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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주역서당

성대한 잔칫상도 끝날 날이 있도다! 그 날을 대비하라! - 택지췌

by 북드라망 2015. 7. 2.


성대한 잔칫상도 끝날 날이 있도다!

그 날 을 대비하라!




오늘은 주역의 마흔다섯 번째 괘인 ‘택지췌(澤地萃)’를 살펴보려고 한다. 우선 택지췌를 잘 설명해주는 이야기 하나를 준비했으니 함께 감상해보자. “만리장성과도 바꿀 수 없는 중국인의 자존심”이라고 일컫는 소설 『홍루몽』의 한 대목이다.


우리 집안은 세상에 혁혁한 이름을 날린 지가 백 년 가까이나 되었는데, 어느 날인가 만약 ‘즐거움이 다하면 슬픈 날이 다가온다’는 말처럼 된다면, 또 ‘고목나무 쓰러지면 원숭이 떼 흩어진다’는 속담처럼 된다면 어쩌겠어요? 그야말로 지난 세월 일세를 풍미하던 이름 있는 가문이라고 하는 게 다 헛된 말이 되지 않겠어요!… 영욕은 예부터 돌고 도는 것인데 어찌 인력으로 보존하길 바라시나요? 하지만 지금 그나마 왕성할 때에 장차 쇠락한 이후의 가업을 계획해두면 그 또한 영원히 보존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지금 조상의 선영에 비록 사시사철 제사를 지내고 있으나 일정한 경비와 양식을 준비해두지 않았고… 제 소견으로는 지금처럼 성대한 시절에는 제사 비용이 부족한 까닭이 없겠지만, 앞으로 가문이 몰락한 뒤에는 이 두 가지 일을 어디서 충당할 수 있겠습니까?… 이제 눈앞에 대단히 기쁜 일이 생기게 되어서 정말 훨훨 타는 불꽃 위에 기름을 부은 듯하고 아리따운 꽃송이를 비단 위에 새긴 듯한 성대함의 극치를 맛보게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결국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마는 일순간의 영화임을 꼭 아셔야 합니다. 일시적 즐거움에 빠져 ‘성대한 잔칫상도 끝날 날이 있도다’하는 속담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훗날을 위한 고려를 해두지 않는다면 그때 가서 후회한들 아무 소용없을 것입니다.

─ 『홍루몽』 1권 , 나남출판사, 조설근, 280~290쪽


『홍루몽』은 부귀영화가 절정에 달한 영국부·녕국부 두 가문의 열두 여인(금릉십이차)과 주인공 가보옥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린 소설이다. 위의 대목은 금릉십이차 중 한 명인 진가경이 영혼이 되어 영국부의 살림을 도맡아 하고 있는 왕희봉(역시 금릉십이차 중 한 명)을 찾아가 전하는 내용이다. 죽어서까지 가문을 걱정하는 진가경의 충고가 구구절절 애절한데 요지는 간단하다. ‘지금 그나마 왕성할 때에 장차 쇠락한 이후의 가업을 계획해두면 그 또한 영원히 보존하는 일’이라고.


성대한 잔칫상이 끝나는 날



이게 어디 소설 속 두 부귀한 가문에만 해당하는 내용이겠는가. 평범한 우리도 어느 때는 재물이나 사람이 모이고, 어느 때는 흩어지는 운명의 변화를 경험한다. 그 운명의 변화를 슬기롭게 겪어내려면 진가경의 충고처럼 미리부터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오늘 택지췌는 바로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괘사> 택지췌의 지혜, 모으고 덜어내고


주역을 구성하는 괘들은 모두 음양의 짝이 있다. 예컨대 이젠 기억조차 희미해진 중천건과 중지곤은 하늘과 땅 혹은 아버지와 어머니로 짝이다. 연이어 등장하는 수뢰둔과 산수몽도 어린아이나 새싹을 뜻하는 둔과 기르고 가르친다는 뜻을 가진 몽이 짝을 이룬다. 이 네 개의 괘만 연결해도 어머니, 아버지에게 난 어린아이를 가르치고 기른다는 일련의 서사가 구성된다. 나머지 괘도 마찬가지다.


