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정화스님 멘토링 : 나도 모르게 버럭!하는 내가 싫습니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


Q1. 지금 하고 있는 공부가 나한테 맞는 공부일까요?

Q. 2년 전, 회사에서 부딪치는 부분도 많고 힘들어서 좀 다르게 살 요량으로 회사를 그만두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앉기만 하면 졸리고 책이랑 어떻게 만나야 할지도 모르겠고 스스로 결과물을 내야 한다는 압박은 있는데 공부는 지지부진합니다. 이렇게 계속 앉아서 공부를 하는 게 맞는지 아니면 몸을 쓰는 공부를 하는 게 맞는지. 나한테 맞는 게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모, 모르겠어요! 이 길이 맞는 걸까요?


스님_ 어떤 공부가 맞는 게 아니라 대부분 사람은 공부하는 게 맞아요. 그런데 그냥 하고만 있으면 들어가기만 하고 나오는 게 없어서 의미 없는 것처럼 생각돼요. 그러면 재미도 없고 공부의 진척도 없어요. 그러니 내가 알고 싶어서 공부한다고 생각하지 말고, 상대가 이런 질문을 했을 때 무엇을 어떻게 말해 줄까를 생각하면서 공부를 하세요. 그러면 무엇을 어떻게 공부해야 할 것인가가 조금씩 더 분명해집니다. 자기가 공부한 것을 풀어낼 수 있는 힘을 길러야 공부가 되거든요. 그러면 졸음도 훨씬 덜 옵니다. 이런 건 걸으면서도 할 수 있거든요. 그래도 졸리면 자는 겁니다. 잠이 필요하면 자야 합니다.


이 말씀은 가장 확실하게 공부하는 방법은 공부하고 싶은 것을 누군가에게 가르치는 것이라는 곰샘의 말씀과도 상통한다.


적성이 따로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한데요.......


스님_ 지금은 적성인 것처럼 보여서 하고 있지만 한 몇 년 하다보면 다른 것이 눈에 띄고 그걸 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사람들에게는 누구나 그렇게 몇 번의 변화가 온다고 합니다. 지금은 공부를 하고 있으니 공부를 하고 그때 다른 게 내게 더 맞는다고 생각되면 그때 그걸 하면 됩니다.


지금 공부를 하고 있으면서 혹시 이게 아니면 시간 낭비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다보면 지금 여기를 소홀히 하게 되고 이 공부가 내게 맞는 공부인지 아닌지 판단하기도 어렵게 된다. 그러니 내게 딱 맞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충실히 하는 게 중요하다. 어쩌면 이런 태도를 배우는 것, 그것이 공부가 아닌가 싶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공부하는가보다는 어떤 태도로 공부하는가 하는 것. 그런데 우리는 자꾸만 어딘가에 나에게 딱 맞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며 그것을 찾아 헤맨다. 공부든 직장이든 배우자든.



Q2. 공부할 때 왜 자꾸 잡념이 생기는지 모르겠습니다

Q. 공부를 하고 싶어서 감이당에 왔고 처음에는 무척 즐겁게 공부했고 공부도 집중력 있게 잘 됐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게 잘 되지 않고 잡념이 자꾸 생깁니다.


스님_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습니다. 행복을 지속적으로 느끼면서 살면 좋겠다고. 그리고 그럴 수 있을 거라고. 그러나 이렇게는 살 수가 없어요. 즐거움이나 행복을 느끼는 것은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나올 때만 가능한데 그게 계속 나오면 생물체는 죽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생명체는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그런 물질이 나오도록 조건화되어 있습니다. 우울함을 느끼게 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노르아드레날린 같은 물질도 마찬가집니다. 그것도 아주 특별한 상황에서만 나와서 신체가 경각심을 가지도록 조건화되어 있어요.


나머지 대부분의 시간은 그냥 그런 느낌 없이 평범하게 살도록 조건화되어 있고 그것이 생물체가 생존을 위해 선택한 조건입니다. 그런데도 늘 그런 행복감을 지속적으로 느끼고 싶어 한다는 것은 인생을 괴롭게 살고 싶다는 얘기나 마찬가집니다.


