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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그때 그 시집

안도현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

by 북드라망 2015. 8. 17.


1994년, 뜨겁고 불안했던 여름을 함께한 시집

『외롭고 높고 쓸쓸한』





내게, 대학교 4학년은 고3보다 훨씬 불안한 시간이었다. 고3 때는 ‘대학’이라는 주어진 목표가 있고, 어떻게든 거기를 향해 가면 됐지만, 대학교 4학년 때는 모든 것이 안개 속에 있는 듯했다. 중학생 때부터 지녀온 교사의 꿈을 안고 갔던 사범대이지만, 교생 실습 후 내가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범대에서 배운 것은 ‘교사’라는 직업과 별 상관이 없어 보였고, 교사가 되기 위해 시험을 봐야 하는 것도 내키지 않았다. 아니, 테스트가 필요하다는 걸 인정하지 않았던 게 아니라, 그것이 과목들의 필기시험이라는 게 납득하기 어려웠다.


하긴, 이런 것도 사실 다 세상에 대한 불신과 불만에 가득 차 있던 스물세 살의 자기합리화였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교사를 포기하자, 무엇을 해야 할지 아득해졌다. 상담심리 대학원을 갈까?(당시 그나마 관심 있었던 분야;;;) 아무데나 일단 취업을 할까? 휴학도 한 적이 없으니 그냥 지금처럼 알바를 하면서 1년 동안 시간을 가져볼까? 교생 실습 후 아득했던 그해 여름은 한반도 역사상 가장 무더웠던 여름을 기록한 1994년이었다(이때 7월 22일부터 29일까지 하루 ‘평균 기온’이 30도가 넘었다고 한다;;;). 뜨겁고 뜨겁던 그해 7월이 끝나갈 즈음 후배가 이 시집을 내밀었다.




"지루하고 뜨겁고 메마른 … 그러나 언니와 함께, 녹아내리는 여름날"


“외롭고 높고 쓸쓸한”이라는 제목이, 캄캄하기만 한 앞날을 둔 내 맘에 어쩐지 와 닿았다(사실 방황 중인 누구에게라도 와 닿을 제목이다;;). 나는 원래 소설집과 시집은 저자의 말을 작품보다 먼저 읽는다. 이 시집의 ‘저자의 말’은 앞에 실려 있었다. 읽고 나서 제일 처음 실린 시를 보았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너에게 묻는다」 全文


지금은 널리 유명해진 시이지만, 그땐 그렇게까지 알려져 있지 않았다. 이 시집 판권을 보면 1994년 2월에 1쇄가 출간된 걸로 되어 있는데, 말했다시피 내가 읽은 건 그해 7월이니까. 단번에 외웠다(세 줄밖에 안 되는 데다 강렬했고, 말했다시피 아직 기억력이 꽤 괜찮던 20대였기 때문에^^;). 나를 포함해 주변의 모두가 삶에 너무 미적지근하다고 느껴서였는지, 누구에게든 무엇에게든 ‘뜨겁고’ 싶은데 그럴 대상을 못 찾아서였는지, 아니면 연탄재처럼 보잘것없어 보이는 것엔 함부로 대하며 입으로는 힘없는 사람들 편에선 투사인 척 하는 이들에 질려서였는지, 지금은 잘 기억도 안 나지만, 읽는 순간 울컥했던 그 마음은 선명하다. 그후 이 여름 내내 그리고 아마 겨울에도 종종, 만나는 사람들한테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며 다녔던 것 같다.;;;



20대 초반의 불안정한 상태에는 아마 연애도 한몫할 것이다. 연애를 하면 하는 대로, 안하거나 못하면 또 그런 대로, 뭔가 분출하는 욕망과 관계의 어긋남이 더 심한 때라 그런 것일까. 내가 안도현의 이 시집에서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만큼 자주 친구들에게 말해 주거나 편지에 써준 시는 이것이었다.


연애 시절
그때가 좋았는가
들녘에서도 바닷가에서도 버스 안에서도
이 세상에 오직 두 사람만 있던 시절
사시사철 바라보는 곳마다 진달래 붉게 피고
비가 왔다 하면 억수비
눈이 내렸다 하면 폭설
오도가도 못하고, 가만 있지는 더욱 못하고
길거리에서 찻집에서 자취방에서
쓸쓸하고 높던 연애
그때가 좋았는가
연애 시절아, 너를 부르다가
나는 등짝이 화끈 달아오르는 것 같다
무릇 연애란 사람을 생각하는 것이기에
문득 문득 사람이 사람을 벗어버리고
아아, 어린 늑대가 되어 마음을 숨기고
여우가 되어 꼬리를 숨기고
바람 부는 곳에서 오랜 동안 흑흑 울고 싶은 것이기에
연애 시절아, 그날은 가도
두 사람은 남아 있다
우리가 서로 주고 싶은 것이 많아서
오늘도 밤하늘에는 별이 뜬다
연애 시절아, 그것 봐라
사랑은 쓰러진 그리움이 아니라
시시각각 다가오는 증기기관차 아니냐
그리하여 우리 살아 있을 동안
삶이란 끝끝내 연애 아니냐