주역은 64괘의 순서만으로도 하나의 스토리라인을 만들 수 있다. 택지췌는 앞서 본 천풍구와 짝이다. 천풍구는 ‘만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세상 만물은 만나면 모이는 게 당연하다. 하여 택지췌는 ‘모으다’라는 뜻을 가진다. ‘췌(萃) 자’를 파자하면 풀 초(艹) 밑에 군사 졸(卒)이 있는데 풀이 마치 무리를 지은 군사처럼 무더기로 난 모양으로 이 또한 모인다는 뜻을 나타낸다. 한데 모으는 것에도 순서가 있다. 가장 먼저 무엇을 모아야 하는지 택지췌의 괘사를 보자.


췌는 (형)왕격유묘니 이견대인하니 형하니 이정하니라.

췌는 (형하니) 왕이 사당을 둠에 지극히 함이니, 대인을 봄이 이롭고 형통하니, 바르게 함이 이로우니라.


用大牲이 吉하니 利有攸往하니라. 

용대생이 길하니 이유유왕하니라.

큰 희생을 쓰는 것이 길하니, 갈 바를 둠이 이로우니라.


假(이를 격), 廟(사당 묘), 牲(희생 생)


모든 괘사가 그렇듯 택지췌의 괘사도 뜬금없는 말로 시작한다. 왕이 사당을 두고 지극하게 받들면 이롭다니 이게 무슨 말일까? 동양에서는 나라를 세우고 수도를 정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좌묘우사(左右廟稷)라고 해서 궁궐의 왼쪽에는 종묘를 오른쪽에는 사직단을 건립하는 일이었다. 서울에 있는 종묘를 보면 알 수 있듯 종묘는 선왕들의 위패를 모시는 곳이고, 사직단은 토지신과 곡식신을 모시는 곳이다.


국가의 정신을 모으는 종묘사직



건국 초기 그 많고 많을 일 중에서 왜 하필 ‘신’을 모시는 곳에 가장 먼저 신경을 쓴 것일까? 그것은 국가의 기반을 탄탄하게 다지고, 대대손손 이어가기 위해서는 ‘정신’부터 모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의 정신적인 상징인 종묘사직을 먼저 건립한 것이다. 전쟁과 환란이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종묘의 위패를 옮기는 것도, 사극에서 대소신료들이 ‘종묘사직을 보호하소서!’라고 외치는 것도 모두 국가의 근간이 되는 ‘정신’을 보호하라는 다급한 행동이었다. 『홍루몽』에서 진가경이 집안의 기운이 왕성한 지금, 쇠락한 때를 대비해 제사 비용을 준비하라고 말한 것도 동일한 이유다. 정신을 모으고 보존해야지만 다른 물질적인 것도 모을 수가 있으니까. 이처럼 괘사의 ‘왕격유묘’는 먼저 정신을 ‘모아야’함을 말한다.


한데 정신을 모으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괘사에서는 대인(大人)이라야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수중에 온갖 것들이 모여들어 눈과 마음을 현혹하는 이때 대인이 아니면 자신을 곧고 바르게 지키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한데 사당을 지어놓는 것만으로 정신이 보존되는 것은 아니다. 대인이 제물을 바치고 제사를 지내 사당을 지극정성으로 받들어야 한다. 택지췌의 시기는 많은 재물이 모이는 때이니만큼 괘사에서는 큰 재물을 바쳐야 길하다고 말한다. 조상신과 천지 만물의 은덕으로 많은 것을 모았으니 그만큼 베풀고 내어놓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닌가. 그렇다고 너무 허황하게 하라는 말은 아니다. 각박하지 않게 그렇다고 너무 넘치지도 않게 자기 분수에 맞도록 정성을 다하면 된다.


이것은 평범한 사람에게도 적용되는 말이다. 평범한 사람들도 무언가를 모으고 도모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신을 집중하고 가다듬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뜻한 바를 이룰 수 있다. 그렇게 자신이 뜻한 바를 이루었다면(모았다면) 자신의 수준에 맞게 덜어낼 줄 아는 대인의 지혜가 필요하다.



<효사> 끼리끼리 모여라 


지금까지 주역서당에서는 초효에서 상효까지 효사를 차례대로 소개했다. 하지만 택지췌는 ‘모으다’라는 뜻을 지닌 괘이니만큼 서로 어울리는 것들끼리 모아봤다.


* 남녀지합(男女之合) - 남녀가 모여서 합한다


初六은 有孚나 不終이면 乃亂內萃하릴새

초육은 유부나 부종이면 내란내췌하릴새

초육은 미더움이 있으나 끝까지 아니하면 이에 어지럽고 이에 모을새


若號하면 一握爲笑하리니 勿恤코 往하면 无咎리라.

약호하면 일악위소하리니 물휼코 왕하면 무구하리라

호소하는 듯하면 일제히 비웃으리니, 근심치 말고 가면 허물이 없으리라.