그런데 ‘평정심’을 유지하며 삶을 기쁘게 살아가는 방법은 있어요. 세로토닌이라는 물질이 이를 가능하게 하는데 이 물질은 (행복하다거나 우울하다거나 하는 식으로)감정을 흔들지 않고 오히려 평정하면서 고요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많이 나와도 신체에 부담이 안 돼요. 예를 들면 쓸데없는 생각이 나오면 ‘이런 생각이 많이 나오는구나’ 하면서 그 상태를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는 훈련을 하면 세로토닌이 분비되어 평정심을 지속할 수 있어요. 그러면 어떤 상황이든지 싫어하지도 좋아하지 않고 그냥 즐겁게 볼 수 있는 상태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즐거움과 행복만 느끼며 산다는 건.. 이런겁니다


처음에 공부가 잘 된다고 생각했고 지금 그게 잘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그 공부가 내게 무엇인지, 나는 왜 공부하고 있는지를 다시 한 번 정리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Q3. 감이당에서 공부를 한 이후 친구들이 저를 멀리하는 것 같아요

Q. 감이당에서 공부한 지 7-8개월 됐는데 친구들과 멀어지는 느낌입니다. 40년 간 죽마고우 소울메이트라고 생각했는데 그런 친구 관계가 어그러져요. 뭐 잘난 척도 안하는데……. 여기서 배운 걸 이야기하고 제 생각도 얘기하게 되기도 하고 그러는데 친구들이 나를 멀리하는 것 같아요. 제가 공부가 제대로 되고 있으면 여기서 또 다른 관계를 만들면 되는데 그것도 아직은 아니고요. 모든 것에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다는데 외로워지는 게 공부를 하면 겪게 되는 나쁜 점인지 궁금합니다.


스님_ 인간의 신체의 본질적인 특징은 유연성입니다. 유식한 말로 하면 가소성이라 하는데 물체가 여러 가지로 변이될 수 있는 것과 같은 것이지요. 우리 신체는 기본적으로 변화를 기본 속성으로 하고 있어요. 노벨상을 받은 분이 연구한 것인데 옥수수의 유전자 내부에 조절유전자라는 게 있었어요. 이 조절유전자는 씨앗이 햇빛이 잘 드는 데 뿌려 졌는가, 바람이 잘 부는 데 뿌려 졌는가에 따라 환경에 맞게 조절을 해서 거기에서 성장하기에 알맞은 형질로 바꿔주는 유전자입니다. 이건 의식 차원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고 무의식적으로 생존 차원에서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그렇게 변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입니다. 조절유전자가 질문자로 하여금 전처럼 하도록 하지 않고 지금 공부하고 있는 환경에 맞는 다른 형질이 나오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변이가 일어나고 있는 과도기인 것이지요. 사실 우리는 늘 변하고 있는데 대부분 크게 눈에 띄지 않을 정도의 변화를 겪으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지금 질문하신 분은 햇볕 잘 드는 데서 바람 잘 드는 데로 온 것처럼 큰 변화를 겪고 있어요. 그래서 그걸 느끼는 겁니다. 머지않아 공부하는 환경에 맞는 형질이 구성될 것입니다. 그러니 걱정할 일이 아닌 거지요.


장금: 저의 경우에는 시간이 지나면서 애쓰지 않아도 한쪽 인연이 정리가 되더라고요.^^



새로운 인연들이 구성될 겁니다:D



Q4. 잠을 방해받으면 분노를 참을 수가 없습니다

Q. 저는 잠에 집착하는 편입니다. 잠을 잘 수 없는 환경이 되면 막 짜증이 나고 복수심이 불타오르기까지 하고 만만한 상대에게는 횡포까지 부리곤 합니다. 그런데 피로가 풀리고 나면 그럴 일도 아니었는데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 그런 상황이 되면 또 그러기를 반복하는데 이런 짓을 무려 40년간 해 왔습니다.


스님_ 잠을 방해받았을 때 가장 먼저 할 일은 지금 내가 자고 있었던 잠이 필요한 잠인지 불필요한 잠인지를 판단해야 합니다. 만약 필요한 잠을 잤는데 방해를 받았다면 상대에게 솔직하게 말하면 됩니다. 그런데 불필요한 잠을 습관적으로 잔 것이라면 잠에서 깼을 때 얼른 옷을 입고 바깥으로 나가세요. 다시는 안 그래야지라고 아무리 다짐해도 지금 상태로는 분노를 절대 못 다스립니다. 몇 십년간 몸이 이런 상황이 오면 분노하도록 조건화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잠은 적당하게 자면 근육의 피로가 풀리고 활기를 되찾지만, 필요한 잠 이상을 자면 근육의 활동량이 줄어들어서 오히려 더욱 무기력하고 피로하게 됩니다. 잠은 하루에 6시간이나 8시간 정도 푹 자면 됩니다. 동물은 움직임으로써 정신활동을 맑게 할 수 있어요. 이것이 식물과는 다른 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잠을 자는 것은 움직이는 것을 많이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잠을 자기 위해 움직이는 것을 덜하고 있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것이지요. 그것은 불필요한 것입니다.




