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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톡톡] 난산, 내적인 힘을 기르는 과정

by 북드라망 2015. 9. 3.

                 

난산, 

‘내적인 힘’을 기르는 과정 




‘무통! 무통!’을 외치는 임신부들


(……) 원래 예정일은 9월 9일이었지만, 뱃속 아이가 크기도 하고 출산휴가 기간만 쉬고 회사에 복직을 해야 했기 때문에, 유도분만으로 아이를 출산하기로 했어요. 8월 24일로 날을 잡고 아침 8시에 병원에 입원했어요. 촉진제를 맞고 진통이 오기를 기다렸는데 12시가 되도록 별다른 진통이 없었어요. 첫째를 낳을 때는 예정일이 훨씬 지나도록 소식이 없어 예정일이 8일 지나 유도분만으로 낳았는데, 둘째의 경우는 아이가 아직 내려오지도 않았고, 자궁문도 안 열린 상태라 이대로 유도분만 실패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컸어요. 헌데 오후 1시쯤 의사 선생님이 공포의 내진(ㅜㅜ)을 하러 오셔서 직접 양수를 터뜨려주신..;;; 그 뒤로 폭풍 같은 진통이 마구 시작되고 저는 무통 주사 아니면 수술을 시켜 달라고 소리를 질러댔죠. (……)

                ─ 비공개 인터넷사이트에서 발췌한 출산 후기, 실명은 삭제하고 날짜를 변경했음


산달이 가까워지면 대부분의 임신부는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출산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된다. 초산의 경우라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을 겪는다는 데서 오는 불안감 때문에. 처음이 아니라면 또다시 그 힘든 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것 때문에 두려움이 생길 것이다. 이에 더해서 출산의 고통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문화가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는 측면 또한 적지 않다.


특히 난산을 경험한 친구나 지인들은 자신이 겪은 산고를 과장하여 무용담 말하듯 하기를 즐긴다.(남자들이 군대 이야기를 부풀려 말하듯이) 그런 선배들 앞에서 무통 주사를 맞지 않고 자연분만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내비칠라치면 “아직 진통을 안 겪어봐서 모르고 하는 소리”라며, “잘난 체하지 말고 무통 주사가 주는 천국을 포기하지 말라”는 ‘훈계’를 듣거나, “그러다가 아기나 산모가 혹시라도 잘못되면 평생 후회할 것”이라는 ‘협박’을 당하기도 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주는 장면 또한 대부분 난산을 하는 경우다. 수술대 위에 덩그러니 누워 울부짖거나 끙끙대는 산모 주위로 의료진들이 다급하게 움직이고, 수술실 밖에서는 가족들이 초조하게 기다리는 장면을 클로즈업한다.


출산의 고통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문화가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고 있다.



이런 출산 관련 문화가 여성들로 하여금 은연중에 ‘출산은 매우 위험하며 예측이 어려운 위기 상황들이 펼쳐지는 과정’으로 인식하게 한다. 이러한 인식은 통증을 어떻게든 빨리 끝내버리려 하거나 아예 통증 없이 아이만 내 품에 안기기를 바라는 조급한 마음을 갖도록 만든다. 위에 인용한 사례에서 ‘무통!’을 외치는 임신부들이 그러한 공포 심리를 잘 보여준다. 대부분의 병원에서도 출산을 앞둔 여성들의 이러한 공포를 돌봐주려 하기보다는 이를 의료화해버린다. 임신부들의 두려움과 병원의 출산의료화 시스템이 만나게 되면, 자연분만을 원하면서 병원에 갔던 산모들도 의료처치의 필요성에 설득당할 수밖에 없고, 출산 과정에서 어떤 종류든 의료처치를 받게 된다. 난산의 경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적절한 의료기술이 필요하다. 그러나 불필요한 의료 개입은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오히려 산모의 순조로운 출산을 방해함으로써 출산에 대해 지나친 두려움을 갖는 데에 일조한다. 그리고 지나친 두려움은 그 자체가 난산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지나친 두려움은 난산을 부른다


