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임신톡톡] 탄생을 거드는 출산의 지혜


탄생을 거드는 출산의 지혜

- 『동의보감』이 전하는 출산법② - 



구경거리가 된 출산


아기를 낳는 장면을 처음 본 건 TV에서다. 잘 알려진 뮤지컬 배우가 남편과 함께 물이 반쯤 차 있는 욕조에 들어가 산고를 겪고 있었다. 다리를 벌리고 앉은 그녀를 남편이 뒤에서 안고 있었다. 머리가 약간 벗겨진 남편은 산통을 겪고 있는 그녀를 어찌할 줄 몰라 하다가 그녀의 고통을 껴안기라도 한 듯 눈물을 흘렸다. 갑자기 호흡이 빨라진 그녀가 순식간에 아기를 낳았다. 그녀의 벌어진 다리 틈 사이로 아기가 비치자 겨우 몇 초 만에 아기의 전체 모습이 탯줄과 함께 밀려 나왔다. 아기가 나타나자 의료진은 물속에서 아기를 건져 올렸다. 그녀의 얼굴에선 기쁨과 고통이 한데 어우러진 알 수 없는 표정이 떠올랐고, 뒤에 앉아 그녀의 몸을 떠받치고 있던 남편은 감격스러운지 더 크게 울었다.


처음 본 출산 장면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물속에서 출산하는 것도 충격적이었지만 출산의 전 장면을 녹화해서 방영한다는 사실이 더욱 충격적이었다. 아기를 낳는 그녀의 모습 또한 생소하고 이질적이어서 마치 내가 발가벗겨진 듯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더욱 이상한 건 아기를 낳은 그녀 옆에서 울고 있는 남편이었다. 그녀의 고통을 남편이 제공한 것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고 할까? 아기를 얻은 기쁨에서 나온 눈물이었겠지만 그 눈물에는 또 다른 의미가 복합되어 있는 듯했다.



물속에서 출산하는 장면을 TV에서 보다.



그 후로 그 프로그램에서는 새로운 출산 방식을 소개했다. 지금 기억나는 건 그네를 타듯이 줄을 매달아 놓고 서서 출산하는 방식이었다. 이건 아마도 티베트의 출산 방식을 응용한 듯하다. 그 프로그램은 새로운 출산 방식을 소개하면서 제왕절개가 출산의 정석처럼 돼버린 지금의 현실을 짚어 보려는 취지가 있었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의미에서 출산은 출산 방식의 문제가 아니다. 또한 병원에서 좌지우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출산은 과연 어떤 것이어야 할까?



안전한 출산을 위한 지혜


『동의보감』이 제시하는 열 가지 출산 노하우는 가정 분만을 그 대상으로 한다. 이것은 가정 분만을 해도 안전하게 아기를 출산할 수 있는 지혜의 소산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옛날에는 집에 산실이 따로 있었다. 따라서 언제든지 분만할 수 있는 준비가 갖추어져 있었다. 예정일이 다가오면 산파의 판단에 따라 산실로 들어가게 된다. 산실은 어둡고 조용한 방이다. 산실에는 남성이 들어오는 것을 기피한다. 그 이유는 남성은 아기한테 자극이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아기는 아직 눈으로 보지 못하는 상태인데 갑자기 커다랗고 큰소리를 내는 어른이 서 있거나 움직이면 무서워한다. 아기 입장에서 보면 남성은 거대한 괴물처럼 보이는 것이다. 그때 받은 충격은 아기 고유의 리듬을 깨뜨려 아기의 신경에 새겨진다.


갓 태어난 아기는 마치 잉크를 빨아들이는 종이처럼 아무것이나 흡수해 버린다. 뇌세포의 수도 140억 개로, 성숙한 어른의 세포 수와 같은 수를 지니고 태어난다. 다만 그것은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흰 종이와도 같다. 그런 대뇌피질 세포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온갖 경험이 새겨진다. 이때 새겨진 기억은 뇌의 심층부로 파고들어 가 아기의 정신 형성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러므로 이 시기를 가능한 한 어머니의 태내와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 주려고 애쓴다. 그때 잊어서는 안 될 것이 명암의 문제다. 대부분의 산실은 어둡고 조용한 곳에 있는데 인도에서는 산실에 조명이 없다고 한다. 인도 사람들은 빛도 아이에게 자극을 준다고 생각해서 마치 동물이 안전하고 조용한 어둠 속에서 새끼를 낳듯 산실을 어둡게 한다. 분명한 것은 아기는 갓 태어나도 30cm 정도 접근한 물체를 볼 수 있을 정도의 시력이라고 한다. 그런데 태내에서 나와 갑자기 강한 빛을 받으면 충격을 받게 된다. 동시에 강한 빛은 눈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 이처럼 옛날부터 안전한 출산을 위한 지혜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다이쿠바라 야타로, 『티베트 의학의 지혜』, 여강출판사, 34~39쪽 정리



지난번에 이어 『동의보감』에서 제시하는 열 가지 출산 노하우 중 나머지를 소개한다.


태아의 머리가 한쪽으로 치우쳐서 비록 산문(産門) 가까이 내밀기는 하나 처음에 정수리가 나오지 않고 먼저 이마가 보이는 것을 편산(偏産)이라 한다. 이때는 산모를 반듯이 눕히고 산파가 태아를 살살 밀어 올린 다음 손으로 머리를 바로잡아서 정수리가 단정히 산문을 향하게 한 뒤에 한 번 힘을 주면 태아가 곧 나온다. 또 태아의 후두골이 항문 쪽으로 치우친 것도 있는데, 이때는 솜옷을 불에 뜨겁게 쬔 다음 손을 싸서 항문을 천천히 밀어 올려 점차 윗자리에 근접하면 머리가 바로 놓이게 하고 나서 자리에 눕히면 곧 낳는다. 편산은 태아의 머리가 한쪽으로 치우쳤으므로 바로 놓이게 하는 방법을 쓰는 것이다.