잠을 자는 건 많이 움직이기 위해서입니다.


바깥에 나가 허리를 쭉 펴고 빠른 걸음으로 걸으며 신체의 무기력 상태를 깨워줘야 해요. 그래야 의식이 활발하게 활동하게 되고 그러면 같은 상황에서 아까처럼 분노를 폭발시키는 반응을 할 확률이 줄어듭니다. 불교에서 수행의 방법으로 ‘몸에 힘을 빼고 물결처럼 걸으라’는 게 있는데 이렇게 한 30분 정도 걷고 나면 신체적으로 변이가 일어납니다. 필요한 잠을 못 잤더라도 그렇게 걷고 돌아오면 그 사이에 감정이 풀리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상대를 대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그걸 계속하다 보면 패턴이 달라지고 개선이 일어납니다.


자기 안에 문제의 상황을 다른 방식으로 대할 수 있는 ‘힘’을 기르지 않고서 같은 상황에서 자신이 보이는 태도를 개선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라고 말씀하신다. ‘다음부터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는 결심만으로는 절대 지금까지 반복해온 패턴을 못 다스린다고 확신하신다. 절대! 안 된다고.



Q5. 원한과 자책을 오가는 내가 싫습니다

Q.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에게 내가 참 억울하다는 감정을 심하게 가집니다. 그리고 별 일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상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감정이 확 올라옵니다. 그러다가 그런 감정이 내려가면 내가 왜 이럴까 싶으면서 그런 내가 싫습니다. 



나도 모르게 버럭!하게 되는 내가 싫습니다.


스님_ 어릴 때 얌전하다는 소리를 들었나요, 까불까불한다는 소릴 들었나요?


어렸을 때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며 살았습니다. 어떤 감정도 느끼지 않는 걸 생존전략으로 삼은 것 같습니다.



스님_ 어렸을 때는 자신의 감정을 억압하며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애어른처럼 산 사람들은 감정 억압이 심해요. 그런 사람은 어느 순간에 감정이 확 올라올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그걸 억압하지 말고 실컷 운다든가 하는 식으로 감정을 풀어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어렸을 때는 생존을 위해 그랬더라도 이제 어른인데 그걸 억누를 필요가 없어요. 가족들에게도 감정을 숨기지 말고 충분히 이야기하세요. 이것은 나쁜 게 아닙니다. 감정의 의미를 조작하지 말고 솔직하게 드러내세요. 그러다 보면 어느 순간에 그것이 풀리면서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됩니다.



참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말씀이다. 가족을 생각하고 이웃을 배려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기를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자기배려가 우선이다. 그래야 타인을 배려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런데도 우리들은 흔히 자기를 희생하면서 타인을 배려하는 삶이 좋은 삶이라고 착각하며 산다.



이번 멘토링 내용을 정리하면서 많은 문제들이 우리들의 ‘착각’에서 비롯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러한 착각은 자신의 몸이나 감정의 회로에 대해 무지한 데서 오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무지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 그래서 역시 공부를 해야 하나 보다.



정리/글_오창희(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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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김소영 2015.08.18 15:03 신고 답글 | 수정/삭제 | ADDR

    엄마아빠선생님 말씀 잘 듣고 얌전히 자란 제 안에도 버럭이의 영향력이 세다고 느낍니다.
    병화녀라 그런줄 알았지요ㅎㅎㅎ
    참는게 능사는 아니다. 자기배려가 우선이다.
    맞는 말입니다만 방법을 잘몰라서... 이기적인 사람이 될까봐 또 조심스러워지기도 하고...
    어렵습니다ㅎ_ㅎ

    • 북드라망 2015.08.19 08:28 신고 수정/삭제

      꼭 '버럭'이어야 할 필요는 없겠지만
      어쨌든 표현하는 것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상대방의 문제죠.
      (물론 상대도 가만히 있지는 않겠죠?^^;;))
      그렇게 서로 주고받으면서 사는 거 아니겠습니까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