- 「연애」 全文




20대 때는 왜 그렇게 돈이 없었는지…. 하루는 겨우 버스비만 가지고 집 근처에 찾아온 동기와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 사서 앉아 얘기를 나누고 싶은데 정말 돈이 한푼도 없어 동생의 돼지저금통을 털어서 몇천 원을 마련해 나간 적도 있다. 스무 살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끊임없이 했는데도 왜 돈이 항상 없었을까. 그땐 정말 옷이나 신발 등을 산다는 건 아예 머릿속에 생각조차 없었고, 오로지 차비와 식비(+술값), 책값이었다. 술은 못 마셔도 술을 사주는 건 욕심냈기 때문인지… 남보다 많이 먹었던 건지… 아무튼 돈이 참 없었던 기억만 난다(신기한 건 직장을 갖게 되고 30대에 들어서니 돈이 어느 정도 생겼다는 거다. 먹고 싶은 거 먹고, 사고 싶은 책을 바로 살 수 있는 정도의 돈은 언제나 수중에 있다는 게 처음에는 정말 신기했다). 아무튼, 이 시집에 실린 시들은 안도현 씨가 전교조 활동으로 1989년 해직교사가 된 이후 쓴 것들이다. 당시 전교조에서 나오는 생계보조비 31만원을 받아 아직 어린 두 아이가 있는 집 가장으로 생활하는 게 녹녹했을 리 없다. 이념과 생활의 갈등이랄지, 그럴수록 이념을 붙드는 마음이랄지, 그런 한편 생활 속 소소한 일상에 귀기울이는 마음이랄지, 그런 복잡함이 느껴지는 시들이, 아직, ‘생활인’이 무엇인지 채 알지 못하던 나에게는 안타까움으로만 와 닿았던 것 같다.


구두를 신으면서 아내한테 차비 좀, 하면 만원을 준다
전주까지 왔다갔다 하려면 시내버스비 210원 곱하기 4에다
더하기 직행버스비 870원 곱하기 2에다
더하기 점심 짜장면 한 그릇값 1,800원 하면
좀 남는다 나는 남는 돈으로 무얼 할까 생각하면서
벼랑 끝에 내몰린 나의 경제야, 아주 나지막하게
불러본다 또 어떤 날은 차비 좀, 하면 오만원도 준다
일주일 동안 써야 된다고 아내는 콩콩거리며 일찍 들어와요 하지만
나는 병천이형한테 그동안 술 얻어먹은 것 염치도 없고 하니
그런 날 저녁에는 소주에다 감자탕이라도 사야겠다고 생각한다
(중략)
그래 자기 봉급에서 다달이 만원을 쪼개 남에게 준다는 것
그것 받을 때마다 받는 사람 가슴이 더 쓰린 것
이것이 우리들의 이데올로기다 우리들의 사상이다
이렇게 자랑이라도 좀 떠벌이면서 그래서
입으로만 걱정하는 친구놈 뒤통수나 좀 긁어줄 것을.
나의 경제야, 나는 내가 자꾸 무서워지는구나
사내가 주머니에 돈 떨어지면 좁쌀처럼 자잘해진다고
어떻게든 돈 벌 궁리나 좀 해보라고 어머니는 말씀하시지만
그까짓 돈 몇 푼 때문에 친구한테도 증오를 들이대려는
나 자신이 사실은 더 걱정이구나 이러다가는 정말
작아지고 작아지고 작아져서 한 마리 딱정벌레나 되지 않을지
나는 요즘 그게 제일 걱정이구나

- 「나의 경제」



대학교 4학년 때 결국 나는 어떤 결정도 제대로 내리지 못했고, 열심히 대학원 준비를 하는 친구 옆에서 나도 공부하는 척하며 무엇을 하며 살지에 대한 결정을 유예시킬 시간을 벌었을 뿐이다. 돌아보면 재미도 있었고, 여러 의미도 찾을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당시에는 답답하고 막막하기만 한 시절이었다. 그 시절을 함께했던 많은 사람들, 많은 사건들, 많은 물건들은 흩어지고 잊혀지고 사라졌다. 하지만 막막함을 가장 옆에서 함께 나누었던 친구와 그 시절 종종 읊으며 위안을 받던 시집은 여전히 내 옆에 있다.

외롭고 높고 쓸쓸한 - 10점
안도현/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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