號(부를 호), 握(쥘 악), (恤) 근심 휼


택지췌의 괘상을 보면 아래는 곤삼절(☷ : 세 개의 효가 모두 음효) 땅괘고, 위는 태상절(☱ : 가장 위의 효만 음효) 못괘다. 주역에서는 음괘(⚋)는 여인을 나타내는데 그렇게 보면 초효는 위로 언니가 둘이나 있다.(첫째 언니 육이, 둘째 언니 육삼)


음양은 서로 끌리기 마련이다. 하여 초육 음은 자신의 짝인 구사 양을 믿고 시집가고 싶어 한다. 초육과 구사는 음양이 합치되는데 얼마나 끌리겠는가(음양응). 하지만 초효는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언니들을 두고 시집가기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다. 게다가 철없는 언니들도 동생이 시집가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하지만 시집가지 않고 언니들과 모여 살아도 마음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이때 의지할 것은 구사뿐이다. 초효는 구사에게 도움을 청한다. ‘날 좀 데려가 줘!’ 당연히 언니들은 초효를 비웃고 멸시한다. 하지만 그것에 개의치 않고 자기 뜻대로 나아가면 결국엔 허물이 없다.


뜻대로 나아가라!



九四는 大吉이라야 无咎리라.

구사는 대길이라야 무구리라.

구사는 크게 길하여야 허물이 없으리라.


초육과 짝하는 구사는 구오 임금 밑에 있는 대신의 자리다.(효를 볼 때, 초효는 백성, 이효는 재야의 지식인, 삼효는 지방관, 사효는 중앙관리, 오효는 임금, 육효는 상왕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한데 구사는 자리가 바르지 않다. 양이 음자리에 있기 때문이다.(아시겠지만 초효-양, 이효-음, 삼효-양, 사효-음, 오효-양, 육효-음의 순서다) 하지만 주역에서는 양을 음보다 길한 것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비록 부정한 자리에 있는 구사라도 현명하고 강직한 신하라고 본다. 구사는 택지췌의 시기에 만물이 들고나는 것을 관리하는 자리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고 아무리 청렴한 마음씨를 가졌다 하더라도 언제 어디서 욕심이 발동할지 모른다. 이때는 마음을 잘 다독여야 한다. 그렇게 할 때 크게 길하여서 허물이 없다.



* 군신지합(君臣之合) - 임금과 신하가 모여서 합한다

 

六二는 引하면 吉하야 无咎하리니 孚乃利用禴이리라.

육이는 인하면 길하야 무구하리니 부내이용약이리라.

육이는 이끌면 길하여 허물이 없으리니. 미더워서 이에 간략히 제사 올리는 것이 이로우니라. 


육이는 내괘에서 중간에 위치한 데다가 음이 음자리에 바르게 자리했다. 육이의 짝은 구오 임금이다. 이들도 음양이 서로 어울리는 콤비다. 하지만 초육과 구사와는 달리 육이와 구오는 남녀관계가 아니라 군신관계라는 게 다른 점이다. 양의 자리에 음이 자리해서 확고하게 결정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했던 초육과 달리 정중(正中)한 자리에 있는 육이는 안달복달하거나 욕심내지 않는다. 구오가 이끌어주는 덕분에 아무런 허물없이 구오를 도와 정치를 하게 된다.


육이에게는 고달픈 음(陰)들의 세계를 벗어나게 도와주는 구오가 얼마나 고마울까. 하여 육이는 고마움의 표시로 구오에게 간략한 제사를 올린다. 괘사에서는 큰 짐승을 잡아서 제사를 지내라고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대인’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분수에 맞지 않는 짓을 하면 오히려 아첨이 된다. 육이는 신하답게, 자신의 분수에 맞게 정성껏 제사를 올리면 된다.


분수에 맞게 올리기!



九五는 萃有位코 无咎하나 匪孚어든

구오는 췌유위코 무구하나 비부어든

구오는 모으는데 위가 있고 허물이 없으나 믿지 아니하거든


元永貞이면 悔亡하리라.

원영정이면 회망하리라.

원하고 영하고 정하면 뉘우침이 없으리라.


