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다니카와 슌타로 시선집 『이십억 광년의 고독』


“아이들이 읽으면 동요가 되고, 젊은이가 읽으면 철학이 되고,

늙은이가 읽으면 인생이 되는” 시들의 모음,

『이십억 광년의 고독』




일본의 “국민시인” 다니카와 슌타로(谷川俊太郞, 1931~ )의 시선집 『이십억 광년의 고독』의 옮긴이 해설을 보면 이런 대목이 있다.


그의 시의 결말은 이렇게 인생을 유쾌하게 표현하곤 한다. 유치원생 정도의 아이들이 읽어도 기분 좋게 읽을 수 있으나, 읽는 이에 따라서 다른 의미를 얻을 수 있다. 그가 겨냥하는 것은 단지 신선함이 아니다. 괴테가 “아이들이 읽으면 동요가 되고, 젊은이가 읽으면 철학이 되고, 늙은이가 읽으면 인생이 되는 그런 시가 좋은 시”라고 했듯이 다니카와 슌타로의 시에는 동요와 철학과 인생이 있다.

[김응교, 「옮긴이 해설: 하늘의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 『이십억 광년의 고독』, 문학과지성사, 2009, 240쪽.]


그래서였나. 이 시집은 지난 6년 동안 한 해에도 몇 번씩 내 손에 들려 있었다. 뭔가 절망적인 기분이 슬며시 찾아올 때도, 사는 게 또 제법 괜찮은 일이구나 싶을 때도, 그냥 모든 것에서 손을 놓아 버리고 싶을 때도, 어쩐지 억울한 마음이 불쑥 들 때도, 이 시집은 그때그때 나에게 위로와 격려와 충고와 다독임을 아낌없이 주었다.



만화를 사서 나는 당신과 웃으러 간다
수박을 사서 나는 당신과 먹으러 간다
시를 써서 나는 당신에게 보이러 간다
아무것도 안 갖고 나는 당신과 멍하니 간다
강을 건너 나는 당신을 만나러 간다

― 「강」 全文


살다보면, 참혹하리만치 이기적인 이유에서 나온 요구에 더 이상 근사할 수 없는 이론적 외피를 씌워 사람들에게 들이미는 경우를 만나게 된다. 일차적으로 당황스럽고, 이차적으로 화가 나지만, 맞대응은 포기한다. 해봤자 지도록 설계된 싸움에 뛰어드는 꼴이다. ‘이론적’으로 ‘至善’의 자리에 선 상대에게 구구절절 이야기해 봤자, 그 역시 ‘惡德’을 방증하는 자료나 될 터이다. ‘그럼에도’ 나아가는 용기까지 내보기엔 사람에 대한 절망이 너무 깊어져서 사람에 대한 두려움으로까지 번져가려는 판이었다. 그 판에서 읽은 「강」은, 내게 아직 만화를 보며 함께 웃고 싶은 사람이, 수박을 사서 함께 먹고 싶은 친구가, 아무것도 없어도 멍하니 함께 해주려 하는 벗이 있음을 말해 주었다. 그들의 얼굴로, 두려움을 막아낼 수 있었다.


책은 사실
흰 종이인 채로 있고 싶었다
좀더 정말로 말하면
초록잎이 무성한 나무인 채로 있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책으로 되어버렸기 때문에
옛일은 잊으려고 생각하여
책은 자기 몸에 인쇄된 활자를 읽어보았다
“사실은 흰 종이인 채로 있고 싶었다”
라고 검은 활자로 써 있다

나쁘지 않다고 책은 생각했다
내 기분을 모두가 읽어준다
책은 책으로 있는 것이 그저 조금 기뻐졌다

― 「책」 全文


책은 아름다운 포장지
세상을 포장해 당신에게 보낸다
더할 나위 없는 선물로서

페이지를 넘기는 일은
포장을 푸는 것
때로는 거칠게 뜯는 것

그러나 눈앞에 나타난 세상의 나신(裸身)을
당신을 끌어안을 수 있을까

한 권의 책을 위해
저렇게 많은 나무가 베어진 뒤에

― 「책과 나무」 全文



내는 시집마다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10만 부 이상 팔린 시집도 몇 권이나 되는” 시인이어서일까. 시집뿐만 아니라 동화도, 번역도 엄청나게 많이 하고 그것들 역시 또 잘 팔렸기 때문에 더 ‘책’의 기분, 혹은 나무였던 책을 생각했던 것일까. 알 수 없지만, 나야말로 원고를 ‘책’으로 만들어 세상에 내놓는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늘 마음 한켠에 ‘나무인 채로 있고 싶었던’ 책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품고 산다. 이 일을 왜 하는지를 잃어버리고, 일의 완성에만 몰두하게 될 때, 일의 결과에 대한 집착이 과정을 삼켜간다 싶을 때, 이 시들이 떠오르면, 질주하던 트랙에서 멈추고 한 발짝 밖으로 빠져 나와 내가 애초에 왜 트랙에 들어서서 뛰기 시작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다행이다.

2015년 봄, 가톨릭 사제인 하래사쿠 마사히데(晴佐久昌英) 신부와 인터뷰하는 다니카와 슌타로의 모습. 다니카와 슌타로가 새로운 시를 쓰기까지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다니카와 씨, 시 한편 써주세요’(谷川さん、詩をひとつ作ってください)가 제39회 일본가톨릭 영화상을 수상한 기념으로 가진 인터뷰였다.



다니카와 슌타로 할아버지는 1931년생, 우리 나이로 하면 여든다섯이시다. 이렇게 연세 든 분이 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에는 다른 데서 느끼기 힘든 ‘긍정의 힘’이 있다. 딱히 삶이란 이런 거다라거나, 살아볼 만하다라거나 이렇게 말해서가 아니라, 그저 당신의 삶을 말씀해 주는 것에서만도, 그리고,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해 그냥 가볍게 읊조리는 말씀에서만도, 나도 모르게 콧등이 시큰해지면서 “그래, 살자”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옆의 친구에게도 “살자”라고 건네게 되는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목이 마르다는 것
나뭇잎 새의 햇살이 눈부시다는 것
문득 어떤 멜로디를 떠올려보는 것
재채기하는 것
당신의 손을 잡는 것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미니스커트
그것은 플라네타륨
그것은 요한 슈트라우스
그것은 피카소
그것은 알프스
아름다운 모든 것을 만난다는 것
그리고
감춰진 악을 주의 깊게 막아내는 것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울 수 있다는 것
웃을 수 있다는 것
화낼 수 있다는 것
자유로울 수 있는 것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지금 멀리서 개가 짖는다는 것
지금 지구가 돌고 있다는 것
지금 어디선가 태아의 첫울음이 울린다는 것
지금 어디선가 병사가 다친다는 것
지금 그네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
지금 이 순간이 흘러가는 것

살아 있다는 것
지금 살아 있다는 것
새가 날갯짓 한다는 것
바다가 일렁인다는 것
달팽이가 기어간다는 것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당신의 손의 온기
생명이라는 것

― 「산다」 全文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신고

설정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