산달이 다 차서 배가 아프더라도 너무 일찍 서둘러서 임신부를 놀라게 하거나 겁을 먹게 해서는 안 된다. 대개 겁을 먹게 되면 기가 움츠러들고, 이렇게 되면 상초(上焦)가 막히고 하초가 창만해 져서 기가 돌지 못하여 난산하게 된다. 『정전』

                                       ─『동의보감』, 「잡병편」, 부인, 법인문화사, 1,661쪽


『동의보감』에서도, 임신부에게 겁을 먹게 해서는 안 된다며 주의를 당부하고 있다. 겁을 먹게 되면 몸이 경직된다는 것은 굳이 의학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흔히 경험하는 바다. 경직된 몸은 변화를 받아들이기 힘들다. 자궁 속의 태아가 자라서 좁은 산도를 통과해 세상 밖으로 나올 때 산모와 아이 둘 다 안전하려면 산모의 몸이 출산에 알맞게 변해야 한다. 그런데 모체가 경직되면 아이도 산모도 모두 힘든 난산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임산부를 놀라게 하거나 겁먹게 하지 마세요.



앞에서 언급한 사이트에 올라온 출산 후기 중에는 불안감 때문에 조금만 배가 아파도 병원으로 달려가 입원을 하고 성급하게 유도분만을 시도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틀 동안 유도분만을 시도하다가 자궁문이 열리지 않아 귀가한 뒤 다시 병원을 찾아 17시간 동안 진통을 겪으며 난산을 한 경우도 있었고, 유도분만을 시도하다가 중단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아이가 나오지도 않는 바람에 진통은 겪을 대로 다 겪고 결국에는 제왕절개술로 아이를 낳은 경우도 많았다.


유도분만이란 말 그대로 분만을 유도한다는 말이다. 더 솔직하게 얘기하면 아직 아이는 나올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억지로 미리 나오게 한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다양하다. ‘엄마의 사정’ 때문에, ‘의료진의 일정’에 맞추다 보니, ‘예정일까지 기다리면 아이가 너무 커져서’ 등등. 유도분만의 과정을 간략히 살펴보면, 유도분만 예정일 하루 전에 입원을 해서 질을 부드럽게 하는 질정제를 넣는다. 그 다음 관장과 제모를 하고 분만 촉진제를 맞아서 진통을 유도한다. 진통이 순조롭게 시작되고 자궁이 열리고 아이가 나오면 다행이지만, 진통은 심해지는데 자궁이 안 열린다든가, 양수가 자꾸만 빠져나가 산도가 마르게 된다거나, 산모가 힘을 주면서 혈압이 올라가거나 하면 어쩔 수 없이 제왕절개로 넘어가는 순서를 밟게 된다.


이런 이유로, 『동의보감』에서는 아이가 나올 적절한 때를 기다리지 않고 너무 일찍 서두르지 말라고 주의를 시키고 있다. 출산에 대한 지나친 두려움으로 조급한 마음을 먹으면 억지로 출산을 촉진하게 되고 그러한 과정들이 임신부를 필요 이상으로 지치게 하고 겁을 먹게 함으로써 기의 흐름을 방해하여 난산에 이르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두려움은 신장의 기능을 위축시킨다. 신장의 기능이 위축되면 인체의 진액 등 수분대사에 문제가 생겨 심장의 열을 제어하지 못함으로써 상초의 기가 문란해진다. 상초의 기가 얽히면 심폐 기능에 문제가 발생하고 수승화강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아 하초에도 자연 부조화가 생긴다. 상하초의 균형이 깨짐으로써 몸 전체의 기의 흐름이 난조를 띠게 되고 이는 난산으로 이어지게 된다.