육이와 짝하는 구오는 임금의 자리다. 양이 양자리에 있는 데다가 외괘의 중간에 위치한 이를테면 정중(正中)한 제왕이 자리! 그러므로 구오는 허물이 없다고 본다. 하지만 제왕의 자리라는 게 어디 그렇게 호락호락한가. 내가 정치를 잘하고 있는지, 거두어들인 만물은 잘 관리되고 있는지 의심을 품게 된다.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주역에서는 이때 딱 세 가지를 기억하라고 한다. 원.영.정 넓은 마음으로 선량하게 대하고(元), 멈추지 않고(永) 계속 바르게 나아가면(貞) 후회할 일이 없다고.



* 비취불합(非萃不合) - 모이지 못하고 합쳐지지 못한다


六三은 萃如嗟如라 无攸利하니

육삼은 췌여차여라. 무유리하니

육삼은 모으는(또는 모이는)데 탄식하느니라. 이로운 바가 없으니


往하면 无咎어니와 小吝하니라.

왕하면 무구어니와 소린하니라.

가면 허물이 없거니와 조금 인색하리라.


蹉(탄식할 차)


육삼은 음이 양자리에 있어 바르지 못하다. 다른 효들과는 달리 육삼은 상육과 짝을 이루지도 못한다. 자석처럼 음과 음은 서로를 밀어내니까. 게다가 음(陰) 동생들이 모두 시집 가버리는 바람에 의지할 데 없는 외톨이 신세다. 그러니 탄식이 절로 나오지 않겠는가. 이로운 바가 없는 건 물론이고. 그렇다고 모두가 모이는 택지췌의 시기에 혼자만 동떨어져 있을 순 없는 일. 짝은 아니더라도 상육을 찾아간다. 한데 앞으로 살펴보겠지만 상육도 외톨이이므로 찾아간다고 해도 크게 허물은 없다. 하지만 둘은 애초에 비취불합의 관계이므로 조금 인색하다고 한다.


上六은 齎咨涕洟니 무구니라.

상육은 자자체이니 무구니라.

상육은 탄식하며 눈물을 흘림이니, 허물할 데가 없느니라.


齎(탄식할 자) 咨(탄식할 자) 涕(눈물 체) 洟(콧물 이)


대부분의 상효가 그렇듯 택지췌의 상효도 좋지 못하다. 상효는 욕심만 잔뜩 부려서 ‘주야장천’ 모으기만 하다가 결국은 홀로 남게 된 가엾은 효다. 그러니 뒤늦게 탄식하며 눈물 줄줄, 콧물 줄줄 흘리는 것이다. 이 모든 게 자신이 자초한 일 누구를 탓할까. 그래서 허물할 데가 없다고 한 것이다. 상육은 택지췌의 극단이다. 극에 이르면 변한다고 그동안 악착같이 모아왔던 재물도 언젠가는 흩어질 것이다. 인심 잃고, 재물 잃고. 이것이 바로 왕성할 때가 영원할 것이라고 믿고 쇠락한 때를 대비하지 않은 자의 말로가 아닐까.


몰락에 대비하려면?



택지췌의 형상을 풀이한 상전(象傳)으로 마무리를 할까 한다. 대부분의 경우 상전을 서두에 소개하지만, 오늘은 결론에 배치한 이유가 있다. 상전이 택지췌가 전하려는 바를 간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象曰 澤上於地 萃니 君子 以하야 除戎器하야 械不虞하나니라.

상왈 택상어지 췌니 군자 이 하야 제융기 계불우하나니라.

상전에 이르길 못이 땅 위에 처한 것이 췌니 군자가 이로써 병기를 수리하여 헤아리지 못할 것을 경계하나니라.


택지췌는 땅 위에 연못이 있는 형상이다. 수많은 개울에서 흘러온 물이 ‘모여드는’ 연못. 이 연못은 어느 때는 적당하게 찰랑 되지만 어느 때는 물이 넘쳐서 둑이 터져버린다. 군자는 그것을 보고 인간사에 적용했다.(자연현상을 살펴서 인간사에 적용하다니 군자의 놀라운 관찰력이란!) 사람의 부귀영화도 적당하면 온전하지만, 과도하면 자기 자신을 파멸시켜버린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하여 이렇게 충고한다. 부귀영화를 누릴 때 미리부터 불의의 사고나 사변을 준비해야 한다고. 재물을 노린 도적을 대비해 무기를 손질하고, 군사훈련을 해라. 진가경 식으로 말하면 성대한 잔칫상이 끝날 것을 미리 알고 훗날을 대비하라!


만약 왕희봉이 꿈인지 생시인지 모를 아스라한 영혼과의 만남을 점쟁이에게 점쳤다면 택지췌가 나오지 않았을까?



글_곰진(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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