태아의 머리는 바로 놓였으나 정수리가 산문에서 보이면서도 나오지 않는 것을 애산(礙産)이라 한다. 이것은 태아가 돌 때 탯줄이 태아의 어깨에 걸려서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산모를 반듯이 눕히고 산파가 살살 태아의 머리를 올리고 천천히 손을 넣어 가운뎃손가락으로 태아의 양어깨를 누르고 탯줄을 벗겨서 태아의 몸이 바로 놓였을 때 한 번 힘을 주면 곧 나온다.



태아의 머리가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나오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반장산(盤腸産)은 산모가 누워서 아이를 낳을 때 직장이 먼저 나오고 태아가 뒤따라 나오는 것을 이른다. 대야에 더운물을 담아 놓고 그 물에 직장을 덥히면서 산모를 반듯하게 눕히고 또 무서워하지 않게 위로해 주면서 좋은 미초(米醋) 반 잔에 새로 길어온 물 7분을 타서 골고루 저은 것을 갑자기 산모의 얼굴이나 등에 뿜어준다. 그러면 흠칫할 때마다 조금씩 들어가는데 3번 정도 하면 직장이 다 들어간다. 그리고 겸해서 인삼, 황기, 천궁, 당귀 등 보약에 승마, 시호, 방풍 같은 끌어올리는 성질이 있는 약을 넣어서 쓰면 효과가 있다. 또 한 가지 방법은 빨리 아주까리씨[口麻子]를 껍질을 벗기고 짓찧어 임신부의 정수리에 붙여주는 것인데 이처럼 하면 곧 들어간다.


열산(熱産)은 무더운 여름철에 해산하는 것이다. 이때는 깊고 고요한 햇볕이 들지 않는 방에서 문을 열어 놓고 방 안에 찬물과 얼음을 많이 놓아두어 열이 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와 반대로 동산(凍産)은 몹시 추운 겨울에 해산하는 것이다. 이때는 방문을 꼭 닫고 안팎으로 불을 지펴 늘 봄날같이 온기가 돌게 하고, 허리 아래를 두꺼운 이불로 덮어서 늘 몸을 따뜻하게 해야 한다.


이 밖에 달이 지나서 해산하는 상산(傷産)이 있는데, 1~2년, 심지어는 3~5년이 지나서 낳기도 한다. 이것은 매우 당황해서 너무 일찍이 힘을 주어 양수가 먼저 터져 나오고 나쁜 피가 싸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해산하려고 한 지가 여러 날 되어 산모가 피로해졌을 때는 아이를 빨리 낳게 하는 약을 써서 혈기를 도와주어 아이가 빨리 나오게 해야 한다. 



탄생을 거드는 출산


『동의보감』이 전하는 출산법에서 산파는 태아의 탄생을 거드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오늘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분만의 안전성만을 추구하고 아기나 산모는 전혀 배려하지 않고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듯싶다. 기술적으로는 어떤지 몰라도 임산부를 대하는 의식에서 탄생을 거든다는 사명감보다는 피 보는 일을 한다는 생각으로 출산을 대한다. 현실적으로 자연분만을 존중하지도 않고, 병원 측의 사정에 맞추어 진통촉진제를 사용해서 분만시간을 조절하는 것은 출산을 돈벌이 수단이나 업무 관리 차원에서 다루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분만 시설이 충실해지고 의료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안전출산율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잃어버린 것 역시 적지 않다.



잃어버린 출산의 지혜



『동의보감』이 제시하는 출산법과 같은 오래전부터 알려졌던 생활의 지혜를 어디엔가 묻어 버린 듯싶다. 단적인 예로 태아를 1년~5년까지 뱃속에서 키우는 상산은 현대의 출산에선 찾아볼 수 없다. 상산을 하게 되는 산모는 기혈이 부족하여 태아가 자라기 어려웠기 때문인데, 태아가 기혈을 보강할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은 현대의 출산에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다. 상산이라는 출산법이 있는 것은 태아와 산모의 몸을 배려하여 적절한 출산의 때를 기다리는 것인데 그런 출산법이 통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현대의 출산이 태아와 산모와는 별개로 의료시스템에 맞게 속전속결로 처리해 버리는 일이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출산은 남에게 보이는 것이 아니다. 산모 자신이 익숙해진 방에서 빛을 차단하고 조용히 아기를 낳고, 산후에도 아기가 태중에 있을 때와 같은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발달생리학 면에서 보더라도 본능을 조종하는 소뇌는 처음부터 거의 완성된 형태로 태어난다. 감각이나 기억, 사고 등과 같은 학습 능력을 담당하는 대뇌는 태어나서 점차 발달하지만, 먹는 일이라든가 운동하는 것처럼 본능에 가까운 기능을 담당하는 소뇌는 삶을 영위하기 위해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진다. 그런 본능만이 주어졌을 때 강한 자극을 받게 되면 당연히 아기는 놀라서 공포감을 느끼게 돼 정서가 불안해진다. 그러니 『동의보감』이 제시하는 전통적 출산 방법에는 깊은 지혜가 숨겨져 있다. 전통적인 출산 방법에서 태아는 남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태어난다. 그런 면에서 현대의 출산법은 생명의 존엄이 서린 출산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든다.



글_이영희(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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