골반이 좁거나 치골이 열리지 않는 경우


○난산으로 죽게 되었거나 골반이 좁은 여자가 치골이 열리지 않을 때는 구각산‧토뇌환‧내소산‧가미궁귀탕을 쓴다. 『입문』  ○분만할 때 치골이 열리지 않는 것은 음기가 허하기 때문이다. 이때도 가미궁귀탕을 쓴다. 『회춘』  ○산전에 골반 뼈를 부드럽게 하는 처방이다. 오매ㆍ생강ㆍ감초를 모두 같은 양으로 하여 썰어서 달여 먹으면 골반 뼈가 부드러워져 쉽게 아이가 나오고 통증도 없다. 『득효』

『동의보감』, 「잡병편」, 부인, 법인문화사


임신부의 신체 구조적인 문제로 난산하는 경우도 있다. 아이의 머리가 자궁을 열고 나오려면 모체가 평소의 신체 구조를 유지하는 상태에서는 불가능하다. 이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치골이다. 치골은 일명 두덩 뼈라고도 한다. 두덩 뼈는 골반의 앞면을 구성하는 뼈 조직인데 이는 좌우 두 개로 구성된다. 오른쪽과 왼쪽의 두덩 뼈는 골반의 앞쪽에서 하나로 모여 섬유성 연골판으로 이어져 두덩 뼈 결합(치골결합)이라는 관절을 형성한다. 두덩 뼈 결합 부위는 정상적일 경우에는 1mm 또는 2mm 정도이지만 임신 중에는 3mm 또는 7mm 정도까지 증가할 수 있다. 출산 시에는 이렇게 늘어난 두덩 뼈 결합 부위가 벌어져서 아기가 산도를 통과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그런데 아이의 크기에 비해 지나치게 골반이 좁거나 치골이 잘 열리지 않는 경우에는 난산하게 된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치골이 열리지 않는 것은 음기가 허하기 때문이다. 음기가 허하다는 것은 간, 비, 신이 허하다는 뜻인데 그중에서도 주로 신장이 부실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신장은 뼈를 주관한다. 그러므로 음기가 허한 것은 치골이 열리지 않는다거나 하는 문제와 깊은 관련이 있다.


『동의보감』에서는 이런 경우, 빠르고 매끄러운 성질의 약을 쓰면 도움이 된다고 한다. 예를 들면 토끼의 뇌수, 오래 써서 닳은 붓끝을 태운 재, 뱀의 허물 등. 이 밖에도 난산이 여러 날 지속하면서 양수가 많이 흘러 자궁이 말라 태아가 나오지 못할 때는 참기름과 꿀을 한 사발씩 넣고 불에 올려 약간 끓이다가 활석(滑石) 가루 1냥을 타서 먹는다. 활석은 일명 ‘곱돌’이라 불리는 광물로 광물 중에서 가장 무른 성질을 가지고 있고 표면이 유난히 매끄럽다. 또는 참기름과 꿀을 동변(어린아이의 오줌)에 섞어 먹어도 난산에 큰 효험이 있다고 한다. 동시에 참기름과 꿀을 배꼽 주위에 바르고 문질러주면 효과가 좋다고 한다.


이 처방을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고개가 갸우뚱해질 것이다. 어떻게 보면 미신 같기도 하니까. 그러나 이러한 약재들은 그 당시 주변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모두 빠르고 매끄러운 성질을 가지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마도 당시 사람들은 이들의 빠르고 매끄러운 기운을 먹음으로써 아이를 빨리 매끄럽게 나오게 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이러한 처방에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하는 것은 출산 중에 부딪치는 난산의 위기를 삶 속에서 스스로 해결하려 한 능동성이다. 이러한 능동성이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외부의 힘을 빌리지 않고 우선 제 힘으로 넘어보고자 하는 행동으로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능동성이야말로 삶의 국면에서 꼭 필요한 자세이기도 하다.



난산, 임신부 스스로 풀 수 있다


모든 여성은 본능적으로 아이를 낳는 법을 알고 있다. 만약 요즘처럼 의료의 개입이 필수적이라면 어떻게 인류가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남을 수가 있었겠는가? 순산의 과정도 그리 간단치만은 않은데 난산이라면 그 고통은 강도가 훨씬 클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성은 그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의료 기술은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여 새로운 치료 기술을 끊임없이 내놓고 있다.


