색소폰 연주자로 사는 나의 해체 과정! 데이빗 보위가 노래하는 〈I'm Deranged〉, 곧 '미쳐 버릴 것 같은 자'의 음성은 그 혼란스러음과 공포 속에 광기 섞인 공기를 불어넣는다.


데이빗 린치의 〈로스트 하이웨이〉의 포스터.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기 직전의 세기말적 징후를 포착한 데이빗 보위는 엽기적인 소녀 살인 사건을 추적하는 콘셉트 앨범 《Outside》(1995)를 발표한다. 이 앨범은 데이빗 보위의 여러 음악들 가운데 실험성과 사운드 면에서 내가 최고로 꼽는 앨범들 가운데 하나다.  〈I'm Deranged〉는 이 앨범 중의 한 트랙.《Outside》에 부제로 지은 장황한 하이브리드 컨셉이 이 앨범의 성격을 잘 나타낸다. "the Ritual Art-Murder of Baby Grace Blue: A non-linear Gothic Drama Hyper-Cycle"(그레이스 블루/제의적 예술사건 : 비선형 고딕 드라마/하이퍼 사이클) 아울러 데이빗 보위와 베를린 삼부작(《Low》, 《Heroes》, 《Lodger》)을 함께 프로듀스 했던 브라이언 이노가 다시 모든 사운드를 프로듀스 한 앨범이라는 점도 특별함을 더한다.


브라이언 이노(왼쪽)와 데이빗 보위(오른쪽). 가운데 있는 사람은 로버트 프립이다.



데뷔(1967년) 때부터 지금까지 데이빗 보위는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끊임없이 떠돌며 변신을 거듭 보여주는 카멜레온과 같은 아이티스트로 존경과 경멸을 동시에 받아왔다. (1997년의 앨범 《Low》 에서는 전자음악에 미친 은둔자를 자처했고 《Outside》에서는 십대소년 살인사건을 추적하는 '네이선 아들러'라는 탐정이자 동시에 추리소설가로 가사를 쓰고 노래를 하고 있다.)



〈로스트 하이웨이〉의  OST 앨범에 실린 〈I'm Derangerd〉



《Outside》 앨범의 백미는 변화무쌍한 사운드에 있는데 그 위에 펼쳐지는 데이빗 보위의 공허하기도 하고 악마적이기도 한 보이스는 마력적 듣기를 경험케 한다. 괜히 마음이 분주해지기 쉬운 연초에 혼자만의 시간을 내어 데이빗 보위의 음악을 듣거나, 데이빗 린치의 영화 속 불편함과 마주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Outside》는 사운드의 새로움과 불편함이 정신에 약이 될 수 있음을 증명해주는 보기 드문 앨범이다.



글_원일


원일의 락락(樂樂)은,

음악을 즐기다(락악), 즐거움을 음악하다(악락), 즐겁고 즐겁다(락락), 음악을 흔들어라(Rack樂) 모두를 의미하는, 원일 선생님의 음반소개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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