그러나 출산과 함께 오는 진통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것이 비록 난산이라 하더라도 아이가 나오면 끝나는 시한부 통증이다. 앞에서 언급한 두려움이나 치골이 열리지 않는 등 난산의 원인이 되는 문제도 결국 임신부가 통증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것과 연결된다. 조금만 여유를 가지고 진통의 의미를 이해한다면 난산의 고통은 산모에게 다른 삶을 경험하게 해 주는 드문 기회가 될 수 있다. 아래에 나오는 두 여성의 경우가 이를 말해 준다.


그 여성은 진통을 하면서 조명을 어둡게 하고 침대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녀가 너무 집중하고 있어서 그녀의 어머니와 남편은 그녀가 진통 중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녀는 분명히 진통 중이었으며, 마침내 눈을 뜨고 “이제 아기를 밀어내야 할 때가 된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분만이 끝나자 어머니와 남편은 그녀의 태도가 너무나 궁금해서 그 이유를 물어보았다. 산모는 “나는 고통에 집중하고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헤이 박사는 소리를 지르지도 않고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분만을 하는 여성들에게 질문했다. “글쎄요. 나는 자궁경부에 집중하고 있었어요. 아기의 머리가 나올 수 있게 자궁경부가 열리도록 온 신경을 쏟고 있었지요.” 이런 방식으로 진통을 경험하는 여성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자신의 고통과 함께 있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고통이 자리 잡고 있는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서 고통을 허락하고 있었던 것이다.

       ─ 크리스티안 노스럽,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강현주 옮김, 한문화, 2000, 347~348쪽


통증이 고통스러운 것은 통증을 대상화하고 그것을 피하려고 애를 쓰기 때문이다. 위 여성은 오히려 고통에 푹 빠져듦으로써 고통과 하나가 된 상태다. 이런 경우 통증은 있되 그것은 더는 통증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물론 누구에게나 쉽게 도달할 수 있는 경지는 아니다.


우리 주변에도 흔치는 않지만, 기꺼이 진통을 겪고자 하는 여성들이 있다. 그들은 그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다시 낳아도 무통 주사는 안 맞을 거 같아요. 아파도 내 새끼 낳는 거라 그런지 참을 만한 아픔인 거 같아요. 그리고 오랜 진통을 견디다 보면 진통이 올 때 힘주기를 잘하게 돼서 아기를 밑으로 내려오게 하는 데 도움이 되더라고요.”


이런 시선으로 본다면 진통은 출산과 관련한 아이의 움직임을 알려 주는 자연 신호이기도 하다. 어느 정도 진통을 겪으면서 엄마는 자신도 모르게 진통의 리듬을 읽게 되고, 아이가 나오도록 힘을 줄 때가 언제인지를 알게 되는 것이다. 이 여성은 그러한 아이와의 교감을 무통 주사로 단절시키고 싶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 의식하든 하지 않든 간에.


진통이야말로 아이와 교감할 수 있는 기회이다.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무언가를 감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꺼이 진통을 겪어내겠다는 것은 열 달 동안 함께 하던 아이와 끝까지 함께 하겠다는 의지의 발현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교감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겠다는 뜻이다. 이렇게 보면 진통을 겪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건너뛰고 싶은, 피할 수만 있다면 피해버리고 싶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아니라, 아이와 끝까지 함께 하면서 스스로 힘으로 위기를 넘는 기쁨을 맛볼 기회인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산모는 자신감을 얻을 뿐만 아니라 아이와의 연대감이 더욱 돈독해질 수 있다. 이러한 적극적인 태도는 앞서 언급한, 어떻게든 난산의 고비를 넘어보려고 주변의 먹을거리를 활용하는 옛사람들의 능동성과 맞닿아 있다.


그렇다면 ‘난산’ 또한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난산이라는 어려운 고비를 능동적으로 넘김으로써 산모는 내적으로 더욱 단단해질 수 있으며 그러한 내적 힘이 그 이후 육아뿐만 아니라 삶의 다양한 국면에서 벌어지는 위기들을 넘어갈 수 있는 기반이 될 수도 있을 테니까. 요컨대 ‘난산’은 잘만 겪어내면 아이를 낳는 모든 여성이 ‘내적인 힘’을 기를 기회이기도 하다.



글_오창희(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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